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단 한 권뿐인 시집 (2012)
박상률의 붓끝에서 전해지는 우리 시대 10대들의 통증들
‘청소년 문학의 대가’, ‘청소년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작가’! 『청소년문학』의 편집주간이자 각종 청소년 문학 공모전에 위촉받는 심사위원! 이 모든 것이 지금까지 수십 편의 청소년 문학을 발표한 박상률을 수식하는 말이다. 일찍이 청소년의 존재를 발견한 그는 오로지 청소년만을 위한 문학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성장소설 『봄바람』(1997)은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그의 대표작으로, 우리나라 청소년 문학의 효시이자 고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 박상률의 새 단편소설집 『세상에 단 한 권뿐인 시집』이 실천문학 담쟁이문고로 출간되었다. 1970년대의 농촌을 배경으로 한 『봄바람』과는 달리 이번 단편소설집은 도시의 아이들을 비춘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청소년의 고민과 성장이라는 기본 주제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또 표제작인 「세상에 단 한 권뿐인 시집」은 <문학Ⅰ> 교과서(해냄)에 실린 만큼 독자들에게 익숙하고 유명한 작품이다. 이 외의 다른 단편들도 청소년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그들의 눈높이에서 솔직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치 교실과 가정을 주제로 한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보듯 생생한 현장감을 담고 있다.
동성애와 자살 등 2012년 ‘청소년’과 ‘학교’
비극과 해피엔드 속 ‘나’를 외치는 이야기들
이 단편소설집의 주인공들은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한다. 「눈을 감는다」의 주인공이 처한 교내 폭력 문제나 「가장의 자격」에서 나타난 공고 교육의 문제 등 청소년과 관련된 사회문제는 해가 갈수록 더 심화되지만, 제대로 된 도움의 손길은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 속에서 「이제 됐어?」에서의 ‘나’는 자신의 일을 엄마가 아니라 직접 결정하길 원하며, 「너는 깊다」의 ‘나’는 대학을 거부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는 일에 몰두한다. 다른 작품의 주인공들도 사춘기라는 “불안의 터널을 지나는 과정”(51쪽)을 기꺼이 감내하고 있다.
각 ‘나’들은 서로 다른 곳에 서 있지만 “나를 외치는 절규”(66쪽)를 해서라도 자아를 탐구하고, 참된 ‘나’를 주변에 알리고자 한다는 같은 목적지를 향해 달린다. 그러나 그 결과는 운명처럼 엇갈리고 만다. 좋아하는 선생님의 품에 안겨 “마침내 나를 느꼈다”(38쪽)며 성장하는 ‘나’가 있는 반면(「너는 깊다」), 스스로를 “사춘기의 병든 아이”(66쪽)로 결론짓고 ‘별똥별’이 되거나(「이제 됐어?」) 한강 다리 철제 난간 위에서 어둠 속으로 추락하는 ‘나’도 있다(「눈을 감는다」).
이 운명은 어디에서 엇갈리는 것일까? 작품들은 서로서로 엮이며 답을 만든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소통’이 있다. 「너는 깊다」에서 ‘나’는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선생님을 만나지만, 「이제 됐어?」와 「눈을 감는다」의 주인공들은 끝내 자신의 외침을 들어줄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세상에서 자기의 존재를 확인 할 수 없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자살이라는 파국으로 향한다.
그리고 경제 위기와 답답한 학교라는 현실에서 자기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가진 ‘규성’(「가장의 자격」)처럼 그 결말이 ‘아직’ 비극도 아니고 해피엔드도 아닌 경우도 있다. 만약 ‘규성’이 추락해버린 다른 작품의 주인공들처럼 자신의 말을 들어줄 누군가를 만나지 못한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막 내릴까? 이처럼 함께 있지만 눈을 감고 침묵하는 사이, 혼자라는 절망감을 안고 돌아 올 수 없는 비극의 강을 건너게 될지 모르는 청소년의 자화상을 박상률은 가감 없이 그려내고 있다.
어른들을 ‘그 시절’로 데려가는 세대의 다리가 되다!
표제작 「세상에 단 한 권뿐인 시집」의 주인공 ‘나’는 우연히 걸려온 전화를 계기로 20년 전 눈 내리던 골목의 첫사랑을 회상한다. 독자는 화자와 함께 아련한 추억으로 거슬러 올라가 고등학생 ‘나’와 만난다. 그곳에서 대학만을 강요하는 분위기에 반발하여 시를 쓰고, 사랑과 실연을 하고, 자아에 대해 고민하는 ‘나’의 모습은 다른 작품에 나오는 오늘날 청소년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사실 이것은 그들뿐 아니라 ‘청소년이었을’ 모두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요즘 어른들’은 이 시절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청소년을 ‘요즘 아이들’로 구분하고 선을 긋는다. 「세상에 단 한 권뿐인 시집」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성장소설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녔지만, 이번 단편소설집 속에서 다른 작품과 어우러지며 강한 물음을 던진다. 당신도 한때는 사랑하고 질문하고 반항과 방황을 되풀이하는 아이였지 않았는가! 이 물음 속에는 그 시절의 자기에게로 돌아가 ‘요즘 아이들’과 대화하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묵직하게 녹아 있다.
결국 지금 벼랑으로 내몰린 아이들의 손을 잡아줄 소통의 단서는 각자의 내면에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청소년 소설은 오히려 ‘요즘 어른들’에게 필요하다. 이번 단편소설집이 청소년과 성년 모두에게 읽힌다면 서로를 연결하는 귀중한 다리가 되어줄 것이다. 내 아이가, 혹은 우리 주변의 아이들이 멀게 느껴진다면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공고에서 외고까지 다양한 청소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한 곳에 담다
이번 단편소설집은 장편소설로 이해해도 좋을 만큼 서로 긴밀하게 읽을 수 있는 여섯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작품인 「너는 깊다」에서 ‘나’는 대학을 향한 경쟁을 거부한 채 새로 부임한 원어민 여교사에게 사랑을 느끼며 그녀의 숨결까지 자신의 그림으로 재현하고자 하다. 동성애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작가는 어떠한 편견도 없이 담담하고 아름답게 사랑의 감정을 묘사하고 있다.
「이제 됐어?」와 「눈을 감는다」는 청소년 자살 문제를 담고 있지만 그 원인을 서로 다른 곳에 둔다. 「이제 됐어?」에서는 엄마에게 공부를 강요받으며 신음하는 외고생 ‘나’의 고통이 가슴 아프게 드러나며, 「눈을 감는다」에서는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양심고백을 하는 바람에 이적 행위자로 낙인찍힌 군인 출신 아버지와 교내 폭력으로 좌절하는 ‘나’를 그리고 있다.
「세상에 단 한 권뿐인 시집」은 학창 시절 첫사랑에게 자작 수제시집을 만들어 고백했다가, 그 시집을 20년 만에 다시 돌려받게 되는 극적인 상황을 서정적인 서사를 통해 전달하고 있다.
또 「가장의 자격」에는 아빠의 죽음으로 생활고에 직면하여 스스로 밥벌이를 시작한 공고생 ‘나’가 나온다. 작가는 그런 ‘나’의 눈에 보이는 공고의 교육 현실을 실감 나게 서술하면서도 경제적 위기에 처한 차상위계층의 아픔을 지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민건강영양보급업자가 낚지 못한 것」에 나오는 장 씨와 김 씨는 스스로를 ‘국민건강영양보급업자’라고 칭하지만, 결국 개도둑이다. 개를 훔쳐다 팔고 집으로 돌아오는 장 씨는 재수를 하는 딸이 남자와 애정행각을 벌이는 것을 목격한다. 작가는 장 씨의 딸을 통해 어른들과 똑같이 연애를 하고 사랑을 하는 청소년의 모습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사람보다 개가 더 유명한 진도에서 개띠 해에 태어나 개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나중에 광주와 서울로 거처를 옮겨 다니며 공부를 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가슴속으론 늘 좋은 의미의 ‘개 같은 인생’을 꿈꾸었습니다. 그 꿈이 아주 ‘개꿈’이 안 된 건 그나마 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1990년 『한길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계간 『청소년문학』의 편집주간을 맡았습니다. 펴낸 책으로는 산문집 『청소년문학의 자리』, 시집 『진도아리랑』, 『배고픈 웃음』, 『하늘산 땅골 이야기』, 소설 『봄바람』, 『나는 아름답다』, 『밥이 끓는 시간』, 『너는 스무 살, 아니 만 열아홉 살』, 『나를 위한 연구』, 『방자 왈왈』, 『불량청춘 목록』, 『개님전』, 희곡집 『풍경 소리』, 동화 『바람으로 남은 엄마』, 『미리 쓰는 방학 일기』, 『까치학교』, 『구멍 속 나라』, 『개밥상과 시인 아저씨』, 『내 고추는 천연 기념물』, 『도마 이발소의 생선들』 들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소설 『봄바람』은 청소년문학의 물꼬를 튼 작품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덕분에 펴낸 책마다 독자들이 어여삐 봐주어 지금도 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작가의 말
너는 깊다
이제 됐어?
세상에 단 한 권뿐인 시집
가장의 자격
눈을 감는다
국민건강영양보급업자가 낚지 못한 것
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