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에서 항일독립운동가이자 소설가로 활동했으며 '조선의용군 최후의 분대장'으로 널리 알려진 김학철 옹은 지난 2001년 9월에 작고, 올해로 5주기를 맞이했다. 그의 자전적 장편소설 『격정시대』는, 조국의 광복을 위해 헌신했으나 남북 모두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조선의용군의 유일한 증언대이다.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을 묘파, 민족사와 민족언어와 민족정서를 복원하여 우리 문학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이 소설은 읽는 이에게 뿌듯한 민족적 자부심을 끝없이 일깨워, 오늘날 우리의 삶을 이루고 지탱해온 원천에 대한 긍정을 넘어서는 원동력을 제공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에 처음 출간되었으나 그후 절판이 된 이 책을 이전 출간본의 미비했던 점을 보완하여 실천문학사에서 새롭게 펴냈다.
태항산 기슭 숲 속에 고이 잠든 우리 민족의 투사들 그들이 이룩한 불멸의 위훈 아시려거든 그들이 걸어온 피어린 발자취 더듬어보시려거든 이 장편거작 『격정시대』를 펼치시라!

1991년 처음 중국 여행 시 연길에 들러 김학철 옹 댁을 방문했을 때였다. 현관까지 친히 마중 나온 옹을 첫 대면하면서 아, 이 어른이야말로 살아 있는 독립운동사로구나 옷깃을 여미었다. 살아 있는 독립운동사는 한쪽 다리 없이 목발에 의지하고 서 있었지만, 당당하고 친절하고 꼬장꼬장하고 말씀하시는 방법은 어느 쪽에도 구애됨이 없이 자유스러웠다. 그리하여 그는 그가 독립을 위해 몸 바친 조국의 남쪽에도 북쪽에도 몸 붙이지 못하고 연길 땅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_박완서(소설가)
『격정시대』는 규모가 큰 소설이다. 한반도는 물론이고 중국 대륙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장쾌한 대하 그 자체이다. 작가의 실천적 경험이 없었다면 도저히 쓸 수 없었을 이 『격정시대』야말로 우리 문학 사상 가장 희귀한 기록일 뿐만 아니라, 식민시대 민족 투쟁사에서 망실될 뻔했던 조선의용군의 실체를 명료하게 보여주는 민족사의 보물이다. _조정래(소설가)
나는 김학철의 작품을 볼 때마다 작가란 과연 자기 시대에 있어 어떤 존재인가, 하고 되묻게 되곤 한다. 오늘날처럼 왜소해질 대로 왜소해진 작가와 작품들과 비교해볼 때, 김학철의 『격정시대』는 마치 잊혀진 영웅들의 이야기처럼 당당하고 흥미롭다. _김영현(소설가)
김학철의 『격정시대』는 조선의용군의 항일투쟁사와 당시 시대상의 복원으로 그 문헌사적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풍부한 민중의 언어와 도처에 깔려 있는 유머로 독자들을 매료하고 있다. 이 작품은 세월이 갈수록 20세기 우리 민족의 고전古典으로 자리를 잡을 것이다. _김호웅(문학평론가, 중국 연변대 교수)
한 손에 필을, 한 손에 총을 든 작가들 중에 조선의용군 분대장이었던 김학철과 태항산에서 함께 싸웠던 김사량이 있다. 이 두 작가가 중요시되는 것은 그들의 민족감정과 용기, 그리고 입장과 정감이 현 시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_철응鐵凝(중국 하북성 작가협회 주석)
김학철은 중국에서 최초로 한글로 장편소설을 쓴 작가이며, 풍부한 문학 실천으로 조선족 문학의 새로운 영역을 창조했고, 노신 문학의 전통을 조선족 문학의 영혼과 육체에 융합시킨 사람이다. _『신화사통신』
잃어버린 역사의 반쪽을 찾아준 ‘혁명성장소설’
『격정시대』는 중국에서 항일독립운동가이자 소설가로 활동했던 故 김학철 옹의 자전적 장편소설이다. 조선의용군 최후의 분대장으로 널리 알려진 김학철 옹은 지난 2001년 9월에 작고, 올해로 5주기를 맞이했다. 이를 기념하여 중국에서는 연변대학과 연변작가협회가 중심이 되어 ‘김학철ㆍ김사량 항일문학 및 조선의용군연구 국제학술회의’를 지난 11월 4일 개최하기도 했다. 그의 대표작 『격정시대』는 우리 문학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하여 우리는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을 찾아낼 수 있었다. 1938년 10월 중국 무한에서 결성된 조선의용군은 광복의 그날까지 조국의 광복을 위해 헌신했으나, 남북 모두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신세가 되었다. 북에서는 유일한 신화 이외에 어떤 것도 금기시되었고, 남에서는 좌익세력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거론할 수 없는 냉전적인 상황이었다. 그러한 때, 『격정시대』만이 그들의 유일한 기념비였고, 그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증언대의 역할을 해주었다. 『격정시대』는 1986년 8월, 중국 심양의 료녕민족출판사에서 처음으로 간행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에 처음 출간되었으나 그후 절판이 되어, 이 책의 중요성을 아는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번 실천문학사에서 새롭게 간행된 『격정시대』는 이전 출간본의 미비했던 점을 보완하여 정본으로서 부끄러움 없는 판본을 출간하게 되었다.
『격정시대』의 문학사적 의의
『격정시대』는 작가의 고향이기도 한 원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 소년이 원산총파업 등을 겪으면서 민족의식에 눈뜨고, 마침내 민족해방운동의 최전방인 만주에서 일제와 싸우는 전사가 되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혁명성장소설’이다. 김학철은 1916년 함경도 원산에서 태어났으며 식민지 상태의 조국을 구하기 위한 항일투쟁을 하면서 청년기를 보냈다. 특히 1930년대 말에는 조선독립동맹 산하의 조선의용군에 들어가 중국 동북지방에서 일제에 맞서 무장 투쟁했으며 가장 오래 살아남은 ‘조선의용대 마지막 분대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도 묘사된 호가장전투에서는 부상을 입어 다리를 잘라내고 일본군의 포로가 되기도 했다. 그의 작품세계는 항일무장투쟁 전사들의 삶과 투쟁에 대한 형상화로 일관되어 있다. 해방 직후 남한에서 발표한 몇몇 단편들(김희민 엮음, 『해방 3년의 소설문학』, 세계, 1987. 수록)과 태항산 항일무장투쟁을 전기문학적 방식으로 쓴 「항전별곡」(이정식ㆍ한홍구 엮음, 『항전별곡』, 거름, 1986. 수록), 그리고 1930년대 북간도를 중심으로 벌어진 항일무장투쟁을 서사적 화폭 속에 담아낸 장편 3부작 『해란강아 말하라』(1954년 출간) 등은 그가 스스로도 참여했던 항일무장투쟁을 문학적으로 복원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보여준다. “더 말할 것도 없이 『격정시대』는 소설의 형식을 빌려서 엮어놓은 전기문학이다. 그러므로 모종의 원인으로 조성되었던 역사의 공백을 능히 메울 수 있으리라고 자신하는 바이다. 운명의 신은 나로 하여금 호가장전투를 마지막으로 싸우는 태항산을 떠나게 만들었다. 그래서 자연 ‘친히 겪은 것을 충실히 재현’한다는 종지에 따라 『격정시대』도 중도에서 끝 아닌 끝을 맺게 된 것이다. 아쉽고 섭섭하고 허전하다 못하여 감질이 날 지경이기는 하나 별 도리 없는 일이다. 하긴 반드시 승리적으로 끝이 나야만 한다는 철칙도 이 세상에는 없다. 진실한 역사의 기록은 왕왕 읽는 사람을 맥살나게 만드는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터이다. 자랑할 만한 역사를 갖지 못한 민족은 불행한 민족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민족은 다행하다 할 것이다. 세상에 떳떳이 내놓을 자기의 역사를 갖고 있으니까.”라는 저자의 말이 이 작품의 의미를 웅변적으로 들려준다. 더불어 김학철이 『격정시대』에서 보이는 국제주의자로서의 세계인식은 일본에 대한 맹목적 반일감정이 아니라 일본제국주의를 부정하는 양심적 지성인들을 포함하여 민족과 국경의 경계를 넘는 민중적 국제 연대를 통해 반식민주의를 모색하는 데 있다. 그러하기에 조선의용군이 힘차게 부르는 ‘인터나쇼날’(국제가)은 “언제나 힘을 북돋아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노래”인 바, 이 노래를 통해 조선의용군은 협소한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민중의 국제적 연대를 통해 식민지 근대를 극복하는 반식민주의를 향한 투쟁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이 소설을 읽어나가는 동안 독자들은 무수히 많은 생경한 어휘나 표현들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예컨대 ‘정가롭다(깨끗하다)’, ‘자저하다(주저하다)’, ‘고자누룩하다(조용해지다)’, ‘물계(물정)’, ‘놀림가마리(놀림거리)’, ‘주사니것(명주로 만든 옷가지)’ 등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실로 우리말의 보고라고 할 만하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어휘나 표기들을 원문 그대로 살려 실어, 시대상과 사회상을 잘 드러낸 리얼리즘의 전형을 보여준다. 또 한 가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이 소설의 경이로움은 읽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뿌리를 마주 대하게 한다는 데에 있다. 이것은 민족사와 민족언어와 민족정서의 복원이다. 또한 이 소설의 문학적 미덕은 일관된 혁명적 낙관주의에서도 나타난다. 이는 오늘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선구적인 문학적 작업들이 늘 찌들고 비극적인 이른바 ‘한’의 정서에 침윤되어 있는 것과는 좋은 대조가 된다. 이 소설은 읽는 이에게 뿌듯한 민족적 자부심을 끝없이 일깨워, 오늘날 우리의 삶을 이루고 지탱해온 원천에 대한 긍정을 넘어서는 원동력을 제공할 것이다.

.jpg) |
김학철(金學鐵). 본명은 홍성걸. 1916년 1916년 함경남도 원산(元山)에서 태어났다. 보성고보 재학 중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 상해로 건너가 의열단 반일 테러 활동에 가담하였으며,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고 1938년 조선의용대 창립 대원으로 활약하였다. 1941년 태항산 호가장전투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 다리에 부상을 입고 포로가 되어 일본 나가사키 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8·15광복으로 출옥하여 귀국하였다. 1945년 조선독립동맹에 참여하였고, 『주보건설』에 단편 「지네」를 발표하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하였다. 1946년 월북하여 『로동신문』기자로 일하다가 1950년 중국으로 망명하였으나 문화대혁명 기간에 『20세기의 신화』필화사건으로 10년간 옥살이를 하였다. 1980년 복권되어 창작 활동을 재개하였고, 2001년 9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장편소설 『격정시대』, 『해란강아 말하라』, 『20세기의 신화』, 소설집 『무명소졸』, 『태항산록』, 산문집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 『우렁이 속 같은 세상』, 『사또님 말씀이야 늘 옳습지』, 전기문학 『항전별곡』,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

역사를 갈아엎는 김학철과 조선의용군 ―― 고명철 문학평론가, 컬쳐뉴스(2006. 11. 15.) 김학철 소설 `격정시대` 재출간 ―― 김정선 기자, 매일경제(2006. 11. 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