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의 문학/시

이발소 그림처럼 (2007)

실천문학 2013. 8. 12. 00:04

 

 

 

 

 

 

 

 

 

              

 

 

 

 

 

 

 

 

 

 

 

조정 시인의 시를 읽으면 고요한 산사의 단청이 먼저 떠오른다. 어떤 때는 맑은 날 화엄사 대웅전의 처마 단청이 떠오를 때도 있고, 눈 내린 날 운주사 범종각의 단청이 떠오를 때도 있다. 그의 시는 겉으로는 단청처럼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속으로는 화려한 만큼 숙연하고 아름다운 만큼 고통스럽다. 그래서 그의 시는 따뜻한 것 같으면서도 약간 차갑고 냉소적이다. 우리 삶의 비극의 편린들을 껴안고 한 발 비켜선 듯한 시적 화자의 해학적 자세가 벼랑 끝에 선 듯 위태위태해 보이지만 결국은 돌아와 비극 속에 정좌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시는 읽을 때는 아프지 않으나 몇 날 며칠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프다. 「옹관에 누워」, 「창밖에 검은 비닐봉지가 날아갔다」 등을 아픈 줄 모르고 읽었다가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스며드는 아픔 때문에 잠 못 이룬 적이 있었다. 아, 사람들이 평생을 걸어가 바라보는 저 산사의 단청을 누가 화려하다고만 하랴. _정호승(시인)



세상의 소리를 듣는 귀

조정의 시는 ‘귀’의 울음에서 비롯된다. 시인은 사방에 있는 것들의 울음과 사연을 듣는 ‘귀’를 가지고 있다. “물낯을 치”는 “산발한 버들가지”의 소리에 잠을 깨고(「버들 귀」), “이승에 귀를 기울”이며 “분화구를 채운” 억새에서 “죽은 자들”의 부름을 듣는다(「용눈이오름」). 잠속에서 “숲 속 깊은 데 누웠던/아이가 땅을 열고 나오는 소리”를 감지하는가 하면(「알을 배는 소리들」), “지나가던 혼백이 내 베개 베는 소리”(「불면」)를 들으며 불면의 날을 보내기도 한다.

님이여 건너지 마라//시끄러운 꿈 한 켤레 건지며/밤새/신기료장수처럼 우는/귀//강은/귓속으로 흘러든다//흰 머리카락 오천 丈 엉킨/목젖이 아,/흐, 백 촉 더 붓도록 부르지 못해//산발한 버들가지 들어 물낯을 친다/오라/오라 (「버들 귀」 전문)

떠난 임을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부르다가, 이제 가지로 물을 치며 통곡하는 소리가 잠든 시인의 꿈을 어수선하게 하고, 설핏 든 잠을 깨운다. “시끄러운 꿈 한 켤레 건지며/밤새”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시인의 ‘귀’는 강물에 쓸리는 버드나무의 기막힌 사연을 듣는다.

그릇인 나를 위해 음식을 만드는 여자가 없어서/나는 그릇이 아니었다//젖은 가슴을 불 속에 놓고 아이를 받아 안은/나는 어미였을까//어린 새는 죽어서도 내 그물을 끊으며 날아갔다/애끓고 소란하여/천 년이 하루 같았다/머리맡에 풀이 욱거나 봄이 보습 날을 물고 지나갔다 (「애기 옹관」 부분)

숨어 있는 소리들을 포착해내는 시인의 귀는 더욱 예민해져서 옹관의 이야기까지 전해 듣는다. 죽은 아이를 받아 안은 기억을 일깨우며, 어미가 아니지만 어미의 고통을 고스란히 품은 그릇. 옹관은 “옹기장이가 나를 반죽하여 다시 무엇을 만들 수 없”을 만큼 깊은 상처를 마음에 새긴다.
조정 시의 대상들은 짧지 않은 세월을 응축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시인은 사물들을 호명하며 그것들의 지나간 시간까지를 건져 올린다. 관찰과 사유의 시간이 긴 만큼, 대상에 대한 곡진한 배려와 공감에서 우러나온 시들은 정밀하고 아름답다.




바다, 풍경, 그리고 사람들

「바다가 나를 구겨서 쥔다」, 「채석강」, 「겨울 모슬포에 머물다」, 「매월리」, 「쇠소깍」 등 여행과 풍경을 소재로 한 조정 시인의 시들은 주체의 감정을 배제하고 상황만을 건조하게 지시하는 이미지즘적인 시들과는 다르다. 정적이고 고정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을 애써 피해간다. 그림 같은 이미지로써 시각에 호소하기보다는 살아 움직이는 풍경(생활) 속에 뛰어들어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시인은 자신의 감정을 객관적인 상관물에 기대어 표현함으로써 감정의 과잉 분출을 절제하며 시가 건조한 이미지들의 나열로 떨어지는 것을 방지한다.

낚시 몇 물고 있는 바다와 헤어져 돌아설 때/소처럼 움찔/검은 바위가 왼쪽 운동화를 벗기고/오른 발은 바위틈에 빠져 깊고 손에 든 핸드폰은 떨어져 턱을 찧었다/얽은 바위가 한 입 깨물다 놓아준 살에 피가 천천히 배어나왔다/너도 속 시원하냐/운동화 한 짝을 들고 걸었다/(중략)/저녁에 들었다/내가 한쪽 신 벗고 돌아올 때 해안 절벽에서 몸을 날려 죽는 자가 있었다/한 몸 받아 들고/바다도 꽤 심정이 어지러운지/내일은 관처럼 깊은 안색을 보러 가기로 했다/마주 보며 남몰래 웃어도 그나 나나/뒤꿈치가 좀 아플 것이다 (「뒤꿈치가 깨진」 부분)

“사람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기 위해 상처가 많은”(「원사」) 시인은 또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일상 속으로 들어가 여성들의 고단한 삶과 마주친다. “이혼하는 날 아침에 쓰러져버린” 남편의 병수발을 들어야 하는 여자(「견인 지역」) 혹은 “오독오독 비린내가 나도록/손톱을 깨물”(「배롱꽃」)며 “잘못 접어든 길을 끌고”(「붉은 골목」) 몸 팔러 나온 아가씨들을 보며 “간과 쓸개와 가래가 잡히기 시작한 허파”가 떼어져나가는 고통을 느낀다.

길을 잘못 들기는 흔한 일이어서/별수 없이 다음 골목으로 꺾어들어도 길은 이어지기 마련인데/그 골목에서/늙은 개가 내 차의 브레이크를 밟은 건 아니었다/번호 붙은 유리문들이/홍등 아래 딸 하나씩 담고 사열 중이었다/(중략)/와이드 판탈롱 밑 이십 센티 통굽 샌들에 저마다 잘못 접어든 길을 끌고/딸들이 흔들흔들 걸어 나와/내 간과 쓸개와 가래가 잡히기 시작한 허파/뚝뚝 떼어 먹었다/기도한 지 오래되어 약도 되지 않는 나는 미안할 뿐이었다 (「붉은 골목」 부분)

세상의 소리들을 ‘귀’로 읽어내며 대상의 고통을 ‘몸’으로 옮겨 받는 조정 시인의 시는 현실과 밀착되어 있다. 이웃들의 삶을 소재로 삼는 것은 대상을 가장 적극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일 터, 그것은 조정 시인의 시가 나아갈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조정 시인은 1956년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200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귀로 쓰는 시인 조 정 첫 시집 '이발소 그림처럼' ―― 박선영 기자, 한국일보(2007. 02.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