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의 문학/소설

갈보 콩 (2010)

실천문학 2013. 8. 7. 15:04

 

 

 

 

 

 

 

       

 

 

 

 

 

걸쭉한 입말체로 스러져가는 농촌의 삶을 그려온 이시백이 소설집 『갈보 콩』을 출간하였다. 이문구 이후 농촌소설의 계보를 잇는 “이야기꾼 소설가”라는 평가를 받아온 작가는 모노톤의 농촌 원경에 마치 접사하듯이 그만의 촉수를 깊이 드리웠다. 안에서는 4대강사업이다 밖으로부터는 수입 농산물이다 하면서, 이 땅과 함께 몸살을 앓고 있는 농민들의 삶을 통해 우리 시대의 문제를 그들 특유의 육담으로 비틀며, 역사의 주체로서의 ‘민중(농민)’이 온몸으로 써 내려가는 ‘민중서사’를 해학과 풍자의 한판 “해원굿”으로 펼쳐 보인다.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
이시백이 펼쳐 보이는 해학과 익살의 한판 해원굿


수록된 11편의 이야기들은 모두 ‘농촌’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여기서의 농촌은 산업화 이전의 전통적 삶터로서의 공간인 동시에 산업화와 자본주의의 역풍을 감내하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지역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자행되는 작금의 난공사, 그로 인한 생태계 파괴, 하루가 멀다 하고 이물스럽게 변해가는 고향이 별 거부감 없이 우리에게 내면화되고 있는 데 대해 작가는 “이제는 너나없이 실향민이 되”었다고 푸념한다. 그리고 우리 무의식에서조차 주변부로 내몰리는 농촌이 더 이상 ‘고향’과 같은 모성(母性)을 간직하고 있지 않은 척박한 곳으로 변해가는 현실을 신랄하고도 구성지게 묘파해낸다.


저녁이 다 되어서야 고향집엘 들어서는디, 고향이래구 누가 있어? 부모 다 돌아가시구 가까운 집안네들두 죽거나 거미 새끼처럼 뿔뿔이 여기저기루 흩어진 뒤에 누가 있어 반겨주겠어. 그저 전에 살던 집이나 들러보자구 찾아가는디, 딴 디서 들어온 노인네가 살구 있다는 고향집은 일찌감치 불이 꺼져 먹먹허구 바람 소리만 청승맞은디, 아, 글쎄 그 돌배낭구가 마당 가운데 턱 허니 서 있는 거여.
_「충청도 아줌마」중에서


오직 즤 손으루다가 농사지어 먹을 이덜헌티만 논밭을 팔구 사구 헌다 허믄, 인건비는 일찌감치 무료봉사 각오허구두 비료값, 약값은 몽조리 빚으루 남는 농사럴 어느 넋 나간 인간이 지어보겠다구 사들이겄느냔 말이여. 그냥 논바닥에 엎어져 묻히기나 허란 소리밖에 더 되겠냔 말여.
_「송중이는 무얼 먹고 사는가」중에서


하여 또 다른 자본주의의 ‘소수자’로 살고 있는 농민들의 삶을 통해 작금의 “탁상공론식” 농정을 비꼬며, “애국허는 것들”의 위해 아닌 위해 속에서 “뿌리 뽑힌 자”로 생존 위협을 받고 살아가는 농민 삶의 이면에 도사린 ‘불안’을 작가 특유의 익살과 해학으로 문제화한다.



“인간이구 콩이구 밖에서 굴러온 것들이 문제여”

표제작 「갈보 콩」은 이 땅과 우리의 체질이 바뀌어가는 것을 형질이 변한 ‘갈보 콩’을 내세워 꼬집는다. 소설 속 각각의 사건들은 농촌의 문제로만 보이기 쉬우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를 아우르는 현실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사료값, 품값의 폭등과 수입 소고기 등으로 인한 농가 경제 문제(「워낭 소리」)를 비롯하여 4대강사업(「두물머리」), 직불금 제도(「송충이는 무얼 먹고 사는가」), 농터가 골프장으로 변하면서 야기되는 문제(「몰입」), 외국 작물의 유입으로 인한 먹을거리 문제(「갈보 콩」), 고향을 떠나 도시의 주변인으로 살아가는 현대 실향민의 문제(「충청도 아줌마」) 등이 그것이다. 이 같은 농촌의 현실은 어떤 식으로든 다시 도시인들의 식탁, 주머니 경제에 영향을 미치며, 정서적인 안식처을 잃고 마음이 가난해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당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농촌 현실이 곧 ‘전체’의 현실이라는 자각에서 작가가 주목한 소설적 공간으로서의 ‘농촌’은 한 시대를 가늠해볼 수 있는 ‘바로미터’로 기능한다. 농민들이 도시의 영향권 안에서 주체적으로 자기들의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이 쉽지 않듯이 더 큰 시각으로 보면 국제 정세 속 이 나라의 모습도 농촌의 현실과 크게 다를 바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민중서사의 재발견, 신명나는 마당극으로의 초대

도시적 감수성에 기댄 실감 없는 문장, 모호한 서사, 분열된 자의식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는 근래 소설에 견주어볼 때 『갈보 콩』에 수록된 작품들은 편편이 싱싱한 활어를 보는 듯 생명력이 느껴진다. 고명철 평론가가 작품해설에서 “한국의 역대 정치권력이 민중의 해학과 풍자의 언어의 미로써 여지없이 해체되고 있”다면서 “이 소설에서 빼놓아서 안 될 게 바로 이와 같은 구술성(口述性)”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거니와, 현실에 바탕하여 생생하게 살아 있는 어휘들은 마치 신명나는 마당극을 보는 듯하다. 한국문학의 뒤안으로 사라지는 듯했던 민중서사의 재발견이라 할 만한 이 소설집은 옛것에서 느끼는 역설적 새로움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추천의 말

소설집 ‘갈보콩’의 작가 이시백의 등장은 나에게 근래에 들어 일종의 사건으로 여겨졌다. ‘느닷없이’ 혹은 ‘난데없이’란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그는, 언제나 그리운 이문구 형님의 빈자리에 소위 농촌소설이라는, 시절에 뒤처져도 한참 뒤처진 장르로 어느 날 불쑥 등장한 것이다. 그런 그가 나에게는 일종의 사건을 넘어서 어떤 각성으로까지 여겨졌다. 논두렁에 퍼질러 앉은 육덕 좋은 시골 여편네들의 방담처럼 걸걸한 입담, 어디서나 두엄냄새며 쇠똥냄새가 풍겨오는 문체, 얼핏 어눌하고 주눅이 든 것 같으면서도 저마다 벌써부터 한눈에 척 세상살이의 핵심을 꿰뚫고 있는 인물들의 냉엄한 눈길은 나로 하여금 비스듬히 누워서 읽던 그의 소설들을 벌떡 일어나 정색을 하고 읽게 만들었다. 그렇게 정색을 하고 새삼스럽게 그의 소설들을 다시 읽으며, 나는 우리 문학 혹은 소설 혹은 농촌소설이 아직은 희망을 가질 만하다고 고쳐 생각했다. _송기원(소설가)

 

이야기 듣기를 좋아해 일부러 길갓집을 얻어 장꾼, 포수 들을 즐겨 들였다던 증조부가 거처한 경기도 여주의, 민비네 묘지기가 쓰던 초가에서 태어났다. 이야기에 홀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에서 소설을 공부했다. 88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 엉겁결에 『동양문학』 소설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스물네 해 남짓 중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몇 해 전에 그만두고 지금은 경기도 수동면 광대울에서 주경은 조금 시늉을 내나 야독은 충실히 하지 못하고 쓰러져 잠들기 잦다. 그동안 펴낸 책으로 산문집 『시골은 즐겁다』, 자유단편소설집 『890만 번 주사위 던지기』, 연작소설집 『누가 말을 죽였을까』, 장편소설 『메두사의 사슬』과 『종을 훔치다』 등이 있다. 권정생 선생님의 눈물겨운 제1회 창작지원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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