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의 문학/소설

코끼리 (2005)

실천문학 2013. 8. 6. 10:55

 

 

 

 

 

 

 

         

 

 

 

 

 

 

 


가장 앞서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현실을 다루어온 작가 김재영의 첫 작품집. 이번 소설집의 표제작인 「코끼리」는 각종 기관에서 ‘2005년을 대표하는 소설’로 선정되는 등 주목할 만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2000년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에 「또 다른 계절」이 당선되어 등단한 이래 만 5년간 꾸준하게 발표해온 작품들을 묶었다. 고통스런 현재를 섬세한 붓길로 떠올리는 작가의 솜씨가 따뜻하면서도 미려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선정 우수문학도서


김재영의 첫 소설집 『코끼리』가 출간되었다. 2000년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에 「또 다른 계절」이 당선되어 등단한 이래, 만 5년간 꾸준하게 발표해온 작품들을 묶었다. 이번 소설집 『코끼리』에 수록된 작품은 모두 열 편인데, 이 중 성실한 취재를 바탕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표제작 「코끼리」는 국내의 현대문학 교수 350명이 뽑은 ‘2005 올해의 문제 소설’(푸른사상 刊), 작가들이 뽑은 ‘2005 올해의 좋은 소설(도서출판 작가 刊)’로 선정되기도 했다.


섬세한 붓길로 떠올린 고통스런 현재, 따뜻한 연민의 마음

김재영은 우리 작가들 가운데 가장 앞서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현실을 다루어온 작가 중 하나이다. 「코끼리」와 「아홉 개의 푸른 쏘냐」에 등장하는 러시아, 네팔, 중국, 파키스탄 출신 노동자들은 김재영 작품 속의 인물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출구 없는 막다른 절망과 고통스런 상황 속에 놓여 있다. 새 삶의 기대를 안고 건너왔으나 이 땅은 가혹하기만 하고, 그들이 꿈꾸었던 새 삶의 세계로 통하는 문은 열리지 않는다. 이들은 곳곳에 섬뜩한 이 땅의 폭력을 견디며 무서운 절망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그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눈길은 깊은 연민의 마음으로 안타깝다.

외국인 노동자들만이 아니다. 작가가 자주 등장시키는 상징들 모두가 또한 고단한 생을 살아가는 허약한 사람들을 나타낸다. 「미조(迷鳥)」에 등장하는 ‘길 잃은 새’가 우선 그러하다. 이혼과 실직을 겪은 뒤 도시생활에 대한 환멸을 안고 낙향하여 술로 세월을 보내는 주인공은 이제 행복해지려 하는 꿈이 없으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감각까지 잃어버린 불모의 인물이다. 작가는 폭풍우에 날리는 길 잃은 새처럼 안쓰러운 이들, 혹은 패배자들의 지친 삶에 주목하며, 매 작품에서마다 이들의 고통을 섬세한 붓길로 떠올린다. 유부남을 사랑했다가 버림받은 여인과 아내로부터 버림받은 한 남자가 등장하는 「물밑에 숨은 새」에서는 물밑에서 봄을 기다리며 겨울을 난다고 여겨졌던 제비처럼 잔뜩 움츠린 채 고통의 현실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처지를 보여준다. 비록 이들이 고통에서 벗어나리라는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들 사이에 싹트는 서로에 대한 따뜻한 이해와 연민은 읽는 이의 가슴을 적신다. 단조롭고 갑갑한 일상에 갇혀 지내는 주부들을 ‘치어’로 상징한 작품 「치어들의 꿈」에서는 고통의 상황에 서 있는 주부의 내밀한 심리를 섬세한 필치로 포착해냈다.

이처럼 고통스런 현실에 처한 인간에 대한 연민은 김재영 문학의 기본항 가운데 하나이다. 작가는 인물들을 가두고 있는 어두운 세계를 따뜻하게 감싸 안으며 읽는 이의 마음도 감싸 안아 위무하는 것이다.
순수했던 여인이 비정한 세계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거치면서 성품이 얼마나 왜곡되고 잔인해지는지를 섬뜩하게 그려낸 「국향」,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결손감에 지쳐 있는 이들을 따뜻하게 보듬는 「사라져버린 날들」, 의식 없는 삶을 살아가는 부르주아의 속물성에 대한 강한 비판을 담고 있는 「자정의 불빛」 등 수록된 작품들은 수준이 고르고 하나같이 따뜻하다. 작가의 바람처럼 한 편 한 편의 소설이 “계절과 계절 사이에 조심조심 생장하고 가만가만 갈무리하는, 외롭고 고독한 시간을 견디는 풀과 나무들”처럼 “달빛 속에서 도란도란 속내를 드러내는 살가움”과 “아린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따뜻함”을 전한다.


줄거리

코끼리
네팔인 아버지와 조선족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열세 살 ‘나’는 문서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소년이다. 아버지는 한국에 와 십수 년을 일했지만 몸만 버렸고, 어머니는 가난을 지긋지긋해하다 딴 남자에게로 도망쳤다. 축사를 개조해 만든 쪽방, 이웃에 사는 외국인 노동자들 역시 비슷한 처지다. 누구는 손가락을 잃었고, 누구는 화재에 목숨을 잃었다. 돈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갈 꿈을 이룬 것은 인도에서 온 ‘노랭이’가 유일한데, 그는 혼자 비정하게 돈을 모아 따돌림을 당하는 형편이다. ‘나’는 아버지의 생일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귀국 선물을 사들고 귀가하던 ‘노랭이’가 누군가로부터 습격을 받는 장면을 목격한다.

아홉 개의 푸른 쏘냐
러시아 여인 쏘냐의 이야기가 달팽이 ‘나’와 한국인 남자 ‘그’의 시점에서 교차서술된다. ‘나’는 사랑하는 이를 두고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실려왔다. 무용수로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온 쏘냐의 짐에 우연히 휩쓸려 들어온 것. 한국에서 러시아 전통춤을 공연할 줄 알았던 쏘냐를 기다리는 것은 퇴폐업소의 무대에서 벌거벗고 춤을 추는 그녀를 바라보는 한국 남자들의 음탕한 시선과 지배인의 폭력, 아무리 갚아도 줄지 않는 빚과, 몸을 파는 신세로 전락하게 할 운명이다. 러시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옛사랑의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향하는데, 병원에는 여권을 빼앗고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한국인 브로커를 흉기로 찌르고 나오던 중 차에 치인 쏘냐가 정신을 잃고 있다.

국향(菊香)
아버지가 죽자 자식들을 남겨두고 홀로 돈 벌러 서울로 떠나가는 어머니는 자꾸 뒤를 돌아다보며 눈시울을 적시던 여자였으나, 사기를 당해 아버지의 유산을 다 날린 뒤로 집장사에 손을 대더니 돈만 밝히는 복부인이 되었다. 행방불명되었던 언니가 어느 날 추레한 모습으로 돌아온 뒤로 ‘나’의 가족은 지긋지긋한 가난과 식모애의 죽음 등, 단절하려 했던 과거의 일을 하나둘씩 떠올리게 되고, 어머니는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언니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언니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자, 꽃을 좋아하는 천박한 어머니는 마당 가득 가을국화를 심는다.

치어들의 꿈
전업 주부인 ‘나’는 이웃집 선영 엄마와 함께 남의 이야기 따위나 하며 소일하는 현실이 못내 불만족스럽다. 이들은 힘겹기만 할 뿐 누구하나 인정해주지 않는 주부로서의 삶에 갑갑함과 절망감을 느끼고 직장을 가진 여성들을 질시한다. 어릴 적 이웃에 살던 까무 언니와 해후, 그녀의 고단하고 곡절 많은 인생 이야기를 듣고 오는 길에 ‘나’는 드넓은 바다로 떠나는 물고기는 절박한 조건에 있는 치어들이라는 이야기를 떠올린다.

사라져버린 날들
오리 떼가 겨울을 지내고 가는 마을에서 고대 농경유적 발굴을 지휘하고 있는 ‘그’는 10년 전 연인을 잃은 상처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벤처단지 조성을 추진하는 세력은 발굴 종료를 재촉하며 그와 대립하고, 서서히 지쳐가는 그의 눈앞에 한 여인이 나타난다. 그녀는 외딴집에 홀로 살다 얼마 전 사망한 사내의 누이인데,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처를 공유하며 하룻밤을 보낸다.

자정의 불빛
‘나’는 그냥저냥 별 의식 없이 살아가는 공인회계사다. 어느 날 대학 동아리 동기의 전화를 받고 연극반 후배들의 공연을 보러 간 자리에서 그는 옛사랑 진임을 만난다. 학생운동을 하던 그녀는, 고시 공부에만 힘쓰던 자신을 버려두고 어느 날 노동 현장에 투신, 그의 앞에서 사라졌던 것. 나는 진임에게 다시 욕망을 느끼나, 그녀 앞에서 부르주아의 속물성만을 여지없이 드러낼 뿐이다.

물밑에 숨은 새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 곁을 지키는 간병인 ‘여자’는 유부남을 사랑했고, 버림받은 상태. 설 연휴를 꼼짝없이 병원에서 보내야 할 그녀가 일하는 병실에 한 사내가 입원한다. 그녀는 거친 말투의 사내를 처음에는 멀리했으나 사내의 사연을 들으며 차츰 그에게 연민을 느낀다. 사내는 한동안 관계가 소원했던 부인이 찾아오기로 했다는 말을 꺼내며 기대를 감추지 못하나 그의 부인은 이별을 고하고 사내를 떠나간다. 여자는 사내를 위로하며, 옛날 사람들이 생각했다던 철새들의 겨울나기를 생각한다. 물밑에서 겨울을 보냈다던 새들은 따뜻한 봄을 맞이했을까?

또 다른 계절
부면장이었던 아버지가 위암으로 죽자 집안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큰언니는 돈을 벌러 도회지로 나가고, 중학생인 작은 언니는 책 속으로 숨어들었다. 다소 신경질적으로 변한 엄마의 누에농사를 도와 ‘나’는 형제들과 뽕잎을 따다 누에를 먹이며 쓸쓸하면서도 설레는 사춘기를 보낸다. 그런데 누에가 고치를 지을 무렵 물난리가 나고 둑이 터져 마을 전체가 막대한 피해를 입는다. 인심은 흉흉해지고, 돌아가신 아버지는 제방 붕괴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모함을 당한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관청을 찾아가려 하며, ‘나’의 남매는 아버지 첫 제사를 준비한다.

미조(迷鳥)
‘나’는 이혼과 실직 후 도시생활에 대한 환멸을 안고서 이제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고향마을로 돌아온다. ‘나’는 하는 일 없이 무기력하게 폐인처럼 나날을 보내는데, 이웃의 가겟방 노파는 돈만 밝히고, 읍내에서 여관 종업원으로 일하는 여자는 아들을 잃고 만다. 폭풍우에 날리는 길 잃은 새처럼 불쌍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의 과거 회상과 현재의 상황 서술을 통해 그려진다.

국화야, 국화야
대학 시절 학생운동에 힘쓰다 제적당한 미숙은 모처럼 친구들을 만나지만, 소시민적 삶이 주는 만족만을 구하고 있는 그들을 보며 실망한다. 한편, 미숙이 세 들어 사는 주인집에서 파출부로 일하던 송 할머니는 국화에게도 말을 건넬 만큼 인정 많은 분인데, 아들이 쓰러지자 몸져눕게 된다. 송 할머니의 아들은 플라스틱 회사에서 일하다 납중독에 걸려 시름시름 앓게 되었으나 다니던 회사도 끝내 문을 닫아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하고 말게 된 것이다. ‘좋아진 세상’이라는 말과 실제로 보고 겪는 모습과의 엄청난 괴리 앞에서 미숙은 고민에 휩싸인다.


 

김재영
1966년 경기 여주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 과정을 이수했다. 2000년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2005년에 대산창작기금과 문화예술진흥원의 창작지원기금을 받았다.

 

 '30대 여류' 틀 깬 실험소설 ―― 이순녀 기자, 서울신문(2005. 12. 23)
 외국인 노동자들의 아픔 어루만지며 ―― 박해현 기자, 조선일보(2005. 12. 17.)
 자본주의 그늘 아래 싹 트는 '희망의 싹' ―― 정철훈 기자, 국민일보(2005. 12. 18.)
 노동운동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 ―― 최재봉 기자, 한겨레(2005. 12. 23.)
 나도 '외국인'이다 ―― 이명원 문학평론가, 컬쳐뉴스(2006. 01. 20.)

 

외국인 노동자들의 아픔 어루만지며

[코끼리] 김재영 지음|실천문학사|360쪽|9000원


코리언 드림을 찾아온 외국인 노동자들의 열악한 삶은 더 이상 한국 소설의 사각 지대에 있을 수 없다. 신인 작가 김재영(39)의 첫 소설집 ‘코끼리’에 실린 단편 ‘코끼리’와 ‘아홉 개의 푸른 쏘냐’는 외국인 노동자의 소외된 삶을 통해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단면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70~80년대와는 다른 2000년대 리얼리즘 소설의 새 양상을 보여준다.

김재영의 이번 소설집은 출간 이전부터 문단의 주목을 받아 대산창작기금과 문예진흥원 창작지원금을 모두 받았다. 김재영 소설의 강점은 현실 문제에 대한 소재주의적 접근이나 이념을 앞세운 관념적 리얼리즘의 폐해에 물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소설은 소외 계층의 일상 묘사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내면 탐구를 통해 인간에 대한 심층적 시선이 담긴 리얼리즘 소설의 화법을 보여준다. 이 책의 표제가 된 단편 ‘코끼리’는 네팔인 아버지와 조선족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열세 살짜리 소년 ‘나’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한때 돼지 축사로 사용됐던 낡은 베니아판 문 다섯개가 나란히 붙은 건물에 살고 있는 ‘나’의 이웃들은 파키스탄 청년, 방글라데시 아줌마, 러시아 아가씨, 미얀마 아저씨 등이다.

얼룩진 곰팡이와 낙서가 가득한 ‘나’의 벽에는 네팔의 투명하고 생생한 햇빛이 넘실대는 달력 사진이 어울리지 않게 붙어있다. 아버지는 히말라야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나’에게 세상은 서울 외곽의 가구공단을 짓누르는 흐리멍덩한 하늘과 냄새 나는 바람, 그리고 집 나간 바람둥이 엄마로 구성되어 있을 뿐이다.

‘나’는 미얀마 아저씨를 통해 ‘외’가 소용돌이를 뜻하는 미얀마 말이라는 것을 배운다. 학교에서 따돌림 당하고 가난에 시달린 ‘나’는 조숙하게도 자신의 인생이 ‘외’에 갇혔다고 말한다. ‘나’를 비롯한 외국인 노동자들 역시 코끼리마저 삼켜버리는 거대한 ‘외’에 갇혀있다. 작가는 ‘외’에 갇힌 그들의 고통을 냉정한 시선으로 그려냄으로써 한국 사회를 추문 속에 가둔다.

이 소설집에 실린 다른 단편들도 고단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혼과 실직 끝에 낙향한 사람, 죽음을 앞둔 노인의 간병인, 아버지의 죽음으로 거친 세파에 시달리는 한 가족 등등의 일상사가 각 작품의 배면에 깔려있다. 작가는 “예나 지금이나 문학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주고 어루만져주는 거라고 생각한다”며 “겉치레 대신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처럼”이라고 말했다.

문단에서 작가는 남다른 가족 관계로 눈길을 한 번 더 받고 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며느리임을 조심스럽게 밝힌 작가는 “91년 시집을 갔더니 부엌에 주방용 세제가 없었다”며 “7년 동안 시집 살이할 때 밀가루 푼 물로 설겆이를 하고 빨래는 재생비누로만 했다”고 말했다. “하루는 시아버님께서 겉옷 빨래를 너무 자주한다고 걱정하시더라구요, 강물에 사는 물고기를 생각해보라며...”


-조선일보 박해현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hhpark.chosun.com] 2005. 12. 17.



자본주의 그늘 아래 움트는 ‘희망의 싹’…‘코끼리’ 작가 김재영 씨



우리 문단에서 가장 앞서 외국인 노동자의 현실을 다뤄온 소설가 김재영(39)씨가 첫 소설집 ‘코끼리’(실천문학사)를 냈다. 가구 공단의 외국인 노동자에서부터 이태원의 러시아 처녀에 이르기까지 그의 관심은 폭이 넓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형상화하는 힘은 따뜻하고 정의롭다.

“무결점이 결점”이라는 평을 들었을 만큼 탄탄한 완성도를 보여주는 표제작은 네팔인 아버지와 조선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열세 살 소년이 주인공이다. 아버지는 한국에서 십여년간 일했지만 몸만 버렸고,어머니는 가난을 견디지 못해 딴 남자에게로 도망을 갔다. 소년은 축사를 개조해서 만든 쪽방에서 살아간다.

“내가 바라는 건 미국 사람처럼 되는 게 아니었다. 그냥 한국 사람만큼만 하얗게,아니 노랗게 되기를 바랐다”거나 “사람들은 지문이 없으니 영혼도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등의 진술은 주인공 ‘나’의 비참한 생활에 대한 묘사를 넘어 후기 자본주의의 매정한 얼굴을 뒤집어쓴 한국의 현실을 역으로 되비춘다.

이웃에 사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처지도 비슷하다. 이웃 중에서 돈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갈 꿈을 이룬 사람은 인도에서 온 ‘노랭이’가 유일하다. 그는 비정하게 돈을 모았지만 이웃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한다. 아버지의 생일을 맞아 집으로 돌아오던 소년은 귀국 선물을 사들고 귀가하던 ‘노랭이’가 누군가로부터 습격을 받고 쓰러져 지갑을 빼앗기는 장면을 목격한다.

이밖에도 러시아 전통춤을 공연하는 줄 알고 한국에 왔다가 퇴폐업소로 내몰린 러시아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아홉 개의 푸른 쏘냐’,설 연휴를 꼼짝없이 병원에서 보내야 하는 간병인 여자의 애환을 그린 ‘물밑에 숨은 새’,이혼과 실직을 겪은 주인공이 행복을 얻으려는 꿈을 포기하고 술에 의탁해 세월을 보내는 이야기인 ‘미조(迷鳥)’ 등에 등장하는 중심 인물들은 하나같이 선량하다.

그들의 선량함은 그들을 억압하고 상처 입히는 이 세계의 폭력성에 대비되어 더욱 뚜렷이 부각된다. 비록 이들이 고통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작가는 이들의 삶속으로 헤집고 들어가 그늘 속에서 피어나는,그 곱다는 희망의 싹을 다독거린다.

재야 통일운동가 백기완씨의 외며느리이기도 한 김씨는 “대학시절에 나 역시 피끓는 젊은이로서 말하고 실천하기를 좋아했는데,대다수의 보수적 세력과 반대편에 서서 대치하기란 힘들고도 위험한 일이었다”며 “소설쓰기에서조차 어쩐지 나는 다수파가 아닌 것 같다”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정철훈 전문기자. 2005. 12. 19.


 

독자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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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일 :

2006-07-22 오전 9:19:01

 

김재영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12월 / 359쪽





김 재 영

- 1966년 여주 출생

2000년 "내일을 여는 작가'신인상으로 등단





본문수록 작품

- 코끼리 ( 2004년 )

- 아홉 개의 푸른 쏘냐 ( 2005년 )

- 국향 (2004년 )

- 치어들의 꿈 ( 2001년 )

- 사라져버린 날들 ( 2001년 )

- 자정의 불빛 ( 2003년 )

- 물밑에 숨은 새 ( 2003년 )

- 또 다른 계절 ( 2000년 )

- 미조 ( 2002년 )

- 국화야,국화야 ( 1998년 )





얼마전 우연히 실천문학사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발견한 책이다.

솔직히 제목도 그렇고, 작가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 무심코 넘어 갈뻔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내 시선을 끄는 건 솔직히 저렴한 가격 때문인것으로 기억한다.

싸다는 생각에 이것 저것 다른 책들과 더불어 소위 질렀던 책들중의 한 권이다.



단편집을 잘 읽지 않는 이유중의 하나가

XX소설집이라는 제목을 발간한 수많은 책들중의 대부분이,

한 권의 책을 발간하기 위해

여기저기 서 이것저것을 억지로 꿰어 맞춘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마치

데뷔한지 얼마되지 않은 가수가

한,두곡의 힛트곡을 가지고,

자신만의 대규모 콘서트를 갖는 듯한 느낌.

아마도 콘서트의 대부분은 타인의 노래이거나, 신변잡기류의 시시껄렁한 이야기들로 소진되어 버릴지도 모르겠다.

물론 한,두곡의(또는 한,두편의) 뛰어난 작품으로

자신만의 공간 또는 시간을 만들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너무나도 많은 작품들이 급조해진듯한, 혹은 작위적인듯한 느낌에서 자유로울수많은 없는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단편집의 좋은 이유중 하나는 한권의 책에 오랜 시간이 묻어 있어

그 작가의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의식의 변화 또한 읽을수 있다는 재미가 묻어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사실,

CD한장 구입 한다고 해서

거기에 수록된 곡이 전부다 마음에 드는 행운을 어디 그렇게 쉽게 잡을수 있으랴.



수록된 작품중 '코끼리' 와 '아홉개의 푸른쏘냐'는

그동안 여러 소설집에서 흔히 접해보지 못한 외국인 노동자들을 배경으로 하고있다.

산업연수생이건 , 혹은 불법 체류자이건

단지 우리와 피부색이 같지 않고, 언어가 같지 않다고 해서

(물론 너무나도 똑같이 생기고, 똑같은 말을 하는 중국 교포또한 예외는 아닐것이다)

무조건적인 멸시 와 핍박을 받아야 하는

소위 최하층 사람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차분하게 그리고 있다.

우리는 막연하게 알고 있다.

그들이 자신이 그리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모든것들을 뒤로 한채,

모든것이 생경하기 그지없는 이 땅에서

힘들게 생존해 가야 하는지를



우리네 선배들이 이 땅이 아닌 다른 땅에서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또는 피부색이 같지 않다는 이유로

온갖 멸시 와 핍박을 견디며 살아온 이야기에 울분하는것과 같은 이유일 것이다.



살기 좋아졌다는 요즘,

우리는 밤잠을 설치며 수 많은 열성인자(인종적 우월주위에 빠져있는 자들의 입장에서의 표현이다)

들 틈에서 작고 연약해 보이는 우리 선수들이 활약하는 모습에 목이 터져라 응원하기도 하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코리아 성공 스토리라도 들려오면,

내일인양 가슴 뿌듯해 하며 자랑스러워 하게 된다.



백인이 아니기 때문에 받아 들여야 했던

수 많은 불이익 과 부당한 차별대우가

이젠 어느덧 백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바뀌고 있는것은 아닐까 하는 간사한 내 마음에 섬뜻해 질때도 있다.

우리네 땅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눈에 비친 우리들의 모습은 어떨런지

더이상 그 네들을 향한 우리들의 편향된 생각을

모른척하기에는 내 안에 상처가 너무도 많이 곪아 버린듯 하다.







연어는 말이다, 강가에 남지 않고 멀리 드넓은 바다로 떠난 연어들은, 가장 몸집이 작은

치어들이었단다.

이상하지?

거친 파도를 이기려면 영양상태가 좋아 몸집이 크고 튼튼한 놈들이어야 할 텐데 말이야.

하지만 등에 기름이 낀 치어들은 민물에 남아 안주하는 법이란다.

더 절박하고 더 많이 갈구하는 치어들만이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나지.



본문 치어들의 꿈 중에서



내 등에 꽉 찬 이것이 영양분 좋은 기름이 아니라, 아무 쓸모도 없는 비개 덩어리 인줄도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안주하고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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