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세르주 평전 (2006)
소설가이자 역사가, 한때 아나키스트였던 볼셰비키 당원, 이단아, 좌익반대파의 일원…… 빅토르 세르주(1890∼1947)는 소련사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존재이다. 명쾌한 논평가이며 위대한 작가였던 그는 20세기의 역사적으로 중대한 사건들 한가운데에서 일생 동안 진실과 정의, 인간 존엄이라는 가치를 좇아 “희망행 항로”를 찾아 나아갔다. 정치적 용기와 인간애에 찬 그의 생애를 정치학 교수이자 방송 저널리스트인 수잔 와이스만이 완벽에 가깝게 복원해낸 이 책은 우리시대가 잃어버린 또 한 사람의 혁명가를 되살려냈다. 실천문학 역사인물찾기 시리즈의 스물한번째 역사인물로 손색 없는 순결한 영혼의 혁명가 빅토르 세르주. 실패한 혁명가임에도 20세기 서구 신좌파의 스승으로 평가받는 그의 생애는 혼탁한 현시대의 새로운 방향타가 되어줄 것이다.
자유와 행복을 향한 “희망행 항로”_꺾이지 않는 양심과 순정한 영혼의 혁명가, 빅토르 세르주
1890년, 러시아 제국의 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암살과 함께 러시아에서 서유럽으로 망명했던 러시아의 혁명 인민주의자였던 아버지와 폴란드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상류사회의 가식에 질려 서유럽으로 유학을 떠났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세르주(본명 : 빅토르 키발치치)는 열다섯 살까지 벨기에에서 살았다. 러시아인 아버지와 폴란드인 어머니를 두고 벨기에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자라며 러시아어와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삼은 세르주는 진정한 세계인이었다. 국적과 민족에 의미를 두지 않았던 세르주에게 러시아혁명은 노동계급의 세계적인 연대를 통해 유토피아로 나아가는 관문이었다. 세르주가 러시아혁명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그것이야말로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빅토르 세르주는 우리나라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는 인물이다. 10여 년 전에 그의 저작 한 권이 우리말로 옮겨져 출간된 적이 있고, 두 해 전쯤 박노자 선생이 그에 관해 쓴 짤막한 칼럼이 있을 뿐이다. 20세기 최고의 혁명가이자 지성이었던 세르주의 삶과 그가 살았던 시대를 넓고 깊게 소개하는 첫번째 시도인 이 책은, 그의 가족과 혁명 동지 심지어는 그의 반대파에 속했던 인물들과의 인터뷰까지 아우르고 있으며, 그가 남긴 여러 권의 저서를 비롯해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저자인 수잔 와이스만 교수는, 2500여 장에 이르는 원고와 1200여 개의 주석을 통해 러시아 혁명의 변질이라는 ‘20세기 변혁운동 최대의 비극’을 빅토르 세르주의 민감한 지성이 언제, 어떻게 감지했는지 그리고 그 비극을 막아보고자 그가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상세히 밝혀준다. 지은이_수잔 와이스만(Susan Weissman)
캘리포니아 세인트메리 대학의 정치학 교수. 권위 있는 상을 받은 방송 저널리스트이며 『비판』(Critique)과 『시류역행』(Against the Current)의 편집위원이다. 『빅토르 세르주 : 러시아, 스무 해 뒤』와 『빅토르 세르주의 사상』등을 엮어 펴냈다. 1966년생.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영국 에식스 대학 역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쓴 논문으로 「러시아 혁명과 노동의 무제」, 「여성 노동자인가, 노동하는 바바인가?」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투탕카멘』이 있다.
머리말 · 27 오른발은 혁명, 왼발은 희망 ―― 고명섭 기자, 한겨레 신문(2006. 11. 30.)
세르주는 러시아에 처음 발을 내디뎠던 1919년, 스물여덟 살 되던 해에 볼셰비키 당원이 되었다. 그후 세계 각국에서 열린 제1, 2, 3차 코민테른 대회에 참여하고 내전 기간 동안 페트로그라드 공방전에서 싸우는 등, 다양한 정치적 임무를 띠고 세계 곳곳에서 활발히 활동하였다. 그러나 1923년 독일판 10월혁명이 실패한 뒤 다시 소련으로 돌아가 좌익반대파 편에 섰다. 다양한 정치, 사회, 문학 동아리에 끼어 어울리며 레닌과 지노비예프와 트로츠키 등의 저작을 번역해서 생계비를 벌었던 이 시기에 그는 좌익반대파를 공개 지지하면서 레닌그라드 당 조직에서 좌익반대파의 주요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이로 인해 세르주는 1927년 12월에 제15차 당대회가 열린 뒤 곧바로 당에서 제명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석 달 뒤 소련 공산당에 의해 체포되어 8주 동안 감금되었다.
러시아혁명의 찬란한 이상을 믿었던 세르주는 모든 것을 바쳐 그 모든 것을 이루고자 애썼지만 끝내는 실패하고 말았다. 안팎으로 타격을 입고 휘청거리던 혁명이 결국 스탈린으로 상징되는 폭압 체제에 굴복하고 만 것이다.
급기야 1936년 세르주는 스탈린이 이끄는 소련 공산당에 의해 쫓겨난 이후, 체포와 유형, 망명을 거듭한 끝에 멕시코로 갔다. 글을 쓰는 것으로 생계를 해결했던 세르주에게 익숙해지지 않은 에스파냐어는 지독한 가난으로 이어졌다. 결국 1947년 11월 17일 멕시코시티에서 눈을 감았다. 공식적인 사인은 심장마비였으나 멕시코의 유명한 예술가이자 세르주의 경험을 대부분 함께했던 아들인 블라디는 암살의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저자인 수잔 와이스만은 “권위주의의 씨앗이 볼셰비키의 사고 속에 존재했고 스탈린 아래에서 거대하게 자라나 우거졌지만, 만약 싹이 트기에 알맞은 상황이 존재했더라면 성숙한 민주주의를 꽃피울 수도 있었을 다른 씨앗이 얼마든지 있었다”는 말로 세르주의 생각을 요약한다. 이 생각이 옳았는지는 독자 각각의 몫으로 남겠지만 세르주가 볼셰비즘을 열렬히 옹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매서운 비판을 가했던 혁명가였음을 염두에 두어야 할 듯하다. 사상 편력을 아나키즘에서 시작한 세르주였기에 그는 개인의 자유와 집단의 규율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과 갈등을 다른 어떤 볼셰비키보다 더 예민하게 감지해내는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러시아 혁명사에서 빠지지 않는 굵직굵직한 주제어인 레닌주의, 볼셰비즘, 스탈린주의, 트로츠키주의의 상관관계를 규명하는 작업에서 가장 믿음직한 길라잡이가 되어줄 이가 바로 세르주다.
꼼꼼하고도 치밀한 추적과 풍부한 사료를 바탕으로 쓰여진 러시아 혁명의 연인 빅토르 세르주 평전
빅토르 세르주는 평생에 걸쳐 당대 현실을 적나라하게 담은 여러 편의 장·단편소설과 레닌, 스탈린, 트로츠키의 전기, 편지와 논쟁문, 시론을 비롯한 엄청난 분량의 저술을 남겼다. 그의 저술에는 그의 경험, 그의 헌신, 그리고 비관론에 기대지 않고서 20세기 최악의 격변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준 미래상이 반영되어 있다. 세르주는 격심한 고통과 고뇌 속에서 스탈린주의가 어떻게 방향을 틀었는지, 그리고 좌익반대파가 만약 스탈린주의의 자리에 있었다면 무엇을 했을 것인지를 설명했다. 따라서 심지어 가장 암울한 그의 서술에서조차 낙관적인 자세와 사회주의적 미래에 대한 희망이 담겨 있다. 많은 분량이 미간행으로 남아 있는 이러한 그의 저술과 삶에 관한 수잔 와이스만의 이해와 평가를 따라가다 보면, 한 위대한 정치 저술가 겸 활동가로서 일평생 투옥과 유형, 배신과 패배, 어떠한 협박과 테러의 위협 속에도 굴하지 않고 끝끝내 놀라운 헌신과 희망으로 희구했던 우리시대의 “희망행 항로”를 만나게 될 것이다.
옮긴이_류한수
감사의 말 · 33
제1부 혁명의 궤도에서
서문 · 43
러시아 혁명에 봉사하며, 1917~1921년 · 61
베를린에서 봉쇄되고, 빈에서 무력해지고… · 139
소련으로 되돌아가서 · 181
스탈린주의화, 1928~1933년 · 251
1933~1936년의 오렌부르크, 심문과 추방 · 315
제2부 또 한 번의 망명, 그리고 두 번 더 : 마지막 시기
서문 · 363
러시아에서 빠져나와, 유럽에서 구석에 몰려 · 381
파리에서 마르세유로, 마르세유에서 멕시코로 · 489
멕시코로부터, 소련은 어디로 가는가? 세계는? · 541
주(註) · 575
연보 · 701
옮긴이의 말 · 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