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상처 2(전 2권) (1998)
이문열과의 페미니즘 공방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이경자 소설가의 화제작. 남성중심사회의 질곡 속에서 살다간 여성들의 삶의 내면을 진솔하게 형상화한 작품으로, 남존여비의 원초적인 비극을 서정적으로 그려냈다.
*98 한겨레 주목할 만한 도서 10선 선정 / 한무숙문학상 수상.
페미니즘을 '자기성취라는 집단최면'으로 비난해 문단 안팎을 시끄럽게 했던 이문열의 소설 『선택』에 맞대응, 193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여성의 삶을 담은 본격 페미니즘 소설이다. 『선택』에서 이문열이 "이혼 경력이 '절반의 성공'쯤으로 정의되고, 간음은 '황홀한 반란'으로 미화된다"며 이경자의 예전 작품 제목을 빗대어 왜곡되게 묘사한 후, 이경자의 이 소설에 대한 관심이 집중된 바 있다.
『사랑과 상처』는 우리들 남자와 여자들 생명에 뒤섞여 유구한 세월을 진화하면서 견뎌온 남존여비에 대한 실상이 잘 형상화되어 있다. 주인공 준태는 화전민의 아들이지만 어느 왕손의 상속자나 다름없이 길러졌고, 정옥은 딸이었으므로 그 출생의 순간부터 비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극단적인 원체험을 가진 두 주인공의 비극적인 혼인이 두 사람의 삶을 어떻게 황폐화시키는지, 그리고 사랑이 어떤 모습으로 두 사람을 얽어매는지,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이 상처받고 훼손되어 가는 근원과 구조와 역사를 드러내 보임으로써 여성적 삶의 허구와 환상을 벗겨내 잘못된 제도와 의식이 남녀 모두에게 상처와 치욕이 되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나는 이 소설을 남자들도 지겨워하며 읽어주었으면 싶다. 자기가 쥔 특권에 의해 왜곡되고 상처받은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로서 말이다. 가부장 문화는 더 이상 남자도 보호할 수 없을 만큼 퇴락했다. 남자도 여자도 다같이 상처받은 피해자이다. 상처는 치유받아야 한다. 치유하기 위해선 우선 상처를 드러내고 그리고 직시해야 한다. 그건 이 소설이 제기한 문제이다 해답이다"__박완서
이경자
1948년 강원도 양양 출생으로 줄곧 그곳에서 자랐다. 서라벌 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다녔고, 197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확인』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작품으로는 『절반의 실패』, 『꼽추네 사랑』, 『할미소에서 생긴일』 등의 소설집과 『배반의 성』, 『혼자 눈뜨는 아침』, 『황홀한 반란』 등의 장편소설이 있다.
1권
1 어머니와 딸
2 물겁에서 송애로
3 삼팔선
4 전쟁
2권
5 수복지구
6 다른 땅에서
7 아직도 먼 고향
발문__박완서
사랑과 상처로 얼룩진 남존여비 굴레 해부한 이경자
이문열은 자신의 소설 <선택>에서 "이혼 경력이 '절반의 성공' 쯤으로 정의되고, 간음은 '황홀한 반란'으로 미화된다"라고 말해 페미니즘 논쟁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 때 자신의 작품이 직접 거명되었던 중견작가 이경자. 그녀는 두 권짜리 장편 <사랑과 상처>를 내놓음으로써 '왜 페미니즘이어야 하는가'를 작품으로 설파했다.
미국에 와 살고 있는 70대의 주인공 정옥은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온갖 구박과 욕설 속에 자랐다. 열아홉 살에 시집을 갔으나 남편은 시도 때도 없이 폭행과 불륜 행각을 일삼는다. 둘째 딸 숙이를 따라 남편을 두고 혼자 미국으로 건너간 정옥은 재봉일을 하며 자유롭게 살지만, 그녀의 곁으로 온 남편은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자살한다.
"가부장제와 남존여비 의식이 남녀 모두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고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시키는지를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여성들에게 대물림되는 저주스런 삶의 모습을 통해 페미니즘은 '자기 성취라는 집단 최면'이 아니라 '남녀가 서로 상처받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몸부림'이라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지요."
여자였기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비천했던 정옥과 비록 화전민의 아들이나 귀한 존재로 길러진 준태의 혼인이 그들의 삶을 황폐화시키는 과정을 통해 작가는 남존여비라는 제도나 인습이 여자분 아니라 남자에게도 얼마나 상처를 주는지, 인간과 생명과 존엄성이 얼마나 훼손되는지를 보여준다. 따뜻한 시선으로 '반란도 못하는' 여자의 기구한 인생을 감싸안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