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문학 2009. 1. 6. 09:39

이중섭의 소

                                      이대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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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뿔로 들어가기 위해 소는
뒷다리를 뻗는다 서귀포에서 부산에서
뿔로 들어가 단단한 힘이 되어
세상의 고름을 터뜨리리, 소는 온몸을
뿔 쪽으로 민다 소의 근육을 따라 툭툭
햇살은 튕긴다 앞다리 들어 펄쩍
들어가고 싶다 소가 뛰면
뿔도 뛴다 젠장 명동에서 종로에서
뿔로 들어가고 싶은데 뿔은 또
저만치 앞서 있다 참을 수 없어 소는
속력을 낸다 뿔은 또
멀리 달아나고 뿔로 들어가고 싶어
소는, 나는
일생을

 

*

새해 첫날부터 남쪽에 큰눈이 내렸다. 눈에 덮인 산야가 언뜻 이중섭의 ‘흰소’를 연상시킨다. 땅을 박차고 일서서서 콧김을 뿜어대는 백두대간의 위용은 그 자체만으로도 감격이다. 튼튼한 다리와 다부진 골격, 강물처럼 굽이치는 꼬리, 거친 숨을 내쉬며 꿈틀거리는 생명의 호흡이 벅찬 압도감으로 다가온다.

이중섭의 소 그림은 시인의 묘사대로 화면 밖을 찌를 듯한 뿔을 돋을새김해 놓은 것이 특징이다. 산정의 꼭짓점처럼 전신이 뿔을 향하여 집중하고, 온힘이 뿔로부터 확산되어 나오고 있는 듯하다. ‘앞다리 들어 펄쩍/ 들어가고 싶’은 그 뿔은 어둠을 들이받아 세상의 고름을 터뜨리는 단단한 힘과 같기에 항상 닮고 싶은 그 무엇이다. 하지만 뿔은 늘 저만치 얼마쯤 떨어져 있어서 하나가 될 수 없는 안타까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비록 뿔과 일체가 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일생을 꿈에 집중하는 그 정신이 어쩌면 소와 같은 강한 생명력을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몇 년째 이중섭이 머물던 제주에서 근근이 품을 팔며 외롭게 살고 있는 시인에게 새해 인사 전화를 했더니, 시인은 마침 눈 덮인 한라산을 보고 있다고 했다. 예부터 흰소는 영물 중의 영물이라고 했는데, 눈부신 이 영물의 ‘뿔’이 어둠을 들이받고 꽃 피는 ‘풀’이 되어 돋아나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