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알렉산드라 (2009)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현직 문학전문기자인 정철훈의 신작 장편소설이 출간됐다. 한국 여성으로 러시아혁명의 한가운데에서 활동했던 김알렉산드라가 소설의 주인공이다. 1915년 우랄지방의 벌목장에서 착취당하고 있던 노동자들을 위해 통역하는 것을 계기로 혁명가로서의 삶을 시작한 김알렉산드라. 러시아혁명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전설이 된 그녀를 정작 우리는 잘 모른다. 작가는 그녀의 열정적인 삶을 직접 수집한 자료들을 토대로 하여 소설적으로 형상화하였다. 『소설 김알렉산드라』를 통해 누구보다 뜨겁고 눈부신 삶을 살았던 한 여성을 만나는 동시에 서정적인 문체와 탄탄한 서사성을 갖춘 또 한 사람의 작가를 만나게 될 것이다.
“어머니의 이름으로 혁명을 외치다”
우랄에서 아무르까지 러시아 설원을 녹인 혁명의 불꽃
소설은 노년기에 접어든 ‘오가이 보리스 바실리예비치’가 편지들에 관한 기억을 더듬는 것으로 시작된다. 편지들은 한결같이 그의 어머니 김알렉산드라에 관한 기억을 담고 있다. 김알렉산드라는 1910년대 볼셰비키 운동의 지도자로, 한국 사상 최초의 사회주의 단체 한인사회당을 발기한 인물이며 러시아 민중들에게 널리 사랑을 받았던 혁명가였지만, 보리스에게는 부재한 어머니, 기억 속에 희미한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동료였다는 노병 ‘리인섭’의 끈질긴 편지에 의해 보리스는 결국 혁명의 자취를 좇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몸을 싣는다.
1900년대 초 ‘우랄’이라는 혁명공간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실존 인물들의 실제 행적을 추적하고 있다. 총 3부로 나뉘어진 작품에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1부와 3부에서는 김알렉산드라의 둘째 아들이 화자로 등장하여 현재에서 과거를 되비추는 픽션이 가미되어 있지만, 소설의 본문이라 할 2부 ‘우랄의 딸’의 화자는 김알렉산드라로 그녀 자신이 1인칭 화자로 등장하여 혁명의 소용돌이 속 긴장감과 긴박함을 사실적으로 묘사해낸다.
고리키의 ‘어머니’, 로자 룩셈부르크 그리고……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김 스딴께비치
‘김알렉산드라’는 누구인가. 1918년 9월 피살되기까지 한인 여성으로 러시아혁명의 한 부분을 담당하며 전설적인 존재로 남은 그녀에 대해 우리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 본명,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김(스딴께비치), 그녀는 1885년 극동시베리아의 우수리스크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일터인 철도 공사판에서 지내며 노동자들의 틈바구니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의 친구 스딴께비치와 결혼하여 아들 하나를 둔 채로 별거하게 되고, 러시아정교 신부 오바실리와 사랑에 빠져 그와의 사이에 둘째 아들을 둔다. 1915년, 가족을 떠나 우랄의 페름시 나제진스크 목재소로 가 통역 일을 하며 착취당하는 조․중 노동자들의 입이 되어 인권을 대변했으며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우랄노동자동맹을 조직하기에 이른다. 1916년, 러시아 사회민주당에 가입해 하바롭스크시당(市黨) 비서가 되었고, 극동에서 소비에트를 구축하는 임무를 맡게 되어 한국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을 발기했다. 다음 해인 1917년에 열린 극동 소비에트 3차 대회에서 인민위원회의 외무위원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1918년 9월, 반혁명세력인 백위군의 공격을 받고 피신해가던 중 체포되어 처형되었으며 그녀의 시신은 아무르 강에 유기되었다. 현재 하바롭스크의 마르크스가 24번지에는 그녀를 추모하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김알렉산드라의 삶을 그려낸 이 작품에는 여러 이미지가 중첩되어 있다. 그녀는 누구보다 냉철하고 강인한 혁명가였지만 사랑 앞에서는 솔직하고 뜨거운 여인이었으며, 자식 앞에서는 한없이 여리고 따뜻한 어머니였다. 작가가 시적 섬세함과 유려한 산문성으로 되살려낸 그녀의 삶에서, 누군가는 등 뒤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우리의 ‘어머니’를, 누군가는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철의 여인 로자 룩셈부르크를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 작가의 말에서
아득하고도 소름 끼치는 그 혁명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최후의 순간에 적을 향한 저주의 언어를 착란적 속삭임으로 토해내는 쑤라의 애처로운 음성을 들을 수도 있으리라. 그 음성은 죽어가는 자가 살아 있는 자를 위해 바치는 기도일 것이다. 내가 탐구하고 싶었던 것은 이 음성이었다. 그녀가 가진 회한의 비밀을 하나씩 뽑아내면서 그녀는 살아 있을 때 어떤 사람이었을지 머릿속에 떠올리곤 했다. 이 글을 붙들고 있던 나날들은 끊임없이 꿈과 상상력 사이를 오가며 지나갔다. …(중략)… 이 지상을 살아가면서 가끔 세상이 사라지는 있다는 것을 느낄 만큼 내 자신이 미궁일 때가 많다. 쑤라에 대해 썼음에도 미궁은 해결되기는커녕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것도 같은 이치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제 작별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다. 그대 쑤라여. 혁명도 사랑도 다 지난 일이 되어버린 이 지상에 강으로 누워 있는 그대의 풍경은 얼마나 위대하고 멋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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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훈_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국민대 경제학과를 졸업했으며 러시아 외무성 외교과학원을 수료하고 「10월혁명 시기 러시아 극동에서의 한민족해방운동」으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7년 『창작과비평』 봄호에 「백야」 등 6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인간의 악보』, 『카인의 정원』과 시집 『살고 싶은 아침』, 『내 졸음에도 사랑은 떠도느냐』, 『개 같은 신념』이 있으며,『소련은 살아 있다』, 『김알렉산드라 평전』, 『옐찐과 21세기 러시아』, 『뒤집어져야 문학이다』 등의 저서가 있다. |
편지들
우랄의 딸
내 안의 아무르
작가의 말
“삶을 바꾸려 했던 에너지… 사랑… 여전히 우리사회에 유효한 것들” ―― 강병철 기자, 서울신문(2009. 8. 8.)
혁명가로 산 동토의 한인 2세 그 발자취를 좇다… ‘김알렉산드라’ ―― 라동철 기자, 국민일보(2009. 8. 7.)
"한국 로자 룩셈부르크, 김 알렉산드라" ―― 김청환 기자, 주간한국(2009. 8.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