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의 문학/시

생은 아름다울지라도 (1995)

실천문학 2013. 8. 9. 11:44

 

 

 

 

 

 

 

         

 

 

 

 

 

 


'오월시' 동인으로 활동 중인 윤재철 시인의 세번째 시집.
출발부터 '삶의 시'를 추구해 온 그는 이번 시집에서도 예외없이 '집'을 화두
로 삼아 삶의 근거에 대한 탐색을 보여주고 있다. 주변부로 밀린 인물들에 대
한 애정어린 시선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평범한 일상사의 세부에서 시적인
것을 포착해 내는 안목이 돋보이는 시편들에서 '삶의 시'의 진수를 볼 수 있다.

생은 아름다울지라도

달리는 고속버스 차창으로
곁에 함께 달리는 화물차
뒤칸에 실린 돼지들을 본다
서울 가는 길이 도축장 가는 길일 텐데
달리면서도 기를 쓰고 흘레하려는 놈들을 본다

화물차는 이내 뒤지고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저 사랑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생각한다
아름답다면
마지막이라서 아름다울 것인가

문득 유태인들을 무수히 학살한
어느 독일 여자 수용소장이
종전이 된 후 사형을 며칠 앞두고
자신의 몸에서 터져나오는 생리를 보며
생의 엄연함을 몸서리치게 느꼈다는 수기가 떠올랐다

생은 아름다울지라도
끊임없이 피 흘리는 꽃일 거라고 생각했다.

--「생은 아름다울지라도」 전문

 

윤재철
1962년 충남 논산 출생으로,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83년 '오월시' 동인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87년 첫시집 『아메리카 들소』, 1992년 두번째 시집 『그래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