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 독립 투쟁을 이끈 사상가이자 혁명가 프란츠 파농의 평전.
프랑스에서 태어난 흑인이었고 정신과 의사였으며, 작가이자 알제리 민족해방운동에서 가장 선봉에 선 투사 파농의 생애가 치열하게 그려졌다. 파농의 정치적 동지이며, 역시 정신과 의사였던 알리스 셰르키 여사가 바로 옆에서 바라본 파농을 기록한 이 책은, 파농의 저작들을 꼼꼼하게 분석해서 파농 사상의 개요를 제시하고 파농의 시대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당시의 알제리 상황을 소상하게 서술했다.
이제 파농에 대한 오해를 버려라
프란츠 파농이 우리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되었다. 서른여섯 해밖에 안 되는 짧은 생애 동안 마르티니크 섬에서 프랑스로, 프랑스에서 알제리로, 알제리에서 프랑스를 거쳐 다시 튀니지로, 튀니지에서 아프리카 전역으로 옮겨다니며, 정신과 의사, 작가, 알제리 민족해방운동의 투사, 알제리 임시정부를 대표하는 아프리카 순회대사로 몇 겹의 삶을 살았던 프란츠 파농. 하지만 그에 관한 많은 책들에서 파농의 참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다. 과장 또는 축소가 그의 모습을 곡해시켰기 때문이다. 사실 파농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에 선 사람은 물론이고 호의적인 입장에 섰던 사람들도 편협한 이해와 왜곡된 해석으로 파농을 불운한 사상가로 만들었다. 알리스 셰르키에 의해 씌어진 이 책은 비로소 파농의 육체와 정신을 온전하게 복원한다.
파농의 ‘검은 피부’를 바라보는 ‘하얀 가면’
그의 조국 프랑스에서도 파농은 언급하기 거북한 인물이다. 우파 쪽에서 보면 모국 프랑스를 배반하고 식민지 알제리 민중의 편에서 싸운 반역자이고, 좌파 쪽에서 보면 유럽인 전체를 식민주의자로 매도하고 폭력을 옹호했으며 농민 대중을 지나치게 중시한 과격하고 시대착오적인 사상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번역 출간된 바 있는 영미권의 파농 전기는 유달리 그의 ‘검은 피부’를 강조하면서, 성장기의 인종차별에 대한 경험과 자기정체성의 문제를 과도하게 부각시킴으로써 파농의 깊은 사유를 증오의 철학으로 매도하게 만들었다. 이는 미국의 블랙파워 운동가들이 파농을 흑인해방 사상가로 우상화하고 그의 저서를 성서처럼 떠받든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파농의 전체적인 삶과 사상을 내밀하게 들여다보면 그것은 아주 소소한 일면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검은 피부 때문에 백인 사회를 증오했던 사람이 아니라, 검은 피부 덕분에 소수파, 특히 가지지 못한 자들에 대한 차별에 남다른 민감성을 지니고 지배문화와 지배세력의 부당한 폭력에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했던 사람이다.
파농의 첫번째 저서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흑인과 백인을 상징한다기보다는 피지배자들조차도 그들의 문화를 지배자들에게 점령당함으로서, 자신들의 현실과는 반대로 지배자의 논리를 가지고 살고 있다는 것을 반추한다.
식민지 아프리카여, 폭력에 관해 사유하라
파농에 대한 더 위험한 오해는 파농을 극단적인 폭력 옹호자로 만드는 것이다. 파농의 마지막 저작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에서 사르트르도 반사적인 오해의 근거를 제시한다. “유럽인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일석이조인 셈입니다. 억압자를 제거하는 동시에 피억압자를 제거하는 것이니까요. 그러고 나면 죽은 사람 하나와 자유인 한 사람이 남습니다”
파농이 증오와 폭력을 부추기는 과격한 사상가라는 낙인은 프랑스의 식민지배 사상가들에 의해 시작되었고, 우파의 입장을 대신하는 논자들에 의해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 하지만 그는 정신과 의사로서 지배자의 폭력에 의해 파괴되는 피지배자의 정신 상태를 관찰한 후, 약한 사람들에게 발언의 장을 열어주지 않는 사회는 폭력적인 사회이며, 사회의 폭력은 표현의 권리를 얻기 위한 또 다른 폭력을 부른다고 말했다. 또한 작용과 반작용으로서의 폭력의 필연적 운명과 폭력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폭력의 역할을 정리했다. 파농에게 있어 폭력은 어디까지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으며, 엄밀히 말해 그는 폭력의 옹호론자가 아니라 폭력에 관해 사유한 사상가였다.
다면적인 인물, 프란츠 파농
이러한 오해들을 제외하고도 파농을 불운하게 만드는 것은, 편협한 논란 속에 그의 다양한 면모들이 묻혀버렸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면모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실시한다.
소홀히 다루어진 부분으로 우선, 그가 탁월한 정신과 의사였다는 점이다. 파농은 지배자의 폭력이 피지배자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을 뛰어난 직관으로 파악했고, 사회요법을 이용한 치료를 통해 많은 성과를 보였다. 그가 실시한 치료방식은 세계 의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파농의 짧은 생애가 육체적으로 살고 행동하지 못한 수많은 과제를 그의 저서를 통해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사상적 면모는 역시 그의 저서에 대한 꼼꼼한 독서로 파악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전기들이 이를 기피해 왔다.
또한 파농은 세계주의자들이 보기엔 지나치게 민족적 특수성을 강조했고, 민족주의자들이 보기엔 지나치게 보편주의에 물든 인물이었다. 알제리 독립투쟁에서 아프리카 연합국가 건설로 이어지는 파농의 행보는 바로 특수성을 통해 보편성으로 나아간다는 독특한 민족문화이론을 배경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프란츠 파농의 현재성
올해는 정치의 해이다. 정치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온갖 부정함, 온갖 진실과 거짓의 경계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지배자 대신 지도자라는 이름으로 그들이 만들어낸 모순의 행진은 또 다른 폭력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파농이 말한 소수에 의한 정치의 필연적 부패 운명과 폭력의 메커니즘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폭력이 가진 명백한 진실은, 폭력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각기 다른 형태가 되겠으나, 폭력에 대한 사유와 실천이라는 것이다.
민족문화에 대한 파농의 생각도 예외는 아니다. 9,11 테러를 지켜보며 종교에 대한, 특히 이슬람에 대한 파농의 언급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파농은 이슬람이 알제리 민중을 해방시키는 힘은 될 수 있지만, 이슬람과 정치가 결합됨으로써 야기될 폐해를 예견하고 정교분리를 주창했던 것이다. 또한 유럽 국가의 화폐 통일과 경제 단일화는, 민족국가 유지와 아프리카 연합국가의 건설이라는 파농의 주장을 연상케 하기에 충분하다.
이처럼 파농은 정확한 직관과 섬세한 탐구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을 예견했다. 그래서 지금 파농을 읽는 것은 우리의 거울을 들여다보는 일이 될 것이다.
파농 전기의 정본, 알리스 셰르키의 『프란츠 파농』
저자 알리스 셰르키는 정신과 의사이자 알제리 독립운동가로서 파농 생애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그의 곁에서 보낸 사람이다. 그런 개인적인 이력보다 이 책을 미덥게 만드는 것은 그녀의 성실한 저술 방식이다. 미화나 왜곡의 암초를 피하기 위한 그녀의 치밀하고 정성스런 작업은 그 자체로도 읽는 사람의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파농의 저작들을 꼼꼼하게 분석해서 파농 사상의 개요를 정확하게 제시해 준 것과 파농의 시대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당시의 알제리 상황을 소상하게 서술한 것도 기왕의 파농 전기와 구별되는 점이다. 독자들은 이 책이 프란츠 파농을 이해하는 전기의 정본임을 알게 될 것이다.
지은이 알리스 셰르키(Aliice Cherki)
알제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알제리 독립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던 정신과 의사이지 정신분석학자이다. 알제리와 튀니지에서 파농과 함께 일했고, 알제리전쟁 기간에는 파농의 정치 활동에 동참하였다.
저서로 『다시 라캉으로 돌아갈 것인가』, 『알제리의 유대인들』등이 있다.
옮긴이 이세욱
서울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였으며,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번역서로 『개미』, 『타나토노트』,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개미혁명』, 『밑줄 긋는 남자』, 『카트린 M.의 사생활』 등이 있다.
역자의 말
머리말
서문
블리다에 오기 전의 파농
1953년의 알제 지방
블리다 시절의 파농
파리에서의 파농
튀니스 시절의 파농
파농과 아프리카
파농 생애의 마지막 해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
파농 사후
오늘날의 파농
비극의 정신을 복원하기 (결론을 갈음하여)
파농의 '폭력비판' 다시 읽기
문화의 나라 프랑스가 알제리에서 자행한 폭력을 강렬하게 비판한 사상가이자 정신과의사인 프란츠 파농에 대한 최신 전기다. 파농과 같은 정신과의사로서 함께 알제리 독립투쟁에 참가해 파농 생애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곁에서 보낸 저자 알리스 셰르키가 2000년 프랑스에서 펴냈다. 정신과의사로서 지배자의 폭력에 의해 파괴되는 피지배자의 정신상태를 관찰한 후 "약자에게 발언의 장을 열어주지 않는 사회는 폭력적인 사회며, 사회의 폭력은 표현의 권리를 얻기 위한 또 다른 폭력을 부른다"고 말한 파농의 진면목이 사실적으로 펼쳐진다. '검은 피부'와 '폭력성'만을 과도하게 조명한 기존 저작과 차별화되는 책이다.
--- 중앙일보 행복한 책읽기 (2002년 3월 30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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