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하므로 한없이 아름다운 젊은 영혼의 벽화!
『내일을 여는 집』으로 90년대 초반 우리 문학의 중요한 거점을 마련한 방현석의 첫 장편소설. 청년의 시대, 전태일의 시대, 사랑이 병이던 시대……. 천하를 꿈꾸며 반역의 시대에 맞섰던 아름답고 순결한 영혼들의 이야기.
『내일을 여는 집』의 작품들이 90년대 전후의 노동현장에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음에 비하여, 『십년간』은 오늘의 현실이 아닌 도리어 20년이나 거슬러 올라간 70년대를 배경으로 삼는다. 한편으로 그것은 80년대 변혁적 문학운동의 중심에 서 있던 작가의 현실도피 내지는 그의 문학이념의 퇴영으로 비칠 수도 있겠다. 작가는 90년대 들어 80년대적 이념의 훼절, 후일담류 문학의 유행, 온갖 국적 없는 문학조류의 범람 속에서도 오래도록 침묵으로 일관해온 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짐짓 의문으로 비쳤을 것이다. 그런 그가 오랜 침묵의 벽을 깨고 90년대도 80년대도 아닌 70년대를 화두로 삼은 속뜻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는 오늘의 현실로부터 비껴나 있는 듯이 보이는 시대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의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발언을 시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탈리아의 역사철학자 크로체가 "모든 역사는 당대사(當代史)이다(All history is contemporary history)"라고 말한 의미를 그는 의뭉하게도 그의 이 아름답고도 슬픈 소설 속에 녹여내고 있는 것이다. 목표를 향한 저돌성이 숭앙받던 80년대, 목표 상실 뒤의 혼돈이 지배하는 90년대에 비해, 70년대는 다분히 목가적이고 인간적이었다.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 사이의 이념적 정치적 간극이 크지 않았을뿐더러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의 그 시대에 대한 성격 규정에 있어서도 비교적 높은 수준의 합의를 도출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람들 사이의 부대낌이 크고 상처가 깊을수록 서로가 한몸 한배였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은 커지게 마련이고, 방현석에게도 70년대는 80년대에 대한 원초적 뿌리로서 그리고 90년대 현실에 대한 우회적 발언대로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같은 고향에서 자라나 서울에서 재회한 다섯 국민학교 동창의 얽힘을 능숙한 솜씨로 펼쳐낸다. 좌익인 아버지 때문에 어려서부터 온갖 신산을 겪은 준호, 최상층 부르주아 집안이자 준호 네에 대한 가해자 집안 출신인 서익, 오늘날 행세깨나 하는 현실 정치인을 연상시키는 주먹 세고 의리 강한 석우, 목사가 될 꿈을 가진 요코 노동자 완수, 그리고 석우를 제외한 세 남자가 저마다 애틋한 감정을 품고 있는 홍일점 순분은 가정부와 버스 안내양, 섬유 노동자를 거쳐 술집 마담으로의 굴곡 많은 인생을 살아간다. 이들 주인공이 걸어가는 삶의 길 위로 70년대 우리 사회사의 음지와 양지가 오버랩되어 나타난다. 그 서두는 70년대 벽두의 전태일 분신사건이며 대미는 79년말의 YH사건이다. 교련반대 학생운동, 민청학련, 10월유신, 동일방직 노동자 파업 등 70년대의 굵직한 사건들이 주인공들의 인생행로와 맞물리면서 드라마틱하게 지난 역사를 증언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이처럼 현실의 사건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어디까지나 생생히 살아 있는 등장인물들과 그들이 지어내는 사건의 줄기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나감으로써 방현석의 작가적 역량을 한껏 높여주고 있다.
방현석
1961년 경남 울산에서 출생으로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88년에『실천문학』에 단편 「내딛는 첫발은」을 발표하여 작품활동을 시작하였고, 1992년에 창작집 『내일을 여는 집』을 출간하였고, 1991년 신동엽창작기금을 수여했다.
'실천의 문학 >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간의 샘물 (1997) (0) | 2013.08.05 |
---|---|
나의 트로트 시대 (1997) (0) | 2013.08.05 |
생선 창자 속으로 들어간 시 (1997) (0) | 2013.08.05 |
십년간 1(전 2권) (1995) (0) | 2013.08.05 |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 (1990) (0) | 2013.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