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의 문학/시

가난한 사랑노래 (1988)

실천문학 2013. 8. 9. 11:33

 

 

 

 

 

 

      

 

 

 

 

 


꾸준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신경림은 이제 기존의 자기 작품과의 연관 속에서 새로운 시의 충전을 기약해야 할 지점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시집은 그러한 의미에서 신경림 시의 한 결산이 되는 셈이다. 신경림의 시는, 그가 아니었다면 간결하면서도 절절한 목소리를 찾지 못했을 많은 사람들의 설움과 노여움과 정한에 목청을 틔워주었다. 그것은 우리 현대시에서 가장 진실하고도 호소적인 목청의 하나였다. 그리하여 힘없고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은 그 목소리가 제 목소리임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__유종호(문학평론가)

가난한 사랑노래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__「가난한 사랑노래」(전문)

 

신경림
1935년 충북 충주 출생. 동국대 영문과 졸업.
1956년 『문학예술』에 시 「갈대」 「묘비」 등이 추천되어 시단에 나옴.
1973년 첫시집 『농무』를 간행한 이후 『새재』(1979), 『달 넘세』(1985), 『가난한 사랑노래』(1988), 『길』(1990), 『쓰러진 자의 꿈』(1993)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1998) 등과 장시집 『남한강』(1987)을 간행함. 만해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이산문학상, 단재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