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마당의 집 (2003)
등단 25주년을 맞는 김태수 시인이 네번째 시집 『황토마당의 집』을 상재했다. "한 올의 경험도 수반되지 않은,
풀풀 날리는 기교"가 가득한 요즘 시들을 대하며 스스로 "도대체 시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깊숙한 물음에 닻을 내렸던 김 시인은, 기억과 경험의
힘으로 시의 본령에 마주하며 맑고 정갈한 시의 결들을 펼쳐놓는다. 『황토마당의 집』은 기억이 불러내는 노래들로 채워져 있다. 시인의 기억의
편린에서 끌어올려진 시들은, 우리 내부에 도사린 어떤 기억을 끄집어내며 우리가 상실한 가치들에 대해 깨닫게 한다. 또한 이번 시집의 장시 「그
골짜기의 진달래」는 거창양민학살사건을 다룬, 25년간 지속해온 김태수 시학의 빼어난 한 결과물이자 백 년 한국 시문학사의 절창이다.
"산이 아프다. 강이 아프다. 갯벌도 나무도 쑥부쟁이꽃도 아프다. 한반도가 참으로 많이 아프신 것이다. 삼라만상, 상처받아
버림받은 임들이 시(詩)에게 묻는다. 너, 시도 아프냐고. 그러나 이 땅의 오늘의 시는 감미롭다 못해 요염하기까지 하다. 그 많던 민중시
민중시인들이 절필이라도 했단 말인가! 지천명을 넘어서 김태수 시인은 그간 우리가 잊고 살았던 비산비야(非山非野), 가여운 이름들을 아주 낮은
목소리로 호명하고 있다. 지음(知音)이 고마울 뿐이다."__홍일선(시인)
참 오랜 날을 입 속에 묻어 있었다
단지 속 띄워둔
감잎처럼
정처 없이 떠돌던 당신 손자의 생애
내내 풀이슬 속 갓 찾아낸 땡감 떨떠름한 맛으로
독한 소주 속한 맴돌았던가 산다는
건
땡감 맛이라 가르치셨나 보다 감이 삭듯
마음도 삭여가면서
그렇게 살아라 가르치셨나 보다
(중략)
검어진
할머니 뼈에 황급히 수의(壽衣)를 입히면서
할매, 삶은 과연 땡감 맛투성이뿐인가요
수십 번 되물으면서.
__「땡감 맛」
(부분)
김태수
1949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났다. 1978년 시집
『북소리』를 출간하며 문단에 나왔고, 이후 『실천문학』 『창작과비평』 등에 작품을 발표해왔다. 시집 『농아일기』, 『베트남, 내가 두고 온
나라』, 시선집 『겨울 목포행』 등이 있으며, 1992년 『창작과비평』의 '지역정예시인 13인'에 선정되었다. 현재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울산작가회의 회장을 맡고 있으며, 울산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독한 그리움, 그리고 슬픈
현실 ―― 이종찬 기자, 오마이뉴스(2004. 02. 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