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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그 집에서, 이틀 (2009)

실천문학 2013. 8. 7. 14:48

 

 

 

 

 

 

 

       

 

 

 

 

 

 

 

199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2002년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한 이상섭의 세 번째 소설집이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앞서 출간된 두 권의 소설집에서 부둣가, 어시장, 섬과 어촌 마을 등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화자로 내세웠던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는 그들의 아들 세대 목소리를 담아냈다. 실업자로, 백수로, 아르바이트생으로 삶의 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이 실업청년들은 자기 자신뿐 아니라, 자신의 기원인 ‘가족’의 실체를 들여다보고 있다.


‘실업청년’이 그리는 ‘실업가정’ 자화상

이상섭의 주인공들이 어려졌다. 회사원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명품 인재로 재개발 중인 철학과 졸업생과 교수 보조 연구원 유미(「플라이 플라이」),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잃은 비정규직 은행원(「아직 아직은」), 입대를 앞두고 퀵서비스 기사로 일하는 종만(「생각하니 점점」), 제대 직후 새엄마를 뒷조사 중인 아들(「엄마가 수상해」)……. 유일하게도 작은 운반선에서 일하는 선원 상만(「바닷가 그 집에서, 이틀)을 제외하고는 그들 모두 사회로 들어갈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이십 대 청년 실업자들이다.

그나저나 부산이란 도시는 왜 이리 지지리도 못생겼냐. 대기업이 있나 공사가 있나. 그렇다고 비전 있는 중견업체가 많나. 허구한 날 서는 거라곤 모텔이나 유흥업소에 대형 할인마트밖에 없으니, 쯧쯧. 친환경 고품격 명품 도시 운운하며 ‘다이내믹 부산’을 외쳐봤자 헛일이다. 게다가 해운회사나 냉동공장도 내리막길을 탄 지 오래다. (「플라이 플라이」)

부산의 작가, 이상섭의 전작들에서 ‘바다’가 고단한 삶의 터전이었다면, 이번에는 그렇지 않다. 이들 실업청년들이 희망하는 직업이 회사원, 교수 등으로 사뭇 도시적이기도 하지만,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자 하는 꿈은 애초에 그들의 아버지 세대에서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일례로 「플라이 플라이」의 백수 화자 아버지는 과거, 장어잡이 선장이었으나 한일 어업협정으로 뱃길을 잃고 국숫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것은 비단 지방도시로서의 ‘부산’에 대한 이야기일 뿐 아니라 잊혀진 현안과 국가정책이 어떻게 오늘에 이르렀는지 확인하게 하는 대목이다. 즉, 작가는 청년 실업문제를 다리 삼아 우리 시대 다각적 비추기를 시도한다.

이렇듯 작가는 ‘실업’이라는 문제 자체에 골몰하기보다는 실업의 시기를 메우고 있는 그 어떤 다른 것을 추적해 나가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여기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바로 그들 가족의 자화상이다. 「아직 아직은」은 부모가 부재한 상황에서 스스로 어머니와 아버지가 되어 소통하는 과정을 그리며, 「천국의 기원」은 왜곡된 사랑의 기원과 그 사랑이 낳은 일그러진 가족의 모습을 그린다. 「여기 왜 왔지」, 「플라이 플라이」, 「엄마가 수상해」 등은 희망과 절망을 오가는 가족구성원 사이의 소통을 다루고 있다.

즉 주인공들은 자신의 한계선에서 이제껏 자신이 안겨 있던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을 직시함으로써 역으로 가족의 실체를 끌어안는 전환점을 마련한다. 단지 미묘한 의식의 변화처럼 보일 뿐이지만 작가는 이를 통해 그들이 멈칫거리는 첫걸음을 떼게 한다. 그렇기에 백수인 아들이 아버지를 바라보며 “바다는 세상에서 가장 넓은 직장”(「플라이 플라이」)이었다고 하는 읊조림은 그 자체로 아버지의 옛 꿈을 품어 안는 성숙한 모습이랄 수 있다.

『바닷가, 그 집에서 이틀』은 성년으로서의 삶이 미루어진 주인공들을 내세운 단편 성장소설 모음집으로 읽힌다. 이상섭은 편협한 세대론에 합류해 비방하거나 옹호하기보단 그들 역시 우리 사회의 “가슴 아린” 그늘임을 되새기게 한다.



사회화되지 못한 정공법의 말들― 경쾌함과 진지함이 공존하는 언어의 속살

전작들에서 생생하게 재현되어온 경상도 남쪽 사투리는 인물과 그 삶을 드러내는 언어의 힘을 발휘해왔다. 그리하여 사투리가 이제까지 이상섭 소설의 ‘지역성’을 빚어냈다면, 새 작품집 속 젊은이들의 언어― 은어와 비속어, 언어유희는 또 다른 빛깔로서 이 시대 비주류들의 ‘계층성’을 빚어내고 있다. 사회로 미처 잠입하지 못한 이들의 언어는 상대를 현혹하는 달콤한 수사법과는 거리가 먼, 상대의 정곡을 파고드는 ‘정공법’이라 할 만하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고 있냐? 짐짓 시치미를 떼고 묻는다. 혜주가 나직이 입을 연다. 그냥 바라보는 중이야.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니까 생각이 존나 넓어지고 깊어지는 것 같아서. 어쭈, 외계어 같은 소리 하네. 혜주가 돌멩이를 주워 바다로 던지기 시작한다. 얄랑이는 물결에 닿자 퐁, 하는 가벼운 소리가 난다. 그 소리가 마치 휴대폰 문자 뜨는 소리 같다. 혜주는 바다에게서 무슨 답장이라도 기다리는 것처럼 돌을 던지고 또 던진다. (「바닷가 그 집에서, 이틀」)

그의 따뜻한 휴머니즘이 여지없이 발휘된 표제작 「바닷가 그 집에서, 이틀」의 해설에서, 고인환 문학평론가는 “욕설과 존칭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긴장감은 경쾌함과 진지함이 공존하는 언어의 속살”이라는 쓰고 있다. 소설 속 혜주와 종만의 ‘진실게임’은 바로 그 ‘미묘한 긴장감을 지닌 정공법’의 말들이 현상으로 드러난 적절한 예라고 볼 수 있다. ‘진실게임’을 통해 두 사람의 그늘진 과거, “아내와 사별하고 열심히 자식을 돌본 아버지의 고달픈 삶(상만)과 무책임이 도를 넘친 아버지의 삶(혜주)”이 ‘맞닿는’ 순간, 혜주와 상만의 가난한 여행은 보다 강인한 내면 여행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추천의 글

이상섭의 변화는 소위 정공법으로 불리는 서술전통을 서서히 이탈하는 데서 감지되었다. 보여주기보다 말하기에 능란한 그로서 올바른 선택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그를 통해 리얼리즘 전통을 되찾으려는 이들을 무색하게 하는 한편 새롭고 개성적인 한 작가의 탄생을 예고한다. 이상섭의 소설 기저에 주변부 민중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푸른 바다처럼 펼쳐져 있다는 것은 두루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주제를 동어반복이라 여기는 듯하다. 그래서 그는 지평을 확장하여 사람들의 정열과 감격, 인정과 갈망을 차디찬 얼음으로 만들고 있는 현대사회의 전반적인 실상에 시선을 던지고자 한다. 그의 인물들은 폭력과 추방의 위협에 시달리거나 물화된 관계로 서로 소외되어 있다. 그는 이러한 인물들이 놓인 구체적인 정황을 직시하되 이를 환상과 그로테스크를 병치하는 방식으로 서술한다. 건조하고 냉혹한 삶의 현상을 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상식으로 통하고 상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생략하거나 과감한 비약으로 소설에 속도를 더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말할 것도 없이 그가 소설적 재미를 위하여 소설적 진실을 희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위악을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내려는 그의 태도는 상실과 고통을 따스한 인간애로 감싸려는 의도와 무관하지 않다. _ 구모룡(문학평론가)

1961년 경남 거제 출생. 동아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부경대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을 수료했다. 1998년 「슬픔의 두께」로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당선하고, 2002년 『바다는 상처를 오래 남기지 않는다』로 제5회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문단활동을 본격화했다. 소설집으로 『슬픔의 두께』와 『그곳에는 눈물들이 모인다』가 있고, 2004년 제9회 부산소설문학상, 2007년 제6회 부산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해운대관광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플라이 플라이 / 천국의 기원 / 엄마가 수상해 / 아직 아직은 / 악어 / 바닷가 그 집에서, 이틀 / 여기 왜 왔지 / 생각하니 점점 / 해설|고인환 / 작가의 말

 

 아찔한 젊음의 언어로 풀어낸 삶의 현장 ―― 김건수 기자, 부산일보(2009. 7. 1.)
 비정규직·청년실업자 등 젊은이들의 고달픈 현실과 생의 의욕 ―― 조봉권 기자, 국제신문(2009. 6. 28. )
 40대 작가의 청년백수 '응원가' ―― 이왕구 기자, 한국일보(2009. 7.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