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교양선/전집류

탈춤의 민족미학 (2004)

실천문학 2013. 7. 30. 14:41

 

 

 

   

 

 

 

 

우리 연행예술인 탈굿 또는 마당굿을 중심으로 민족미학의 뼈대가 될 큰 범주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탈춤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과 더불어 새로운 이론을 정립하여 민족미학의 중요한 기틀을 제공하는 저작이다. 1999년 부산의 민족미학연구소에서 진행된 '탈춤의 민족미학' 강의내용을 여러 해에 걸쳐 검토 정리한 4년 만의 결실이다. 민족미학의 바탕을 이루는 우리 민족의 사상과 문화의 핵심적 구성원리를 밝히는 데서 출발해, 표면과 내면이 이중적으로 교합돼 있는 탈춤의 미학을 담아내고 있다.


출간의 의미와 중심사상

김지하 시인의 미학강의 『탈춤의 민족미학』이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1999년 부산의 민족미학연구소의 초청을 받아 여섯 차례에 걸쳐 탈춤과 관련된 민족미학의 기본원리를 강의한 내용을 연구소 팀에서 여러 해에 걸쳐 학습, 검토, 정리한 것을 저자가 일일이 손을 보아 내놓은 것이다. 4년 만의 결실인 셈이다. 강의를 활용한 이러한 저술 방법은 탈춤의 생성원리인 ‘환(還, 고리)’의 사상에도 맞닿아 있다.

이 책은, “순환하면서 확대되는 고리”를 통해 집단적 신명을 불러일으키는 탈춤의 구성방식과도 상통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우리 상고사상의 종교적 우주론의 핵심을 19세기의 후천개벽사상을 통해 재해석하고 확충함으로써 현대과학과 탈춤의 근접성을 발견하는 데에까지 이르고 있는 저자의 사유의 진폭은 깊고도 넓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사상적 근원을 탐색하고 서구의 철학과 과학, 특히 생명친화적 사상의 흐름을 참고하면서 탈춤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과 새로운 이론을 정립해가고 있는 이 책은 민족미학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저자는 서구문명의 파탄으로 초래된 대혼란(big chaos)을 미학의 실패에서 찾고 동아시아의 사상적 배경에서 새롭게 싹트게 될 새로운 미학의 얼굴을 그려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21세기는 문화적 창의력과 미학적 모험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적 미학적 대안은 어디에서 시작될 것인가? 저자의 탐구는 우리 민족의 사상과 문화의 핵심적 구성원리를 밝히는 데에서 시작된다. 하나(一)의 세계는 홀수적(카오스적)인 삼수(三數) 분화의 원리와 짝수적(음양적)인 코스모스의 원리가 조합되어 음양오행을 이루는데, 동학에서는 이것을 ‘지기(至氣)’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지기’는 ‘혼원지일기(混元之一氣)’, 즉 근원적으로 혼돈인 우주 에너지이자 카오스의 질서인 카오스모스(chaosmos)이다. 그는 상고사상의 원형과 그것이 근대성을 내포한 19세기의 민중 후천개벽사상에서 부활․발전해가는 모습 속에서 그 현대적 의미를 살피면서 탈춤의 미학적 원리를 즉 환(還, 고리)으로 규정하고 있다.

환, 즉 고리는 탈춤에서의 시간이 순환적 확장을 거듭하는 것에 대한 비유이다. 순환적 확장의 원리인 환을 중심적 개념으로 삼고 있는 저자는 천지인(天地人) 삼재사상을 비롯하여 최수운의 동학사상, 강증산의 후천개벽사상, 김일부의 정역사상에다 테야르 드 샤르댕의 ‘진화론’, 데이비드 봄의 ‘숨겨진 질서’, 질 들뢰즈의 ‘카오스모스’(무질서한 질서), 카를 융의 ‘확충(amplification)’ 등의 이론을 참고하면서 끝과 시작이 맞물려 있고 표면과 내면이 이중적으로 교합되어 있는 탈춤의 미학을 감동적으로 펼쳐보인다.

이 책에서는 민족미학의 뼈대가 될 범주로서 (탈춤의 판으로서의) 시간, (마당으로서의) 공간, (탈, 몸, 춤의) 육체, (눈의) 시각, (불의) 조명, (신의) 진화 등 여섯 고리로 나누어 다루고 있다. 저자는 탈춤에 있어서 시간, 공간, 육체 등 전 방면을 관통하는 하나의 명제는 ‘모심’이며, ‘모심’ 속에 작용하는 여러 중추적 미학 기능들 가운데 하나가 곧 ‘환’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영동천심월(影動天心月)’ 즉 ‘그늘이 우주를 바꾼다’는 정역사상에 이르러 ‘신화율려(神化律呂)’를 주창함으로써 표면과 일방적 시각에 사로잡혀 있는 서구 미학의 한계를 훌쩍 넘어선다.

김지하
1941년 전남 목포 출생으로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했으며, 1969년 <시인>지에 「황톳길」 등 다섯 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1964년 대일 굴욕외교 반대투쟁에 참가하여 첫 옥고를 치른 이래, 8년간의 투옥, 사형 구형 등의 고초를 겪었다. 독재권력에 맞서 자유의 증언을 계속해 온 양심적인 지성인으로서, 동학사상을 비롯한 한국 전통정신의 유산을 오늘의 상황 속에서 새롭게 변용시키고 재창조하고자 노력하는 사상가로서 독보적인 업적을 이룩했다.
1975년 로터스 특별상, 1981년 위대한 시인상과 크라이스키 인권상, 1993년 이산문학상, 2002년 정지용문학상과 만해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시집으로 『황토』, 『타는 목마름으로』, 『애린』, 『검은 산 하얀 방』, 『이 가문 날에 비구름』, 『별밭을 우러르며』, 『중심의 괴로움』, 『화개』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밥』, 『남녘땅 뱃노래』, 『살림』, 『생명』, 『동학이야기』, 대설(大說)『남』,『예감에 가득 찬 숲 그늘』, 『김지하 사상전집』(전3권) 등이 있다.

주요 내용

시간―탈춤의 판
탈춤에서의 시간은 모든 사건과 극적인 진행의 생성구조이다. 탈춤에서의 시간은 과거로부터 시작해서 미래로 현재로 통과하는 화살과 같은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내 육체 내부로부터 출발해서 주변 공간을 생성하면서 다시 내부로 돌아오는 자기회귀적 생성이다. 이것은 초월적 신명의 움직임이며, 과거와 현재가 ‘생동하는 살아 있음’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의 존재방식은 탈춤의 생성과 진행의 원리가 되는 환(還), 즉 고리를 이룬다. 말하자면, 탈춤의 시간은 ‘순환적 확장’으로서 존재한다. 순환은 반복이고 확장은 차이의 생성이다. 그러니까, 환은 반복과 차이의 이중적 교호결합이다. 이러한 구조에서 이루어지는 확장과 확충은 심층심리까지 파고드는 굿과 같은 효과를 빚어낸다. 그런가 하면, 지금 여기의 나와 우리와 우주의 새 삶으로 끊임없이 생성되어가는 것이다.

공간―탈춤의 마당
탈춤에서의 마당은 하늘이라는 시간구조와는 다른 공간적 구조, 즉 ‘중력장의 원리’에 지배된다. 천(天)이 시간성과 활동을 의미한다면, 지(地)는 공간성과 위상(位相)을 의미한다. 이것은, 구체적인 역사적 시간 속에서 말하면, 물질적인 삶의 세계에서 감각하고 사랑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서로 이별하는 19세기적인 민중의 삶에 관련된 공간이다. 탈춤의 마당은 위상과 활동이 불연속적으로 서로 모순되면서 같이 어우러지는 이상한 공간이다. 이 극적인 공간은 단순한 질료적 공간이 아니고 정서적으로 고양된 공간, 선택된 공간, 영기(靈氣)가 서린 공간이다. 역사적 근원에서 보면, 풍류마당은 신시(神市)체제의 솟대에 해당하며, 신이 내림직한 공간 즉 신명이 움직이는 공간이라는 초월적 의미를 지닌다. 그러니까 탈춤의 마당은 생활공간의 연장인 동시에 초월적인 ‘흰빛’ 속에 잠길 수도 있는 공간이다. 이 마당은 서로 대립되는 초월적인 것과 극도의 중력적인 삶의 질서 즉 성속(聖俗)이 함께 숨쉬는 공간이다. 말하자면, 이 두 가지 생명적 요소가 자유롭게 넘나드는 이중적 교호관계의 장이다. 바로 이러한 공간에서 ‘거룩함의 지상화(地上化)’가 이루어진다.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효과가 다름아닌 ‘신명’이며, 이것이 마음 안에서 감동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앞마당과 뒷마당 사이의 ‘판’은 잉아걸이의 엇섞이는 관계를 지닌다. 판은 내적 공간이며 미학적 질(質)을 보장한다. 그래서 탈판을 ‘살판’이라고도 부른다. 판은 야장(冶場), 즉 단련하는 교육 장소, 치유와 회생, 그리고 미적 교육의 장소이다. 이러한 공간도 생성하는 것이기에 마당 전체가 기의 움직임이다. 이것은 단전과 경락계 원리와 연결된다. 드러난 질서의 장기들과 숨겨진 질서의 경락계 사이의 기의 흐름의 관계로서의 이중적인 마당, 이것은 지극히 섬세한 공간이다.

육체―탈, 몸, 춤
탈춤에서의 몸은 천, 지, 인의 인(人)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 몸은 시간이나 공간보다 중요하다. 몸 안에서 시간과 공간이 생성된다. “사람 안에 천지가 통일되어 있다(人中天地一)”는 것이 『천부경』의 결론이다. 여기에서 안(中)은 마음(心)이다. 그리고 마음은 몸 전체에 퍼져 있는 정신체계이다. 탈춤에서 몸은 ‘탈’과의 관계에서 ‘춤’으로 발전한다. 그러니까 몸은 탈이라는 것과의 이중적 교호결합을 통해서 춤이라는 생성의 절정, 활동의 절정으로 나아간다. 연희예술에서 광대의 몸은 우주이고, 탈춤의 주체는 몸이다. 몸은 영체, 기체, 신체의 세 가지 몸으로 이루어져 있다. 몸을 정태적으로 말할 때 우리의 눈에 파악되는 것이 신체(身體) 즉 물질이다. 그러나 탈춤에서 몸은 부단히 움직이므로 그 움직임을 있게 하는 영(靈)과 신명까지 함께 보아야 한다. 그래서 춤추는 몸은 기체(氣體)이다. 천,지, 인에서 천은 탈, 지는 몸, 인은 춤이다. 탈은 솟대에서부터 신(神)이다. 이 신의 형상에서 발전한 것이 탈이다. 그래서 근대극의 알맹이를 포함한 탈춤에서 가면은 전형성을 띠게 된다. 이 탈을 쓰고 몸을 가지고 움직이는 신명의 기적(氣的) 활동이 춤이다. 이 춤이 바로 신과 인간이 결합하고, 탈과 몸을 이중적으로 교호결합하고, 천과 지를 자기 안에서 통일시킨다.

눈―시각
탈춤에서의 눈은 서양식 프로시니엄 극장에서의 일방적인 시각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보는 사람들이 빙 둘러 서 있으니까, 탈춤의 시각은 360도이다. 내가 광대를 보는 눈은, 뒤에 있는 관객도 보는 눈이고, 그 옆의 관객도 보고 관객 뒤의 숲과 하늘도 보는 눈이다. 이 같은 시각의 협동이 일어나는 것이 탈춤이다. 수운 선생은 쌍동자였는데, 그것은 네 개의 눈동자를 뜻한다. 밖에 있는 눈과 안에 있는 눈이 있다는 것이다. 융은 정신병에 걸린 눈은 네 개라고 말했다. 예언자의 눈도 그렇다. 치우(蚩尤)를 닮았다는 방상시(方相氏)의 눈도 네 개이다. 보통사람도 초비상 상태나 극단적인 심리상태에 있을 때에는 네 개의 눈이 작동한다. 네 개의 눈을 가졌다는 것은 안 보이는 것을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리를 향하는 마음의 눈은 사방으로 열려 있다. 탈춤의 시각은 이런 것이다. 그래서 시각 자체가 순환하면서 확산될 수 있다. 그리고 시각이 안팎에 있다는 것은 시각의 총화(總和), 즉 시너지 효과를 갖는다. 말하자면, 질적인 비약을 동반하는 협동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깨달음에 이르고, 어떠한 투쟁도 완화시킨다. 이러한 시각의 전방위성은 한 방향의 감각과 다른 계열의 감각 사이의 통합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물 같은 눈은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변화를 가져온다.

불―조명
불은 극장 안으로 들어갔을 때의 조명이다. 조명은 따뜻하지 않고 밝기만 하다. 그러나 화톳불이나 모닥불을 피웠을 때에는 밝으면서도 따뜻하다. 따뜻함은 인간을 통합시킨다. 따뜻하면 들러붙게 된다. 사회화, 전체화, 통일화, 카오스화하게 된다. 화백(和白)의 화(和)는 통일이다. 중국 철학에서 화는 통일이고 전체성이며, 화합이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고 하는데, 통일성을 이루되 내적 차이를 유지하라는 뜻이다. 우리 식으로 하면 이중적 교호결합이다. 서로 인정하되 거리를 두고 얽히는 것이다. 따뜻하면 화가 되고, 서로 이해하고, 평온하며, 감싸고 안게 된다. 그러므로 화는 다수 중심의 사회 원리이다. 백(白)은 밝기이다. 해, 빛, 초월성, 개별성, 자율성, 내면의 자유의지 등이 개념적으로 백에 속한다. 이것이 장자의 허실생백(虛室生白)의 과정인데, 마음이 텅 빌 때 흰빛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신―진화
내면적으로는 의식이, 외면적으로는 물질이나 생명의 복잡화가 서로 주거니받거니 하면서 각 개체마다 자기 내면의 우주적 전체성을 실현하면서 유기화하는 이중적 교호결합에 의한 추이의 역사가 생성론이자 진화론의 요체이다. 내면적, 영적 인식과 외면적, 생명, 생태적 복잡화 및 감각의 복잡성 등이 상호 연관된 유기적 진화관계에서 예술적 진화사상을 볼 수 있다. 자유의 진화, 자기 조직화의 진화, 개체 발생을 통한 개체 나름의 내면적 전체를 실현하는 개체 종(種)의 진화, 그리고 ‘위로부터의 기제’를 중심으로 한 ‘아래로부터의 기제’의 진화도 마찬가지다. 이것들은 또한 역(易)의 미학을 탐색하고 신비적 미의식과 사이버적이고 디지털적인 수리체계 사이의, 살아 생동하는 영적 관계를 창작과 향수에 활용함으로써 총괄적 현실의식과 초의식, 무의식의 통합을 근거로 한 ‘감각 통합을 통한 깨달음’이나, 대중문화의 3차원적 중력장 속에서 이루어지는 4차원 이상의 초월적 아우라의 표현, 제7식의 현실총괄의식과 제8식, 제9식의 초의식, 무의식의 한마음(一心)으로 통합적 진화 표현을 얻을 수 있다.

 

탈춤은 시작과 끝이 한 고리


김지하 시인 민족미학 강의 엮어
천부경·동학경전 밑바탕 탈춤 '민족예술의 핵'으로 집단 신명 순환·해원까지

시인 김지하(63)씨가 1999년 부산 민족미학연구소의 초청으로 펼쳤던 탈춤과 민족미학의 기본원리에 대한 강의가 책으로 엮여 나왔다. 김씨는 이 강의록에서 〈천부경〉과 동학경전에서 뽑아낸 자신의 시각을 바탕으로 다양한 동서양의 미학과 철학, 문화를 넘나들며 우리 고유의 민족미학의 특징과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그는 상고시대부터 내려온 우리 고유 미학의 특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르이자 동시에 이를 현대에 가장 효과적으로 되살릴 수 있는 장르로 탈춤을 든다. 그리고 탈춤 속에 들어 있는 민족미학의 특질을 통해 민족미학의 원리를 풀이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대 민족미학의 모습을 그려 보인다.

김씨가 보는 민족문화의 핵심 구성원리는 세 가지다. 하나는 혼돈인 ‘카오스의 세계’다. 역동적 세계를 이루는 천지인 삼수분화와 3·5·7로 나가는 역동수인 홀수, 곧 역동수의 ‘삼수분화’ 원리를 말한다. 또 다른 하나는 음양으로 나뉘어 사상, 팔괘로 나가는 짝수의 세계, 곧 안정수의 ‘이수분화’ 원리인 ‘코스모스의 세계’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가 우리나라 특유의 ‘한-’이다. 이것이 발전한 것이 동학에서 말하는 ‘지기’(至氣·지극한 기운)로, 이는 카오스(혼돈)와 코스모스(질서)가 합쳐진 ‘카오스모스’가 된다. 김씨는 이 세가지가 압축된 원리가 고대 경전 〈천부경〉을 중심으로 하는 고조선 등 상고시대 고대문화의 전통이라고 정의한다. 그런데 이 민족미학 원리가 고려 이후 소실되었다가 19세기에 다시 동학과 정역사상 등의 발흥과 함께 새로운 차원의 우주 생성원리로 부활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 부활이 19세기 도시형 탈춤과 깊은 연관을 지녔다는 점을 주목한다.



김씨는 이처럼 세 가지 원리가 합쳐진 민족미학의 특성은 이질적이고 대비되는 것들이 이중적으로 결합되는 ‘교호결합’의 구조를 이루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유목민적인 세계화와 민족적·지역적인 정착성 등의 상반된 것들이 서로 보완적인 관계로 어우러지는 것으로, 그가 말하는 ‘율려’라는 것이 된다. 취발이와 말뚝이, 양반과 노장이 서로 대비되는 탈춤은 바로 이런 교호결합 구조를 잘 보여주고 있다.

김씨는 탈춤이 이런 특성을 바탕으로 ‘환’(環·고리)이라는 민족미학의 핵심 주제를 지닌 점을 강조한다. 이 ‘환’은 동시에 탈춤에서 극적 진행의 생성구조로서 과거와 미래가 현재 속에 살아 있는 탈춤판만의 독특한 시간을 생성한다. 탈굿의 열두 거리가 따로따로이면서 끝나는 점과 시작점이 동일한 것이 이 순환하면서 확대되는 환의 원리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시간구조 속에서 집단적 신명이 순환하고, 결국 사람들의 정신 깊은 곳에 있던 원한이나 상처들이 치유되는 굿 기능이 생겨난다. 탈춤은 바로 이런 점에서 단순히 즐기는 단계의 예술을 넘어서 치유를 통한 변화를 이끄는 민족예술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김씨는 역설한다.

--한겨레 구본준 기자 2004. 2. 21.


탈춤의 민족미학

"탈춤을 추자"고 노래하던 젊은이들이 있었다. 외래문화의 중독상태에서 벗어나 우리 것을 알자는 욕구가 터져나온 1970년대 대학 마당에서였다. 탈춤만큼 한민족의 민중의식을 잘 표현하고 민중의 위치에서 사회를 비판한 극도 드물었다. 군부독재 아래 억눌린 한국사회에서 대학생들이 탈춤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신명과 풍자와 해학의 힘이 바로 우리 민족의 정신이었다.

김지하(63.사진) 시인은 서울대 미학과 시절에 동료 조동일, 후배 채희완씨 등과 함께 누구보다 앞서 깬 의식으로 한민족의 원형으로서 탈춤을 연구하고 실연했다. 그로부터 40여년이 흘러 김 시인이 책을 한 권 썼다. 탈춤 속에 깃든 민족미학을 꿰뚫는 강의록이다. 1999년 부산에서 민족미학연구소를 연 채희완 소장의 청으로 열었던 여섯 차례의 공개 강의를 정리한 책은 다소 어려우면서도 한국과 동아시아 미래의 열쇠를 담금질하려는 노시인의 뜨거운 마음을 느끼게 한다. 2002년 여름, 길거리에서 '태극과 궁궁'을 외치고 춤추던 7백만의 '붉은 악마'와 '촛불'에서 시인은 후천개벽의 조짐을 보았다며 이렇게 말한다. "풍수나 기론(氣論)과 미학이 합일하는 새로운 해석학으로서의 '생명학'이 드디어 나타날 때가 된 것이다."

김 시인은 탈춤이 '환(環)', 즉 고리에서 일어난다고 본다. 판을 이뤄 집단적 신명이 순환하면서 확대되는 고리, 또 그 둥근 시간 속에서 과거와 미래가 바로 현재 속에 생동하는 살아 있음이 탈춤의 생성원리 '환'이라는 것이다. 그 순환은 반복되고 확장되면서 무의식적으로 억압된 그림자를 들추어내는 수단이 되는데 탈춤이 관객이나 동네 사람을 집단적으로 치유하는 굿, '살판'이 되는 까닭이다. '춤의 판-시간, 탈춤의 마당-공간, 탈.몸.춤-육체, 눈-시각, 불-조명, 신-진화의 여섯 개 장으로 탈춤의 민족미학을 설명한 시인은 자문자답한다. "이 모든 이야기를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까? 없다. 그러나 그 언저리까지 갈 수는 있을 것 같다. '기운생동(氣韻生動)'이다."

--중앙일보 정재숙 기자 2004. 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