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낳은 가장 독보적이고 세계적인 사상가 김지하, 이 책은 그간 탐구 제기한 미학사상과 문명담론을 총정리하여 일단락 짓는 저술이다. ‘고리’를 원리로 하는 민족미학과 ‘그늘’을 최상승으로 하는 민중미학을 생명과 영성, 생명학적 변혁과 깊은 무의식의 명상을 두 기둥으로 하는 동아시아 나름의 ‘흰 그늘의 미학’의 차원에서 결합시켜보고자 하며, 아울러 저자가 21세기 문화현상을 결정하는 근원적 미학원리로 파악하는 ‘디지털-에코’와 관련하여 본격적인 미학사상을 개진한다.
문화관광부 선정 우수학술도서

실천문학에서 1999년에 출간되어 화제를 모았던 [예감에 가득 찬 숲그늘]과, 2004년 2월에 나온 [탈춤의 민족미학]을 잇는 저자의 미학강의이다. 최근 저자의 독특한 사상적 행보가 지나칠 정도의 다작으로 이어졌다는 비판도 있는데,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는 그간 저자가 탐구, 제기한 미학생각과 문명담론을 총정리하여 일단락 짓는 저술로서 그 의미가 크다 하겠다.
제1부에서는 명지대학교에서 열 차례에 걸쳐 강의했던 ‘생명시학론’의 강의록을 정리한 「그늘에서 흰 그늘로!」를 비롯, 민예총 문예아카데미에서 네 차례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 등 강의․강연록을 묶었고, 제2부에서는 여러 지면의 글을 통해 발표한 글들과 새로 집필한 원고를 묶었다. 이 책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그늘에서 흰 그늘로!」,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 그리고 본서의 정수라 할 수 있는 「흰 그늘의 미학(초)」이다.
현대적으로 해석된 풍류, 생명과 영성의 미학의 교호결합
이 책에서 저자는 ‘고리’를 원리로 하는 민족미학과 ‘그늘’을 최상승으로 하는 민중미학을 생명과 영성, 생명학적 변혁과 깊은 무의식의 명상을 두 기둥으로 하는 동아시아 나름의 ‘흰 그늘의 미학’의 차원에서 결합시켜보고자 하며, 아울러 저자가 21세기 문화현상을 결정하는 근원적 미학원리로 파악하는 ‘디지털-에코’와 관련하여 본격적인 미학사상을 개진한다.
저자에 따르면 민족민중미학의 기초는 ‘풍류’에 있다. 현대 생태학 및 생명미학의 기준 역시 풍류이고 전 세계적으로 대중문화의 앞으로의 담론 방향 또한 풍류이다. 이른바 ‘한류’의 지금 숨은 차원과 미래에 드러날 차원도 역시 풍류이다. 그런데 풍류의 현대적 면목은 ‘디지털-에코’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디지털 시대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노마디즘과 지금의 생태학적 담론은 결국 ‘내면적 영성과 외면적 생명’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의 미학 생각도 어떤 의미에서는 현대적으로 해석된 풍류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혼돈의 시대, 예감되는 흰 그늘의 미학
저자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의 상승을 비롯, 지구촌 여기저기에서 벌어지는 자연 재해와, 통제 불능의 신자유주의가 야기한 경제 사회적 혼란을 ‘대혼돈(Big Chaos)’이라 일컬으며, 여기서 후천개벽의 징후를 본다. 역시 농경문명과 유목문명이 대결하던 대혼돈의 시기에 두 문명을 결합한 고대 신화 속 치우와, 저자가 ‘태극 또는 궁궁’이라 부르는 ‘혼돈적 질서’의 원리를 드러낸 붉은 악마 세대의 유사성을 주장하면서(붉은 악마의 깃발에 그려진 것은 다름 아닌 치우이다) 저자는 대혼돈 속에서 등장한 이들 세대가 새로운 문명의 원형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 전망한다.
독일의 신비주의자 루돌프 슈타이너가 예언한바, 문명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시기에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 삶을 살 수 있는 ‘원형’, ‘아키타이프’를 제시하는 성배의 민족이 극동에서 나올 것이라고 한 것은 바로 우리 민족을 지칭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 대혼돈의 시대에 저자는 새로운 우주적 질서가 우리나라에서 출현할 전조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흰 그늘’인가. 앞의 두 책은 각각 ‘그늘의 미학’과 ‘고리의 미학’을 천착한 저술이었는데, 사실 당시에도 미학생각의 이면에는 ‘흰 그늘’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는 최제우와 김일부의 스승인 연담 이운규가 제시한 수수께끼 같은 명제, ‘그늘이 우주를 바꾼다(影動天心月)’에서 사유의 단초를 발견한다.
신산고초를 아는 삶의 경지를 뜻하는 것이 ‘그늘’이라면, ‘엇’은 ‘그늘’을 생성시키는 원리이자, 매개항이 없는 이항대립, 서로 반대되지만 상호보완적인 것, 그렇다-아니다(不然其然)와 같은 ‘혼돈과 생성의 논리학’의 원리가 된다. ‘갈이’와 ‘걸이’란 말로 그 속성을 해명할 수 있는 미학적 원리이기도 하다. 갈아엎고, 시작과 끝이 서로 얽히는 것이다. 이 엇의 작용에 의해 틈이 생성되고, 수용자는 상상력 발동의 여지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은 ‘활동하는 무’, ‘창조적 자유’라고 하는 저자의 우주생명학의 키워드와 상통한다. 한편, 반대되는 것을 묶는 ‘엇’이 있음으로 해서 또한 형성되는 것이 ‘흰 그늘’이다. 구체적으로 감성과 이성, 영성(초자연적이고 신비적인 무엇)이 함께 있을 때 형성되는 그 무엇이다.
달리 말하자면 영적인 성질의 ‘아우라’는 물론 이성적 사유의 기초인 ‘코기토’, 융이 ‘그림자’라고 부르는 현대 대중심리의 불온하고 복합적인 무의식과 광범위하게 확산하고 있는 ‘리비도’를 다 함축하는 개념인 것이다. ‘흰 그늘’이란 엄밀하고 객관적인 해명이 불가능한, ‘신인합일’의 상태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할 수도 있다. 저자는 ‘흰 빛의 떨림’과 ‘검은 그늘의 흐름’을 마치 초월과 중력의 결합처럼 ‘흰 그늘’이라 불러왔다면서, 이것이 자신의 “풍류미학, 미학적 생명학을 ‘흰 그늘의 미학’이라 이름 짓는 한 까닭”이라고 밝힌다.
중앙아시아와 극동아시아, 유럽을 넘나드는 공간적 상상력은 물론이거니와 1만4천 년 전 상고대부터 21세기에 이르는 시간적 상상력, 그리고 그 넓은 시공의 좌표평면에서 펼쳐지는, 마고 신화에서부터 첨단 뇌과학을 아우르는 저자의 해박한 지식이 아찔하다. 강의는 미학사상을 넘어 전 우주의 생성변화로 달려 나가면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늘’에서 ‘흰 그늘’로 넘어온 저자의 화두는 구체적으로 어디로 향할 것인가?

김지하 1941년 전남 목포 출생으로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했으며, 1969년 <시인>지에 「황톳길」 등 다섯 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1964년 대일 굴욕외교 반대투쟁에 참가하여 첫 옥고를 치른 이래, 8년간의 투옥, 사형 구형 등의 고초를 겪었다. 독재권력에 맞서 자유의 증언을 계속해 온 양심적인 지성인으로서, 동학사상을 비롯한 한국 전통정신의 유산을 오늘의 상황 속에서 새롭게 변용시키고 재창조하고자 노력하는 사상가로서 독보적인 업적을 이룩했다. 1975년 로터스 특별상, 1981년 위대한 시인상과 크라이스키 인권상, 1993년 이산문학상, 2002년 정지용문학상과 만해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시집으로 『황토』, 『타는 목마름으로』, 『애린』, 『검은 산 하얀 방』, 『이 가문 날에 비구름』, 『별밭을 우러르며』, 『중심의 괴로움』, 『화개』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밥』, 『남녘땅 뱃노래』, 『살림』, 『생명』, 『동학이야기』, 대설(大說)『남』,『예감에 가득 찬 숲 그늘』, 『김지하 사상전집』(전3권),『탈춤의 민족미학』 등이 있다.

비워지면 채워지는 흰 그늘 ...그 아름다움 ―― 박해현 기자, 조선일보(2005. 11. 12.) 김지하 “새로운 思考위해 화두 하나 던졌죠” ―― 이상주 기자, 경향신문(2005. 11. 02.)
“문학의 한류 이끌어줄 힘 됐으면” 이론서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 펴낸 김지하 시인
얼마 전 유럽에 다녀왔는데, 그쪽 대사들 얘기가 모조리 한류더군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본 유럽 사람들 말도 한국에는 삼성·엘지만 있는 줄 알았더니 문화적으로도 막강하더라는 거였어요. 한류가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로 끝날 것 같지 않고 문학과 학문, 기초예술 쪽으로도 이어져 나갈 수 있겠다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이 책이 기존의 한류 작품들에 더해 미학적 체계가 같이 갈 수 있도록 자극해 주는 하나의 힘이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시인 김지하(64)씨가 우리 고유의 미학 체계를 모색한 이론서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실천문학사)를 펴냈다. 지난달 18~31일 국제도서전이 열린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비롯해 체코 프라하, 오스트리아 빈, 그리스 아테네, 이탈리아 로마 등을 둘러보고 온 그를 2일 낮 서울 인사동에서 만났다.
프랑크푸르트 등 5개국 순례 유럽에서도 한류 확산 기대” 한과 흥 결합’ 고유미학 탐구
“‘흰 그늘’이란 저 자신이 겪은 몇 번의 정신신경계통 경험에서 우러난 일종의 묵시라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눈부신 흰색 빛의 체험과 시커먼 그림자의 체험이 서로 별개로 있었고 그 한 결과가 전남 해남에 살 때 쓴 연작 구술시 <검은 산 하얀 방>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문득 ‘흰 그늘’이라는 묵시가 왔어요. 개인적으로는 이것을 통해 분열되어 있던 것이 정신적으로 통합된다는 느낌이 들었고, 더 나아가 모종의 미학적 개념의 출발이 될 수 있겠다 싶었어요.”
‘흰 그늘’이라는 모순된 표현을 통해 그는 우리 전통 정서의 두 축인 한과 흥을 비롯해 대립되는 것들의 결합을 꾀한다. 한은 흥을 낳고 흥은 다시 한을 낳으며 계속 이어지는, 불교의 연기설과 주역의 태극사상과 같은 생각이 이 개념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600쪽에 육박하는 두툼한 분량의 책은 명지대에서 행한 열 차례의 ‘생명시학론’ 강의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문예아카데미에서 한 네 차례의 강의, 한국예술종합학교 석좌교수 취임 강연 등 강의를 녹취한 글들이 전체의 3분의2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100쪽 남짓한 분량인 <흰 그늘의 미학(초)> 역시 중요한 문건이다. 그러나 시인 자신은 이 책이 체계적인 미학 이론서라기보다는 막연하고 개략적인 모색의 흔적일 뿐이라고 겸손하게 평가했다. 제목에 ‘찾아서’를 붙인 게 그런 뜻이라는 것이다.
“제 직업이 둘입니다. 하나는 시인이고 다른 하나는 형님이에요. 형님이 뭡니까? 아우들에게 훈수를 두는 자죠. 지금부터 미학, 철학, 과학을 할 젊은이들에게 의견을 제시하는 게 제 역할인 거죠. 미학 교수가 되려던 생각을 치우고 일종의 거리의 미학자로 살아오면서 내 식으로 혼자 공부는 해 왔지만 저는 아무래도 학자는 아니에요. 체계적인 이론을 마련하지는 못했다는 거죠. 앞으로도 후배들과 함께 우리 고유의 미학이 무엇일 수 있을지 계속 탐구해 보려 합니다.”
-한겨레. 2005. 11. 3.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김지하 “새로운 思考 위해 화두 하나 던졌죠”
“저는 직업이 2개 있습니다. 하나는 시인이고 하나는 형님입니다.”
이 시대의 문화현상을 자신만의 철학과 담론으로 풀이해 온 김지하 시인이 새 책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실천문학) 출간과 관련해 느닷없이 자신의 직업을 규정했다.
“형님이라는 게 뭡니까. ‘이놈아, 그건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해라’ ‘그 문제는 이렇게 생각해 보는게 어떻겠냐’ 이런 제안과 자극을 하는 게 형님의 일 아닙니까. 한때 미학 교수가 되려고 공부를 열심히 하기도 했지만 저는 전통 미학자는 아닙니다. 그냥 내 식으로 생각하는 거리의 미학자지요. 제 역할은 새로운 사고의 확장과 발전을 위한 화두를 던지는 겁니다. 책 제목을 ‘흰 그늘의 미학’이라고 하지 않고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라고 한 것도 그런 이유지요.”
‘흰그늘…’은 1999년 출간된 ‘예감에 가득 찬 숲 그늘’과 지난해 2월 나온 ‘탈춤의 민족미학’을 잇는 김씨의 미학 강의집이다. 실제 저자가 명지대학교와 민예총 문예아카데미에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해 묶었다.
‘흰 그늘’은 한과 흥의 관계에 대한 김지하식 표현이다. 둘은 분열돼 있는 것 같으나 어느 순간 하나로 융합되는 미학적 정서다. 말하자면 흥을 동반한 한이 ‘흰 그늘’이다.
“신화에서는 환웅(빛)과 웅녀(어둠)의 결합이나 ‘그늘을 품어 주몽을 잉태했다’는 고주몽 설화에 흰 그늘의 미학이 나타납니다. 또 서양철학에서는 칼 융의 그림자론이 이에 해당할 수 있고요.”
한류 열풍의 중심에 있는 영화에도 흰 그늘 이론은 적용된다. 시인은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과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 등을 그 예로 들었다.
“현실에서 너덜너덜한 삶을 사는, 한의 정서를 지닌 주인공이 복싱 신인왕이라는 멋진 흥을 이뤄내는 것(주먹이 운다)이나 한이 흥을, 흥이 한을, 다시 그 한이 흥을 낳으면서 빛이 그늘이 되고 그늘이 빛이 되는 것(봄여름가을겨울~)이 그렇다”고 시인은 설명했다.
“예술이론의 한류도 이루기 위해 지금부터 폭넓은 우리식 미학 논의가 필요하다”는 김씨는 “이번 책이 한류 예술이론의 뼈대를 세우기 위한 논의촉발 계기로 작용했으면 한다”고 ‘형님’같은 소리를 했다.
-2005. 11. 2. 경향신문〈이상주기자 sjlee@kyunghyang.com〉
비워지면 채워지는 흰 그늘 ..... 그 아름다움
“남도의 끝 해남에는 어란(於蘭)이란 작은 포구가 있다. 바다도 너무 깊어 언제나 검은 빛이었고, 조난이 잦아서 포구 끝에 등대 하나가 서 있으니 눈부신 빛이다. 흰 빛과 검은 바다.”
김지하 시인<사진>은 그의 문학을 감싸는 후광(後光) 속에 깃든 풍경을 더듬어 흰 빛과 검은 바다를 만난다. 흑과 백은 서로 뒤엉킨다. ‘소리없는 아우성’과 같은 모순 어법이 가능해지는 시의 차원에서, 흰 빛과 검은 바다는 ‘흰 그늘’이란 김지하 특유의 모순 어법을 낳는다. ‘흰 그늘’은 담시(譚詩)와 대설(大說), ‘애린’ 연작시 등등 김지하가 거쳐온 시적 행로에 드리워져 있을 뿐 아니라 현재 그리고 앞으로 김지하 문학이 나갈 길 앞에도 짙게 깔려있다. ‘흰 그늘’은 김지하가 추구하는 민족 미학의 원리를 담은 한 편의 시와 같은 용어이기 때문에 시인의 친절한 설명이 필요하다. 이 책은 김지하의 강연록을 중심으로 민족 미학의 원리를 찾아간다.
‘흰 그늘’을 이해하기 위해서 김지하는 판소리와 탈춤을 먼저 감상하라고 주문한다. 한국적 전통 예술의 독창성을 대표하는 판소리와 탈춤에서는 똑같이 ‘그늘’이란 경지가 있다. “저 사람 소리에는 그늘이 있다”고 할 때 그 소리꾼은 최고의 찬사를 받는다. 인생의 쓴맛 단맛이 녹아있는 소리와 춤사위에서 한국적 미학의 핵심인 ‘그늘’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 전통예술에서는 삶의 윤리적 측면과 미학적 측면 또는 예술적 측면을 삶의 구체적인 인생 역정에 직결시켜서 봤던 겁니다”라고 김지하는 설명했다.
그렇다면 ‘흰 그늘’은 무엇일까. “빛을 품은 어둠, 뭔가 안에서 큰 외침을 가지고 있는 듯 하면서도 자기가 애써 억누르고 있는 침묵, 이것과 반대되는 것이 서로 얽혀 이런 것이 굉장히 높은 경지에 있다고 할 때 흰 그늘이라고 부르는 겁니다”라는 것이다. 김지하는 한국 현대시사에서 ‘흰 그늘’의 미학을 선구적으로 구현한 시인으로 정지용을 꼽았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라는 정지용의 시 ‘유리창’에서 ‘외로운 황홀’이란 이미지가 ‘흰 그늘’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시를 잘 쓰는 사람은 침묵으로 쓰는 거예요. 말을 많이 쓰지 않고도 자기 주제를 표현하는 사람이 우수한 시인이죠. 공처(空處)의 시인, 즉 틈을 벌려주는 겁니다. 외로운 황홀, 그것은 신에 대한 호소입니다. 가톨릭적이죠.”
‘가톨릭과 소위 유럽의 모더니즘과 우리 민족적인 서정이라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세 가지를 같이 묶어놨던’ 정지용에 대해 김지하는 이성과 감성, 영성(靈性)을 통합한 예술가였다고 평가한다.
김지하는 그래서 ‘흰 그늘’의 핵심은 서로 엇갈리는 것들을 통합하는 상생과 조화의 미학이라고 역설한다.
-조선일보 박해현 기자. 2005. 11. 11.
“한류를 이끌어줄 미학적 뼈대 필요하다”
"한류가 미학과 함께 가면 좋겠고, 이 책이 그것을 자극하는 힘이 된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김지하 시인이 5-6년전부터 명지대와 민예총 문예아카데미에서 했던 미학강의를 정리한 책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실천문학사)를 내놓았다. 같은 출판사에서 1999년 출간한 '예감에 가득 찬 숲 그늘', 지난해 2월 출간한 '탈춤의 민족미학'을 잇는 저자의 미학강의 연작이다.
책 출간을 계기로 2일 인사동에서 만난 김 시인은 "'흰 그늘'에서 그늘이 인생의 쓴맛과 단맛, 희로애락, 한을 표현한다면 흰빛은 신성함, 신명같은 것과 관련된다"면서 "흰 그늘의 미학은 개인적으로 겪었던 정신적 분열상태를 극복하고 정신적 통합에 이르는 과정을 미학의 개념으로 정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삼국유사'의 고구려 유화 편에서 방에 갇힌 유화가 들이친 햇빛을 피했다가 흰 그늘을 껴안은 뒤 주몽을 낳았다는 대목이 나온다"면서 "이 책은 흰 그늘이 민족신화나 민족의 미학적 원형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따져본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독일 교회의 날 기념행사, 문명기행 등을 위해 2주 가량 프랑크푸르트, 프라하, 빈, 부다페스트, 아테네, 로마 등을 방문하고 돌아온 그는 "유럽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마다 한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보며 우리가 '문화입국'까지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지 목사로부터 한국이 삼성, LG만 잘 하는 줄 알았는데 문화도 꽤 강력하다는 것을 느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김 시인은 "이제 한류도 미학적 뼈대를 세울 때가 됐다"면서 "예술종합학교 심광현 교수가 제시한 바 있는 흥과 한의 개념을 동반한 것이 '흰 그늘'이며, 이러한 개념이 한류의 미학적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칼 구스타프 융의 '그림자론'은 의식에서 침전된 욕구불만이 무의식에 축적됐다가 신경질이나 히스테리처럼 갑자기 튀어나온다"면서 "모차르트는 그것을 예술창조의 원리로 활용한 것"이라고 흰 그늘의 미학을 설명해 나갔다.
나아가 "우리 문학 가운데 정지용의 시집 '백록담'에는 흰 그늘의 이미지가 여러 차례 나온다"면서 "정지용은 감성적으로는 민족주의자, 이성적으로는 모더니스트, 영성적으로는 가톨릭이라는 세 가지 모순된 성질을 갖고 있으면서도 서로 충돌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흰 그늘'의 민족신화적 원형은 북방유목계의 색채감각인 검은 그늘과 남방해양계의 눈부신 태양, 환웅과 웅녀의 결합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시인은 최근 한국영화를 통해 흰 그늘의 미학을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를 보다가 이유없이 울었다"면서 "밑바닥에서 누추하게 살아온 사람이 만들어내는 매끈한 액션은 너덜너덜한 한을 뚫고 올라온 흥이어서 평론가들조차 그런 감동을 예상치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 난데 없는 감동이야말로 흰 그늘의 미학이며, 그것은 외국인들에게도 분명히 감동을 줄 것"이라고도 했다.
섬사람들의 오래된 한과 종교를 넘어서려는 선비적 자세 등이 조선시대 천주교의 이입과정 속에서 복잡하게 전개되는 김대승 감독의 '혈의 누', 흥과 한의 정서가 불교적 연기설 속에서 펼쳐지는 김기덕 감독의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등도 흰 그늘의 미학을 보여주는 수작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한류 현상을 뒷받침할 미학이나 예술이론에 대한 논의가 지금부터라도 활발하게 펼쳐져야 하고, 우리가 탐구할 미학은 한류의 성장발전과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흰 그늘의 미학은 인간의 정신적 천민화, 도회적 삶의 혼란상을 극복하는데 강한 소구력을 갖고 있다"면서 "그것은 그늘과 흰빛, 한과 흥, 익살과 숭고미, 슬픔에서 신명에 이르는 통합적 미학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여기서 뻗어나간 기초예술이나 학술분야의 한류는 하나의 문명행태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독일 방문시 민중신학자 위르겐 몰트만 박사와 '생명의 신학'이라는 주제로 대담했던 그는 "축구에서 새세대의 가능성을 본다고 말하자 몰트만 박사는 '축구는 전쟁'이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내가 중요한 것은 스코어가 아니라 응원문화라고 강조하면서 지난 서울 월드컵 때 독일에 패한 한국에 대해 응원단이 '괜찮아'라고 외친 것을 예로 들자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고 덧붙였다.
몰트만 박사는 "축구신학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농담했지만 공격적이고 전투적인 유럽축구와 한국축구의 응원문화는 분명히 다르고, 이는 한류의 미학적 근간을 이룬다고 김 시인은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철학자나 미학자가 아닐지라도 이번에 출간한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가 한류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촉매역할을 하길 기대했다.
http://blog.yonhapnews.co.kr/chuuki
-2005. 11. 3. 정천기 기자 ckchung@yna.co.kr (서울=연합뉴스)
새 시대의 문화담론은 ‘흰 그늘’이다 김지하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실천문학사) 발간
빛은 희고, 그늘은 검다. 우리가 빛과 그늘을 보는 일반적인 사유다. 그렇다면 시인 김지하가 말하는 ‘흰 그늘’은 무엇인가. 흰 그늘’은 한과 흥의 관계에 대한 김지하식 표현이다. 이 둘은 분열돼 있는 것 같으나 어느 순간 하나로 융합되는 미학적 정서다. 말하자면 흥을 동반한 한이 ‘흰 그늘’이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사상가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김지하 시인이 이러한 자신의 미학사상과 문명담론을 담은『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를 최근 실천문학사에서 펴냈다.
『흰 그늘…』은 같은 출판사에서 1999년 출간된 『예감에 가득 찬 숲 그늘』과 지난해 2월 나온 『탈춤의 민족미학』을 잇는 저자의 미학강의 연작으로, 실제 저자가 명지대학교와 민예총 문예아카데미에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해 묶은 것이다.
저자는 앞의 두 책에서 각각 ‘그늘의 미학’과 ‘고리의 미학’이 대해 천착한 바 있다. 그리고 이제 ‘흰 그늘의 미학’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미 ‘그늘’과 ‘고리’의 미학을 논할 때부터 그 이면에 ‘흰 그늘’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김 시인은 책 머리에 “스무 살 때 수원 농대에서의 한밤의 체험, 서른이 넘어 영등포 감옥 먹방에서, 그 뒤 서대문 감옥에서의 참선 때에, 그리고는 해남에서의 구술 연작시 「검은 산 하얀 방」의 분열을 통해 흰 빛과 섬은 그늘 사이의 관계가 자신의 인생 깊이 들어 온 것”을 느꼈다고 회상한다. 그리고 그것이 시학, 나아가 미학적 사유의 이름으로 발전한 것이 ‘흰 그늘’이다.
이처럼 저자가 다시금 ‘흰 그늘’에 대해 강조하는 것은 ‘고리’를 원리로 하는 민족미학과 ‘그늘’을 최 상승으로 하는 민중미학을 생명과 영성, 생명학적 변혁과 깊은 무의식의 명상을 두 기둥으로 하는 동아시아 나름의 ‘흰 그늘의 미학’의 차원에서 교호 결합시켜 보고자 하는 데 있다.
나아가 현대미학에 있어 ‘경제성(상품가치)’과 ‘질(미학적 품질)’ 사이에서 새롭게 결정되기 시작한 ‘디지털-에코’ 같은 근원적인 미학원리에 대해서도 다시금 돌아보고자 함이다.
흰 그늘의 근본에는 ‘풍류’가 있다
저자에 따르면 민족민중미학의 기초는 ‘풍류’에 있다. 현대 생태학 및 생명미학의 기준 역시 풍류이며, 앞으로 전 세계의 대중문화의 담론 방향 또한 풍류이다. 그리고 이른바 ‘한류’의 지금 숨은 차원도 미래의 드러난 차원도 풍류라고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풍류의 논리란 ‘아니다-그렇다’라는 서로 반대되지만 상호보완적인 원리에 있다. 저자는 “‘당신은 춤이나 춰라. 나는 노래만 할테니.’라는 말이 가능한가? 가능하다. 나눌 수 있다. 그러나 나눌 수 없다”며 “이것이 풍류의 논리이며, 이것을 ‘이중적 교호결합’이라고 부른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역설적인 이중성은 숨은 새 차원과 드러난 현 차원 사이의 관계, 그리고 어느 날 숨은 차원이 드러난 차원으로 스스로 개시되는 것 같은 모든 생명 관계에 적용되는 생성논리학, 진화의 논리학, 혼돈적 질서의 논리학, 생명과 영성, 생명차원변화, 그리고 에코-디지털의 논리학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결국 이러한 풍류의 ‘이중적 교호결합’ 논리는 ‘흰 그늘’의 근본이 되며, 저자는 이것을 미학적 논리학으로 ‘흰 그늘의 미학’이라 지칭한다. 그리고 이 ‘흰 그늘의 미학’이 민족미학이면서 민족미학을 훨씬 넘어서는 새 세대, 세 세계 문명의 알짬인 새 문화의 촉수로서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컬쳐뉴스. 2005. 11. 4. 위지혜 기자
“한류, 사상·미학분야로 영역 넓혀야”
::독자적 미학이론서 ‘흰 그늘을 찾아서’ 펴낸 김지하 시인 ::
“한류(韓流)가 사상, 미학 분야로 영역을 넓혀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가 21세기 세계문명사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자신의 미학이론을 담은 ‘흰 그늘을 찾아서’(실천문학사)를 펴낸 김지하(64·사진) 시인. 총 600여쪽에 달하는 이번 책은 1999년 펴낸 ‘예감에 가득 찬 숲그늘’과 지난해 2월에 펴낸 ‘탈춤의 민족미학’을 잇는 김씨의 미학 강의 ‘중간결산서’다.
“이번 책의 핵심 개념은 제목에서 보듯 ‘흰 그늘’입니다. 우리 민족의 한(恨)과 흥(興)이 함께하는 예술을 만들어야 한다는것이지요. 그늘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거라면, 흰빛은신성한 빛, 신바람 같은 것입니다.”김 시인은 고구려의 고주몽 탄생 설화 등에 ‘해그늘(日影)’ 이야기가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흰그늘론(論)으로 한류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세계 영화계가 주목한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과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 등은 우리 민족의 한과 흥을 결합한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우리나라가 주빈국이었던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가서 한류가더 뻗어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봤습니다. 독일 현지 신문들이 ‘한국에 삼성, 현대만 있는 게 아니라 문화도 있다’라고 보도한것을 봤습니다.”그는 동서양의 예술미학, 철학을 융합하는 민족미학론의 단초를이번 책이 제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시인은 “시작 활동보다 사상 운동가로 너무 부각되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단호히고개를 저었다.
“아직 발표를 하지 못한 제 시의 재고량이 300여편이 넘습니다. 문예지들이 청탁을 하지 않아요. 문예지들이 패거리에 의해서움직이는데, 제게는 패거리가 없잖습니까.”
-문화일보 장재선 기자. 2005. 11. 4.
김지하 시인, [흰 그늘의 미학] 펴내
김지하(64·사진) 시인이 자신의 미학 이론을 담은 ‘흰 그늘을 찾아서’를 실천문학사에서 펴냈다. 1999년 펴낸 ‘예감에 가득 찬 숲그늘’과 지난해 2월에 펴낸 ‘탈춤의 민족미학’을 잇는 김 씨의 미학 강의서다.
그의 미학 이론의 핵심은 ‘흰 그늘’론(論)으로 모아진다. ‘흰 그늘’이 담긴 예술을 하자는 것이다. “예전에 신경계통의 치료를 받다가 흰빛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떨어져 나오는 걸 본 듯한 체험을 여러 번 했습니다. 결국 전남 해남으로 갔다가 ‘검은 산, 하얀 방’이라는 연작 구술시까지 쓰게 됐지요. 그늘이라는 게 인생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거라면, 흰빛은 신성한 빛, 신바람 같은 게 아니겠습니까. 한(恨)과 흥(興)이 함께하는 예술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몇 년 전 ‘삼국유사’ 고구려편을 읽으면서도 ‘흰 그늘’ 미학의 원형이 되는 듯한 이야기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거기 보면 금와왕이 유화 부인을 이상한 여자라며 가둬 버리는데 ‘햇빛(日光)’이 방에 들어오자 유화 부인은 피해 버린다. 하지만 ‘해그늘(日影)’이 들어오자 유화 부인은 그를 껴안아 주몽을 임신한다.
김 씨는 특히 한류와 관련해서 “떠오르는 한류의 미학적 기반이 있어야 한다”며 “‘흰 그늘’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만들어 본 것이 이번 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류승완의 ‘주먹이 운다’, 김대승의 ‘혈의 누’, 김기덕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같은 영화를 눈여겨봤다고 말했다. “‘주먹이 운다’는 현실의 너덜너덜한 한이 복싱장에서 멋진 흥으로 터져 나오는 영화였어요. 보다 보니 나도 몰래 눈물이 나려고 해요. 김기덕 영화는 색(色)이 공(空)으로, 공이 색으로 거듭 바뀌는 과정이 한이 흥으로, 흥이 한으로 거듭 바뀌는 ‘연기(緣起)’를 드러내는 것 같았습니다. 한류에 미학의 힘을 보태 줘야 합니다.”
--동아일보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 2005. 11. 4.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 __ 김지하
"그늘은 그림자하고 다르지요. 그림자는 그냥 시커먼 것이에요. 그늘은,큰 나무 밑에 들어가보세요. 이파리와 이파리 사이가 뚫려서 햇빛도 들어오고 그림자도 지고, 그래서 뭔가 서늘하고 기분이 좋은 것을 그늘이라고 해요." 시인 김지하의 말이다.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실천문학사/3만원)는 그의 강의록을 모은 것이다.
99년의 '예감에 가득 찬 숲 그늘',2004년의 '탈춤의 민족미학'을 잇는 김지하의 미학강의(명지대 생명시학론 강의,민예총 문예아카데미 강의 등)이다.
600쪽에 이르는 책의 내용은 강의록이어서 자유분방하다.
논리정연하지 않지만,그래서 외려 더 많이 열려 있으며 "역시 김지하"라는 웅숭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아무리 얼크러지고 설크러져도 모시는 마음만 있으면 허물이 없다.
" 그늘은 애초 판소리에서 왔단다.
판소리를 듣는 귀명창이 많았는데 "소리에 그늘이 없어"하면 그 소리꾼은 끝이었다.
"그늘은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본 사람의 경지,그런 삶의 경지를 그늘이라고 해요." 그는 젊었을 때 판소리의 맛과 미학을 알기 위해서 당대의 명창 박녹수를 쫓아다녔다.
젊은 김지하와 명창 박녹수가 나눈 대화다.
"우리나라 뽕짝 가수 중에 누가 제일 못합니까?" "이미자야. 소리 천장을 찢어버리거든. 그러면 그 다음에 내려오는 길이 없지." "그러면 누가 제일 잘 합니까?" "문주란이야." 그들의 대화가 옳은지 그른지는 모를 일이고,말인즉슨 노래 잘 하는 가수는 두 옥타브 정도는 여유있게 남겨놓고 소리를 질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늘이 있어야 한다." 문학을 비롯한 모든 예술이 그래야 한다는 게 김지하의 주장이다.
왜 그늘인가. 그늘이 단순치 않다. 아마도 2002년 월드컵 때의 '대~한민국'이 매우 중요하다. 700만이 빨간 옷을 입고 거리를 가득 메웠고,집에서 TV 앞에 앉은 사람까지 합치면 3천 몇백만이다. 그들이 '대~한민국'을 외치며 '짝짝짝 짝짝' 박수를 쳐댔다. 김지하가 보기에 '대~한'은 3박자요 '민국'은 2박자다. 3박자는 혼돈 혼란 변화의 박자다. '대~한'의 어중간한 3박자에 유럽 선수들 발이 꼬여 공을 제대로 찰 수 없었다. 그것이 엇갈리는 엇박자이며,그 엇박자를 품은 것이 그늘이다.
"이 '엇'이 바로 동학의 논리인 '아니다-그렇다',불연기연(不然其然)입니다.
" 뿐만 아니라 그것은 혼돈 속에서 변화 발전하는 생명의 논리학이다.
생명력으로 철철 흘러 넘치니까 그것이 다름아닌 흥(興)이다.
"우리를 애닯게 물들였던 한(恨)은 이제 흥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 그리하여 그늘이 김지하의 생각 속에서 크고 넓어지고 깊어지는데 김지하는 그것을 '흰 그늘'이라고 말하고 있다.
동학을 연 최제우,우리나라 주역 정역(正易)을 처음 연 김일부,혁신불교 남학을 세운 김광화,이 3인을 제자로 둔 이가 연담 이운규이다.
그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세상에 던져놓고 어느 날 새벽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그늘이 우주를 바꾼다.
이 뜻을 해석하라." 국문학하는 데도 바흐친 어쩌고 했다면서 김지하는 '환단고기'와 '천부경'을 말한다.
우리 식으로 접근해보자는 것이다.
거기에서 율려(律呂),최치원의 풍류, 천지인(天地人)의 사상이 줄줄이 엮어져 나온다.
"천부경에 나타난 '처음과 끝이 없는' 그것,그것이 바로 우리 사상의 처음과 끝이고 고리입니다.
활동하는 무(無),살아 생동하는 창조적 자유,혼돈의 질서가 그것입니다."
그의 말은 이어진다.
"서양에서는 이제는 나올 게 다 나왔어요. 내가 아니라 유럽 친구들이 스스로 말합니다.
동아시아에서 찾아라. 중앙아시아에서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간 문명. 이 반도와 만주,중국 북방,몽골이 그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올시다.
- 부산일보 / 최학림 기자 / 2005. 11. 7.
김지하 시인, 연작미학 강의서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
“유럽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이 죄다 한류 얘기를 합디다. 그걸 보니 우리도 문화입국까지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학문과 기초예술 영역에도 한류가 일어나야 하는 시점에서 이 책이 한류의 미학적 뼈대를 마련하는 자극제가 되면 좋겠습니다.”
10월 중순부터 2주 가량 프랑크푸르트국제도서전, 독일 교회의날 기념행사, 문명기행 등을 위해 독일, 체코, 그리스,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돌아왔다는 김지하(64) 시인은 현지에서 직접 체험한 한류 이야기부터 꺼냈다. 미학강의서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실천문학)는 바로 이 한류의 미학을 세상에 화두로 던진 책이다.
5∼6년 전부터 명지대와 민예총 문예아카데미에서 했던 강의를 정리한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는 1999년 출간한 ‘예감에 가득 찬 숲그늘’, 지난해 2월 내놓은 ‘탈춤의 민족미학’에 이은 시인의 미학강의 연작이다. 그가 제시한 ‘흰 그늘’의 미학적 개념은 동서고금의 여러 신화와 학문적 성과에 두루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를 테면 삼국유사의 고구려 유화편에는 방에 갇힌 유화가 흰 그늘(日影)을 껴안은 뒤 주몽을 낳았다는 대목이 나온다.
의식 저편에 가라앉은 욕구불만이 무의식에 축적됐다가 히스테리처럼 갑자기 튀어나오는 현상을 심리학자 칼 쿠스타프 융은 ‘그림자론’으로 설명한다. 그는 “우리 문학 가운데 정지용의 시집 ‘백록담’에도 흰 그늘의 이미지가 여러 차례 나온다.”고 덧붙였다.
“그늘이 인생의 쓴맛과 단맛, 희로애락, 한을 표현한다면 흰빛은 신성함, 신명같은 것과 관련된다.”고 설명한 그는 “그늘과 흰빛, 한과 흥, 익살과 숭고미, 슬픔에서 신명에 이르는 통합적 미학은 인간의 정신적 천민화, 도회적 삶의 혼란상을 극복하는데 강한 소구력을 갖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한류의 미학적 근간을 ‘한(恨)을 동반한 흥(興)’에서 찾았다. 소문난 영화광답게 근래 감명깊게 본 영화를 예로 들었다.“너덜너덜한 삶이 만들어낸 한과 복싱의 흥이 어우러진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를 보면서 이유없이 눈물이 났다.”는 그는 “이런 난데없는 감동이 흰 그늘의 미학이며, 외국인들에게도 분명 감동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내 직업은 둘인데 하나는 시인이고, 다른 하나는 형님”이라고 농담한 그는 “나는 미학자도 철학자도 아니다. 이번 책은 한류의 미학을 정립한 것이 아니라 형님으로서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는 게 어떠냐.’고 미학자들에게 의견을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류 현상을 뒷받침할 미학이나 예술이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펼쳐져야 하고, 이는 한류의 성장과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서울신문.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2005.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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