실천문학 2008. 8. 25. 09:07

이탈한 자가 문득

                                 김중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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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오하지 않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경쟁에서 밀려나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의 비애를 무엇으로 달래야 할까.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 온 적거지는 바로 나 자신이다. 파산하고 패가한 뒤에야 자신을 만나다니!

그동안 적조했던 자기 자신과의 대면을 통해 ‘나’는 밤하늘을 가르며 지나가는 별을 바라본다.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던 줄을 툭, 놓아버린 별은 그야말로 인생 막장까지 가서 볼장 다 본 ‘똥’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자신이 동의한 바 없는 질서에 파산신고를 낸 뒤 추락하는 별은 붙박이별들이 누릴 수 없는 자유를 누리는 섬광이 된다. 그래서 ‘똥’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별똥별’이다.

포기라면 그것은 눈부신 포기고, 체념이라면 그것은 열정적 체념이다. 사실, 우리들의 천체엔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인 뜨뜻미지근한 삶으로부터 이탈한 뒤 스스로 하나의 궤도가 되어 귀환한 항성들이 드물지 않다.

청춘에 파산신고를 내고 낙향하는 벗과 함께 소주병을 기울이며 바라보던 서울 하늘에도 별이 떠 있었던가. 두 눈에 맺혀 있다 떨어지던 그 한 방울이 요즘은 나를 위로한다. 내려와서 쉬었다 가라고, 평상에 누워 별똥이 스칠 때 어린날처럼 소원이라도 함께 빌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