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찾기

박헌영 평전 (2009)

실천문학 2013. 8. 1. 14:16

 

 

 

  

 

 


실천문학의 역사인물찾기 시리즈의 27번째권이 출간되었다. 전 세계의 역사적 격변기에 어느 누구보다 열정적인 삶을 살았으나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거나 외면당한 인물을 찾아 소개하는 이 시리즈에서 한국근현대사에 해당되는 인물은 여운형, 김원봉, 김산, 이현상 등 유독 사회주의자가 많았다. 좌우이데올로기에 예민한 우리 역사의 한 단면을 이 시리즈의 인물 선정이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듯하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주의 혁명가들의 삶은 그동안 은폐되거나 왜곡되기 일쑤였고 박헌영은 그러한 사례의 대표적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자였던 박헌영은 해방 후 ‘남조선로동당’을 이끌고 월북하여 김일성체제의 북한정권 수립과 ‘조선로동당’ 창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로써 남한에서는 극좌파 정당을 이끈 공산주의자로서 그 객관적인 평가 자체가 철저히 거부되어왔다. 또한 한국전쟁 직후 “미제국주의 간첩 및 국가전복 음모”라는 죄명으로 ‘숙청’됨으로써 북한 역사에서도 추방되어버렸다. 그러나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박헌영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현상 평전』을 비롯하여 역사 다큐멘터리 집필에 꾸준히 매달려온 안재성이 2년여의 집필기간을 거쳐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자들의 독립운동과 해방 후, 부르주아민주주의를 꿈꾸었던 남한의 ‘조선공산당’의 역사를 박헌영을 통해 꼼꼼히 복원해냈다.


비운의 혁명가 박헌영을 통해 되돌아보는 한국현대사

1985년 고르바초프의 등장과 함께 사회주의 국가들에 일기 시작한 자유화물결은 1989년 동독과 서독의 통일에서 정점을 이루었고, 최초의 사회주의 연방국가인 소련이 1991년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공산당을 해체함으로써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는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공산주의에 대한 사망선고가 내려진 지 20여 년이 넘어가는 이 시점에 왜 하필 우리는 박헌영을 호출하는가. 저자 안재성이 밝히고 있듯 박헌영으로 대표되는 한국 공산주의자들의 역사적 역할을 부정한다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자유를 반납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제하 공산주의자들의 투쟁 목표 속에는 반드시 일일 7시간 노동이 들어가 있었으며 최저임금제의 실시, 국민연금과 의료보험의 도입 등의 요구가 빠지지 않았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와 사형제도 반대 등의 요구도 필수적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의 투쟁과 희생이 아니었다면 오늘날 자본주의사회에서 보통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정치적 자유와 각종 사회보장제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공산주의에 대한 사망선고를 함부로 남발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본문에서)

각기 다른 이념을 가진 강대국의 묵시적 점령하에 반쪽으로 나뉜 채로 이 땅에 ‘두 개의 공화국’이 세워진 이래, 공산주의와 그 이념을 따른 이들에 대한 왜곡과 은폐는 지속적이고도 집요하게 이루어져왔다. 『박헌영 평전』은 반쪽짜리 한국의 근현대사를 한 인물의 삶과 정신세계를 통해 되돌아보고자 하였다.

사망할 때까지 반제국주의의 상징으로 남았으나 결과적으로 자신의 주민을 외국의 무상 식량지원에 의존하여 굶주림으로 내몬 외세 의존적 지도자로 남은 김일성과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도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듯, 북한체제를 옹호한다거나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념을 미화하여 우리 사회를 책동하고자 함이 아니다. 은폐되고 왜곡된 역사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복원해냄으로써 여전히 우리 사회의 검은 유령으로 떠돌고 있는 좌우 이념 대립의 사슬을 끊어내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의 작은 몸짓이다.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 자의 초상

“……박헌영은 남들이 이념을 왜곡하고 중상한 것에 반하여 이념은 죄가 없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자신의 이념을 포기하지 않았으리라”_샤브시나 콜리코바(소련의 역사학자)

1900년 충남 예산에서 아버지 박현주와 둘째 부인인 어머니 이학규 사이에서 태어난 박헌영은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는 등 본격적으로 사회운동에 눈을 뜬다. 다음 해, 미국 유학이 좌절되자 일본 유학을 꿈꾸고 9월 일본으로 건너가나 수배 중이었던데다 학비조달 문제까지 겹쳐 어려움을 겪자 11월에 상해로 망명, 사회주의운동에 입문한다. 1921년, 여운형 등이 주도하고 있던 이르쿠츠크파 공산당에 입당한 후, 1922년 비밀리에 국내로 잠입하려다가 체포, 징역형을 선고받고 평양형무소에 수감된다. 이후 10여 년 동안 박헌영은 수차례 수감과 출소를 반복하는데 이 과정에서 고문을 받아 일시적인 정신질환에 시달리기도 한다. 해방 다음 해인 1946년 10월 미군정의 체포령과 김일성의 권유로 월북하여 북한의 김일성체제 확립에 기여하나 1952년 연말께부터 시작된 대대적인 남로당 숙청작업 때 ‘미제국주의의 고용간첩의 두목’, ‘공화국 전복 기도’ 혐의로 기소된다. 그리고 박헌영을 살리려는 중국의 마오쩌둥과 소련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1956년 7월 김일성의 지시하에 평양 교외에서 권총으로 살해된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역사기록에 밝혀져 있듯, 그는 일제의 간첩도 미제의 간첩도 아니었다. 오히려 우익 쪽의 공격대로 철두철미한 소련파였으며 그것이 그의 결함이기도 했다. ‘당은 무오류’라는 원칙 아래, 소련공산당 혹은 코민테른의 결정이라면 무조건 복종했으며 죽는 그날까지 단 한 마디조차 공산주의에 대해 회의하는 말은 남기지 않았다. 일제하에서는 독립운동을, 해방 후에는 조선 민중의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가장 앞장서서 제국주의에 맞서 투쟁했던 박헌영, 그는 뼛속까지 철저한 공산주의자였지만 이승만의 파시즘에 맞서 민중이 주인 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만들고자 애썼던 민주주의자이기도 했다.

저자 안재성은 구술자료와 인터뷰 등을 통해 박헌영을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정치가로서의 면모와 함께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생활인으로서의 인간적인 면모도 생생하게 담아냈다. 정치가로서의 박헌영은 최측근에게조차도 자신의 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데다 지나치리만큼 원칙적이고 교조주의적인 성향 때문에 끊임없이 공박당해야 했다. 그러나 후배들을 위해 직접 밥을 짓고 된장국을 끓여 밥상을 차려낸다거나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지내는 딸 박비비안나에게 보낸 편지에 담긴 절절한 그리움, 주세죽과의 소련 망명길이 모티프가 된 가요 <눈물 젖은 두만강>, 김일성체제 속에서 철저하게 이용당하면서도 묵묵히 견뎌내는 와중에 만난 세 번째 부인과의 행복한 한때 등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인간 박헌영을 만나게 된다. 70여 컷의 사진이 담긴 화보에는 박헌영 개인 사진은 물론, 박헌영과 동시대에 활동했던 사회주의 운동가, 마지막까지 반박헌영파로 반목했던 인물들을 비롯하여 해방 전후 주요한 현대사의 장면들이 포함되어 있다.



§본문에서

박헌영을 역사에 길이 남을 위인이라거나 불세출의 영웅이라 찬양하기는 어렵다. 그는 공산주의 이론에는 탁월했지만 선동력과 포용력 등 대중정치가로서 필요한 정치수완은 거의 갖추지 못한 사람이었다. 근본 성품은 온후하고 지성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입장은 다분히 교조주의적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표범처럼 단단한 인상에 좀처럼 웃지 않는 과묵하고 비밀주의적인 성향은 지하운동의 지도자에게는 적합했을지라도 공개정당의 지도자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이 해방되자마자 그를 최고지도자로 옹립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원칙적이고 교조적인 성향이 ‘결과적’으로 적을 이롭게 했다고 공박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면모가 없었다면 애초에 공산당 지도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그의 한계요, 시대의 한계였다.

 

안재성_
1960년 경기도 용인 출생. 강원대학교 재학 중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관련되어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구속, 제적되었다. 1983년부터 10여 년간 구로공단, 청계피복노동조합, 강원도 탄광지대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1993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또다시 구속되었다. 1989년 장편소설 『파업』으로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사랑의 조건』, 『황금이삭』 등의 장편소설과 『경성트로이카』, 『이관술 1902-1950』, 『청계피복노동조합사』, 『이현상 평전』, 『청계 내 청춘』 등의 역사 다큐멘터리를 집필했다. 현재 경기도 이천에서 집필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프롤로그
사라진 열정의 흔적을 찾아서 — 17

혁명의 바람 — 29
상해의 젊은 혁명가들 — 64
조선공산당 — 87
모스크바, 상해, 경성 — 140
경성콤그룹 — 185
애국자와 반역자 — 234
소련영사관 정원에서 — 272
미군정의 음모 — 295
역사의 조연들 — 365
위대한 수령의 나라 — 389
사라지는 별, 떠오르는 태양 — 419
두 개의 공화국 — 465
패전의 책임 — 515
재판 — 559

에필로그
실패한 혁명가들의 초상 — 596

주註— 624

부록
주요 연보 — 641
참고문헌 — 650

 

 박헌영…‘미국의 스파이’ 꼬리표를 떼다 ―― 이세영 기자, 한겨레 신문(2009. 9. 4.)
 남과 북에 버림받은 공산주의자 박헌영 ―― 이재훈 기자, 뉴시스(2009. 9. 5.)
 인간의 존엄을 꿈꾼 혁명가 ―― 임광명 기자, 부산일보(2009. 9. 5.)
 [제 50회 한국출판문학상] 저술(학술) 부문 후보작 10종 ―― 유상호, 한국일보(2009.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