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교양선/일반

소설의 길 영화의 길 (2003)

실천문학 2013. 8. 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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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그 중에서도 소설은 예술의 전 영역에 걸쳐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현대 산업사회에서 서사예술의 총아였던 소설은 이제 그 제왕적 권위를 영화에게 내놓아야 할 시간이 된 것일까. 영화는 정말로 소설을 대체할 수 있을까. 진정한 작가와 감독들이 자신의 생애와 운명을 걸고 있는 소설과 영화의 장르적 정체성은 무엇일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대부, 반지의 제왕, 서편제. 이 모두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정답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라는 것이다. 서사를 통해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고 형상화하려는 예술 장르라는 공통점을 가진 소설과 영화, 동반자이면서 동시에 경쟁자라는 두 장르의 미묘한 관계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 『소설의 길, 영화의 길』이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예술 장르의 새로운 총아로 떠오르고 있는 영화의 장르적 정체성은 무엇이며, 영화가 과연 소설을 대체할 수 있는가? 소설가이면서 시나리오 작가, 영화연출가로도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저자 방현석은 이 책에서 소설창작과 영화제작 활동을 하면서 품어왔던 이 화두에 대한 탐색의 결과를 구체적인 작품분석을 통해 명료하게 풀어낸다.

이 책은 또한 1990년대 이래 무성했던 ‘문학의 위기론’에 대한 전면적인 응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때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유포된 문학의 위기, 소설의 위기에 대한 위기감은 소설이 이제 그 시효를 다했으며, 그 자리를 영상매체가 대체하게 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제는 누구도 소설의 위기에 대해 더는 말하려 하지 않는다. 영화가 소설을 대체하는 것이 돌이킬 수 없는 대세이기에 체념해버린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애초부터 소설의 위기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

소설과 영화 모두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저자는 아무런 성과물도 남기지 못하고 소멸해버린 소설의 위기론을 다시 불러내 그러한 위기감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날카롭게 해부하고 있다. 서사예술이면서도 매체적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소설과 영화 간의 미학적 차이를 밝힘으로써 소설과 영화가 각기 고유한 양식적 특성을 발전시켜나가기 위한 토대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과 영화의 관계

초기에 영화와 소설의 관계는 매우 우호적이었다. 소설이 은혜를 베풀듯 영화의 스토리를 제공하던 시절에, 또 소설이 우월적 지위에 있다는 믿음이 추호의 의심도 받지 않고 통용되던 시절에 그랬다. 소설은 영화에 시나리오를 공급하고, 영화는 소설을 대중화하는 데 충실히 기여했다.

저자 방현석은 상업적 대중문화라는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태어난 영화의 출생성분이 남루한 소설의 태생 배경과 놀랍도록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카메라 발명품에 지나지 않았던 영화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태생적 한계를 부단히 극복해왔다. 선행 예술과 스스로를 비교 분석함으로써 영화는 주제와 창작기법 등 다양한 방면에서 자신의 미학을 보완해온 것이다.
그리고 영화가 자신의 서사예술적 가능성을 발견한 순간부터, 소설은 영화가 미학적 방법론을 차용해오는 첫 대상이 되었다.
‘영예의 시절’을 누리던 소설이 더욱 세련된 형식의 영화라는 장르에 의해 밀려나고 있다고 생각된 것은 영화 관람객의 수가 소설의 독자층을 훨씬 웃돌면서부터다. 이와 더불어 과거에 문학작품을 통해 충족시킬 수 있었던 서사예술의 감흥이 영화를 통해서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늘어가기 시작했다. 특히 소설의 영화화로 인해 영화를 소설의 대체 장르로 인식하는 경향도 확산됐다. 소설의 위기론에서 더 나아가 문자예술이 소멸할 것이라는 주장까지도 제기되기 시작했다.

저자는 이러한 소설의 위기의식이 소설 내부에서 배태된 것이 아니라 외부환경이 낳은 상대적 박탈감에 근거한 심정적인 불안감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과연 소설을 잠식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장르의 예술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는가. 영화는 과연 서사라는 뿌리를 공유하고 있는 소설의 지위와 정체성을 위협하는 경쟁 장르인가. 하나의 서사를 다룸에 있어서 문자매체와 영상매체는 어떻게 다른가. 저자는 이에 대한 해답을 서사구조 이론에 대한 검토와 텍스트 분석을 통해 보여준다.
저자는 소설과 영화가 상대 장르의 방법론을 자기 장르에 차용해 표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두드러진 시도를 보인 사례로서 누벨 바그와 누보 로망, 누보 시네마에 착목한다. 그러나 누보 시네마의 카메라를 통한 글쓰기로서의 영화, 영화를 통해 소설이 포착하는 표면 안의 것을 표현하려는 과잉 의욕은 프랑스 영화를 주관과 난해의 늪에 빠뜨리는 요인이 되었으며, 영상의 불명료하고 환상적인 언어를 과도하게 차용한 누보 로망의 경우에도 관념과 언어의 유희에 치우치게 되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결과는 글쓰기를 위해서 카메라를 복종시키는 것이 영화를 예술적으로 구원하는 방법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동시에 영화가 소설을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의 반증이기도 하다.


소설의 길, 영화의 길

저자는 소설과 영화의 관계 양상을 더욱 분명하게 밝히기 위해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 <프라하의 봄>, 그리고 소설 『낯선 여름』과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텍스트로 삼아 분석한다. 이 두 가지 사례의 비교 분석을 통해 저자는 소설의 어떤 부분이 영화화되었을 때 무엇이 유지되고 무엇이 변하는지, 무엇을 담아낼 수 있고, 무엇은 담아낼 수 없는지 상세히 밝혀내고 있다.
구체적인 작품 분석을 통해 저자는 영화가 소설을 대체할 수 있다는 가설은 인상주의적 비평과 영상 콤플렉스가 빚은 오류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스토리를 공유하는 동일한 서사 장르임에도 소설과 영화는 결코 호환되기 어려운 양식적 특성을 각기 보유하고 있으며, 이것은 각 장르의 독립적 존재의 이유에 대한 확고한 근거라는 것이다.
저자는 소설은 가장 엄밀하고 정교한 사유와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문자를 매개로 영화의 이미지가 결코 표현할 수 없는 사유의 영역을 표현해내는 반면, 영화는 이미지를 매개로 말과 글이 다른 모든 인류와 소통 가능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영화가 자신의 고유한 언어에 내장된 무한한 가능성을 포기하고 소설의 그것을 영상적 수용의 범위 내에서 손쉽게 차용하려는 시도는 영화의 정체성 상실로 이어질 수 있으며, 아울러 만약 소설이 위기를 맞이한다면 그것은 영상의 발전으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소설 장르가 지닌 고유한 언어와 양식을 포기하고 영상적 방식으로 경도되는 데서 비롯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영화에는 영화의 언어와 영화의 길이, 소설에는 소설의 언어와 소설의 길이 있다.”

이러한 결론은 작가들에게는 ‘소설의 죽음’이라는 망령에서, 영화인들에게는 원작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해방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이 책의 출간이 소설과 영화에 관심을 가진 이들, 특히 그것에 생애를 걸고자 하는 이들에게 서사예술을 새롭게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방현석
1961년 경남 울산에서 태어났다. 중앙대 문창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1988년 『실천문학』 봄호에 단편 「내딛는 첫발은」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소설집 『내일을 여는 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 장편소설 『십년간』, 『당신의 왼편』, 산문집 『아름다운 저항』, 『하노이에 별이 뜨다』 등을 출간하였고, 1991년 제9회 신동엽창작기금, 2003년 제11회 오영수문학상, 제3회 황순원문학상을 받았다.
영화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온 저자는 이대환의 장편소설 『슬로우 불릿』을 시나리오로 각색한 바 있으며, 35mm 단편영화 〈무단횡단〉을 연출하는 등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패러다임

도전하는 영화, 흔들리는 소설
서사예술의 핵심;성격의 창조와 담론의 구축 / 창조와 수용의 과정이 다른 소설과 영화

소설과 영화를 탐구하기 위한 몇 가지 이론
같은 스토리를 다르게 만드는 플롯 / 정교한 문자, 힘이 센 영상 / 시간 앞에서 누리는 문자와 영상의 자유/소설의 서술자, 영화의 카메라

소설, 영화를 만나다
출생성분이 분명한 유일한 예술과 소설의 조우 / 소설과 누벨 바그 : <네 멋대로 해라> / 장르의 위계질서에 도전한 누보 시네마 : <내 사랑 히로시마> / 소설과 영화의 협력이 남긴 성과

소설의 길, 영화의 길
소설과 영화의 거리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프라하의 봄> 견주어보기 / 『낯선 여름』과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견주어보기/대체할 수 없는 소설의 독자적 영역과 영상 콤플렉스

소설을 위협하는 소설, 영화를 위협하는 영화

정치한 사유표현, 영상이 못따라와 소설의 위기는 산문정신의 태만 탓

‘소설의 길 영화의 길’로 소설 활로 모색 작가 방현석 씨



지난해 중편 ‘존재의 형식’으로 황순원 문학상과 오영수 문학상을 수상, ‘2003년 최대 상금의 작가’로 자리매김했던 소설가 방현석(43)씨. 그는 또 창작집 ‘내딛는 첫발은’ 이후 12년만에 창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창비)을 지난해 11월 출간함으로써 평단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

하지만 그같은 ‘화려한 부상(浮上)’에 가려 정작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펴낸 저서 ‘소설의 길 영화의 길’(실천문학)은 묻힌 감이 없지 않다. ‘소설의 길 영화의 길’은 무엇보다 우리시대 주목받는 작가중 한명이 영상매체의 득세와 소설문학의 쇠퇴 사이에서 수년에 걸쳐 진지한 고민과 탐색을 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하다.

‘영상의 시대’를 소리높여 외치는 세태와 이에 스스로 고개를 떨어뜨리는 문학, 이같은 기류가 대세를 차지하고 있는 마당에 새해 한국소설은 과연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인지 방씨를 만나 들어 보았다.

―지난해 최대 상금 작가에다 12년만의 창작집 발간 등으로 주목을 받았는데.

“물론 기분좋지만 한편으론 당황스럽다. 나름대로 지향해왔던 문학적 방법이 여전히 유효한가, 현재 소설문학이란 것이 여전히 당대를 함께 사유하는 가장 수준높은 형식으로서 의미 있는 장르인가, 수년간 고민해왔다. 그 대답으로 쓰인 작품이 ‘존재의 형식’이고 ‘랍스터를 먹는 시간’이다.”

―그러면서도 영상매체의 득세와 소설의 쇠퇴 사이에서 진지한 고민을 담고 있는 ‘소설의 길 영화의 길’을 출간했다. 이유는.

“약 3년여에 걸쳐 영상시대 소설문학의 미래에 대해 공부하고 실제 검증해봤던 것을 책으로 묶었다. 지금 소설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나 문학을 하려고 하는 사람 대부분이 소설에 대한 확신이나 정체성, 또는 미래에 대한 비전에서 흔들리고 있다. 그같은 흔들림 자체가 소설 장르의 위기를 자초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본다. 영상에 대한 근거없는 콤플렉스, 영상적 방식의 글쓰기에 경도됨으로써 오히려 문학의 출구가 아니라 문학의 파탄을 야기하고 있다. 마치 영상의 발전이 소설의 위기를 초래하는 것처럼 오해하고 있지만 실상은 태만한 산문정신에서 위기가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면 영상매체의 급팽창 시대에 소설이 여전히 맡고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

“소설문학과 영상의 가장 큰 차이는 표현수단의 차이다. 소설은 문자를 표현수단으로 삼는 반면 영화는 영상이라는 이미지를 활용한다. 그런데 문자는 인간이 개발한 가장 정치(精緻)한 표현수단이며 그 이전에 사유의 수단이다. 인간은 문자를 빌려 사유한다. 한마디로 고도의 사유와 이를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문자인 것이다.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은 고도화된 사유와 표현의 정치성을 이미지로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소설이란 장르에 대한 의심을 갖고 영화에 접근해 보았다”는 방씨는 “그 결과 나에게는 소설이 훨씬 생산적이고 유익하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털어놓았다. 작가가 가진 문제의식을 일체의 유보없이 전면적으로 표출가능한 소설에 비해 영화는 관객을 불러들이기 위한 장치를 해야 하며 따라서 작가의 문제의식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엔 미흡하다는 것.

올해 방씨는 지난 10여년간 왕래했던 베트남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을 내놓을 계획이다.

--문화일보, 김영번기자 2003. 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