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우리 앞에 놓인 김지하 사상의 집대성!
탁월한 시인이자 사상가인 김지하의 글 원고지 7,500여 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을 추스리고 다시 다듬어 철학/사회/미학 부문으로 나눈 [김지하 사상전집]. 1권 철학사상, 2권은 사회사상, 3권은 미학사상에 관한 글을 담았다. 김지하 시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본(正本)의 역할을, 사상적 공황을 겪고 있는 이 혼돈의 시대에 우리의 사상적 중심을 찾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화두가 될 것이다.
왜, 지금 다시 ‘김지하’인가?
김지하 시인이 우리 문단에 등장한 1969년 이래 한국문학은 김지하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그것은 문학의 사회윤리화로 대변되는 그의 민족민중문학론과 문화론의 영향과 파장이 그 당대는 물론 지금에 이르기까지 어떤 식으로든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한국문학의 새로운 문법과 미학체계라고 말할 수 있는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에네르기와 성과 때문이다.
어느 누구에게 부정되고 극복되기에 앞서, 그는 자신을 대상으로 하여 끊임없이 반역과 쇄신을 해온 살아 움직이는 현재진행형의 시인이자 사상가이다. 그와 동시에 그는 파괴적이고 음험한 일방통행식 근대화에 맞서, 자신의 가능성을 펼쳐볼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창졸간에 청산되어야 할 과거의 유물로 내몰린 전통사상의 계승과 혁신을 자각하고 육화했던 최초의 시인이다. 또한 일찍이 근대적 삶의 억압성과 부정성을 포착하고 맹목적인 근대 추종이나 낭만화된 근대 부정을 넘어 그것을 우리 역사의 공동체적 경험과 자산 안에서 통일할 것을 의식적으로 모색하고 탐구해 온 선각자였다. ‘생명운동’으로 대표되는 그의 문학적,사상적 여정은 본받을 만한 동.서양의 귀중한 정신적 자양을 흡수하면서도 언제나 그 중심을 초지일관하게 우리의 사유체계와 삶에 뿌리를 둔 ‘줏대 있는(주체적인) 조선사람’이기도 하다. 김지하로 인해 비로소 우리는 모방과 수입에 급급한 한국문학 내지 한국문화가 응전력과 도전력을 갖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지금 다시 김지하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세계화’로 명명된 미국 자본주의의의 부도덕한 패권주의와 함께 온갖 모순과 혼돈으로 점철된 21세기 초두의 세계사적 상황 속에서 우리의 동일성과 주체성을 어떻게 세워나가야 할 것인가, 우리 인간들은 어디로 가고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김지하가 비록 답을 던져주지는 못한다 할지라도(지금 과연 누가 그 답을 가질 수 있겠는가?) 우리는 김지하로부터 그러한 사유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다시 김지하를 찾아야 하는 의무이자 임무이다.
[김지하 사상전집] 발간의 의미
지금까지 김지하는 시인으로서뿐만 아니라 굴곡 많은 당대 현실을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 많은 담론을 내놓았다. 그의 시적 상상력에 의해 조명된 역사는 비로소 어두운 지하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생명을 가지게 되었다.
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나 후천개벽의 혁명적 사상가 강증산이 동학농민전쟁의 숨은 그림자로서가 아니라 한국사상사에서 가장 뜨거운 맥박으로 다시 부활한 것도 김지하라는 탁월한 시인에 의해 비로소 가능했던 일인지 모른다. 그의 상상력은 살아 있는 역사와 맞닿아 있으며, 고난 많았던 당대 현실의 모순과 맞서 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사상적 모색은 편협한 민족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 세계사의 보편적 문제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그러므로 김지하의 사상은 한국현대사가 낳은 가장 독특한 사상이자 동시에 가장 전통적이며 가장 세계적인 사상인지도 모른다.
‘생명운동’에서부터 ‘율려운동’까지 굽이치는 산맥과도 같은 그의 사상적 역정!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그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나 심층적인 연구는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있다 해도 단편적인 것뿐이었다. 이것은 후학 연구자들의 게으름에도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미비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사상적 궤적을 살펴볼 수 있는 기존의 산문집들은 대개가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묶여져 나온 것이 많았고, 그런 결과 중복되거나 파편처럼 혼자 흩어져 있는 것이 적지 않았다.
이것은 온몸으로 역사와 맞부딪치며 일구어낸 그의 사상적 성과나 담론이 던진 중요성에 비추어볼 때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실천문학사에서 지난 2년간에 걸쳐, 지금까지 나온 단행본을 취합하여 ‘김지하사상전집 발간 편집위원회’가 일차로 가려 뽑은 것을 저자의 검증과 교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흩어졌던 글을 추스리고 중복되는 것은 쪼고 다시 다듬어 200자 원고지로 7,500여 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을 철학/사회미학 부문으로 나누어 [김지하 사상전집]을 발간하게 되었다.
이 전집이 김지하 시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연구자들에게 명실공히 ‘정본(正本)’의 역할을 다하기를 바라며, 더 나아가서 동.서양 간에 사상적 공황을 겪고 있는 이 혼돈의 시대에 우리의 사상적 중심을 찾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화두가 되기를 바란다.
[김지하 사상전집]의 구성
[김지하 사상전집]은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권은 철학사상, 제2권은 사회사상, 제3권은 미학사상에 관한 글을 담았다.
제2권 [김지하의 사회사상]
제2권은 생명, 환경, 자치·통일로 나뉜다.
사회현상에 대한 사유와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 그리고 새로운 세계관을 모색하는 글을 모았으며, 나아가 환경운동의 사상적 기초를 살펴보면서 새로운 미래의 생명공동체가 담지해야 할 자치와 통일에 관한 글을 담았다.
특히 4부에서는 저항적 지식인으로서의 김지하 시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1964년 대일 굴욕외교 반대투쟁에 참가하여 첫 옥고를 치르게 되는 [조(弔) 반민족적·비민주적 '민족적 민주주의']를 비롯하여 민청학련사건 당시 법정에서 최후 진술한 [나는 무죄이다]가 수록되어 있다. 또한 자신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낸 ['나는 도적' 고백운동 벌이자]에서는 사상가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를 읽을 수 있으며, 이 글을 통해 인혁당사건의 조작과 관련자들에 대한 고문 사실을 폭로한 [양심선언]은 고 조영래 변호사가 작성한 것으로 밝혀져 이번 전집에서 제외하였다.
이 밖에 1부에는 '아니다-그렇다'의 '불연기연론'을 펼친 [개벽과 생명운동]을 비롯하여 동북아 생명공동체의 건설을 인류 공생의 출발로 보는 [동북아 생명공동체와 새 문화의 창조] 등 생명사상에 관한 글이 수록되었고, 2부에서는 [생명과 환경] [환경에서 생명으로] [주부와 살림운동] 등의 글을 통해 전 지구 차원의 생태계 파괴와 환경문제를 제기하고 여성 문제를 비롯한 생활론을 펼친다. 3부에는 [생명과 자치] [뭉치면 죽고 헤치면 산다] [자치와 연대] [이제 통일의 철학이 필요하다] 등 자치제도 및 통일문제에 관한 글이 실려 있다.
김지하
1941년 전남 목포 출생으로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했으며, 1969년 <시인>지에 「황톳길」 등 다섯 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1964년 대일 굴욕외교 반대투쟁에 참가하여 첫 옥고를 치른 이래, 8년간의 투옥, 사형 구형 등의 고초를 겪었다. 독재권력에 맞서 자유의 증언을 계속해 온 양심적인 지성인으로서, 동학사상을 비롯한 한국 전통정신의 유산을 오늘의 상황 속에서 새롭게 변용시키고 재창조하고자 노력하는 사상가로서 독보적인 업적을 이룩했다.
1975년 로터스 특별상, 1981년 위대한 시인상과 크라이스키 인권상, 1993년 이산문학상, 2002년 정지용문학상과 만해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시집으로 『황토』, 『타는 목마름으로』, 『애린』, 『검은 산 하얀 방』, 『이 가문 날에 비구름』, 『별밭을 우러르며』, 『중심의 괴로움』, 『화개』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밥』, 『남녘땅 뱃노래』, 『살림』, 『생명』, 『동학이야기』, 대설(大說)『남』,『예감에 가득 찬 숲 그늘』, 『김지하 사상전집』(전3권) 등이 있다.
제2권__사회사상
제1부__생명
1. 개벽과 생명운동
2. 인간해방의 열쇠인 생명
3. 동북아 생명공동체와 새 문화의 창조
4. 풀뿌리 민주주의와 생명
5. 현대문명의 위기와 전환기의 세계관
제2부__환경
1. 환경과 풀뿌리 민주주의
2. 생명과 환경
3. 생명과 연기
4. 주부와 살림운동
5. 환경에서 생명으로
6. 환경운동의 사상적 기초
7. 어란이여!
제3부__자치·통일
1. 생명과 자치
2. 뭉치면 죽고 헤치면 산다
3. '기우뚱한 균형'에 관하여
4. 옹치격
5. 자치와 연대
6. 시장의 성화
7. 지역이라는 틈
8. 빈틈을 타고
9. 우리 가슴속의 분계선
10. 이제 통일의 철학이 필요하다
제4부__기타
1. 나는 무죄이다
2. 조 반민족적·비민주적 '민족적 민주주의'
3. 미야다 마리에 여사에게
4. 공해
5. 말매
6. 기막힌 사람들
7. 도적놈들!
8. '나는 도적' 고백운동 벌이자
9. 콩나물
10. 사람을 거룩하게 드높이라
11. 멸치
12. 님
13. 광고
14. 모심에 관하여
15. 젊은 이기주의자를 위하여
'김지하 사상'의 거대한 뿌리
초지일관(初志一貫), 혹은 일이관지(一以貫之).처음에 먹은 한 뜻이 끝까지 계속된다는 이 말은 김지하(61) 시인의 파란만장한 삶의 역정을 꿰뚫는 표현이다. 시와 사상으로서 끊임없이 인간과 사회의 변혁을 꿈꿔온 김씨는 변화하는 시대에 대한 실천, 자신의 경험으로써 그 첫 뜻을 일관해오고 있다. 그래 우직하게 젊은 날의 이념에 충실하고 있는 이들에겐 변절로 몰린 적도 있지만 김씨의 시와 사상은 ‘생명’혹은 ‘살림’으로 일관하며 그 깊이를 더해 간다.
이러한 김씨의 사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김지하 사상전집』이 최근 출간됐다. 1964년 대일굴욕외교를 반대하다 첫 옥고를 치른 시절의 '조(弔)반민족적. 비민주적 민족적민주주의'에서 올 6월의 붉은 악마 현상을 다룬 '새 세상을 연 태극의 축제'에 이르기까지 지난 40년 가까이 단행본이나 강연 등으로 발표한, 2백자 원고지로 모두 7천5백장 가량 되는 방대한 글을 철학사상. 사회사상. 미학사상의 3권으로 나눠 정리했다.
제 1권에는 동학사상을 비롯해서 80년대의 생명사상, 거기서 발전. 심화된 율려사상을 싣고 있다. 2권에는 우리 사회와 문명에 대한 비판, 그리고 새로운 세계관을 모색한 글들을 모았다. 3권에는 '풍자냐 자살이냐'등의 문학론, '흰 그늘의 길'. '저항과 명상'등 미학론과 70년대 저항시인으로 쫓기며 투옥되며 남겼던 각종 문건과 일기 등을 담았다.
김씨의 사상은 풍류. 율려. 동학 등 우리와 동양의 고대 사상에 기초를 두고 있다. 여기에 테야르 드 샤르댕. 질 들뢰즈 등 서양의 최신 사상을 끌어들여 민족. 동양을 초월한 범 인류적 보편성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98년 율려학회를 만들어 우리의 고대 사상과 전통문화를 창조적으로 해석해 사람과 우주만물이 공생할 수 있는 21세기 새로운 문명의 빛을 찾으려 하고 있다.
"시인이 되기 전 나의 꿈은 요기-사르(내면적으로는 수행자이고 외면적으로는 혁명가)였습니다. 명상과 변혁의 통일자, 대사회적 활동과 자기 수양의 보완이 동학에 다 들어있어 동학사상에서 출발, 성통공완(性通功完, 성품을 도통하고 세상을 바꾸는 공을 이룸)의 신선혁명가를 꿈꾸며 이곳 저곳을 찾아 헤맸습니다. "감옥에서, 혹은 쫓기는 암자나 성당에서 김씨는 깊은 명상에 빠졌다. 그리고 변혁의 현장에 그는 몸과 글로 앞장섰다. 그 명상의 빛이 시의 넋이 됐고 그 넋, 삶과 우주의 무늬는 그의 사상으로 구체화되며 60년대 이후의 반독재, 90년대 이후의 생명환경 운동,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대안문명 찾기 담론의 전위가 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는 소란스럽고 한반도도 시끄럽습니다. 근본적인 삶의 대전환 없이는 이 혼란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진보도 개혁도 이젠 이 근원적인 변화에 대한 깊은 사유와 본격적인 실천 없이는 모두 헛소리입니다. 한 줄의 시행(詩行)에서 한 번의 상행위(商行爲)에 있어서까지도 관통되는 인간적 신뢰와 우주적 공경 없이는 새 인류 문화는 건설되지 못합니다." 명상가이자 혁명가로 뭇 생명에 대한 공경과 살림, 곧 모심으로서 김씨의 시와 사상, 삶은 초지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환갑 지난 나이에 걸맞게 사회 현장의 앞자리는 후배에게 내어주고 모심의 시와 사상에 더 깊이 들어가겠다고 김씨는 밝힌다.
--- 중앙일보 이경철 문화전문기자 (2002년 10월 18일 금요일)
"내 본질은 詩人… 달라진 건 없다"
2002년 들어 시인 김지하(金芝河 61)에게 다시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고 있다. ‘정지용 문학상’ ‘만해 문학상’등의 수상 소식이 잇따랐고 시인 스스로도 “지난 시집 이후 5~6년 동안 기다려준 나의 독자들에게 바친다”며 새 시집 『화개(花開)』를 펴냈다. 그리고 실천문학사는 200자 원고지 7500장 분량으로 그의 철학, 사회, 미학사상을 묶어 『김지하 전집』(전3권)을 출간했다. 이문구 신경림 백낙청 백기완 이부영 김홍신 이종찬 김민기 안치환 등 각계 인사가 참석한 25일의 전집 출판기념회는 성황이었다. 10년 가까운 투옥생활을 마치고 1980년 출옥한 그가 ‘생명운동’과 ‘율려(律呂)사상’을 얘기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를 괄호 속에 넣어뒀었다. 그런데 시대가 달라진 걸까, 아니면 그가 달라진 걸까.
이 질문에 그는 “나는 달라진 게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단지 “아전인수인지는 모르지만, 최근의 문화적 지향과 내 담론이 친연성이 있는 것 같다”라고 허두를 뗐다. 이 ‘철학적 시인’이 보기에 최근 우리 사회는 여러가지 현상은 복잡다단해 졌지만, 그것을 관통하는 중심 담론이 없다. 이런 가운데 사람들은 불확실성 속에서 방향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고, 생명, 생태, 환경이라는 화두가 많은 사람들에게 주요 관심사가 됐으며, 극좌와 극우가 모두 비난 받는 가운데, 좌와 우를 보듬어 안는 게 최근의 유행이 됐다는 것이다. 길게 얘기하기를 꺼렸지만, “80년대 초, 5공 타도가 바쁜데 무슨 소리냐며 내게 쓴소리를 했던 인물들이 이제는 다 환경주의자, 생명주의자, 문화주의자가 되어있더라”는 말도 덧붙였다.
“당신이 제기한 담론에는 제대로 된 실증적 논문이나 검증된 철학이 없음을 꼬집는 학자들이 많다”고 잠깐 토를 달았다. “내가 그렇게 바보가 아니다”라는 대답이 즉시 튀어나왔다. “내가 쓴 글들은 이론이 아니라, 이론을 하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그들을 촉발시키기 위한 초급 담론”이라는 것이다. 시인은 “멕시코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옥타비오 빠스도 수십 권의 산문 사상집을 냈지만 거기에 논증이나 실증은 없다”면서 “빠스가 그런 글을 발표하는 건 괜찮고, 내가 쓰는 것은 불륜이냐”고 되물었다. 그는 “엄정하고 꼼꼼하게 전거를 대가면서 논문을 쓰라면 충분히 쓸 수 있다”면서 “단지 그쪽은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할 뿐이니 학교에 계신 분들은 밥그릇 걱정을 안해도 될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시인은 “나는 우리 삶에 적합한 새로운 길을 찾아보고 싶은 사람일 뿐”이라며 “남들이 ‘변절’이라 비아냥대건 말건, 앞으로도 그 길을 찾는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일산의 한 오피스텔에서 한 두시간씩 난(蘭)을 치고, 독서와 글쓰기, 산책 등으로 하루를 보낸다는 그는 “이제 집단에 들어가 일 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했다.
그는 자신을 두고 ‘정치적 시인’ ‘철학적 시인’ 등 ‘시인’ 앞에 붙여주는 형용사들에 대해서도 부담스럽다고 했다. “4~5년 전인가 변산에 내려갔다가 바다 위에 뜬 달을 보며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다”면서 “나는 철학가도, 사상가도, 혁명가도 아니고 본질은 시인이라는 깨달음이었다”고 했다. 시인은 “아마 몇 년 동안은 이 사회의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그 이후에는 시골에 내려가 흙집에 엎드려 시나 쓰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말을 맺었다.
--- 조선일보 어수웅 기자 (2002년 10월 28일 월요일)
격랑과 맞서며 파도를 안았다
시인 김지하(61) 씨의 사상적 궤적을 담은 책 『김지하 전집/사상편』(전3권)을 읽는 느낌은 울창한 숲 속을 걷는 기분이다. 실천적 문학의 향도가 되었던 문제의 문건 ‘풍자냐 자살이냐’(70년), 민청학련 사건 법정 최후진술 ‘나는 무죄이다’(74년), 나아가 질 들뢰즈, 제임스 러브록까지 무시로 인용하고 있는 최근의 생명.율려사상을 담은 글까지 넘어가면, 시인의 삶을 관통하는 한줄기 화두가 무엇인지 한 손에 들기가 쉽지 않다.
때론 반독재투쟁을 독려하는 선동가의 모습으로, 판소리 가락을 현대시어로 되살린 탁월한 시인의 음성으로, 또 영성운동의 전도사인 듯, 서양의 합리주의 전통과 동양의 인본주의 정신을 조화시키려는 사상가의 모습으로 그는 다가온다. 이 모든 것을 한 데 모은 시인은 어떤 사람일까. 한국문학사를 구성할 때 비켜갈 수 없는 시인이자, 한국 현대정치사회사를 이해하는 길목에서 어김없이 만나야 하는 김씨의 생각은 어디에 닿아 있을까. 그를 아는 것은 현대 한국인의 고민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기도 하다.
70, 80년대 민주화 투쟁에서부터 2000년대의 생명운동, 환경운동에까지 이어지는 시인의 사유는 파란많은 정치사를 거쳐온 한국인의 고뇌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경기도 일산에 있는 시인의 거처에서 그 대답을 들어봤다. 자신의 삶이 “뒤죽박죽 인생이었다”고 회고하는 그는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건강이 좋아 보입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하루에 한번씩 정발산으로 산책을 나갑니다. 또 한달에 두어 번 원주 가서 공부모임에 참석하며 지냅니다.”
―본인의 사유를 관통하는 단어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이번 전집 머리말에도 썼지만 ‘모심’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이 세계가 허공이라면 허공을 모시고 있는 것이 생명입니다. 그 허공은 신이 될 수도 있고 아이가 되기도 하고 부모가 되기도 합니다. 세계를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모신다는 말 뜻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모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기독교에서 보면 사랑이란 말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모심은 높여서 사랑한다는 뜻이 강합니다.”
―지금 ‘모심’이라는 다분히 추상적인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한때, 우리에게는 합리적이고 분석적인 사유가 중요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른바 운동권의 논리인데요, 좋은 영향도 있었지만 세상에 나쁜 영향도 끼쳤다고 봅니다. 거기서는 윤리적 태도를 배울 수 없습니다. 또 자신에 대해서 폭력적으로 혹사하기도 하지요.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싸우느라 잊어버린 내면적인 평화, 모심을 회복하면서 살아야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나도 생각은 그렇게 하는데 모시며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누구와 떠들다보면 그새 다 잊고 옛날처럼 잘난체를 하게 되지요. 너무 거칠게 살았다는 후회도 듭니다.”
―연보를 다시 보니 선생님의 삶이 참 무거웠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생이 가장 무거울 때는 언제였습니까.
“가장 힘들었던 때가 74년 민청학련 직전일 겁니다. 막 결혼하고 가정의 맛을 잠깐 맛볼 때였지요. 그때 처가 첫 아이를 가졌어요. 그런데 유신은 반대해야 되겠고, 당시에 나서려면 사형선고를 각오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가기 싫었어요. 그 전의 필화사건을 겪을 때는 신명 같은 것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가기 싫더군요. 안 했으면 좋겠는데 억지로 결단을 내렸지요. 지금 보면 그때 나온 시들이 가장 정직합니다. ‘빈산’ 등을 그때 썼지요. 죽음과 절망의 느낌 속에서 마지막 결단을 내리는 순간을 경험하니까 시가 정직해지더군요. 아내에게 제일 미안했지요.”
―미안하다는 말을 직접 하시는지요.
“과거에 너무 무심하게 대했기 때문에 지금은 많이 깨닫고 삽니다. 물결치는 대로 바람부는 대로 가다가 정신을 차리고 스스로 가다듬게 되는 건 순전히 아내 덕분입니다. 지금은 아내의 판단에 의지하고 힘을 얻지요. 내 스승은 마누랍니다.”
―사상전집을 읽고 있으면 사상의 진폭이 심해서 선생님의 사유가 어디를 지향하는지 가늠키가 쉽지 않습니다. 스스로 어떻게 정리할 수 있는지요.
“‘요기―사르’란 말이 있습니다. 요기는 인도의 수도승, 즉 내면을 지향하는 수도사를 뜻하고, 사르(ssar)는 러시아 말로 직업혁명가를 뜻합니다. 때때로 나는 ‘요기―사르’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면으로는 영적인 수도를 원하지만 외면으로는 세상의 변혁을 꿈꾸는 자였던 거지요. 사실 이런 생각은 20대부터 계속 해왔던 것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도 편하고, 세상도 바꿀 수 있는가란 생각을 했지요. 그러다 보니 마르크스도 만나고, 불교에도 심취하고, 가톨릭에도 다가가고 동학에도 입문하게 된 거지요. 굳이 내 일생을 관통하는 주제를 말하라고 한다면, 이런 양쪽을 다 선취하는 것입니다. 혹시 내 사상전집에 등장하는 사유의 진폭이 크다면 그런 내 취향 때문일 겁니다.”
―그 두가지를 다 이루려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조화로운 상태를 말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분열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만.
“내가 한때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은 것도 그것이 분열로 다가왔기 때문일 겁니다. 종교적 환상으로부터 나온 분열이란 진단도 받았지요. 마지막 감옥에서 참선을 했는데, 100일째 되는 날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습니다. 이걸 두고 사람들은 내가 백일기도를 했다고도 하는데, 그건 아닙니다. 어떻게 사람 죽으라고 백일기도를 하겠습니까. 여하튼 그때 인간의 내면이 얼마나 복잡한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 내면을 발견한 뒤 출옥해서 술도 많이 먹고 괴로워했습니다. 그 후 나온 이야기가 생명론, 동학, 생태이야기였지요. 그런데 그 때가 5공 시절이었는데 그런 소리를 하니 변절자라는 둥 난리가 났지요.”
―감옥에서 새로운 방향이 정해졌군요.
“그때 참선 중에 벽이 들어오고 천장이 내려오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여하튼 그 곳을 벗어나야겠는데 방법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봄이 되어 쇠창살 사이로 민들레씨가 날아와 꽃을 피우고, 벽돌 틈마다 조그만 풀들이 꽃망울을 피워올리더군요. 생명이란 없는 곳이 없다는 걸 느끼자 내가 감옥 안에 있든 밖에 있든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도 듭디다. 그때 허공에서 ‘생명 생명’하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일종의 환청이 들린 거지요. 그때부터 내 사유는 내면의 문제에 무게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출옥 후가 5공화국 전두환 정권 시절이었습니다.
“모두 5공 타도를 외칠 때인데, 나는 오히려 안쪽으로 기운겁니다. 그러면서 생명운동 환경운동 등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지요. 밖에 있다가 다시 안에 있다가 하면서 생각이 진행한거지요. 배가 기우뚱거리면서 앞으로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기우뚱거리며 간다’가 앞서 말씀하신 ‘모신다’는 것보다 훨씬 구체적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기우뚱한 균형이 중요하지요. 조화와 균형을 이루게 되면 논리적으로는 수평을 이룰테지만, 현실에서는 어느쪽으로든 기울어지게 마련이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언제나 생명을 중심삼아 내면과 외면의 조화를 꿈꿔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 가운데 한때는 외면으로 기울었다가 또 내면으로 기울기도 한거지요.”
―계획은.
“지금 구상하고 있는 책은 딱 한권입니다. ‘모심’이란 책을 꼭 쓰고 싶어요. 그것만 끝나면 난초나 그리고 은퇴해야지요. 원주로 내려갈 작정입니다.”
-- 문화일보 배문성 기자 (2002년 10월 21일 월요일)
김지하의 사상
시인 김지하씨(61)가 평생 몰두해 온 철학 사회 미학사상을 『김지하 전집』(전3권•실천문학사)으로 묶어냈다.
원고지 7500장 분량의 이 전집은, 그동안 중복되거나 흩어져있던 그의 글을 모아 정리한 것으로 김씨의 사상적 궤적을 아우르는 ‘정본(正本)’의 의미를 지닌다.
김씨는 판소리에서 우리말의 리듬을 찾아 이를 바탕으로 민중문학 작품을 쓴 시인. 1970년 ‘오적(五賊)’을 발표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투옥됐고,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다시 투옥,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무기로 감형됐다. 김씨는 옥살이를 하던 시절, 동학과 증산도를 접한 뒤 민중에 뿌리를 둔 한국 사상에 천착해 왔으며 민중운동 혁명론 막시즘 등을 재해석하는 작업에 매달려 오기도 했다.
제1권 『철학사상』에는 김씨의 철학적 사유의 단초라 할 수 있는 동학사상을 비롯해 1980년대에 펼친 생명운동, 1990년대말 제창했던 율려사상 등에 관한 글이 수록됐다.
저항적 지식인으로서 그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제2권 『사회사상』에는 사회현상에 대한 사유와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 새로운 세계관을 모색한 글을 모았다. 첫 옥고를 치르게 했던 ‘조(弔) 반민족적․비민주적 민족적 민주주의’와 민청학련 사건 당시 법정에서 최후 진술한 ‘나는 무죄이다’가 실렸다. 이어 제3권 『미학사상』에는 김씨의 문학론과 미학론, 1970년대의 ‘저항시인’ 김지하의 일기 등이 담겼다. 이번 전집 출간에 대해 김지하씨는 “나는 스스로를 사상가나 이론가로 생각지 않는다. 내 글은 하나의 씨앗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내 글을 모아 정성스럽게 정리해 준 이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 동아일보 조이영 기자 (2002년 10월 18일 금요일)
'두 거인' 高銀과 芝河 전집 나왔다
고은 전집, 김지하 사상전집이 나란히 출간됐다. 고은 시인은 오랜 기간에 걸쳐 워낙 방대한 분량의 작품을 남겼다는 점에서, 김지하 시인은 폭넓고 변화무쌍한 사상적 편력을 지녔다는 점에서 두 ‘거인’의 전모를 알 수 있는 반가운 기획이다.
◇김지하 사상전집(3권.실천문학사)
“나 자신을 사상가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이론가가 아니어서 나의 글들은 이론의 단초를 제안하는 초급 담론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후배들이 정성을 들여 전집을 만들어준 것이 고맙고 기분 좋다.”
김지하 시인은 이렇게 자신을 낮췄으나 그가 온몸으로 역사와 부딪치며 일궈낸 사상은 한국현대사가 낳은 가장 독특하고 전통적이며 세계적인 사상으로 평가받는다. 이번 전집은 민주화 투쟁에서 생명운동으로 이어지는 그의 사상적 편력과 시인으로서의 미학적 관점을 살펴볼 수 있는 종합 자료집이라고 할 수 있다.
제1권 철학사상은 그의 사유의 단초라고 할 수 있는 동학사상을 비롯해 1980년대 출옥 이후 펼친 생명운동, 1990년대 말 오랜 병고에서 깨어나 모색했던 율려사상 등에 관한 글을 실었다. 그는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나 후천개벽의 사상가인 증산 강일순을 한국 사상사를 잇는 역사적 인물로 부활시킨다. 또 동학에 관한 독자적 해석을 바탕으로 테야르 드 샤르댕, 질 들뢰즈, 루돌프 슈타이너, 제임스 러브록 등 서양사상을 끌어들여 생명사상과 율려사상을 펼친다.
제2권 사회사상은 사회현상에 대한 사유와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 새로운 세계관을 모색한 글들로 엮어졌다. 첫 옥고를 치르는 빌미가 됐던 ‘조(弔) 반민족적․비민주적 ‘민족적 민주주의’’를 비롯해 민청학련 사건 당시 법정에서 최후 진술한 ‘나는 무죄이다’ 등 저항적 지식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글들이 실렸다.
제3권 미학사상은 ‘풍자냐 자살이냐’ ‘흰 그늘의 길’ ‘예감에 가득 찬 숲그늘’ 등 그의 독창적 미학론을 살필 수 있는 글들을 모아놓았다. 1970년대 저항시인으로서 남겼던 문건들과 일기도 볼 수 있다.
--- 경향신문 한윤정 기자 (2002년 10월 18일 금요일)
질곡의 현실을 향한 외침
김지하. 그는 때로 우리 현대문학과 사상을 얽어매는 ‘족쇄’인가 하면 ‘해원’의 씻김굿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그의 존재를 통해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의기를 격발하고,생명의 존엄에 대한 성찰의 계기를 갖게 했는가 하면, 현실이 그의 존재에 주눅들어 발양(發揚)의 몸짓을 하기까지 겪어야 했던 의식의 분란도 결코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김지하를 새삼 떠올리는 것은 미국식 자본주의의의 부도덕한 패권주의가 배태한 치명적인 대립과 혼돈 상황에서 우리의 동일성과 주체성 을 어떻게 세워나가야 할 것인가, 또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이고도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서다.
이런 김지하(61)시인의 사상체계를 정리한 『김지하 사상전집』(전3권, 실천문학사)이 처음으로 출간됐다. 우리 시대가 일정 부분 부채를 진, 또 시대에 무거운 짐을 지운 까닭에 그의 사상전집은 세간의 관심을 끈다.
김씨는 “사상이 뭔지도 모르는 내가 이런 책을 펴내 또 욕을 먹겠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며 전집 출간에 따른 소감을 밝혔다.
그는 노자의 ‘불소비도(不笑非道)’를 거론하며 “이렇게 스스로 위로하고 산다”고 담담하게 말했다.그 와 얘기를 나누면서 문득 ‘그를 폄하하는 사람도, 외경하는 사람도 그를 모르기는 마찬가지’라는 속평(俗評)이 떠올랐다 .
2년여 준비를 거쳐 출간된 그의 사상전집은 그의 굴곡진 사상 여정을 체계화할 수 있는 근거로서 전범적 텍스트라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책은 권별로 철학․사회․미학사상 등 단일 주제를 담았다.
1차로 200자 원고지 7500장 분량을 가려 꾸민 전집 중 1권 철학사상 편에는 그의 철학적 사유의 단초가 된 동학사상을 비롯, 율려사상과 수운 최제우, 해월 최시형, 증산 강일순 등의 민중사상과 정역사상을 해석한 전통사상 등을 담았다.
2권 사회사상 편에는 사회현상에 대한 사유와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 그리고 새로운 세계관을 모색하는 글과 관련자료 등을 실었다.
지난 64년 대일 굴욕외교 반대투쟁때 첫 옥고를 치른 빌미가 됐던 “조(弔) 반민족적.비민주적 ‘민족적 민주주의’”를 비롯한 각종 자료도 함께 실었 다.
3권 미학사상 편에는 문학론, 미학론, 예술론으로 나눠 주제에 따른 담론은 물론 이른바 ‘저항시인’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각종 문건과 일기․소품 등을 실었다. 잘못된 연보도 모두 바로잡았다.
김씨는 “나의 사상이라는 게 대부분 초급 담론”이라며 “걸출한 이론가들 이 이런 문제들을 깊이있게 다뤄 우리 사상이 체계를 바로 세우고 또 깊이를 더하는 데 작은 기여라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실천문학사 김영현 사장은 “그동안 그의 이름으로 많은 책이 나왔으나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묶여, 그가 질곡의 현실에 온몸으로 맞서며 토해낸 사상 혹은 문학적 담론을 모두 담아내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것이었다.”고 이번 출간의 배경을 설명했다.
--- 대한매일 심재억 기자 (2002년 10월 21일 월요일)
타는 목마름 기억인가 부활인가
시인 김지하(61) 씨의 사상을 담은 글들이 갈무리돼 700쪽 안팎의 두툼한 책 3권으로 묶여 나왔다. 200자 원고지로 치면 7500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사상전집’을 펴낸 실천문학사는 “『밥』 『남녘땅 뱃노래』 등 이미 출간된 십수권의 책과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산문들을 모아 중복된 것은 걸러내고 체계를 새롭게 짜 1년 남짓 작업 끝에 완성했다”며 “이 전집이 김지하 시인의 사상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정본’ 노릇 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김씨는 1964년 대일 굴욕외교 반대투쟁에 참가해 첫 옥고를 치른 이래 8년간의 투옥과 사형선고 등 가시밭길로 점철된 60~70년대를 보냈다. 이 시기에 그는 『오적』, 『타는 목마름으로』와 같은 ‘참여시’로 70년대 민주화 운동의 정신적 구심을 이루었고, 그 자신은 이로 인해 고난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 긴 수형생활을 끝내고 출감한 80년대에 그는 감옥 안에서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생명운동을 펼쳤다. 90년대 후반 이후 그는 새로운 문화운동으로서 ‘율려운동’을 폈으며 여러 강연과 모임에서 자신의 생각을 알려왔다.
하지만, 젊은 시절 그의 생각과 삶이 민주화를 열망한 사람들의 일치된 지지를 받은 것과는 달리, 장년에 들어서면서 그의 사상은 옹호자와 비판자를 동시에 낳으며 숱한 논란을 뿌려왔다. 가령, 시인 황지우(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씨는 “김지하의 위대한 사상은 극한의 고통 속에서 점화된, 성스러운 광기의 진리다”라고 높이 평가하는 반면, 홍윤기(동국대 철학과 교수)씨는 김씨의 최근 사상이 “상상력 고갈에 더해 급변하는 현실을 직시할 투지의 상실까지 겹친 한국 진보권 최대의 비극”이라고 혹독한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이번 전집은 그의 사상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알려줌으로써 좀더 정밀한 평가를 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게 됐다. 전집은 제1권 ‘철학사상’, 제2권 ‘사회사상’, 제3권 ‘미학사상’으로 편집돼 있다. ‘철학사상’ 편에는 동학, 율려, 전통 사상이 나란히 들어가 있다. 동학은 그의 철학적 사유의 실마리를 제공한 사상인데, 여기 실린 글에서 그는 수운 최제우, 해월 최시형, 증산 강일순 등의 민중사상과 김일부의 정역사상을 풀어 생명사상과 접목하고 민중적 실천의 원리를 끌어낸다.
그가 근자에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율려 사상’은 사유의 독창성을 인정하는 견해와 이해하기 어렵다거나 관념적이라는 견해가 맞부딪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전집 출간에 맞춰 지난 1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고대 중국에서는 사회변혁을 하려면 먼저 음악부터 바꾸었다”며 “그때의 음악이 우주 질서와 인간의 질서를 하나로 관통하는 율려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젊었을 때는 정치와 경제를 바꾸면 상부구조인 문화가 자연스럽게 바뀐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들어맞지 않았다”며 “이제는 문화에서 시작해 사회과학으로, 변혁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전집 제2권인 ‘사회사상’에는 생명, 환경, 자치․통일에 관한 글이 실려 있다. 특히, 이 권의 4부에는 그에게 첫 옥고를 안겨준 박정희 정권의 한일 국교정상화 비판 문건인 ‘조(弔) 반민족적 반민주적 ‘민족적 민주주의’’를 비롯해 1974년 민청학련 사건 당시 법정 최후 진술인 ‘나는 무죄이다’ 등 한 시대를 풍미한 글들이 수록돼 있다.
제3권 ‘미학사상’에는 문학론․미학론․예술론이 묶였다. 김수영 시인의 ‘풍자’의 의미와 그 한계를 논한 70년대 벽두의 평론 ‘풍자냐 자살이냐’를 비롯해, 최근의 미학이론을 담은 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 중 그의 최근 미학론을 풀어놓은 ‘흰 그늘의 길’ ‘예감에 가득 찬 숲 그늘’에서는 우리 전통 예술의 고유한 미학을 밝혀보려는 지적 탐구의 흔적이 짙게 배어 있다.
그는 전집 발간과 관련해 “여기 저기 끼적거렸던 글들을 모아 이렇게 정성스럽게 책을 만들어 준 것이 고마울 따름”이라고 겸손하게 감회를 털어놓았다. 또 “사상 전집이라고 하니까 체계화한 본격이론이 담긴 것 같지만, 그저 두서 없이 내놓은 초급담론일 뿐이며 앞으로 새로운 변혁이론이 탄생하는 데 촉매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일산으로 거처를 옮긴 뒤 시쓰기와 책읽기에 전념하고 있는 그는 “술과 담배를 끊고 하루 한시간씩 규칙적으로 산책을 하면서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실천문학사는 ‘김지하 사상전집’ 출판기념회를 오는 25일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중학동 한국일보사 13층 송현클럽에서 연다.
--- 한겨레신문 책과사람 고명섭 기자 (2002년 10월 19일 토요일)
'생명서 율려까지'… 김지하 사상전집 출간
1984년 겨울, 감옥에서 나온 김지하(61) 시인은 ‘생명운동’이라는 화두를 세상에 던졌다. 우리 민중사상의 뿌리를 찾아 나선 사상 기행의 시작이었다. 동학과 증산도의 길을 따라 그의 생각은 계룡산으로, 우금치로, 모악산으로, 황산벌로 옮겨갔다. 1990년대 말 오랜 병고 끝에 그가 이른 곳은 ‘율려(律呂)’였다.『김지하 사상전집』(전3권, 실천문학사 발행)이 출간됐다. 원고지 7,500매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을 철학, 사회, 미학 부문으로 나누어 묶었다. 전집 발간에 맞춰 25일 오후6시 한국일보사 13층 송현클럽에서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사상전집 제1권 『철학사상』에서 그는 동학의 최제우와 증산도 강일순의 사상을 독자적으로 해석하는 한편 테야르 드 샤르댕, 질 들뢰즈 등의 서양 이론을 넘나들고, 마침내 ‘율려’라는 개념에 다다른다. 23일 오후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그는 율려를 설명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율려는 음양의 조화를 말합니다. 우리 전통 음계에서 율(律)은 양(陽)이고 려(呂)는 음(陰)입니다. 우주와 인간의 관계를 가리키는 개념이기도 해요. 강증산은 ‘민중이 주인이 되는 세상은 율려가 다스리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지요.” 대립되는 것을 끌어안는 조화. 김씨가 이 혼돈의 사회에 온전하게 세워질 수 있는 중심으로 제기한 것이기도 하다.
제2권『사회사상』은 사회운동가로서의 그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글모음이다. 우리 사회와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 생명, 환경운동의 사상적 기초, 주민 자치의 실천방안과 통일에 요구되는 철학 등을 담았다. 저항적 지식인으로서의 그를 만날 수 있는 부문이기도 하다. 대일굴욕외교 반대투쟁에 참가해 쓴 조사 ‘조(弔) 반민족적 비민주적 <민족적 민주주의>’, 민청학련 사건 당시 법정에서 최후 진술한 ‘나는 무죄이다’ 등이 제2권 4부에 수록됐다.
제3권『미학사상』에는 문학과 미학, 예술에 대한 그의 사유가 담겼다. 그가 제시하는 미학 개념은 난해하다. “자기 내면의 무의식, 초의식을 따라가는 여행에서 찾아낸 질서의 빛, 고대로의 탐색 여행에서 찾아낸 유산을 새롭게 해석한 과거로부터의 빛, 이 두 빛이 미학의 핵심 관념이다.” 그의 생각은 그의 말보다 앞서간다.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김씨의 이야기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김지하 사상전집은 훌륭한 자료가 된다. 김씨는 “사상전집이라지만 내 얘기는 이론을 촉발하는 초급 담론”이라고 강조한다. “나는 학문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창작을 위한 상상력을 촉매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한 그이다. “노자에 ‘불소비도(不笑非道)’라는 말이 있소. 비웃음을 받지 않으면 그 시대의 사상이 아니라는 뜻이지. 무능한 사람이 자기 위안을 하는 말이겠지만”이라면서 김씨는 웃는다.
제3권에는 투쟁하는 시인으로 1970년대를 살았던 시절 남긴 각종 문건과 일기 등도 함께 실려 있다. 그때 그의 이름은 곧 반체제의 상징이었다. 시간이 그를 변화시킨 것 같다. “젊었을 적에는 토하듯이 시를 쓸 수밖에 없었지요. 고뇌할 사이도 없이 울컥 터져나오는 것 말입니다. 가령 (김)남주가 쓴 시가 좋은 작품이었는지, 칼 같은 시가 훌륭한 것인지 나는 이제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의 중심은 변하지 않았다. “4.19 혁명,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스러졌는지요. 그들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붙잡았던 정신의 근간을 찾고 과학적인 개념으로 세우고 싶어요. 나는 사상적 탐색을 통해 그들의 역사적 위상이 세워지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것입니다.”
--- 한국일보 김지영 기자 (2002년 10월 18일 금요일)
김지하 시인(61)은 시대적 상처를 많이 지닌 지식인이다. 그는 온몸으로 그 상처를 받아냈다. 몸은 부서져 온전하지 않았다.
시대와 불화한 데 따른 시인의 수난과 그에 대한 문학적 대응은 대체로 박정희의 통치기와 겹친다. 그는 1964년 6월3일 대일굴욕외교 반대투쟁에 가담해 4개월간의 감옥 체험을 한 이래 60,70년대를 거치면서 박정희 정권을 상대로 한 싸움을 한시도 멈추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 70년대는 박정희와 김지하의 대결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단연 그 뜨거운 저항의 상징이었다. 74년, 장남의 출생도 지켜보지 못하고 도피행각을 벌이던 시인은 민청학련사건 관련 혐의로 비상보통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형집행 정지로 10개월 만에 풀려난다. 하지만 인혁당 사건으로 다시 투옥된 그는 80년 자신의 적이었던 박정희의 죽음을 전후하여 생명사상가로 거듭났다. 옥방 창틀에 싹을 틔운 민들레를 보고서 생명의 신비와 소중함에 눈을 떴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이번에 『철학사상』『사회사상』 『미학사상』 등 3권으로 출간된 전집은 굴곡 많은 현실을 살아오면서 김지하가 쏟아낸 수많은 담론들을 묶은 것으로 시적 상상력에 의해 조명된 그의 사상적 궤적을 한 눈에 드러낸다.
그가 저항에서 생명으로 변모한 뚜렷한 계기는 지난 91년의 이른바 분신정국으로 알려져 있다. 젊은이들의 잇따른 분신을 거칠게 질타한 시인의 글이 신문에 실렸고,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변절의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그것은 가벼운 폭발이었다. 가벼운 폭발로 지하의 발목을 잡을 수는 없었다.
전집 발간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는 듯 하다. 그의 상상력은 살아있는 역사와 맞닿아 있으며, 고난 많았던 당대 현실의 모순과 맞서 있다. 동시에 그의 사상적 모색은 편협한 민족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 세계사의 보편적 문제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그러므로 김지하의 사상은 한국현대사가 낳은 가장 전통적이며 독특한 사상인지도 모른다. 김지하가 스스로 자신을 단절적이지 않고 연속적인 흐름이라고 설명했음을 상기할 때 전집은 동시대인들에게 김지하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김지하를 통해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새로운 동공을 열어보이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 국민일보 책과길 정철훈 기자 (2002년 10월 18일 금요일)
'실천교양선 > 전집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탈춤의 민족미학 (2004) (0) | 2013.07.30 |
---|---|
김지하 전집 3 미학사상 (전3권) (2002) (0) | 2013.07.30 |
김지하 전집 1 철학사상 (전3권) (2002) (0) | 2013.07.30 |
오장환 전집 (2002) (0) | 2013.07.30 |
김지하 사상기행 2 : 신 인류를 꿈꾸며 (전2권) (1999) (0) | 2013.0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