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 김선우의 첫 장편소설 시인 김선우가 장편소설을 펴냈다. 1996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대관령 옛길」 등 10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니 문단 이력은 올해로 12년째. 그동안 시집 3권과 산문집 3권, 장편동화 1권, 칼럼집 1권, 시모음산문집 1권까지 자신의 이름으로 낸 책이 9권이나 되니 그 부지런함에 한 번 놀라고, 그러는 와중에 천 매가 넘는 장편소설까지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한 번 더 놀랍다. 그간 여기저기 연재해온 에세이며 그를 묶어낸 산문집들에서 작가 특유의 유려한 필력은 이미 충분히 검증된 터, 시적이면서도 강렬한 묘사가 특히 돋보이는 이번 소설의 주인공은 춤꾼 최승희이다. 일러두기를 통해 밝혀두고 있기도 하거니와, 인물의 굵직한 역사적 동선은 가급적 사실에 충실하게 묘사하였지만 일부 등장인물을 비롯한 소소한 에피소드들은 허구이다. 다시 말해 실존인물 최승희라는 밑그림 위에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흘러나온 여러 그림자로서의 최승희가 함께 담긴 것. 그때, 그곳에, 그리고 지금, 여기에 최승희는 있고도 또한 없었다. 온몸으로 춤을 살았던 최승희라는 시대의 춤꾼이 우리 시대의 젊은 예술가인 김선우에 의해 되살아났으니 아주 맞춤한 옷을 입은 듯하다.

“나비를 품은 고치와도 같은”, 아주 특별한 예술가 성장소설
「작가의 말」에도 언급되었지만 그전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관련한 한 지면을 통해 알려진 조세희 선생과의 ‘아름다운’ 에피소드에서 알 수 있듯, 작가 김선우에게는 일찍이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충만해 있었다. 단 한 권의 소설로 한국문단의 지형을 바꿔버린 조세희 선생의 밝은 눈이 미리 그것을 감지했으니 두 예술가의 이심전심이라 할 만하다. 조세희 선생이 추천의 글에서 말하였듯, 이 소설은 “인간적인 실존에 대한 열망”을 담고 있다. 온몸으로 춤을 살고자 했던 여자, 춤추는 그 몸이 조국이었던 자유로운 영혼의 천상 무희였던 그녀가 마음껏 날아오르기에는 시대가 너무 불우했다. 해서 험난한 근현대사를 가로질러 세계로 발돋움하는 그녀를 그려내기 위해 작가는 인물의 단선적 묘사와 서술을 버리고 과감하고도 입체적인 시점과 구성을 이용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작품으로 일궈냈다. 작품 내에서 주요한 이미지는 “검정”과 “빨강”이라는 색채이다. “검정”이 죽음, 식민치하라는 시대적 어둠을 상징한다면 “빨강”은 생(生 )이며 빛으로 대변되는 자유의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변증적 결합은 ‘검정을 스프링 삼아 도약하는 빨강의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연상케 한다. “빨강”에 있어 “검정”은 거부의 대상이자 존재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에두르는 듯하지만 할 말은 다 하고야 마는 김선우 식의 담백한 문체가 빛을 발하는 지점이다. 더불어 1인칭과 3인칭의 경계를 넘나들며 최승희의 주변 인물들을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지점에 배치하여 시대적, 인간적 모순을 담백하게 담아냄으로써 끝까지 극적 긴장감을 잃지 않는 것은 이 장편소설이 지닌 최대의 미덕이라 할 만하다. 작가의 탁월한 산문성이야 익히 알려져 있지만 그래도 시와 소설의 간극은 크다. 그 간극을 뛰어넘는 데는 시나리오 집필도 한몫했다. 동화 『바리데기』를 본 한 영화사의 대표가 무희 최승희를 주인공으로 한 시나리오 집필을 작가에게 의뢰했고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소설이 쓰고 싶어졌다고 작가는 말했다. 등장인물들의 입체적이면서 개성 있는 캐릭터가 거기에서 기인하는 건 아닌가 짐작된다. “곧 물의 살을 찢고 눈부신 가시연꽃이 필 것이다.” 첫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의 뒷표지 글을 쓴 나희덕 시인의 ‘예언’대로 시인 김선우는 첫 장편소설인 『나는 춤이다』로 거대한 가시연꽃 봉오리의 첫 꽃잎을 열었다.
“자유인 춤, 자유인 예술, 자유인 영혼…”, 춤이 조국이었던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적 무희 최승희
『나는 춤이다』에서 그려지는 최승희는 춤꾼 최승희이다. 춤과 관련되지 않는 최승희 삶의 전후는 모두 배제되었다고 보면 될 듯하다. 해방 이후, 북조선의 관리 감독을 받고 있는 최승희의 모습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이후 시간의 경계를 넘나든다. 3인칭 작가 시점으로 그려지는 “여자” 최승희는 여린 듯 강인하다. 춤을 위해서라면 어떤 상황에서건 단호해질 수 있고 얼마든지 정치적일 수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반면에 최승희를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을 하는 기타로와 남편이자 매니저인 안, 정신적 조력자인 중국 경극 제일의 여역(女役)배우 매란방, 그리고 최승희의 선생, 이시이와 일본의 무용연구소 동료들의 눈에 비친 최승희는 이기적일 만큼 자신만 아는 지독한 에고이스트로 그려진다. 춤추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를 때로는 연민하고 때로는 질투하며 때로는 숭배하는 그들의 주관적인 시선을 통해 작가는 춤꾼 최승희의 모습을 객관화한다. 특별히 주목할 만한 주변 인물은 “민”이라는 젊은 청년을 매개로 하여 이어질 듯, 말듯 끝까지 긴장감을 주는 조선의 예기 “예월”이다. 요즘 식으로 보면 스타와 팬의 관계라 할 수 있을까, 식민지 조선의 여자로 일본 남자와 결혼하여 만주와 조선, 일본을 오가면서 춤추는 최승희를 동경하여 먼발치에서 그녀를 지켜보고 응원하며 결정적인 순간에 최승희 춤의 한 모티브를 제공해주기도 하는 예월이라는 여성은 이 작품 속에서 작가가 빚어낸 가장 빛나는 소품이 아닐까 한다.
“춤추는 이 몸이 제 조국이에요.”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권력은 아무것도 구할 수 없어. …… 나는 내가 구할 거야.”
작가의 등단작인 「대관령 옛길」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지독히 뜨거워진다는 건 빙점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 조선 최초의 코스모폴리탄 댄서이자 월드스타였던 최승희, “21세기의 감각으로 20세기를 살았던” 불우한 예술가, 그녀는 시대를 앞서는 뜨거움으로 “너무 일찍” 빙점에 도달해버린 혁명가였다. 일본 제국주의라는 폭압적 시대상황 속에서 자신의 언어인 춤의 자유를 위해 오직 춤으로써 항거했던 여자, 자신의 몸과 그 몸에서 흘러나오는 춤 이외에는 아무것도 돌아보지 않았던 지독한 에고이스트, 그녀의 노마드적 감수성이 갈구했던 것은 그저 “자유인 춤, 자유인 예술, 자유인 영혼”으로서의 인간을 위한, 예술에 의한, 삶의 조건을 향한 지극한 열망이었다.

김선우_ 1970년 강원도 강릉 출생. 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1996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대관령 옛길> 등 10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2004년 제49회 현대문학상 수상.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 중.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도화 아래 잠들다』,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산문집 『물 밑에 달이 열릴 때』, 『김선우의 사물들』, 『내 입에 들어온 설탕 같은 키스들』, 칼럼집 『우리 말고 또 누가 이 밥그릇에 누웠을까』, 어른이 읽는 동화 『바리공주』.

꽃을 먹다 나비의 나라 소풍 추락과 도약 나는 춤이다
작가의 말

김구·최승희 소설로 살아나다 ―― 최현미기자, 문화일보(2008. 8. 7.) 춤꾼 최승희 다각적 해석 ―― 정양환 기자, 동아일보(2008. 8. 2.) 첫 소설 낸 김선우 시인 ―― 고미혜 기자, 연합뉴스(2008. 7. 29.) 붓다, 마르크스 오가며 사상의 씨알 줍다 ―― 이종찬 기자, 오마이뉴스(2008. 9. 9.) 소설로 보는 ‘조선 최고 무용수’ 최승희 ―― 이경희 기자, 중앙일보(2008. 8. 2.) 최승희를 만났다,지독한 열병에 빠지다… ‘나는 춤이다’ ―― 정철훈 기자, 국민일보(2008. 7. 30.) 최승희의 열정적인 삶 그려 ―― 박홍환 기자, 서울신문(2008. 8. 1.) 식민·여성·예술, ‘모순의 최승희’ 춤추다 ―― 최재봉 기자, 한겨레 신문(2008. 7. 29.) 시인 김선우 “최승희와 하나된 듯, 빙의 체험” ―― 한윤정 기자, 경향신문(2008. 7. 29.) "천재적 춤꾼 최승희 소설로 부활시켰죠" ―― 이고운 기자, 한국경제(2008. 7. 29.) ‘촉촉하게 젖은 꽃잎’ 닮은 시인 김선우 ―― 원재훈 시인, 신동아(2008. 7. 25.) 시대와 불화한 천재 舞姬, 최승희의 굴곡진 삶 그려 ―― 심재천 기자, 세계일보(2008. 8. 1.) 불멸의 무용가 최승희가 돌아온다 ―― 오석기 기자, 강원일보(2009. 2. 10.) 최승희, 그녀는 존재 자체가 춤이었네 ―― 정상미 시민기자, 북데일리(2009년 0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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