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의 문학/소설

생선 창자 속으로 들어간 시 (1997)

실천문학 2013. 8. 5. 14:20

 

 

 

 

 

      

 

 

 

 


우리 시대의 문제를 꾸준히 소설로 형상화해 온 이대환의 두번째 소설집. 소외된 삶에서 피어나는 밀알 같은 이야기 아홉 편이 긴장된 시선과 삶에 대한 폭넓은 통찰로 감지된다.


우리 시대의 문제를 꾸준히 소설로 형상화해 온 이대환의 두 번째 소설집.

이대환은 「생선 창자 속으로 들어간 詩」를 포함한 여섯 편의 소설들에, 일련번호
가 붙은 '우리들의 문민시대'라는 부제를 달아놓았다. 이 소설들은 모두 독립적인 소재와 색다른 문제의식을 담고 있으면서도 현재까지도 헤어나지 못한 민족적·사회적 문제들을 짚어가고 있다는 점에서는 한결같다.
이 시리즈에는 선생님의 시각으로 우리의 교육현실을 다룬 소설이 두 편, 대학생 시절에 잠시 학생운동에 가담했던 일 때문에 젊은 직장여성이 옥살이를 하게 되는 이야기, 운동권에서 자신의 명망성을 구축한 후 문민시대 권력층과의 친분을 이용하여 각종 이권에 손을 대며 살아가는 인물을 풍자적으로 그린 작품, 명예퇴직을 당한 중년사내가 개인택시 운전사가 되었다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게 된 이야기 등이 실려 있다.
이처럼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동일한 부제를 달고 있는 까닭은 지난 시
대에 못지않게 음성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문민시대'의 다양한 삶의 현실을 담아내
기 위한 소설적 전략으로 보인다. 그러기에 이 작품들에서 우리는 우리가 몸담고 있는 지금 이곳의 삶의 조건들을 하나하나 진지하게 음미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일 년에 20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사교육비로 탕진되는 우리 사회의 '교육적' 빈곤, 과거의 운동경력이 아직도 원죄적으로 작용하는 노동현실, '명예퇴직'이라는 미명하에 오늘의 경제적 성장을 일궈낸 일꾼들을 무차별적으로 쫓아낼 수 있게 한 기업중심적 사고와 정책, '김현철 사건'으로 폭발적으로 드러난 바와 같은 권력형 비리 등을 전형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문민시대' 시리즈에 포함되지 않은 「행복한 중년부부」 역시 '팔아야 산다'는 그 나름의 진리를 터득한 중년여인이 삶의 중요한 가치를 상실해 가는 과정을 통해 이 시대 삶의 한 단면을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모두 여덟 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는 이 소설집의 맨 앞에 놓인 중편소설 「슬로우 불릿」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관통할 수밖에 없는 문제적 과거를 고통스럽게 증언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월남 참전군 31만 명 중 현재 3만여 명이 고엽제 후유증으로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슬로우 불릿」이 우리에게 한 가닥의 양심적 가책까지 불러일으키는 것은 인물들의 마음속에 서린 그늘과 가족간의 미묘한 심리적 갈등까지 그려낸 작가의 통찰력에서 비롯되고 있다. 남의 나라의 전쟁에 동원되었던 한 인간이 서서히 파괴되어 가는 과정과 그 가족들 역시 그에 못지않은 고통을 짊어질 수밖에 없는 사실이 과장 없이 무서울 만큼 적나라하게 드러남으로써 사회적 고발 이상의 의미를 구축하고 있다. 이 소설의 무거움은 가벼운 의식이 시대정신이 되다시피 한 요즈음 세상에 암류하고 있는 역사적 비극성을 섬뜩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간단히 살펴보았듯이, 『생선 창자 속으로 들어간 詩』에 실린 작품들은 한
두 가지 주제로 묶어서 논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소재들을 망라하고 있다. 이 작품들에서는 한결같이 시대적 현실과 고통에 밀착해 있는 작가의 긴장된 시선과 삶에 대한 폭넓은 통찰이 감지된다.
이대환은 삶 속에서 노동의 피와 땀이 썩어 ― 성경에 나오는 '밀알'의 비유처럼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는 데에서 문학의 진경이 피어난다는 고전적 진리를 우리 시대의 현실 속에서 변주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대환
1958년 포항 출생으로,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0년 한국펜클럽 주관 장편소설 현상공모에 당선되어 일찍이 문단에 나왔으나, 대학 졸업과 함께 귀향하여 오랜 공백을 가졌다. 1989년 『현대문학』 장편소설 공모에 다시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미완성의 돌』, 『말뚝이의 그림자』, 『새벽, 동틀 녘』, 소설집 『조그만 깃발 하나』, 『생선 창자 속으로 들어간 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