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에 찍힌 발자국 (2006)
깊이 있는 사색과 예민한 감각이 어우러진 시 세계를 펼쳐온 김충규 시인의 세번째 시집 『물 위에 찍힌 발자국』이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첫 시집 『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의 ‘무덤’과 ‘사막’, 두번째 시집 『그녀가 내 멍을 핥을 때』의 ‘멍’과
‘피’에서 드러나듯 ‘죽음’을 향해 있던 그의 시적 사유는 이번 시집에 이르러 생의 ‘고통’과 ‘상처’를 껴안으며 긍정의 ‘삶’에 다다르는
여정을 보여준다.
상처와 고통을 감싸는 연민의
눈
시집 『물 위에 찍힌 발자국』에는 죽음과 초월을 향해 열린 ‘상처의 세계’와 삶을 향한 ‘치유의 세계’가
교직되어 있다. 시인은 화해할 수 없는 이 두 세계를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상처의 세계에서 치유의 세계로, 죽음의 세계에서 삶의 세계로, ‘나’의
세계에서 ‘타자’의 세계로 나아간다.
저 일몰이란 것, 밤이 되기 전에 보여주는
하늘의
통증 빛깔이다
통증을 참으며 밤의 캄캄함을 견디는 하늘의
살갗에 돋아나는 별은 통증의 열매이다
지상에서 통증 가진 사람만이 피멍
들도록 입술 깨물며
별을 더듬으며 시간의 잔혹을 견뎌낸다
자궁을 막 빠져나온 신생아는
그 어미의 통증 덩어리인
것,
신생아가 태어나자마자 우는 것도
이내 눈 뜨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나무에 열린 열매를 쳐다보며
입 속 가득
달콤함의 침이 고인 사람아,
그 열매는 나무의 통증인 것
통증으로 쑤시는 생애를 살아온 또 다른 사람에게
그 열매는 피가
굳어버린 멍으로 보인다(「통증」 전문)
시인은 새로운 눈(감각)으로 고통과 상처의 ‘흔적’을 읽는다. 현상(표면)을
바라보는 광학적 눈이 아니라, “통증의 열매”에 각인된 “시간의 잔혹”을 읽어내듯, 표면을 투시하는 ‘투명한 눈’이다. 시인은 “헛것에 집착하는
자는/죽은 저수지를 보면서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그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는다/믿어버린다, 치명적이다”(「환자여 환자여」)처럼
가시성의 세계만을 현실로 인정하는 병든 시선을 경계하며, “노출된 반쪽 눈동자의 망막에 맺히는 형상과/노출되지 않은 반쪽 눈동자에 맺히는/우리
심연의 형상이 다정하게 만날 때/그때 우리의 눈동자 전체는 가장 투명해진다”(「눈동자」)고 말한다.
존재에 대한 애정, 삶에 대한 긍정
시인의 통증(상처)은 “메워버린
우물들이 땅속에서 울렁울렁 우는 소리”(「밤이라는 것」)가 흘러나오듯, “염을 해놓은 듯 고요하던 강물이 파닥거”(「물속」)리듯, 울음(소리)과
몸짓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시인은 “내 속의 울컥,을 꺼내 수장하려고 강으로”(「울컥,」) 향하고, “고요를
탐하려고 저수지를 찾”(「물짐승」)는다. “격렬함이 없는 것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환자여 환자여」). “흐느낌이 많은 세월을 버텨오”면서
“골방에 처박혀 나만 죽자사자 파먹었”던 시인은 “흐느끼지 않으려고/울컥, 지랄 같네!/욕을 뱉”(「흐느낌」)고, “나의 내장 속에는 석유가
가득하네/우물처럼 마를 날 없다네” 노래하면서 “세상의 그을음을 볼 때마다 더 격렬하게” “활활 타는 눈으로”(「신열」) 세상을
바라본다.
고요한 물 위에 발자국이 찍혀 일렁거린다
새가 날지 않고 저 저수지의 수면을
밟고 간 흔적,
그 새는 수면을 더듬으며 허기 달랠 먹이를 구했을 것
그 사이에 사람 발자국 찍혀 있다
간밤에 누가 저 수면에서
서성거렸다는 증거,
그 발자국 미세한 빛을 품고 있는 걸 보니
세상에 대해 그래도 미련이 남은 채
물속으로 사라진 사람의 것인
듯
저수지가 거센 물살을 일으키지 않은 건
다 저렇게 제 위를 건너가거나 제 속으로 들어온 것들을
애틋하게 보듬고 있는 까닭인
거지, 중얼거리며
나도 발자국 찍어보려는 순간
물 위에 찍혔던 발자국들 이내 사라지고
내 앞에 보이는 건
거대한 아가리를
벌린 한 마리 검은 짐승이었다(「물 위에 찍힌 발자국」)
시인은 이제 “세상 밖이 아닌/이 세상 안에서의 소란하고
유한한 삶을 긍정한다/함부로 꾹 눌러 죽였던 하루살이의 삶을/치열하게 존중하기로 한다”(「내 영혼을 향해 공포탄을 쏜다」)고 선언한다.
‘지금-이곳’의 긍정, 이것이 김충규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 보여주는 새로움이랄 수 있다. 지금-이곳의 삶에 대한 긍정이 당장 죽음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어디로 갈 것인지는 나도 모른다”는 ‘시인의 말’은 이러한 불투명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삶에 대한 긍정은 “뜨거운
발이 뭍의 끝에서 멈추지 않고/바다 속으로 이르고자 하는 것을 간신히 제지했다”(「서해였다」)에서 확인되듯이 죽음의 세계로 향하는 시인의
발걸음을 되돌려놓는다.
김충규 시인은 현실과 비현실(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삶과 죽음의 동시성을 갈파해낸다. 그의 시는 생의
아픔과 상처를 온몸으로 통과해온 신열의 기록이라 하겠다. 성숙하고 치열한 자기 성찰에 기대어 “가슴 밑바닥에서 끌어올린 떨림, 그 서정의 촉수가
소란스런 풍경을 깊고 그윽하게 물들”이는 그의 시는 “정신의 배를 불리고 생각을 살찌우고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게”(뒤표지글, 배한봉 시인)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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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규 김충규 시인은 1965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으며,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그녀가 내 멍을 핥을 때』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