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찾기

오스기 사카에 자서전 (2005)

실천문학 2013. 8. 1. 13:31

 

 

 

  

 

 

 


일본의 대표적 사상가이자 아나키스트 오스기 사카에(大杉榮)의 자서전. ‘자유정신’ 오스기 사카에의 인간미 넘치는 기록 속에 동아시아 아나키스트들이 추구한 사상과 행동의 궤적이 펼쳐진다.
막힘 없는 정신으로 시대를 뚫고 달려갔던 파란의 반생을 말한다.


“사상에 자유 있으라. 다시, 행동에도 자유 있으라.
그리하여 그 모든 시작에도 자유 있으라.”


‘자유정신’, ‘천재적인 문필가’, ‘에로틱한 아나키스트’……, 모두 오스기 사카에(大杉榮, 1885~1923)를 형용하는 말들이다. 1920년대 그가 주동했던 아나키즘운동은 전 동아시아에 걸쳐 광범위한 세력을 형성한바 있고, 그가 죽은 지 8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아직까지도 세계 각국에서는 그의 저작들이 끊임없이 간행되고 있다. 보수적인 일본열도에서도 4~5년을 주기로 ‘사카에 붐’이 일어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강압적 권력 시스템에 저항하는 외로운 싸움을 두려움 없이 실천했던 인물, 감옥 안에서도 여러 나라의 언어를 습득하고, 국제연대를 위해 에스페란토를 연구했으며, 동시에 아시아의 주요 인물들과 교류하며 역사의 흐름을 바꾸려 했던 젊은 영혼 오스기 사카에. 우리는 이제, 근대 일본의 대표적 사상가이자 아나키스트의 상징인 오스기 사카에를 『오스기 사카에 자서전』을 통해 만나려 한다. 『오스기 사카에 자서전』은 오스기 사카에가 39세가 되던 해, 관동대진재 때 헌병의 손에 의해 학살된 뒤 출간된 『자서전』과 『일본탈출기』를 번역 합본한 것으로서, 일본의 가장 중요한 아나키스트 중 한 사람이었던 오스기 사카에의 저술과 본격 연구서를 통틀어 우리나라에 처음 선보이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서양의 근대와 동아시아의 전통이 만나는 문명사의 과도기를 온몸으로 부딪치고 그 안에서 국제주의와 이상주의적 전망을 세웠던 한 젊은 아나키스트의 삶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가 어떤 과정을 통해 아나키스트가 되었는지, 20세기 초반 일본과 상해와 프랑스의 뒷골목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상세히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또한 오스기 사카에 개인의 인간적인 매력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근대화 과정에서 아나키스트들이 추구한 사상과 행동의 역사적 의미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정신’으로 부활한 시대의 순교자

『오스기 사카에 자서전』을 읽다 보면 여러 번 놀라게 된다. 어릴 때부터 마치 죽음을 예감이라도 하듯 죽기 바로 두 달 전의 일까지 어떻게 이렇게 자신의 삶을 세세히 기록해놓을 수 있었을까. 천방지축에 몹쓸 장난꾸러기였던 어린 시절부터 무모하기 이를 데 없는 젊은 시절, 삼각관계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기까지 했던 돈키호테적인 모습까지 가감 없이 기록되어 있다.

우선 우리는 오스기 사카에의 아나키즘이 서구 이론의 맹목적 학습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삶 전체를 통해 구체적 경험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군인의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천황의 군인’을 길러내는 육군유년학교의 군대식 교육 아래 철저히 인간성이 훼손되는 과정을 체험한다. 억압적 교육 아래 어린 소년들은 밤마다 ‘동료’라고 하는 상대와, 또는 선배와 후배가, 생도와 장교가 동성애에 탐닉하는 비정상적인 생활에 빠져 든다. 이것은 군국주의 사회의 억압이 만들어내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집단적 광기였다. 집단적 광기와 폭력 속에서, 오스기는 진정한 인간상의 구현은 이러한 강압적 교육체제 속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유를 원하기 시작한다”. 그가 아나키스트가 되었던 것은 그 자신의 의지만이 아니라 강압적 시대가 낳은 산물이기도 했다.

또한 이 책에는 당시 강고한 의회정치와 독점자본에 지배당했던 일본에서 사회주의자와 노동운동가들이 어떻게 활동했는지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독자는 그가 어떠한 지적 성장 과정을 거쳐 다른 사회주의자 및 운동가들과 교유하게 되는지, ‘노동자 자신에 의한 노동자의 해방’이란 제자(題字) 아래 『평민신문』을 창간하고, 혁명적 노동자에 의한 계급투쟁을 호소하며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꾀하고, 무정부주의연구회를 발기하는 등, 동지들과 함께한 왕성한 활동상을 오스기 사카에 자신의 입을 통하여 들을 수 있다.

한편 이 책을 통해서 그의 아나키즘적 인간관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저 유명한 ‘하야마 사건’인데, 오스기와 삼각관계에 있던 여인 중 하나인 가미치카 이치코가 그가 잠든 사이에 그의 목을 찌른 사건이다. 당시로서는 전 일본 열도를 뒤집을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운동가로서의 성(性) 관념을 비난 받게 된 이 사건은 실상 그의 아나키즘적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인류에 처음 수치의 감정, 성적 도덕의 씨앗이 뿌려진 것은 자유 공산제도가 사라지고 재산의 사유제도가 싹트면서부터”라면서 성의 해방을 주장했다. 그는 성적 도덕이나 수치심이 인간이 만든 굴레이며, 여자가 남자의 사유물로 규정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제도의 산물임을 여러 편을 글을 통해 밝히려 했다. 당시로서는 물론, 오늘날에도 매우 파격적으로 보이는 그의 이러한 인간관은 사실 그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사상과 행동을 낳는 동기에도 자유 있으라’는 그의 말이 대변하듯, 자유분방하고 거침이 없었던 그의 삶의 이러한 면모는 이 책 전체를 통해 잘 나타나 있고, 국제연대를 도모한 그의 태도 속에서도 그 일면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책 맨 뒤에 있는 「외유잡담」을 보면 국제주의를 향한 그의 열렬한 관심을 볼 수 있다. 그는 러시아인, 베트남인, 중국인, 유태인, 아프리카 원주민, 프랑스인 등 각국의 다양한 사람을 만나 상세한 기록을 남겼고, 러시아 혁명과정에 일어난 아나키스트 계열의 크론슈타트 수병 반란과 우크라이나의 마흐노 농민운동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단순히 방랑을 통해 세계정세를 들여다본 것이 아니라, 엄혹한 탄압국면 속에서도 조선과 중국, 러시아, 프랑스를 비롯한 각국의 주요 운동가와 접촉하며 국제연대를 꾀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모험주의’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그러하기에 그는 진정한 혁명가였다.


아나키즘 문예미학이 살아 숨쉬는 오스기 사카에 자서전

또한 그는 운동가이기 전에 언론인이었고, 언어연구가였고, 번역가였고, 문예평론가, 수필가, 시인이었다.

일범일어(一犯一語), 즉 ‘한 번 감옥에 들어갈 때마다 외국어를 하나씩을 익힌다’는 원칙을 세웠던 오스기 사카에는 수감될 때마다 독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을 하나씩 섭렵했고, ‘언어의 천재’라고 불렸다.(264쪽) 아나키즘의 주요 서적과 사상서들을 직접 번역하기도 했으며, 처음 감옥에 갇혔을 때는 3개월간 에스페란토를 정복한 후 석방된 뒤 일본 에스페란토협회에 참여하여 에스페란토 학교를 열었다. 당시 에스페란토는 민족간 국가간 장벽을 허물고 국제연대를 꾀하기 위해 아나키스트들이 채용한 문화혁명 수단이었다. 그는 직접 에스페란토 학교 교장을 맡아 중국과 한국의 유학생들을 가르쳤는데, 이것이 아시아로 퍼져간 에스페란토의 효시이다.

동시에 우리는 이 책에서 그가 주장하는 아나키즘의 문예미학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에 쓰인 문체는 그의 논설문이나 시와는 달리 거친 맛을 보여준다. 구어체가 많이 쓰였고, 세세한 상징이나 이미지보다는 이야기를 우선으로 하고 있다. 오스기 사카에는 아나키즘 예술론의 전형을 “커다란 행동, 커다른 선으로 강하게 끌어당겨진 모습, 단순하고 힘찬 율동을 지닌 진솔한 감정, 빗자루로 쓴 것 같은 거친 가락”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고급 인텔리의 문체와는 전혀 다른 선이 굵은 문체, 바로 오스기 자신이 지향하던 아나키즘 민중예술론을 실현시킨 결과물인 것이다.


“도쿄의 인구를 다 잃더라도 오스기 사카에 한 사람을 잃은 손실만 못하다”

그렇다면 오스기 사카에와 한국은 어떠한 관계에 있었을까. 이 책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사카에는 여운형, 이동휘 등 조선의 주요 인물과 직접 만나 국제연대를 꾀했고, ‘국가적 편견과 민족적 증오 없이 한일 양 국민이 진정으로 융합하는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취지 아래 재일 한국인들과 흑도회(黑濤會)를 조직하기도 했다. 또한 사카에의 죽음으로 실현되지는 못했으나 의열단의 지도자 김원봉과 도쿄에 의열단 지부를 설치할 것을 합의하기도 했다. 조선의 아나키스트들은 그의 저서를 교재로 삼아 학습하기도 했다. 군국주의의 손에 오스기 사카에가 무참히 살해당하자 한국 아나키즘 역사상 중요한 활동가인 손명표는 “도쿄의 인구를 다 잃더라도 오스기 사카에 한 사람을 잃은 손실만 못하다”며 추모했다. 이렇게 오스기 사카에는 일본과 한국 아나키즘에 은밀히 영향을 미치며, 동아시아의 역사적 흐름에 깊고 민감하게 몸담고 있었다.

1923년 일본 관동대진재 때, 사카에는 일제 헌병의 손으로 잔혹하게 학살당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일본에 아나키즘운동을 촉발시킨 불씨가 되었다. 그의 죽음을 추모하며 17개 사상단체와 7개 노동단체가 규합하여 ‘흑색청년연맹’을 발족했으며, 지금까지도 그의 사상과 인격에 매료된 일본의 젊은이들은 속속들이 연구회, 사진전들을 개최하고 있다. 시대는 그를 반항자로 만들었고, 순교자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자유정신’은 시간이 흐를수록 힘차게 꿈틀거리고 있다.

지은이_ 오스기 사카에(大杉榮, 1885~1923)
일본의 대표적 사상가이자 아나키스트. 고토쿠 슈스이(行徳秋水)에 이어 1920년대 동아시아 아나키즘운동을 주도했다. ‘노동자 자신에 의한 노동자의 해방’이란 제자(題字) 아래 『평민신문』을 창간하고 무정부주의연구회를 발기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했다. 그는 또한 언론인이었고, 언어연구가였고, 번역가였고, 문예평론가, 수필가, 시인이었다.
크로포트킨 자서전, 남녀관계 진화 등을 번역하였으며 사회적 개인주의 노동운동의 철학 정의를 구하는 마음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모험주의’라는 비판을 받을 만큼 국제연대에 열성적이었고, 여운형, 이동휘, 김원봉 등 조선의 주요 활동가들과 중국, 러시아, 프랑스 등지의 주요 인물과도 교류하였다. 1923년, 일제가 조선인과 일본의 사회운동가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관동대진재’ 때 살해당하였다. 아직까지도 일본에서는 오스기 사카에의 저서와 그에 대한 연구서들이 계속 출간되고 있다.


옮긴이_ 김응교(金應敎)
시인. 연세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7년 『분단시대』, 1990년 한길문학신인상으로 등단했다. 도쿄외국어대학을 거쳐 도쿄대학에서 비교문학과 비교문화를 연구했고, 현재 와세다대학 문학부 객원교수로 있다.
저서에 시집 『씨앗/통조림』(1999), 연구서 『박두진의 상상력 연구』(2004), 『사회적 상상력과 한국시』(2002), 『신동엽』(1994), 문학기행서『천년동안만』(1996), 장편실명소설 『조국』(1993), 문화론 『심장은 탄환을 동경한다』(1993) 등이 있으며, 다수의 번역서를 펴냈다.

윤영수(尹永洙)
고려대 독어독문과를 졸업하고 1996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1997년부터 와세다대학 대학원에서 일본의 정치와 행정을 공부하였고, 현재 와세다대학에서 정치학 전공 박사 과정에 있다.
주요 논문으로 와세다대학원 석사학위논문 「분권시대의 지방의회」(1996), 「일본 지방의회의 전망」(『自治硏』, 2002)이 있으며, 한국의 사회복지 현황을 소개하는 논문 「한국 사회보장의 성격과 현상」을 2005년 일본 『공법연구』지에 발표했다. 이 외에 번역으로 『노인 복지시설에 대한 요강』(2001) 등이 있다.

 

제1부 자서전
최초의 추억_1894
소년시대_1894~1895
불량소년_1895~1899
유년학교 시대_1899~1901
새로운 생활_1901~1902
어머니의 추억_1902~1904
옥중 생활_1906~1910
하야마 사건_1916

제2부 일본 탈출기_1922~1923
일본 탈출기
파리의 화장실
감옥의 노래
수감에서 추방까지
외유 잡담


제1부 주_317 | 제2부 주_506 | 연보_513 | 해설_520 | 옮긴이의 말_548 | 찾아보기_550

 

 군국주의시대, 아나키스트로 살다 간 일본 청년 ―― 김용국 기자, 오마이뉴스(2005. 07. 27.)
 집단적 광기에 저항한 아나키스트들의 스승 ―― 박성휴 기자, 경향신문(2005. 07.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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