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녀와 말의 우정 어린 서사시
소녀와 말과 바람, 그리고 막 시작된 여행
소외되거나 숨겨진 소재를 찾아 다양한 작품을 써온 미국 청소년 문학의 베스트셀러 작가 팜 무뇨스 라이언의 『바람의 아르테미시아』가 실천문학사를 통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미국의 와이오밍을 배경으로 광활한 산맥과 황야를 자유롭게 달리는 야생마와 대저택에서 보호를 받으며 자라온 한 소녀를 통해 새로운 소재와 이국의 정서로 신선함을 던져준다. 바람에 휘날리는 미국 야생마의 갈기와 꼬리가 캔버스 위를 춤추는 붓의 움직임처럼 세계 어딘가에서 실제로 일어났을 법한 현실성, 음유시인의 속삭임과 같은 낭만적인 서사가 역동적이고 시원하게 잘 어우러져 독자의 상상을 끊임없이 이끌어낸다.
와이오밍 주의 현지 독자들이 아름답고 실감 나는 풍경과 마야의 심리 묘사에 공감하며 찬사를 보낸 이 작품은 시대와 문화, 환경을 뛰어넘는 보편적 문제인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넌지시 던진다. 그리고 이 질문은 오늘날 가족의 해체와 재구성을 경험하는 청소년들의 고민을 감싸 안으며 그들이 한 걸음을 더 내딛을 수 있도록 인도의 불빛을 밝혀준다.
“별들이 주인인 곳, 마음껏 바람을 색칠하라!”
주인공 마야는 오래전 부모님을 잃고, 할머니의 엄격한 보호 아래 자란 열두 살 소녀이다. 할머니는 마야의 엄마 때문에 자신의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하며, 집안에서 엄마의 흔적을 철저히 지운다. 그러던 중 갑작스레 찾아온 할머니의 죽음으로, 마야는 존재조차 몰랐던 외가로 보내진다. 깔끔하게 다림질 된 흰 블라우스와 체크무늬 스커트, 반짝반짝 윤이 나는 에나멜 구두를 신고 와이오밍에 도착한 마야는 가죽 벨트와 카우보이 선글라스, 진흙이 묻은 부츠 차림의 무스 할아버지를 만난다. 무스의 트럭을 타고 도착한 농장에는 피그 할아버지와 바이 할머니, 동갑내기 사촌 페이톤이 마야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야는 그들과 함께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만나게 된다. 승마, 캠프장, 말무리의 생활, 자연과의 교감, 모닥불 주변에서 시작되는 기타 연주, 말을 탈 때 느껴지는 바람과 성깃한 별들의 질주. 무엇보다 엄마의 말이었다가 야생으로 돌아간 아르테미시아와의 만남과 이별은 마야에게 홀로서는 방법을 알려주고, 독자는 마야의 삶을 따라가며 정직한 감동과 여운이 무엇인지 다시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피그, 무스, 바이 남매와 피그의 손자 페이톤, 무스의 손녀 마야가 한 가족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모인 사람들은 우리가 보통으로 생각하는 가족이라기보다 어쩌다 모인 드림팀처럼 무언가 엉성하다. 이들을 가족으로 인정한다고 해도, 그것은 있어야 할 누군가가 없는 결손가정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결손가정이란 단어의 어감과는 달리 이들은 너무나 자유롭고 행복하다. 결혼을 하지 않은 바이는 혼자가 된 무스 옆에서 마야의 엄마이자 조카인 엘리의 어머니 역할을 자처했고, 피그는 자신의 아들이 아이가 셋 있는 여성과 결혼하여 가족이 된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페이톤은 방학을 바이의 캠프에서 보내고, 마야 역시 차별 없이 따뜻한 환대 속에서 생활을 해나간다. 이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촌수가 아니라, 끈끈한 유대감과 서로에 대한 사랑이다. 결혼과 출산으로 맺어진 가족의 의미를 넘어, 보다 본질적인 의미를 자연스레 보여준다. 마야의 가족은 우리에게 색다른 인연으로 맺어진 다양하면서도 평범한 가족공동체의 가능성을 예감하게 해주며, 다문화 가정이나 이혼 등 고정관념처럼 굳어진 가족의 모습에서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사고의 물꼬를 터줄 것이다.
마야의 발자국에 새겨진 모든 아이들의 성장에 관한 메타포
“세상 모든 것은 소중해. 이제 자유와 속박에 관해 생각해봐”
걷기 마야는 할머니와 가정부, 집이라는 좁은 세계에 갇혀 있다. 건물이 꽉 들어찬 도시의 저택의 침실에서 창밖을 내다봐도 보이는 것이라곤 이웃집 아니면 정원뿐이다. 외출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마야는 장난감 말을 몰래 가지고 놀며 속박을 벗어난 외부 세계를 꿈꾼다.
빨리 걷기 그러던 마야가 별들이 주인이 되는 와이오밍에 온다. 가슴이 뻥 뚫리는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진 대평원은 마야에게 어디로든 갈 수 있다고 속삭인다. 자유의 바람은 마야를 찾아오고, 그 속에서 마야는 살아 움직이는 실제 말을 만나 거대한 자연 속에서 자기의 위치를 생각하기도 하며, 자신 바깥에 있는 존재를 하나하나 발견한다.
달리기 블라우스를 일부러 더럽혀도 가정부가 해결해주던 저택과는 사뭇 다르게 와이오밍의 캠프에서는 각자의 책임이 주어진다. 마야는 난생처음으로 공동의 생활을 위해서 어떤 일들이 필요한지를 확인하고, 어우러져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힘겨운 시간을 통과한다. 그리고 그 어우러짐 속에는 사람뿐 아니라 말, 스위트워터 강, 하늘과 숲 등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가슴으로 느낀다. 그러는 사이 마야는 스커트와 에나멜 구두가 아니라 청바지와 가죽 부츠, 점퍼를 입고 혼자 말 위에 올라 평원을 내달리는 서부 소녀로 변신한다.
전력 질주 특히 지진과 조난이라는 위기를 스스로의 힘으로 탈출하고, 아르테미시아와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마야의 자세는 거짓말쟁이 꼬마 아가씨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가장 크게 보여준다. 아르테미시아를 절대 보내지 않겠다던 마야는, 자유의 의미를 생각하며 엄마의 말을 자연 속으로 돌려보낸다. 마야의 친할머니는 끝내 이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고 죽은 아들에 대한 모든 것을 손에 쥐려고 했지만, 마야는 그 선택을 거부하고 엄마의 죽음을 당당히 받아들인다.
이야기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갈수록, 마야의 세계 역시 밖으로 점점 확장된다. ‘걷기’에서 ‘빨리 걷기’를 지나 ‘달리기’와 ‘전력 질주’로 이어지는 장은 극의 전개 과정이기도 하지만, 부모를 여읜 상처를 딛고 마야의 내부 세계가 점점 넓어지는 성장 과정이기도 하다.
만남이 있으면 당연히 이별이 있다는 것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깨달으며 독립을 시작한 작은 소녀. 대표적 성장소설인 『홍당무』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주인공처럼, 마야는 한 아이가 성장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준다. 자기중심적인 세계를 벗어나 바깥과 소통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은 국가와 시대를 넘어, 누구라도 지나가야 할 삶의 과정 중 하나이다. 『바람의 아르테미시아』는 짧은 이야기 속에서 어린아이가 자기의 세계를 깨고 그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반짝이는 유리알처럼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팜 무뇨스 라이언 (Pam Muñoz Ryan) 지음
캘리포니아의 샌와킨 골짜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샌와킨의 무더위를 피해 도서관을 찾곤 했습니다. 대학원 재학 중 교수의 격려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지금은 미국 청소년 문학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멕시코인 이민 노동자, 미국 서부시대의 대담한 여성들, 역사적인 콘서트, 쥐와 콩 등 소외되거나 숨겨진 소재를 찾아 다양한 작품을 써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200만부 이상 팔린, 할머니의 실제 삶을 모델로 한 작품 『에스페란사의 골짜기(Esperanza Rising)』로 퓨라 벨프레상과 제인 애덤스 평화상을 수상했으며, 『나는 자유다(Riding Freedom)』로 캘리포니아의 영리더 메달상, 윌라 청소년 문학상 그리고 다문화 문학 부문에서 버지니아 해밀턴 문학상 등 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구광렬 옮김
시인이자 소설가로, 멕시코국립대학에서 중남미문학을 전공했습니다. 멕시코에서 문예지 『마침표(El Punto)』 및 『마른 잉크(La Tinta Seca)』로 등단했고, 국내에서는 오월문학상 수상과 함께 『현대문학』에 시 「들꽃」을 발표하며 등단했습니다.
국내시집으로 『불맛』, 『나 기꺼이 막차를 놓치리』, 스페인어 시집으로 『하늘보다 높은 땅(La tierra más alta que el cielo)』, 『팽팽한 줄 위를 걷기(Caminar sobre la cuerda tirante)』가 있고, 장편소설로 『뭄(Sr.Mum)』, 『가위주먹』, 문학관련 저서로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 『체의 녹색노트』 등 수십 권의 책을 냈습니다.
UNAM동인상, 멕시코 문협 특별상, 브라질 ALPAS XXI 라틴시인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울산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걷기
출산
엄마의 말
망아지, 클리
해도 너무한 할머니
새 식구
앰뷸런스
장난꾸러기 망아지
또 다른 가족
빨리 걷기
무스 할아버지
와이오밍의 아침
바이 할머니의 리뮤다
마야의 새 친구
승마 수업
달리기
구보를 해내라!
솔직한 자백
와이어스의 독립
말몰이
퓨마의 습격
사라진 아르테미시아
전력 질주
이리 와, 아르테미시아!
지진
조난
특별한 저녁 식사
아르테미시아의 등에 오르다
강을 건너 가족에게로
재회
아르테미시아의 사랑
자유 속으로
옮긴이의 말
추천의 글
『바람의 아르테미시아』는 말의 걸음걸이 속도에 따라 한 소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죽은 엄마에 대한 마야의 애틋한 기억과 쓰라린 흉터에 새로운 온기를 불어넣어주는 것은 다름 아닌 ‘말’이다. 말은 엄마가 되고, 사랑이 되고, 자유가 되어 희망으로 변주된다. 이 책은 성장통의 치유 매개체로 말을 전면에 등장시킴으로써 성장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보여준다. 특히 정교한 말몰이를 하는 듯 섬세하게 직조된 문장들은 말과 인간이 함께 느끼고 추억할 수 있는 모든 감정의 입자들을 촘촘히 담아내고 있다.
_장태평(한국마사회장)
스무 살에 처음 말 등에 올랐다. 금녀의 벽을 뚫고 최초의 여성 기수라는 스포트라이트 속에 데뷔했고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말을 탔다. 힘든 시간이었다. 나와 일체가 되어 희로애락의 결승선을 향해 달리는 말과의 교감, 그리고 말의 순수한 눈동자는 나를 버티게 해준 위안이자 희망이었다.
경주마 조교사라는 새로운 길의 출발선에서, 말을 잘 타는 빨간머리 앤 같은 마야와 천상의 말 아르테미시아를 만났다. 모든 것을 잃은 마야가 서부의 평원에서 만난 새로운 운명……. 페이지를 넘기면서 말을 처음 타던 때의 설렘과 긴장, 흥분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기수 때보다 더 치열해진 승부의 세계에서 『바람의 아르테미시아』는 내게 힐링 같은 소설이다.
_이신영(여성 조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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