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의 문학/시

돼지들에게 (2005) (절판도서)

실천문학 2013. 8. 11. 23:53

 

 

 

 

 

 

 

 

              

 

 

 

 

 

 

 

 

이 시집의 시들을 읽다가 나는 자칫 원고를 떨어트릴 뻔했다.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거짓과 속임수에 대한 가차없는 공격이 나를 전율케 한 것이다. 진실을 추구하는 치열한 정신 없이는 이와 같은 시는 불가능할 것이다. 염세적 세계관의 표출로 보이는 대목도 없지 않지만 이는 오히려 세상에 대한 깊은 사랑의 역설적 표현으로 읽힌다. 자칫 관념적 교훈적으로 될 수도 있는 알레고리적 방법이 시에 활기와 재미를 더해주는 점도 주목을 끈다. 시 한편 한편이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체험된 것이기 때문일 터이다. 남의 눈치 안 보고 할말을 다하는 용기, 이 또한 최영미 시가 가진 큰 미덕이다. 그의 시들을 읽으면서 나는 시종 속이 후련했다는 점도 밝혀두어야 할 것 같다. ―신경림


2005년 위선적인 한국 사회에 던지는 불온한 시들의 잔치!

1990년대를 대표했던 시인 최영미가 2005년 겨울,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두번째 시집 『꿈의 페달을 밟고』 이후 7년 만이다. 거침없이 사랑과 자유를 노래하는 당당한 목소리로 독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아왔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도 신선한 열정으로 가득 찬 시편들을 선보인다.

최영미의 신작 『돼지들에게』에 나타나는 가장 독특한 특징은, 육체와 영혼에 대한 시인 특유의 정열적인 탐구가 풍자의 형식으로 완성되었다는 점이다. 펴내는 시집마다에서 대담하고 거침없는 언어로 우리를 놀라게 했던 그는, 이번 시집에서도 위선적인 한국 사회에 표창을 던지듯 불온한 시들의 잔치를 펼쳐 보인다. 날카로운 풍자와 서정적인 감성, 그리고 세련된 농담으로 다채롭게 변주되는 시들은 한 편의 황홀한 교향악처럼 우리를 매혹시킨다.

일상과 밀착된 살아 있는 비유, 노래처럼 흐르는 자연스런 운율, 섬세하면서도 대담한 언어를 통해 펼쳐지는 최영미의 시들은 또 한 번 우리를 새로운 시의 진경으로 이끌 것이다.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거짓과 속임수에 대한 날카로운 공격

신작 『돼지들에게』는, 크게 나누어보면, 풍자의 형식을 구현하고 있는 ‘돼지들에게’ 연작과 축구에 관한 시편,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시편, 그리고 일상의 절망과 재발견을 담고 있는 서정시편 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시집에서 무엇보다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1부 ‘순진의 시련’에 담긴 ‘돼지들에게’ 연작이다. 인간의 조건에 대한 번뜩이는 통찰을 정직한 언어로 풀어내는 시인이 이 시대의 우화로 선택한 「돼지들에게」를 읽다 보면, 통쾌하기도 하고 한편 뜨끔하기도 한 양가적 감정을 느끼게 된다.

언젠가 몹시 피곤한 오후,/돼지에게 진주를 준 적이 있다.//좋아라 날뛰며 그는 다른 돼지들에게 뛰어가/진주가 내 것이 되었다고 자랑했다./하나 그건 금이 간 진주./그는 모른다./내 서랍 속엔 더 맑고 흠 없는 진주가 잠자고 있으니(「돼지들에게」 부분)

‘돼지’와 ‘여우’, 그리고 ‘진주’로 비유되는 탐욕과 교활, 그리고 숨겨진 순수의 구조는 돼지와 여우, 진주의 러브 스토리로 풍자된다(「비극의 시작」, 「여우와 진주의 러브스토리」). 진주를 탐내는 돼지와 여우의 탐욕스러움과 교활함은 진주를 은근히 유혹하는 대목에서 극에 달한다. 무서울 정도로 솔직하고 당당한 그녀의 풍자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우리 시대의 속물성이 결코 타인의 삶을 겨냥한 비판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이 우화는 나와 그들, 즉 우리 시대의 어긋난 모럴을 구조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된다.

3부 ‘축구장에서 생각한 육체와 정신’에 실린 일련의 시들도 독특하다. 그녀에게 축구는 “누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어느 선수가 심판의 눈을 속였는지,/수천만의 눈이 지켜보는/운동장에서는 거짓이 통하지 않으며/위선은 숨을 구석이 없”(「정의는 축구장에만 있다」)는 신선한 발견이며, 이미 너무 많은 위선과 거짓으로 덧칠된 세상에서 오로지 축구만이 “지구 반대편에 사는 어떤 소년도 총을 내려놓고/휘슬이 울리기를 기다”리는 순결하고 공정한 장이다. 기꺼이 이 시집의 한 부가 바쳐진 ‘축구’란 장르는 어쩌면 관습을 파괴하고 체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그녀의 위험스런 모험과 닮은 듯 보이기도 한다.


피와 땀이 밴 진실한 시

최영미 시인의 시가 읽는 이에게 당혹감을 불러일으키면서 동시에 강렬하게 흡입되는 것은, 그의 시가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일상의 진솔함에서 솟구쳐나온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사랑과 운명, 그리고 근원에 대한 질문은 최영미 시의 근간을 이루며 이 시대의 중요한 화두가 되어왔다.

어느덧 사십대에 접어든 그녀의 이번 시집에서 이 궤적은 어떤 형태로 그려지고 있을까. 지난한 일상은 굳은살처럼 더욱 딱딱해지고 몸의 일부가 되어 배겨오지만 그것을 응시하는 시선 또한 더욱 단련돼 있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솔직한 고백은 다시 한 번 우리에게 강렬한 파문을 일으킨다.

제대로 묻지 않아 비만 오면 파헤쳐지는 과거를,/유해들을 수습해 검은 보자기에 싸서 다시 매장했다./양지 바른 언덕에, 예의를 다해./무덤 위에 고맙게도/파릇파릇 잔디가 돋아/어머니의 눈물을 덮어주었다(「이장(移葬)」 전문)

“한 끼의 밥을 위해 건들건들 건널목을 건너”(「건널목을 건너며」) 가는 사십대의 생활이 엄연한 현실로 남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44년 동안 미역국을 끓여주시는 어머니의 성가신 애정에 콧날이 시큰해지는(「44년 전의 오늘,」) 그런 일상의 힘들이 절망에서 우리를 불러일으키는 힘이 된다고 나직한 목소리로 시인은 이야기한다. 때문에 “배반당하더라도/이 지저분한 일상을 끌고 여행을 계속하련다.(「런던의 실비아 플래스」)고 선언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열려진 창./바람에 날리는 책장, 남겨진 유고를/그녀인 듯 만지던 남자의 건강한 손./생활의 승리를 목격하고 나는 일어났다.//배반당하더라도/이 지저분한 일상을 끌고 여행을 계속하련다. (「런던의 실비아 플래스」 부분)

실비아 플래스의 자살로 자신의 죽음을 대속하고 이제 시인은 지저분한 일상을 끌고 여행을 계속할 것이라 말한다. 일상의 여행이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지만, 삶의 다양한 양식들을 발견해내고 그 속에서 숨쉬는 도덕적 경향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앞으로의 최영미 시가 될 것이라고 예견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최영미 시인에게는 ‘차가우면서 들끓는 시인’, ‘그 무엇이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시인’ 등등 수많은 수식어들이 따라다닌다. “이 시집 『돼지들에게』의 시들을 읽다가 나는 자칫 그 원고를 떨어트릴 뻔했다”는 신경림 시인의 말처럼, 그의 불온하며 강철처럼 단련된 시들이 이번엔 독자들에게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지, 자못 궁금해진다.

최영미_1961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서양사학과와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1992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속초에서」 외 7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꿈의 페달을 밟고』와 산문집 『시대의 우울』 『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 『화가의 우연한 시선』 장편소설 『흉터와 무늬』가 있고, 옮긴 책으로 『화가의 잔인한 손 : 프란시스 베이컨』 『그리스 신화』가 있다. 미국에서 영역시집 『Three Poets of Modern Korea』(Sarabande books, 2002)을 펴내기도 했다.

약점을 보이지 않는 詩… 나는 믿지 않는다 ―― 박해현 기자, 조선일보(2005. 11. 25.)
펜의 전사, 다시 위선을 겨누다 ―― 임정식 기자, 스포츠조선(2005. 11. 29.)
7년 만에 새 시집 낸 최영미 씨 ―― 조성일 기자, 오마이뉴스(2005. 12. 10.)
최영미의 시는 불행하다? ―― 임정훈 기자, 오마이뉴스(2005. 12. 21.)
지식인들의 탐욕과 위선 비판 ―― 정철훈 기자, 국민일보(2005. 11. 27.)
서른잔치 ‘고백’ 벗고 ‘상상력’으로 재무장 ―― 이상주 기자, 경향신문(2005. 11. 25.)

서른잔치 ‘고백’ 벗고 ‘상상력’으로 재무장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1990년대 중반 출판계를 휩쓸었던 시인 최영미 씨(44)가 새 시집 ‘돼지들에게’(실천문학)를 냈다. 두번째 시집 ‘꿈의 페달을 밟고’(98년) 이후 에세이집 두권과 소설 한권을 냈지만 다시 시로 돌아간 것은 7년 만이다. 시집은 ‘돼지들에게’로 시작하는 풍자 연작시와 축구에 관한 시편,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 관련 시, 일상의 절망과 재발견을 담은 서정시편들로 구성돼 있다.
“협소하게 읽지 말아달라.” “시로만 봐달라.”

눈치 빠른 사람들은 알겠지만 ‘돼지’는 남성성, 권위, 탐욕을 상징하고 시는 돼지에 대한 혐오를 드러낸다. 작가는 혹여 특정인, 특정집단에 대한 비판으로 시가 곡해될 것을 우려해 부탁부터 한 것이다.

표제작 ‘돼지에게’는 계속해서 진주를 달라고 외치며 점점 무리가 늘어나는 돼지들의 난폭성과 아무런 방어능력이 없이 돼지의 폭력을 감수하는 약한 진주를 대비시킨다. 이어 ‘돼지의 변신’ ‘비극의 시작’ ‘돼지의 본질’ 등 연작시로 돼지를 요리한다.

작가는 “‘돼지에게 진주를 주지 말라’는 성경구절에 착안해 시를 썼다”면서 “‘돼지들에게’를 완성했을 때 새로운 창작의 세계가 열리는 것을 느끼면서 육체가 내면의 기쁨을 감당하지 못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고백적’ ‘경험적’이라고 알려져 온 시인 최영미가 “상상력으로 경험을 제압해 문학적 허구를 완성하는” 새로운 경지에 올랐다는 것이다.

일부 위험한 시도 보인다. 특정 매체를 겨냥한 것으로 오인될 수 있는 ‘시대의 우울’이 대표적이다.

“그처럼 당연한 일을 하는데/그렇게 많은 말이 필요했던가//박정희가 유신을 거대하게 포장했듯이/우리도 우리의 논리를 과대포장했다/그리고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관념으로 도배된 자기도취와 감상적 애국이/연구실에서 광장으로, 감옥에서 시장으로 나온 흑백논리가/종이에 인쇄되어 팔리는//이것이 진보라면 밑씻개로나 쓰겠다/아니 더러워서!밑씻개로도 쓰지 않겠다.”(‘시대의 우울’ 전문)

작가는 “오해 없길 바란다. 어떠한 의도도 없고 단지 왜곡된 일부 진보세력에 대한 개인적 느낌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꽃이/피는 건 힘들어도/지는 건 잠깐이더군”으로 시작해 “꽃이/지는 건 쉬워도/잊는 건 한참이더군/영영 한참이더군”으로 끝나는 대표작 ‘선운사에서’의 맥을 잇는 시도 보인다.

“옛 사랑을 묻은 곳에 새 사랑을 묻으러 왔네/동백은 없고 노래방과 여관들이 나를 맞네/나이트클럽과 식당 사이를 소독차가 누비고/안개처럼 번지는 하얀 가스…/산의 윤곽이 흐려진다”(‘알겠니?’ 중 ‘4.다시 선운사에서’)

[경향신문] 이상주 기자 sjlee@kyunghyang.co -2005. 11. 25.


“약점을 보이지 않는 詩… 나는 믿지 않는다”

베스트셀러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인 최영미가 7년 만에 펴낸 신작 시집이다. 시집 초반부에서 시인은 ‘돼지에게 진주를 주지 말라’는 성경 말씀을 바탕으로 세상을 돼지와 진주로 나눈다. 최영미의 시세계에서 돼지들은 진주를 탐하고, 순진한 진주는 힘없이 당하지만, 진짜 패자는 돼지들이다.

“언젠가 몸시 피곤한 오후,/ 돼지에게 진주를 준 적이 있다// 좋아라 날뛰며 그는 다른 돼지들에게 뛰어가/ 진주가 내 것이 되었다고 자랑했다./ 허나 그건 금이 간 진주,/ 그는 모른다./ 내 서랍 속엔 더 맑고 흠 없는 진주가 잠자고 있으니”(‘돼지들에게’ 부분) 이 시에서 돼지/진주 이분법은 남성/여성의 은유이고, 시인의 체험을 담은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시인은 시집 출간을 맞아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돼지 중에는 암퇘지도 있고, 진주가 최영미라는 증거도 없다”며 일축했다. “이 시를 통해 나는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는 진주를 유린하는 다수의 돼지들의 탐욕을 비판하고 싶었다”는 것. 그러나 그녀는 “내 문장의 정확함만이 문학외적 모든 풍문으로부터 나를 보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시집에는 돼지 못지 않게 나쁜 ‘늙고 노회한 여우’도 등장한다. “기름기 흐르는 입술로 아름다운 말들로/ 대중을 속이는 당신,/ 박수소리에 도취해, 자신의 위대함에 속아/ 스스로에게도 정직하지 못한 예언자./”(‘하늘에서 내려온 여우’ 부분)라는 시에 대해 그녀는 “여우는 위선적 지식인의 보편적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386 세대인 시인은 “세상을 보수와 진보로 나누어서 보지 않는다”면서도 진보 진영을 향해 도발적인 시 한편을 던졌다. “관념으로 도배된 자기 도취와 감상적 애국이/ 연구실에서 광장으로, 감옥에서 시장으로 나온 흑백논리가/ 종이에 인쇄되어 팔리는// 이것이 진보라면 밑씻개로나 쓰겠다/ 아니 더러워서! 밑씻개로도 쓰지 않겠다.”(‘시대의 우울’ 부분)

최영미는 소문난 축구광이다. 돼지에 대한 야유를 통해 생에 대한 환멸을 드러낸 시인은 축구 경기를 보면서 환희에 가득찬 생을 산다. “우중충한 흑백사진들로 채워진 앨범에 삽입된/ 발랄한 총천연색/ 우울한 하루의 커튼 뒤에 펼쳐지는 생생한 풍경./ 고통을 잠재우는 마약이다.”(‘축구는 내게?’ 전문)

시인은 시집의 마지막 시행을 통해 자신의 시론을 밝혔다. “자신의 약점을 보이지 않는 시를 나는 믿지 않는다.”

[조선일보] 박해현 기자 - 2005-11-25


<인터뷰> 세 번째 시집 낸 최영미 씨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머릿속은 온갖 속된 욕망과 계산들로 복잡하지만/카메라 앞에선 우주의 고뇌를 혼자 짊어진 듯 심각해지는//냄새나는 돼지 중의 돼지를/하늘에서 내려온 선비로 모시며//언제까지나 사람들은 그를 찬미하고 또 찬미하리라./앞으로도 이 나라는 그를 닮은 여우들 차지라는/변치 않을 오랜 역설이……나는 슬프다."('돼지의 변신' 중)

1990년대 최고 베스트셀러 시집으로 꼽히는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인 최영미(44) 씨가 세 번째 시집 '돼지들에게'(실천문학사)를 출간했다. '꿈의 페달을 밟고' 이후 7년만에 내는 신작 시집이다.

책 출간을 계기로 25일 인사동에서 만난 최씨는 "자신을 방어하지 못하는 약한 존재로서 '진주'를 유린하는 '돼지들'의 횡포와 탐욕을 비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집 초반부 연작시에 등장하는 돼지와 여우 등은 우리 사회의 위선적인 지식인들을 가리킨다고 했다.

"언젠가 몹시 피곤한 오후,/돼지들에게 진주를 준 적이 있다"로 시작하는 표제작 '돼지들에게'에 대해 최씨는 "첫 줄을 쓰면서 지금까지 쓴 시와 내용과 형식면에서 다른 새로운 시가 태어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최씨는 처음엔 작중 '돼지'로 특정 인물을 연상하며 쓰기 시작했으나 시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그 인물이 보편적 모델로 바뀌어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긴 여행에서 돌아온/나는 늙고 병들어, 자리에서 일어날 힘도 없는데/그들은 내게 진주를 달라고/마지막으로 제 발 한 번만 달라고……"라는 마지막 구절을 완성했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창조자로서 진정한 기쁨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마치 채플린의 영화 장면처럼 육체가 내면의 기쁨을 감당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전 시들에 대해 고백적이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으나 동의하지는 않아요. 다만 이전에는 표현의 정확성에 대한 강박관념이 강했어요. 이번 시집의 1부에 해당하는 '돼지' 연작시는 그런 강박관념에서 해방됐다는 점에서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씨는 구체적 현실에서 뽑아낸 모티프를 스토리가 있는 풍자시로 만들자는 '의지'를 갖고 이번 연작시를 썼다고 했다. 이처럼 어떤 의도를 갖고 의식적으로 시를 써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시를 완성한 뒤 상상력과 경험을 절묘하게 결합한 창조자의 기쁨을 맛보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최씨는 "지금껏 겪어온 모든 고통을 보상 받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고, "이로써 새로운 시인과 인간이 됐다"고 자평했다.

"저는 현실과 동떨어진 언어의 구조로서 허구를 '거짓말'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제게 없던 그 '거짓말'을 이번 시집에서 할 수 있게 됐어요. '상상력'이 '경험'을 제압하게 된 거죠."

"문학은 진실을 깨닫게 하는 거짓"이라고 정의한 최씨는 "시에서 재미를 추구하지 않는다. 문학의 힘을 여전히 믿는다. 문학을 통해 잊고 지나친 소중한 것, 사소한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10년전 처음 썼다가 최근 개작했다는 '시대의 우울' 등 우리 사회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는 문제작이 이번 시집에 적지 않다.

"박정희가 유신을 거대하게 포장했듯이/우리도 우리의 논리를 과대포장했다/그리고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며 운동권의 반성을 담은 '시대의 우울'은 "관념으로 도배된 자기도취와 감상적 애국이/연구실에서 광장으로, 감옥에서 시장으로 나온 흑백논리가/종이에 인쇄되어 팔리는//이것이 진보라면 밑씻개로나 쓰겠다/아니 더러워서! 밑씻개로도 쓰지 않겠다"는 준열한 비판으로 나아간다.

최씨는 영문시 'Korean Air'를 통해 여자승무원의 관능을 내세운 어느 항공사의 영문 홍보물에 일침을 가하는가 하면, "친구를 감옥에 보낼지도 모르는"('대학 시절 사진을 달라는 기자에게' 중) 두려움 때문에 사진을 찍지 않았던 5-6공 시절을 용서하지 못하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잔치가 끝난 뒤에도 설거지 중인/내게 죄가있다면,/이 세상을 사랑한 죄밖에……//한 번도 제대로 저지르지 못했으면서/평생을 속죄하며 살았다.//비틀거리며 가는/세기말, 제기랄이여."('세기말, 제기랄' 전문)에는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이후 겪었던 마음고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최씨는 첫 시집의 제목으로 사용한 '잔치'가 1980년대 '운동'의 상징으로 해석되면서 적지 않은 오해를 받았다. 누군가는 "석사학위를 가진 매춘부의 언어"라고 인신공격적인 평을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최씨는 "일개 시인이 '잔치가 끝났다'고 해서 그 잔치가 진짜 끝난 것이라면 그들이 오해하는 '잔치'는 얼마나 허약한가"라고 반문했다.

이번 시집에 대해 "사회의 위선에 대해 작가로서 발언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문학을 넘어 사회적 발언을 하려는 의도는 없다"고 못박았다. 작중 돼지나 여우는 특정인을 겨냥한 것이 아니므로 오직 시작품으로만 읽어달라고 주문했다.

"자신의 약점을 보이지 않는 시를 나는 믿지 않는다"('눈 감고 헤엄치기' 중)는 시적 발언은 문학을 대하는 최근 최씨의 태도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최씨는 "완벽한 척 하는 인간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인간이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최씨는 사회의 다수로부터 소외받는 한이 있더라도 어떤 권력과도 타협하지 않고 자유인의 길을 가고자 한다. 시집 '돼지들에게'에는 이 같은 정신이 펄펄 살아 있다.

신경림 시인은 "진실을 추구하는 치열한 정신 없이는 이와 같은 시는 불가능 할 것"이라며 "남의 눈치 안 보고 할말을 다하는 용기, 이 또한 최영미 시가 가진 큰 미덕"이라고 추천사에 썼다.

-[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2005. 11. 25.


우리 사회 위선 향한 냉소와 풍자

최영미 시인이 세 번째 시집 ‘돼지들에게’(실천문학사)를 펴냈다. ‘꿈의 페달을 밟고’ 이후 7년 만에 펴낸 시집이다.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에서 1980년대 변혁운동 과정을 살아온 사람의 아픈 소회를 담아냈던 최씨는 이번 시집에서는 이즈음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가식과 위선을 과감하게 드러내면서 상처에서 빚어진 아포리즘을 주로 담아내고 있다.
“언젠가 몹시 피곤한 오후,/ 돼지에게 진주를 준 적이 있다.// 좋아라 날뛰며 그는 다른 돼지들에게 뛰어가/ 진주가 내 것이 되었다고 자랑했다./ 하나 그건 금이 간 진주./ 그는 모른다./ 내 서랍 속엔 더 맑고 흠 없는 진주가 잠자고 있으니”(‘돼지들에게’ 일부)

진주를 얻어간 ‘돼지’ 소문에 다른 돼지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그 ‘살찐 돼지들’은 “늑대와 여우를 데리고 사나운 짐승의 무리들이 담을 넘어/ 마당의 꽃밭을 짓밟고 화분을 엎고,/ 내가 아끼는 봉선화의 여린 가지를 꺾었다./ 어떤 놈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주인 없는 꽃밭에서 춤추고 노래했다.” 시인은 진술한다. “어린 늑대들은 잔인했고,/ 세상사에 통달한 늙은 여우들은 교활했다”고.

시인이 말하는 돼지들이란 한국 사회에서 어떤 부류일까. 굳이 ‘한국 사회’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기 마련인,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을 속이고 자신까지 기만하는 비루한 족속들에 대한 신랄한 야유일 것이다.

돼지들이 사랑이라는 가면만 쓰지는 않는다. ‘잔치가 끝난 뒤’의 한국 사회 권력자들 혹은 진보라는 이름의 휘장을 두른 이들의 위선과 착종도 그들의 이미지를 돼지 쪽으로 몰아간다.

“그처럼 당연한 일을 하는데/ 그렇게 많은 말들이 필요했던가// 박정희가 유신을 거대하게 포장했듯이/ 우리도 우리의 논리를 과대포장했다/ 그리고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관념으로 도배된 자기도취와 감상적 애국이/ 연구실에서 광장으로, 감옥에서 시장으로 나온 흑백논리가/ 종이에 인쇄되어 팔리는// 이것이 진보라면 밑씻개로나 쓰겠다/ 아니 더러워서! 밑씻개로도 쓰지 않겠다”(‘시대의 우울’ 전문)

-[세계일보] 조용호 기자 2005-11-25 jhoy@segye.com


시인 최영미 ‘돼지들에게’…“지식인들의 탐욕과 위선 비판”

인간은 시련과 사유에 의해 단련된다는 점에서 뭇 짐승들과 구별된다. 시련이 먼저라면 사유는 그 시련을 극복하는 방식에 해당하는데,사유가 끝난 다음에야 언어가 풀려나온다. 시인 최영미(44)씨가 7년만에 낸 세번째 시집 ‘돼지들에게’(실천문학사)는 어떤 시련에 대한 그만의 사유 방식을 보여준다. 시란 시적 자아와 시인이 일치될 수밖에 없는 장르라는 점에서 이번 시집을 통해 드러난 시련은 최영미라는 시인과 직접적인 관계망에 놓인다. 대체 무슨 시련일까.

“언젠가 몹시 피곤한 오후,/돼지에게 진주를 준 적이 있다.//좋아라 날뛰며 그는 다른 돼지들에게 뛰어가/진주가 내 것이 되었다고 자랑했다./허나 그건 금이 간 진주./그는 모른다./내 서랍 속엔 더 맑고 흠 없는 진주가 잠자고 있으니.”(‘돼지들에게’ 도입부)

한 돼지에게 진주를 주자 이번에는 더 많은 돼지들이 “진주를 달라”고 꿀꿀 댄다. 아니,돼지들은 교활한 늙은 여우까지 데리고 와서 수작을 부린다. “그날 이후 열 마리의 배고픈 돼지들이 달려들어/내게 진주를 달라고 외쳐댔다(중략)/나는 또 마지못해,지겨워서,/그들의 고함소리에 이웃의 잠이 깰까 두려워/어느 낯선 돼지에게 진주를 주었다”(‘돼지들에게’ 전개부)

여우에 관한 독립된 시도 있다. “세계를 해석하는 입들은 지치지도 않네./마이크 앞에서 짖어대는/늙고 노회한 여우와/그를 따르는 어리고 단순한 개들.//善을 말하는 입은 惡을 말하는 입보다 삐뚤어지기 쉬우니.//(중략)계산된 ‘따뜻’에 농락당했던 바보가 탄식한다./늦었지만,순진을 벗게 해줘서 고마워./선생님.”(‘하늘에서 내려온 여우’ 일부)

진주는 왜 돼지와 여우에게 그 자신을 내주었을까. 진주의 비극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돼지는 누구이고 여우는 누구인가. 최영미는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말을 종합해 보면 돼지도,여우도 다 실체가 있는 사람들인 게 분명했다. “‘돼지’ 연작시를 쓸 때는 아무개라는 대상이 있었지요. 그러나 시상을 정리하면서 아무개가 보편적으로 변했어요. 예전의 시들이 경험에 의존했다면 지금은 상상과 경험이 어우러져 시를 만들어내지요. 상상력에 의해 경험을 제압하는 것에 희열을 느꼈어요. 시를 완성했을 때 내 육체가 내면의 기쁨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였어요.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지요. ”

최씨는 “자신을 방어하지 못하는 약한 존재로서 ‘진주’를 유린하는 ‘돼지들’의 횡포와 탐욕을 비판하고 싶었다”며 “돼지와 여우 등은 우리 사회의 위선적인 지식인들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문은 남는다. 돼지와 여우들이 꿀꿀거리며 진주를 달라고 졸라댄다고해서 내어줄 것은 또 무엇인가. 달라고 졸라댄 쪽이나 조른다고 내어준 쪽이나 어떤 정황에서는 한통속이자 공동정범일진대,돼지에게 진주를 내어준 시적 자아의 순진성은 대체 누가 담보하는 것일까.

“시집을 내기 전에 어떤 분에게 원고를 보여줬는데 너무 센세이셔널한 내용이라면서 세상이 시끄러워질 수도 있는데,준비를 단단히 하라고 조언하더군요. 그러나 저는 제 시의 뛰어남만이 문학 외적인 풍문을 잠재울 것이라고 믿습니다. 시는 시로만 읽어주세요. 시속에 등장하는 진주가 최영미라는 증거는 없잖아요.”

-국민일보 정철훈 전문기자 chjung@kmib.co.kr 2005. 11. 28


최영미 시인 7년만에 신작 ‘돼지들에게’ 펴내

‘마지막 베스트셀러 한국 시집’으로 꼽히는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인 최영미(44·사진) 씨가 세 번째 시집 ‘돼지들에게’를 실천문학사에서 펴냈다. ‘꿈의 페달을 밟고’ 이후 7년 만에 낸 시집이다.


이 시집 1부에는 ‘돼지와 진주’ 연작들이 나오는데 최 씨는 “거기 나오는 돼지 여우 늑대들은 우리 사회의 위선적인 지식인들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그는 “몇 년 전 대학교에 시 창작 강의를 나갔다가 학생들의 해맑은 얼굴 속에 든 단순함이 새삼스레 눈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단순한 대중에게 영합해서 부귀를 얻으려는 사이비 지식인들에 대해 제가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분노랄까, 경멸감 같은 게 있다는 것도 알게 됐지요. 그것들이 갑자기 시(詩)로 바뀌는 순간들이 찾아왔어요.”


‘박수가 터질 시간을 미리 연구하는/머릿속은 온갖 속된 욕망과 계산들로 복잡하지만/카메라 앞에선 우주의 고뇌를 혼자 짊어진 듯 심각해지는//냄새나는 돼지 중의 돼지를/하늘에서 내려온 선비로 모시며//언제까지나 사람들은 그를 찬미하고 또 찬미하리라./앞으로도 이 나라는 그를 닮은 여우들 차지라는/변치 않을 오랜 역설이……나는 슬프다.’(‘돼지의 변신’ 중에서)


축구광인 최 씨는 이 시집 3부에 축구에 관한 시 9편을 싣고 있다. ‘정의는 축구장에만 있다’라는 시에는 “최고의 선수는 반칙을 하지 않고/반칙도 게임의 일부임을 그대들은 보여주었지”라는 대목이 있다.


최 씨는 “축구왕 펠레가 평생 옐로카드를 단 한번 받았을 뿐이라는 걸 알고 있냐”고 묻더니 “세상에는 펠레 아닌 사람이 거의 전부다. 전에는 소소하게 반칙하는 사람들을 싫어했지만, 이젠 받아들이고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는 “축구에서 인생을 배운다”며 “‘공은 기다리는 곳에서 오지 않는다’라는 시가 맘에 든다”고 말했다. ‘공은 그가 기다리는 곳에서 오지 않았다./그가 보지 못한 뒤에서 날아온 공이 그를 쓰러뜨렸고/내가 기대하지 않던 친구의 도움이 나를 살렸다.//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공이 오고 가며 게임이 완성된다.’


-동아일보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2005. 11. 29.



새 시집 '돼지들에게' 낸 최영미 씨

최영미(44) 씨의 신작 시집 '돼지들에게'(실천문학)는 솔직히 당혹스럽다. 가위 '문제작' 수준이다. 이미 문단에선 이번 시집을 놓고 웅성대기 시작했다. 시인은 "문학 외적으로 읽지 말아달라"고 수차례 당부했다. 그러나 문단은 벌써 시끄럽다.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나왔던 십여 년 전에도 시인은 논쟁적이었다. 시집은 베스트셀러에 올랐지만 시인은 그 뒤로 논란의 복판에 있었다. 첫 소설 '흉터와 무늬'의 '자전 소설'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었던 올 봄에도 시인은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왜 손가락을 보느냐"고 반박했다. 여하튼 세상 혹은 누군가를 향한 공격적이고 도발적인 그만의 화법은 숱한 소문을 낳고 또 낳았다.

이번 시집은 아마도 두 가지 독법이 있을 듯하다. 하나는 시인의 말처럼 한국 사회의 위선과 탐욕, 일부 진보세력의 횡포와 탐욕을 겨냥한 비판으로 읽는 것이다. '돼지에게 진주를 주지 말라'는 성경 구절에서 비롯했다는 '돼지 연작' 여섯 수를 비롯한 여러 시편은 시인의 말마따나 지식인의 이중성에 대한 가차없는 공격을 담고 있다. 충분히 이렇게 읽을 수 있다.

또 다른 독법은 문단이 술렁이는 까닭과 관계 있다. 시집을 읽은 문단의 일부는 문단 안팎의 인물 몇몇을 떠올린다. 특정인을 염두에 두고 시를 썼다는 해석이다. 일테면 "언젠가 몹시 피곤한 오후,/돼지에게 진주를 준 적이 있다.//좋아라 날뛰며 그는 다른 돼지들에게 뛰어가/진주가 내 것이 되었다고 자랑했다"('돼지들에게' 부분)에서나, "그는 원래 돼지였다/감방에서 한 이십 년 썩은 뒤에/그는 여우가 되었다//그는 작고 소심한 돼지였는데/어느 화창한 봄날, 감옥을 나온 뒤/…/하루가 다르게 키가 커졌다"('돼지의 변신' 부분) 등의 시편에서 시인의 체험적 육성은 또렷하다. 하여 시대적 감수성에서 비롯된 야유와 풍자로 여기기에는 과도하게 사적(私的)이라고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단호했다. "특정인이 연상된다"는 질문에 그는 "돼지 중에는 암퇘지도 있고 진주가 최영미라는 증거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처음엔 아무개라는 대상을 염두에 뒀다. 그러나 시상을 정리하면서 아무개는 보편적으로 변했다. 내 문장의 정확함만이 문학 외적인 풍문을 잠재울 것"이라고 했다.

다시 말하지만 시인은 "시로만 읽어 달라"고 반복해 말했다. 그러나 시인의 의지와 독자의 판단은 다를 수도 있는 거다. 신경림 시인이 추천사에 쓴 것처럼 "최영미 시가 가진 큰 미덕인 남의 눈치 안 보고 할 말을 다하는 용기"만이 읽히길 바란다.


-중앙일보 손민호 기자 2005. 11. 29.


펜의 전사 다시 위선을 겨누다


삐뚤어진 지식인 돼지로 풍자
거짓된 이념-성상품화도 일침


‘그는 원래 평범한 돼지였다/감방에서 한 이십 년 썩은 뒤에/그는 여우가 되었다//(중략)//그는 자신이 실제보다 돋보이는 각도를 알고/(중략)/머릿속은 온갖 속된 욕망과 계산들로 복잡하지만/카메라 앞에선 우주의 고뇌를 혼자 짊어진 듯 심각해지는//냄새나는 돼지 중의 돼지를/하늘에서 내려온 선비로 모시며//언제까지나 사람들은 그를 찬미하고 또 찬미하리라//(중략)...나는 슬프다.’[돼지의 변신] 중에서

90년대 최고 베스트셀러 시집 중 하나인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인 최영미 씨(44)가 세 번째 시집을 냈다. ‘꿈의 페달을 밟고’ 이후 7년 만이다. 시집 제목이 예사롭지 않다. ‘돼지들에게’(실천문학사)라는 도발적인 제목이다.

수록된 시들은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위선과 거짓과 속임수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시집 1부 ‘순진의 시련’이 가장 눈길을 끈다. ‘돼지들’ 연작시에는 탐욕스러운 돼지, 늙고 노회한 여우, 잔인한 늑대가 수시로 등장한다. 돼지, 늑대, 여우는 우리 사회의 위선적인 지식인들을 상징한다.
‘돼지’는 처음엔 특정인물이었지만, 쓰는 과정에서 보편적 모델로 바뀌었다. 그렇게 해서 풍자시가 되었다.

정치적 이념적인 발언도 수두룩하다. “박정희가 유신을 거대하게 포장했듯이/우리도 우리의 논리를 과대포장했다/그리고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중략)/이것이 진보라면 밑씻갤나 쓰겠다/아니 더러워서! 밑씻개로도 쓰지 않겠다”([시대의 우울]) 같은 고백이 그렇다. 운동권에 대한 비판과 감성을 담고 있다. 민감한 발언들, 그러나 최씨는 “문학을 넘어 사회적 발언을 하려는 의도는 없다”고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돼지나 여우가 특정인을 겨냥한 것이 아니므로, 오직 시로 읽어달라”고 주문한다.

여성을 성상품화하는 세태도 그녀의 그물에 걸렸다. 영어로 쓴 시 [Korean Air]이다. 국내 항공사의 광고를 보고 ‘목까지 올라간 정장 차림의 제복이 어색하게 요염한 인형들은 포르노의 본질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고 일침을 가한다.

‘돼지들의 세계’의 반대편에 축구장이 있다. 소문난 축구광답게 축구에서 정의를 발견한다.
‘그들의 경기는 유리처럼 투명하다/.../운동장에서는 거짓이 통하지 않으며/위선은 숨을 구석이 없다.고 말한다. ‘같은 골은 하나도 없다/.../진짜 작가라면 같은 문장을 두 번 쓰지 않는다’는 다짐도 눈에 띈다.
신경림 시인은 추천사에서 ‘남의 눈치 안 보고 할말을 하는 용기, 이 또한 최영미 시가 가진 큰 미덕’이라고 평가했다.

-[스포츠 조선] 임정식 기자 2005. 1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