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의 문학/산문

벙어리 달빛 : 지리산에서 온 편지 (1999)

실천문학 2013. 8. 2. 14:17

 

 

 

 

 

     

 

 

 

 


지리산에서 살면서 느낀 단상을 잔잔하게 풀어낸 이원규 시인의 산문집 . 3년 전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홀연히 지리산으로 들어간 이원규 시인이 그동안 산에서의 생활과 사색을 편지글 형식으로 엮었다. 섬진강변 마을 사람들의 따사로운 생활이 시인의 시선을 통해 훈훈한 느낌으로 전해진다.


"혼자 외딴집에 살다보면 하루종일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는 날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침에 일어나 혼자 중얼거려 보아도 말이 잘 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가슴은 충만해집니다. 그런 날은 어김없이 지리산 골짜기를 찾아갑니다. 마을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고, 그저 산속에서 침묵하는 게 훨씬 편할 때가 많을 뿐만 아니라 머리가 한결 맑아지는 듯하기 때문입니다……."(본문 「묵언서약」 중에서)

지리산에서 한 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시인이 생활하고 있는 곳은 지리산을 등지고 섬진강을 굽어볼 수 있는 곳이다. 스님이 살다가 비운 집을 빌려 살고 있는 시인의 집은 입구에 솟아있는 대나무 솟대만큼이나 소박하다. 그의 재산은 스님이 남기고 간 초라한 가재도구와 오래된 노트북 하나가 전부이다.
손님이 오면 손수 섬진강에 투망을 던져 잡아온 은어나 눈치로 요리를 해주고 가까운 절의 스님과 음담패설을 할 줄 아는 사람. 지리산 구석구석을 다니며 산자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을 살펴보며 나비와 새와 들짐승은 물론이거니와 온갖 나무와 꽃들과 이야기하며 사는 사람.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를 진정한 시인이게끔 하는 것은 그리울수록 더욱 깊고 먼 곳에서 그리움을 키워나가는 삶의 자세이다.

세상이 그리워서 시인은 산을 내려오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은 산 속에서 오랜 포도주빛 그리움을 발효시키고 있다.
민족의 슬픈 현대사를 품고 있는 영산, 지리산에서 그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역사를 그리워하며, 자신의 집앞의 결명자 잎사귀와 섬진강에 내리는 달빛과 옆집 할머니의 바구니에 덮여오는 감잎 두 장을 그리워한다. 그 모든 그리움이 어우러져 시인의 지리산에서의 삶이 되는 것이다.

산에서 바라보면 모든 것이 그립다
지리산은 해발 1915m의 남한 최대의 산이다. 그 이름에 걸맞게 지리산엔 반달곰과 수달을 비롯한 수많은 종류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화엄사, 쌍계사, 실상사를 비롯한 크고 작은 사찰이 무수히 들어서 있다. 지리산의 품새는 경상도의 하동, 함양, 산청, 전라도의 구례, 남원을 껴안고 있을 정도로 크다. 무수한 개발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부분이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자연림으로 존재하고
있다. 유독 빨치산 활동이 여타 산에 비해 활발했고 그만큼 역사의 질곡과 상처를 많이 겪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시인이 지리산으로 들어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간의 잣대로 말할 수 없는 대자연 속에서 다시 인간을 바라보고자 한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지리산과 그 지리산을 거쳐간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또한 그것이 차가운 콘크리트 덩어리 속에서 생활하는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기도 한다.

지리산이 한 시인의 가슴에 잉태시킨 그리움. 그 크기와 깊이를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원규
1962년 경북 문경 출생으로 1984년 『월간문학』에 「유배지의 들꽃」을 발표했으며, 1989년 『실천문학』에 「빨치산 아내의 노래」 외 15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8년 제16회 신동엽창작기금을 수여했다.
시집으로 『빨치산의 편지』, 『지푸라기로 다가와 어느덧 섬이 된 그대에게』, 『돌아보면 그가 있다』 등이 있다.

지리산자락 자연을 닮은 사람들 얘기

3년 전 돌연 지리산으로 떠났던 '빨치산의 편지'의 시인 이원규씨(37)가 산문집
'벙어리 달빛'(실천문학사)을 냈다. 부제 '지리산에서 온 편지'가 말해주듯 그가 지리산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곳 생활을 다룬 편지글들이다.

18살에 스님이 됐다가 어머니의 성화로 다시 세상으로 나왔지만 광부로, 트럭운전사로 한자리에 머물지 못하고 방랑했던 시인. 시사월간지 기자의 안정된 자리를 버리고 간 지리산은 어쩌면 그가 빨치산이었던 부친에 대한 근원적 그리움으로 평생 간직했던 마음의 자리였는지 모른다. 그곳에서 그는 은은한 수박향의 은어회와 막걸리 한잔에 취하기도 하고 선유동 계곡에서 세상의 모든 가식을 벗고 알몸으로 자연과 하나가 된다.

그러나 그에게 진정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그곳 사람들이다. 첫 투망질의 미숙함과
부끄러움을 조용한 미소로 가려주던 벙어리 투망꾼. 그의 투망은 욕심스레 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달빛을 낚으려는 탈속의 투망질이었다.

또 투박한 음식일망정 꼭 감잎 2장을 곱게 덮어 보내는 옆집 할머니와 사랑 하나만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심심산골로 들어와 생활의 고통을 이겨낸 하늘 아래 첫동네 심원마을의 청기와집 부부 등. 모두 대자연 속에서 욕심없이 맑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3부 '한장의 엽서, 지리산의 아포리즘'엔 시인이 지리산에서 틈틈이 쓴 33편의 시가 담겼다.
--- 경향신문 김광호 기자 (1999년 12월 21일 화요일)


섬진강변 사람들의 일상

3년 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지리산 자락으로 내려간 시인 이원규(37) 씨가 `지리산에서 온 편지'라는 부제를 단 산문집 <벙어리 달빛>을 묶어 냈다.

시사 잡지 기자로 일하다가 홀연 서울을 뜬 그는 섬진강변 마을을 거쳐 지금은 지리산 피아골에서 생의 한 철을 보내고 있다. <벙어리 달빛>에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과 자연, 절대고독에 가까운 상황에서 피워올린 사유와 시심이 담겨 있다. 섬진강변 마을의 이웃집 할머니는 하얀 사발에 삶은 감자나 콩조림, 열무김치나 풋고추 등을 담고는 깨끗한 감잎 두 장을 살짝 얹어 건넨다. 박꽃 같은 웃음을 웃는 우체국 처녀는 시인이 빠뜨리고 온 거스름돈만큼의 우표를 배달부 편에 보내 온다. 헌칠한 키에 쾌남형인 사십대의 벙어리 사내는 보름달 환히 뜬 섬진강 여울에서 투망을 던지는데, 잡힌 물고기는 도로 놓아주고 그저 달빛만 건져올릴 뿐이다. 이들과 어울려 사는 시인은 개량 한복에 오토바이를 타고 지리산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녀 '지리산 폭주족'이라는 별명을 얻었단다.
--- 한겨레신문 최재봉 기자 (1999년 12월 21일 화요일)


지리산 자락서 길어올린 삶의 단상

지리산의 품에 살면서 느낀 단상들을 모은 이원규(37) 시인의 산문집 '벙어리 달빛'(실천문학사)이 출간됐다. 3년 전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섬진강을 굽어보는 지리산 자락으로 들어간 시인은 이 산문집에서 도회에서 찌든 마음의 때를 묵언정진으로 벗겨내면서 주위의 자연과 사람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그려내고 있다.

세상이 그리워서 산에서 내려오지 않는다는 시인. 그에게 바깥 세상은 산 속보다도 오히려 더 스산한 곳이고, 그래서 삭막한 도회생활에서 자신에게서조차 사라져버렸을지 모를 진정한 사람의 냄새를 기억하고 되찾기 위해 고행을 자초했다. 지리산 구석구석을 누비며 산자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을 살펴보며 나비와 새와 들짐승과 나무와 꽃들과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는 삶. 그는 그곳에서 세상이 그리울수록 더 낮고 깊은 곳으로 몸을 숨기며 진정한 그리움의 샘물을 언어를 통해 길어올리기 위해 고심하는 중이다.

'대나무 울타리 사이로 섬진강 물소리가 범람하는 초저녁입니다. 그대의 마을에도 아침저녁으로 풀벌레며 귀뚜라미가 울고, 산산한 바람이 문틈 사이로 스며들어 잠결에도 이불을 덮게 하는지요. 여기 지리산에는 지난 여름의 폭우가 앗아간 목숨들이 아직 구천을 건너지 못했는지 예년보다 빨리 단풍잎을 물들이고 있습니다.'('감잎 두 장의 마음'에서)

피씨통신 유니텔문학관에 연재해 많은 네티즌들을 감동시켰던 편지글을 모은 이 산문집에는 섬진강의 은어와 눈치, 집 앞 결명자 잎사귀와 섬진강에 내리는 달빛, 옆집 할머니가 감잎 두 장을 덮어 가져오는 하얀 주발 등이 맑은 이미지로 묘사된다. 1984년 '월간문학'에 '유배지의 들꽃'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와 '돌아보면 그가 있다'등 3권의 시집을 펴낸 이원규 씨 신동엽창작기금(98)을 수상하기도 했다.
--- 세계일보 조용호 기자 (1999년 12월 22일 수요일)


섬진강변 자연과 하나 '귀거래사'

책은 도시탈출을 이룬 한 시인의 자연찬가다. 자연뿐 아니라 그곳에 사는 착한 사람들의 일상도 함께 전해준다. 저자는 3년 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지리산 남쪽 자락, 섬진강변에서 살고 있다. 스님이 살다가 비운 집을 빌려서 사는 그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재산은 노트북 하나. 사람과 자연이 너나 없이 한 데 어우러진 '귀거래사'가 편지형식으로 실려 있다. 유니텔 문학관에 연재한 글을 책으로 묶었다.

편지에 따르면 그곳 사람들은 이렇게 산다. 이씨는 어느 날 구례군 토지면 토지우체국에서 보내온 '통신사무'편지를 받았다. 거기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거스름돈을 두고 가셨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우표로 보내드립니다." 편지에는 우표 5장이 들어있었다. 거스름돈 대신 나온 우표 5장에 감격하며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행여 그대가 지리산에 온다면 구례군 토지우체국에 들러 그녀의 박꽃같이 환한 마음을 엽서 한 장에 담아가십시오." 마치 수행생활을 하듯이 하루를 보내는 그의 글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벗어난 침묵의 즐거움을 전한다."하루 종일 한마디 말도 하지 않는 날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혼자 중얼거려봐도 말이 잘 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가슴은 충만해집니다. 그저 산 속에서 침묵하는 게 훨씬 편할 때가
많을 뿐 아니라 머리가 한결 맑아지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 문화일보 (1999년 12월 22일 수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