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고의 작가단체인 중국작가협회 주석 티에닝의 장편소설 『비가 오지 않는 도시』가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티에닝은 현대 중국 문단에서 최고의 성가를 올리고 있는 젊은 작가이자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 작가이다. 지난해 10월, 중국 전역에 7,690명의 회원을 가진 작가협회 주석에 여성이, 그것도 40대 젊은 작가인 티에닝이 선출되면서 중국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크게 화제가 됐었다. 1949년 출범한 작가협회 57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백만 독자의 사랑을 받은 『비가 오지 않는 도시』에 이어 그녀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목욕하는 여인들(大浴女)』도 곧 출간될 예정에 있다.

백만 중국인을 사로잡은 소설
중국문학에서 장편소설은 줄곧 뚜렷하고도 중량감 있는 주제의식을 중시해왔다. 중국 문단에서의 작가의 지위는 종종 이러한 장편소설의 유무에 의해 판가름되곤 했다. 달리 생각해보면 이러한 기준은 작가의 창작 활동에 부담이 되거나 아예 독자의 손에 가기도 전에 작품 자체가 사장되어버리는 최악의 경우도 생길 수 있을 법하다. 중국 최초의 장편소설 총서인 ‘종이호랑이(布老虎)’는 1990년대 초 중국 문단의 이러한 시대적 배경하에서 탄생되었다. 이 총서의 발기자는 장편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냉담한 태도를 바꾸어보려는 시도로 몇몇 작가들에게 작품의 예술성을 떨어뜨리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재미있게 읽을 만한 장편소설을 창작해줄 것을 청했다. 티에닝의 두번째 장편소설인 『비가 오지 않는 도시』는 그 ‘종이호랑이’ 총서의 하나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비가 오지 않는 도시』는 중국에서 백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 애초에 보다 ‘대중성 있는 소설’을 염두에 두고 집필했던 이유도 있겠지만 이 소설이 백만이 넘는 중국 독자를 사로잡으며 중국 문단의 지형도를 바꾸기에 이르른 가장 큰 원인은작품 속에 묘사된 삶의 세세한 부분들, 혹은 너무나 ‘중국적’인 생활 그 자체의 맛에 있다. 그에 덧붙여, 작가의 ‘삶’에 대한 섬세하고도 진실된 관심이야말로 이 소설을 빛나게 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이상한 연인들의 나쁜 사랑법”, 세계의 주인공은 여자, 여자, 여자!
사건의 발단은 쓰레기통에 버려진 담홍빛 구두 한 켤레에서 비롯된다. 초등학교 삼학년생인 바이인은 중국 북방의 중소도시인 창예 시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산다. 엄마는 이탈리아제 구두를 만드는 공장에서, 파견 나와 있던 이탈리아 남자와 눈이 맞아 떠나버렸다. 어느 날, 하굣길에 우연이 바이인의 눈에 띈 담홍빛 구두에는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었고 바이인의 아버지, 바이이허가 이 비밀을 손에 쥠으로써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이천 매가 넘는 분량의 이 작품은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등장하여 시종일관 생생하고도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제공한다. 단숨에 읽히는 일군의 일본 소설들과는 또 다른 느낌의, 삶에 대한 깊이와 세련된 사유가 넘치는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되는 인물은 세 여성 주인공이다. 창예 시의 부시장이자 거페이윈의 남편인 ‘푸윈저’와 사랑에 빠진 ‘타오요우자’, 타오요우자의 외삼촌이자 ‘시대를 잘못 타고난’ 불운한 화가이며 노총각인 ‘두즈’를 짝사랑하는 ‘치우예’,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고 난 후, 오히려 매력적이고 똑똑한 ‘아내’로 자연스럽게 변모하는 ‘거페이윈’이 바로 그들인데, 작가가 섬뜩하리만큼 섬세하게 묘사해낸 이들 세 여성의 심리 변화야말로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라 할 것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서술된 ‘연애의 기술’은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각기 묘한 분위기를 연출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표면적으로는 ‘푸윈저’와 ‘두즈’, ‘바이이허’로 대표되는 남성 인물들이 중심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면에 감추어진 면면을 살펴보면 왜 작가 티에닝을 페미니즘 계열로 분류하는지 짐작이 간다. 이를테면, ‘타오요우자’와 사랑에 빠져 눈이 멀어버렸던 ‘푸윈저’는 결국 바라던 ‘시장’으로 승진하면서 자신의 사회적 권력욕 때문에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 ‘타오요우자’를 아주 비참하게 버리고, ‘두즈’는 ‘치우예’의 적극적이고도 간절한 고백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건조한 태도로 거부해버리며, ‘바이이허’는 거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거페이윈’을 협박하여 많은 이득을 취한다. 그러나 이들 세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는 작품 마지막까지 변모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중의 하나는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기까지 한다. 그러나 ‘타오요우자’와 ‘치우예’, ‘거페이윈’은 모든 사건과 얼기설기 얽혀 있던 관계들이 종결되는 지점에서 미래지향적이고도 긍정적이며 성숙한 인간형으로 거듭난다. 많은 인물들이 거미줄처럼 각기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도 이 작품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중국 대륙을 뒤흔들고 있는 ‘티에닝’ 바람! 티에닝, 그녀는 누구인가
1957년 화가인 아버지와 음대 교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티에닝은 문화혁명 때 허베이 성 농촌으로 하방(下方)당하면서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웠다. 1975년 첫 작품 「날아다니는 낫」을 발표한 이후, 1982년 농촌 소녀 샹쉐가 달걀 한 광주리와 너무나 갖고 싶었던 필통을 여대생과 맞바꾸는 내용을 담은 단편소설 「아, 샹쉐」를 발표하면서 유명해졌다. 1984년 소녀의 복잡하고 모순된 내면세계를 그린 중편소설 「단추 없는 붉은 티셔츠」와 「6월의 화제」가 잇따라 전문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1998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 『장미문』은 페미니즘 경향의 작품으로 여러 세대에 걸친 여성들의 투쟁사를 밀도 있게 그려냈다는 찬사를 받았다. 아직 미혼인 작가는 32년간 50여 편의 작품을 쓰면서 중국 최고의 문학상인 ‘루쉰문학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였으며 지금까지 40여 차례에 걸쳐 권위 있는 문학상을 받았다. 티에닝 작품은 섬세한 내면 묘사가 특징이다. 이상과 희망을 동경하지만 모순된 삶의 아픔이 거의 대부분의 작품 속에 생생하게 그려진다. 따뜻하면서도 문학적인 문체는 시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 만큼 유려하다. 장편소설 『비가 오지 않는 도시』와 『목욕하는 여인들』은 중국 출판계에서는 이례적으로 백만 권 이상 팔려나가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녀의 속눈썹이 하도 길어서 인조 속눈썹을 붙인 줄 알았다가 화장실에서 세수하는 모습을 보고 진짜 눈썹인 줄 알았다는 일화가 있을 만큼 굉장한 미모로도 유명하다.
중국작가협회와 티에닝
1949년 7월 중화문학공작자협회로 출범해 1953년 10월 중국작가협회로 명칭을 변경한 중국 최대의 작가단체이다. 이 단체의 주석은 1949년부터 1981년까지 마오둔이, 1984년부터 2005년까지 바진이 맡았다. 마오둔과 바진은 모두 중국문학의 거장으로 작가협회 주석과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전국정협) 부주석을 겸임했다. 티에닝의 주석 선임은 “중국공산당 영도하에 중국 각 민족 작가들이 스스로 만든 전문적인 인민단체”인 작가협회 주석에 여성 최초이자, 50세 미만의 젊은 인사가 선출된 것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화제가 되었다. 티에닝은 현재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이기도 해 앞으로 전임 작가협회 주석들처럼 전국정협 부주석을 겸하게 될 가능성이 커, 다시 최연소 전국정협 부주석의 타이틀이 붙게 될 것으로 예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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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_ 티에닝(鐵凝) 허베이 성(河北省) 자오(趙) 현 출신으로 1957년에 베이징에서 태어나 서양화가인 부친과 성악 교수인 모친 사이에서 성장했다. 1975년 지식청년 시절부터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주요 작품으로 장편소설 『장미문(玫瑰門)』, 『비가 오지 않는 도시(無雨之城)』, 『목욕하는 여인들(大浴女)』, 『목화꽃송이(棉花垜)』 외, 다수의 단편소설과 산문, 시나리오 등이 있다. 중국을 대표하는 페미니즘 소설가이자 지한파(知韓派) 작가로 허베이 성 작가협회 주석을 거쳐 2006년 11월에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작품과 삶 모두 상당한 깊이를 인정받아야만 오를 수 있는 문단 최고의 지위인 중국작가협회 주석의 자리에 올랐다.
옮긴이_ 김태성 1959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호서대학교 중어중국학과 겸임교수로 있으며 중국학 연구공동체인 한성문화연구소 대표, 계간『시평』기획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과 한국외국어대학교, 동덕여자대학교 등에 출강하고 있다. 역서 및 저서로 『중국사 뒷이야기』, 『상경(商經)』, 『변경(辯經)』, 『노신 평전』, 『양자강을 가로질러 중국을 보다』, 『중국문화지리를 읽다』, 『굶주린 여자』,『상하이에서의 죽음』 등이 있다.
이선영 건국대학교 중문학과를 졸업하고 타이완 문화대학을 거쳐,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을 졸업하고 중국어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역서로 『서유기의 경영 지혜』, 『홍정상인 호설암의 인간경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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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판 ‘섹스 앤 시티’ ―― 한윤정 기자, 경향신문(2007. 04. 20.) 中 대중문학의 과도기를 읽는다 ―― 이준삼 기자, 연합뉴스(2007. 04. 18.) 세계적 중국작가 한국나들이 ―― 박홍환 기자, 서울신문(2007. 0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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