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言]’이 범람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일상을 한번 곰곰이 되돌아보자. 하루 중 우리는 얼마만큼의 말들과 또 어떤 말들을 듣고 내뱉으며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가. 그 와중에 우리를 현혹시키고 선동하는 말들, 혹은 처음에는 강렬하게 다가오는 듯하나 한순간에 휘발해버리는 수많은 말들이 부지불식간 우리를 스쳐 지나간다. 반면에 어떤 말이나 글귀는 우리 가슴속에 이정표로 남아 우리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것들도 있다. 각박한 세상 속에서 우리의 정신을 풍요롭게 해줄 이 시대에 꼭 새겨듣고 읽어야 할 대문와 철학자들의 문장을 엄선하여 기획한 ‘책 읽는 오두막’의 <이렇게 말했다> 시리즈에서 ‘브레히트’에 이은 두 번째 책, 『헤세는 이렇게 말했다』가 출간되었다.
헤세의 문장은 살아 있는‘자연’이다!
나에게로 떠나는 힐링 산책 “살아라, 피어나라, 사랑하라”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헤르만 헤세는 그의 작품이 전 세계적으로 6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약 1억 5천만 권 이상이 팔렸을 만큼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는 대문호임에 틀림없다. 1942년, 헤르만 헤세를 노벨문학상 수여자로 선정하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장에 대한 대담성과 통찰력으로 고전적 인도주의의 이상과 높은 품격의 문체를 보여주었다”. 이렇듯 헤세의 작품은 평화 ․ 인도주의적인 세계주의를 향해 있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평탄한 문학의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다. 소년일 때,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까지 두 번씩이나 자살을 시도했을 정도로 헤세는 정신적으로 심약했다. 이런 그에게 문학은 ‘구원’이나 다름없었다. 처음에 개인적 고통과 아픔을 치유하기 시작한 문학은 어느새 그 자신을 뛰어넘어, 시대의 아픔을 대변하기에 이르렀고, 자신이 통과한 그 슬픔으로 세상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또한 그의 인생에서 두 번이나 겪은 세계대전에 대해 확고한 반전 의지를 피력함으로 작가로서의 시대정신도 잊지 않았을 만큼 의식 있는 작가의 전범을 보여주기도 했다.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은 「기도」를,
정각사 주지이신 정목 스님은 『싯다르타』를 손꼽기도…”
이런 헤세의 삶과 함께 작품을 들여다보면, 그에게 글쓰기는 치유로서뿐만 아니라 단순한 창작 활동, 그 이상의 ‘구도적 행위’로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명사의 이야기를 통해 헤세의 작품이 거론되는 것을 보아도 그의 작품은 인간이 본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어떤 종교심과도 비슷한 내면과 정신의 문제를 깊이 다루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와 시간의 의미를 깨달은 그의 글들을 읽고 있으면 현재 우리가 느끼고 있는 슬픔과 불안의 시간들이 차츰 따뜻하고 값진 시간으로 바뀌어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모든 사물들 속에서 제각기의 생명력을 포착하는 그만의 시선, 질박한 표면 너머의 어떤 신성함을 헤세는 그의 문장에 알알이 심어놓았다.
“신이여, 저를 절망케 하소서! / 당신이 아니라, 저 자신에게 / 절망케 하소서”(「기도」, 160쪽). 故 김수환 추기경은 그의 잠언집에서 위의 시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가 상처받고 죽임을 당하지 않고 비울 수는 없습니다. 참사랑은 이렇게까지 자신을 비우고 내던질 수 있을 때에 있습니다”. 또한 요즘 “고통과 치유”에 대한 이야기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정각사 주지이신 정목 스님도 『싯다르타』의 명구절 “강물을 흐르고 또 흐르며, 영원히 흐르지만 언제나 그곳에 있다. 강물은 언제나 항상 동일한 것이지만 매순간 새롭다!”(「싯다르타」부분, 179쪽)를 통해 불교의 핵심을 설파하며 지친 우리의 현재 시간을 다독이고 있다.
이처럼 큰 깨달음을 주는 이 시대의 어른들의 마음속에 모름지기 ‘헤세’의 문장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이 책은 남다른 통각으로 한 시대를 위무하며 수많은 명작을 남기고 떠난 헤세의 주옥같은 작품 속에서 현재의 우리 삶을 반추해볼 수 있는 문장들을 엄선한 것이다. 헤세의 목가적 삶이 그러했듯, 헤세의 문장의 숲에서 깊은 심호흡으로 삶의 의미를 다시 돋을새김하기를 바란다. 거기에서 우리의 지친 몸과 마음이 잠시 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 1877~1962
1877년 7월 2일, 독일 칼프의 신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선교사인 아버지와 인도에서 포교활동을 하며 인도학을 접한 외할아버지, 일본에서 교육자이자 불교학의 권위자였던 외삼촌의 영향으로 동양 사상과 신학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며 자랐다.
헤세는 14세 때 명문 마울브론 수도원 신학교 입학했다. 그러나 억압적인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신경쇠약에 시달리다가 ‘시인이 아니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며 학교를 중퇴했다. 자살에 실패한 후에는 일반 학교에 갔지만 퇴학당했고, 시계 견습공으로 2년간 일했다. 이때의 갈등과 방황이 『수레바퀴 아래서』에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서점 직원으로 일하게 된 헤세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안정을 찾아갔다. 그리고 1899년에 발표한 『낭만의 노래』가 릴케의 인정을 받았고, 이어서 출간한 첫 소설 『페터 카멘친트』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해 헤세는 반전을 주장하며 극우주의를 비판하자, 독일 국민들은 그에게 매국노라는 오명을 씌웠다. 고국의 비난, 아버지의 사망과 아내의 정신분열, 아들의 입원이라는 불행을 겪으면서 심신이 허약해지는 위기를 맞았다. 헤세는 이때 융을 만나 정신분석 치료를 받았고, 이 경험이 『데미안』과 『황야의 이리』의 집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외에도 그는『싯다르타』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헤세는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이전과 같이 나치를 비판했다. 결국 나치는 그의 작품을 금지시키고, 책이 인쇄될 수 없게끔 종이의 수급을 끊었다. 그럼에도 1943년 스위스에서 『유리알 유희』를 발표했고, 독일이 패배한 이듬해인 1946년에 이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헤세는 자아 탐구에서부터 시대의 병폐에 대해 정확한 진단을 내리며 소설, 시, 수필, 그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 활동을 펼치다가 1962년 8월 9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6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약 1억 5천만 권 이상이 팔리며 지금도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편역자 정인모
부산대학교 독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에서 독어독문과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칼스루에 대학교와 쾰른 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한국 하인리히 뵐 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부산대학교 독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교양교육원장 직을 맡고 있다. 그리고 한국 헤세학회 국제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하인리히 뵐의 문학 세계』, 『독일문학의 이해』, 『독일문학 감상』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신 독일문학사』(공역), 『공간, 장소, 경계』(공역), 『창백한 개』, 『침묵의 거리』 등이 있다.
사랑과 행복 _“나의 꿈은 별을 향하여”
독서의 기술 _“책은 너 자신에게로 돌아가게 한다”
평화 _“낙원으로 향하는 문이 열려 있다”
구도의 길 _“신이여, 저를 절망케 하소서”
예술 _“예술의 시작은 사랑이다”
황혼의 매력 _“가장 아름다울 때 사라지다”
◈헤세를 향해 대문호와 철학자들의 목소리
앙드레 지드
“헤세는 균형, 절제, 조화에 대한 탁월한 감각으로 문제의 본질을 파고들어 겸양의 형식인 아이러니로 자아의 내면을 탐색한다.”
마르틴 부버
“정신과 삶 사이의 모순,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그림으로써 작품을 통해 누구나 삶의 여정을 공감할 수 있게 형상화했다.”
토마스 만
“헤세의 작품은 순결하고 대담하며 몽상적이면서도 지극히 지적이다. 우리 시대의 최고이자 가장 순수한 정신적 시도의 결과물이다.”
'책읽는 오두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옛 그림으로 떠나는 낚시 여행 (2013) (0) | 2013.07.30 |
---|---|
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다 (2013) (0) | 2013.07.30 |
김수영의 연인 (2013) (0) | 2013.0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