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의 문학/시

먹염바다 (2005)

실천문학 2013. 8. 11. 23:48

 

 

 

 

 

 

 

 

 

            

 

 

 

 

 

 

 

 

 

보석처럼 빛나는 삶의 언어

갱물, 아홉무날, 무쉬날, 두무날, 되진바람, 푸신바람, 갯티, 굴구적, 게통배, 조새, 돌중게, 박하지, 선새미, 깐팽이, 팔랭이 등등. 이 시집은 작은 어업사전으로서도 손색이 없을 만큼 바다 그물에서 막 건져올린 싱싱한 우리말이 팔딱팔딱 살아 숨쉬고 있다.

또한 섬사람들의 생활에 아로새긴 무늬로 빛나는 지명들이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 있다. 먹염, 어루뿌리, 어루너머, 호망너머, 긴뿌리, 까마개, 동막, 굴업도, 이작도, 새섬, 할미염뿌리, 당섬, 소야도 등등 섬사람들의 생활에 아로새긴 무늬로 빛나는 지명들이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 있다.

바다에 오면 처음과 만난다

그 길은 춥다

바닷물에 씻긴 따개비와 같이 춥다

패이고 일렁이는 것들
숨죽인 것들
사라지는 것들

우주의 먼 곳에서는 지금 눈이 내리고
내 얼굴은 파리하다

손등에 내리는 눈과 같이
뜨겁게 타다
사라지는 것들을 본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것 사이

여기까지 온 길이
생간처럼 뜨겁다

햇살이 머문 자리
괭이갈매기 한 마리
뜨겁게 눈을 쪼아 먹는다(「먹염바다] 전문)



시인의 출생지인 문갑도 가까이 묵도(墨島)란 이름의 무인도가 있다. 어부들은 바위로 된 작은 섬을 사람이 사는 섬과 구분하여 ‘염’이라 부르는데, 이 시집의 표제로 쓰인 ‘먹염’은 바로 묵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시인은 유년의 기억을 되살려 이 고향 앞바다를, 끝없는 이야기들을 머금은 채 침묵하는 먹염바다를 우리 시의 영토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바다와 함께해온 불운의 가족사

“족보가 없는 우리 집”(「저녁때」), 그리고 “이미 죽은 애비와/섬에 홀로 계신 어머니/인천에서 온 나”(「고향에 와서」). 우리나라 어부의 생애가 그러하듯 시인의 가족사 또한 평범하지 않은 듯하다. “배를 타고 월북을 하였던 둘째 작은아버지는 반공법”에 묶이고, “월남에서 돌아온 매형은/목발을 한 채/이틀 밤을 묵고 섬을 떠났”고, “배를 타지 못한/흐냉이 삼촌은 끝내 죽”어 “쉬쉬하는 소리와 함께 언 땅에 묻”히고, “배를 탈 수 없었던/털보 작은아버지와 넙잭이 작은아버지는/인천으로 아버지는 목포로”(「서쪽」) 흩어져 갔던 것이다.

대고모는 “이작도 굴업도 섬그늘을 떠돌다/불귀의 몸이 되었”(「애저녁」)고, 칠순 어머니는 “애솔시렁 바지랑대 위”에 “시집올 때 입었다던 옥색치마가 아직도 걸리”어 있는 “한 칸짜리 방 안”에서 “시퍼런 손아귀가 시”리도록 “흐릿한 삼십 촉 전구 아래/굴봉을”(「겨울밤」) 까는 고단한 노동을 계속한다.

이웃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조깃배를 타던 쌍둥이 아들이/월경을 하였다는/소문이 들리던 그 겨울 이후” “흰둥이 강아지만 싸리문을 지키고” “밤마다 부엉이가 운다”는 당너머 집에는 “홀로 늙은 할매가 되어/허연 백발을 나부끼며/돌아오지 않는 쌍둥이 아들을 기다”리는 “쌍둥어메”(「당너머 집」)가 있다.


생활 터전으로서의 바다

이세기 시인의 바다는 관념의 바다이기에 앞서 삶의 현장으로서, 이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섬사람들의 소금기 묻은 체취로 가득하다.

저녁이 내리는

빈 바다에

뱃사람 둘이

잡어를 염장한다

한 명은 언청이고

한 명은

누비잠바때기다

둘 다

얼굴이 검다

백중사리 물때가

컴컴이

저녁 바다로

오고 있다(「염장」 전문)



또한 난바다의 칼날 같은 파도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는 이 나라 가난한 어부들의 생애를 노래하며, 언제 어디서 흉보가 당도할지 모르는 불안한 기다림에서 번져나온 비애가 시집 전체를 속 깊이 물들이고 있다.

조금엔 나간다고 하고
그믐엔 들어온다고 했지

애비야
상수리나무 숲 위
만월이 뜰 때
소소한 바람은 애이파리 흔들고

기다린
눈 허옇게 기다린
올 줄 모르는 긴긴 새벽

초사흘 열 여드렛날이라 했나

동지나해 그 갈맷빛 파도
칼날 치듯
칼날 치듯한데

애비야
그믐엔 들어오고
조금엔 나간다고 했지

상수리나무 숲 위
만월은 뜨고(「애비」 전문)



그렇다고 이 시집이 마냥 비애에만 젖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 겨울만큼은 부디 사그라들지 말거라 개오동나무야 하니
그러마 한다

할머니 감자탕집 뒷간 지키는 강아지도 그러마 하고 이마를 스치는 바람도 그러마 한다

꾸벅꾸벅 조는 할매야 미안타 영하까지 내려온 이 한밤 녹아내리는 한밤인데

한 잔 더 묵자 할매야 하니

그러마 한다

흐릿한 유리창 밖 네거리 싸락눈만 내리고(「싸락눈) 」전문)



싸락눈 내리는 겨울밤, 허름한 감자탕집을 배경으로 홀로 술을 마시며 오동도 못 되는 개오동, 뒷간을 지키는 강아지, 그리고 졸음에 겨운 주모 할매 등등, 이 세상 모든 짝퉁이들과 나누는 교감이 한없이 정겹다. 이 시의 따듯함은 이 시집을 전반적으로 지배하는 비애의 다른 표출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비애가 순전히 정서적 상태에 머무른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의 비애에는 강렬한 윤리적 충동이 움직인다. 그리하여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던 오래 묵은 삶의 풍경이 시적 새로움을 획득하는 경탄”(시인 박영근)이 있는 것이다.

이세기

1963년 인천에서 태어나, 1998년 실천문학신인상을 받으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이 아침에 읽는 시_ 이세기 [빈방] ―― -, 동아일보(2006. 03. 16.)

바닷가의 삶과 정서 오롯이



  이세기 시집‘먹염바다’ (실천문학사, 2005.)



부끄러운 말이지만 난 인천이 고향이면서도 바다에 대한 추억과 정서가 별로 없다. 월미도나 송도유원지, 자유공원에서 바라보이는 저 멀리 있는 바다나 수문통 시장 근처 속칭 똥바다가 내 어린 시절 인천 바닷가 추억의 전부다. 그만큼 인천에서 바다를 접하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나온 이세기의 ‘먹염바다’는 인천 앞바다의 갯냄새가 물씬하게 풍기는 시집이다. 한국 정통 서정시의 맥을 이으면서도 그간 우리 시에서 부족했던 바다의 정서와 상상력을 유감없이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것도 그냥 저기 바라다 보이는 낭만의 바다가 아닌 곤궁한 삶의 터전으로서의 바다라는 점에서 뜻 깊다. 이점은 이세기 시집만이 갖고 있는 장점이라 할 터인데 그것은 비단 시인 개인의 장점이 아니라 인천의 지역 문학이 지향해야 할 중요한 상상력의 한축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각별히 기억되어야 한다.

그동안 인천은 바다를 잊고 있었다. 미추홀이래 오늘의 인천에 이르기까지 바다를 빼놓고서는 인천의 역사와 문화를 말할 수 없는 것인데도 그간 우리는 바다를 잊고 살았다. 물론 분단 이후의 한국 현대사가 그렇게 우리를 내몬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세기의 시집에는 그런 아픈 역사와 함께 서해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민중들의 삶과 정서와 언어들이 오롯이 담겨있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바다를 보면
그 아슴하고 빼죽하게
그 무언가가 저려오는 것인데

바다를 보면
가난하고 가난하였던 어메의 어메의 어메가
살 에일 듯
살 에일 듯
되진바람과 같은 그 어떤 것이 어리고
희고 차가운 것이 어리고

달빛마냥
뒤울의 댓이파리마냥
삐죽삐죽 소리내며 울어대는 바지락마냥

푸덕푸덕 일어나는 푸신바람과 같은 소리가
어리고
어리는

바다를 보면
나는 그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 태어난 깐팽이며 짱둥이며 할미염뿌리의
그 작고 보잘것없는 비석도 세우지 못한 봉분 숲을 헤메이다 들어온 갯바람마냥

서 있고
서 있다(‘바다를 보면’ 전문)



‘먹염바다’에는 이렇듯 그동안 우리 삶의 공간이었지만 그동안 우리가 잊고 있던 바닷가 민중들의 삶과 역사가 담겨있다. 그렇다고 시인은 이들을 현재의 삶과 유리된 박제화된 대상으로 그려내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이 시집은 생동감을 잃고 마치 박물관에서 만나는 어구(漁具) 같은 물건처럼 낯선 것이 되어버렸을 터이다. 시인 스스로가 시집 전편에 걸쳐 시적 대상과 긴장을 잃지 않고 있으므로 이 시집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살아 숨쉬는 삶의 한 부분으로 각인되는 것이다. 관심 있는 여러분들의 일독을 권한다.

_이현식(문학평론가·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