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의 문학/소설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2007)

실천문학 2013. 8. 7. 11:58

 

 

 

 

 

 

 

           

 

 

 

 

 

 


2003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김서령의 첫 창작집이 출간되었다. 등단작인 「역전다방」을 비롯하여 그동안 발표해온 작품들을 골라 엮은 이번 창작집에 수록된 아홉 편의 단편소설은 소설의 진정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수작들이다. 등단작에서 이미 예견되기도 했거니와 작가는 줄곧 외롭고 불행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왔다. 엽기적인 사이보그들로 넘쳐나는 한국문학판에 단비와도 같은 작가, 김서령의 사람 냄새 나는 첫 소설집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는 변변한 울타리조차 없이 헐벗은 이들을 감싸 안는 따뜻한 감성이 눈부시다.


김서령의 시선은 세상의 가장자리를 향한다. 뜨내기들이나 찾는 역전다방, 폐허가 되어버린 바닷가의 민박집, 비수기의 호숫가 호텔, 영주권을 바라고 간 호주 등. 제 상처를 끌어안고 외진 곳에 발 내린 인물들은 그러나, 제 아픔으로 깊어져 다른 이의 외로움을 가만가만 다독인다. 그 여린 목숨들에 이름을 달아주는 일, 김서령의 소설은 이미 그 몫을 해내고 있다. 그래서일까. 풋사과처럼 신선한 첫 소설집 어디에선가 농익은 과일의 농염함마저 느껴지는 것은. 기억을 희미하게 해주는 ‘무화과잼 한 숟갈’을 입에 떠넣듯 이 책을 펼친다. 다디단 향기가 입 안에 번진다. _이혜경(소설가)

애초부터 희망 같은 것은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외롭고 약하고 착한 그들에게 세상은 늘 불친절했으니까. 하나같이 막막한 삶이었지만 그들이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옆자리의 또 다른 ‘나’들 때문이다. 한 고통이 다른 고통을 이해하고 한 슬픔이 다른 슬픔을 위로하는 광경 속에서 그들은 독자의 곁으로 조금씩 다가앉는다. 그리하여 격정도 파국도 없이 고요하고 무감한 소설들은 어느새 귓속말처럼 다정해지는 것이다. 김서령은 이 적막한 온기의 힘을 담담하고도 절실하게 그려낸다. 김서령의 소설을 읽으며 슬픔도 힘이 된다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_서영인(문학평론가)



불편한 생의 진실, 소외된 인생에게 건네는 들꽃 한 송이……
“아이고, 불쌍한 토끼 같으니. 살아봐라. 세상이 다 그렇게 아린 게니라.”

“외롭고 불행한 사람들”을 향한 작가의 관심은 초지일관이다. ‘1974년생’ 젊은 작가 김서령의 세상 읽기는 「역전다방」, 「무화과 잼 한 숟갈」 그리고 표제작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등을 통해 알 수 있듯 때로 신파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표면을 감싸고 있는 이른바 그 ‘신파’라는 것이 실은 누구나 외면하고 싶어했던 ‘불행’의 다른 이름이며, 이 작가가 빛나는 이유는 그 ‘신파적’ 불행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는 감성에 있음을 깨닫게 한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불행이 누적되다 결국 험한 세상을 홀로 견뎌내야만 하는 비정한 삶의 한복판에 내던져진 존재들이다. 이들이 가난한 진짜 이유는 눈빛 주고받으며 정 나눌 곳 하나 없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끊임없이 그런 인생들을 서로 마주치게 하고 스쳐가게 하며 그리하여 종국에는 서로 기대어 살도록 만든다.
예컨대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같은 작품을 한번 보자. 기댈 곳이라곤 하늘 아래 하나뿐인 혈육, 언니밖에 없던 정민. 그 언니 하나 믿고 낯선 곳에 발을 밀어넣었다. 그런데 언니마저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해버리고 이제 홀로 남겨진 정민을 보듬어주는 이는 남자친구인 태원이와 그의 어머니다. 태원이 엄마가 정민을 끌어안고 다독이는 장면은 이 작품집 전체를 관통한다.
“아이고, 불쌍한 토끼 같으니. 살아봐라. 세상이 다 그렇게 아린 게니라.”
작가는 말해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우정이니, 사랑 따위 손에 잡히지도 않는 허상들로 가득한 이 비정한 생의 터널을 무연히 통과해내기 위해서는 그렇게 양파같이 아린 삶의 속성을 체득해야만 하는 거라고.
그렇다고 이 작가가 마냥 따뜻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고양이와 나」, 「옛 애인을 만나러 가다」에서는 이 작가의 어딘가 ‘신파적’ 속성이 실은 가장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품게 한다.
호주 유학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의 여성 주인공은 비행기도 한 번 타본 적 없는 인물이다. 그런데도 호주니, 브리즈번이니, 유학 절차 따위를 하루 종일 떠들어댄다. 그런 그녀는 현재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장’이라는 유부남과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한밤에 함께 차 안에 있다 교통사고를 당했고 그녀는 그 현장을 혼자서 빠져나와버렸다. 죽어가는 연인이 그 와중에서도 들통나버릴지 모를 내연의 관계를 염려하여 그녀를 밀어냈기 때문이다. 연인이 피를 흘리며 사력을 다해 내뱉는 “가”라는 한 마디는 그녀의 남겨진 생이 앞으로 얼마나 황량할지 예감케 한다.
아홉 편이 실린 이 소설집에서 「연가」와 더불어 드문 남성 주인공에 해당하는 「고양이와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영화 시나리오 작가가 꿈이었으나 지금은 포르노 사이트에 야한 원고를 쓰는 것으로 겨우 용돈 벌이나 하는 정도인 주인공. 그의 아내는 한때 배우가 꿈이었으나 지금은 케이블 방송 홈쇼핑의 쇼호스트. 집 밖에서나 집 안에서나 갈 곳이라곤 없는 주인공에 비해 아내는 능력 있는 미모의 방송인이다. 그는 마치 그가 주워온 길고양이처럼 아내에 의해 양육되는 존재 같다. 상냥하고 정 깊었던 아내가 해외 출장을 핑계로 호텔에 머물지만 주인공인 그도 독자도 그 이유를 명확히 설명할 수 없다. 주워와 기르던 길고양이를 안락사시키는 그의 심정이나 또다시 상냥하고 정 깊은 모습으로 돌아올 아내, 어쩐지 집 같지 않은 그들 부부의 고독하고 쓸쓸한 정서를 그저 가슴 짠하게 느낄 수만 있을 뿐이다.




한국문학에 내린 단비 같은 작가, “완전소중 김서령”

이른 나이에 천애고아가 되어야 했던 여고 삼수생(「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아이와 헤어져 살아야 하는 다방 레지(「역전다방」), 아이를 언니에게 떠맡기고 새 삶을 찾아 먼 나라로 떠나간 젊은 엄마(「무화과 잼 한 숟갈」), 영주권을 꿈꾸며 헤어드레서가 된 여인(「옛 애인을 만나러 가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일에 파묻혀 살아가는 커리어 우먼(「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호텔 프런트를 맡고 있으면서 은밀한 관계에 빠져 있는 호텔리어(「사과와 적포도주가 있는 테이블」), 야한 이야기로 용돈 벌이나 할 뿐인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고양이와 나」), 재기의 꿈을 접고 피와 언어가 다른 여인과 낯선 타국에서 무위한 삶을 이어가는 남자(「연가」), 쇠락한 해수욕장에서 되지도 않는 횟집을 열어둔 채, 현대판 대리모가 되어 신음하는 여인(「쌍둥이들의 방」). 이들 인물들은 대부분 ‘나’라는 일인칭 주인공의 시점으로 그려져 어딘가 닮은꼴인 듯하면서도 전혀 다른 삶의 풍경을 직조해낸다. 각각의 작품과 그 작품 속 주인공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작가가 곳곳에 장치해놓은 ‘환유’와 ‘상징’의 코드들을 잘 읽어내야 한다. 사과와 적포도주에 알레르기를 갖고 있다거나 토끼귀 증후군 혹은 환상통과 같은 것들을 예로 들 수 있을 듯하다. 고달팠던 과거의 기억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이런 특별한 신체 메커니즘들은 작가가 주조해낸 인물들의 세계를 넓고 깊게 만들어준다. 그녀의 이야기들이 아기자기하면서도 조밀하고 동시에 압축과 비약, 생략이 뛰어난 것도 같은 이유 덕분일 것이다. 환유와 상징을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하면서 섬세한 사건들과 심리 묘사로 인물 각각의 개체적 특이성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작가적인 힘, 이것이 김서령의 단편소설이 보여주는 특징적 양상이다.
무엇보다 작가의 작품을 빛나게 하는 것은 외계의 언어들이 횡행하는 작금의 현실에 비추었을 때 오히려 낯설기까지 한, 의성어와 의태어들의 활용이다. 그녀의 작품들 속에서 쉽게 찾아낼 수 있는 각종 의성어와 의태어의 활용은 작가의 창조적 조어력이 창작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가 다시금 깨닫게 한다.
이제 우리는 이 젊은 작가가 제발 “얼토당토않은 사랑에 또 빠지지만”(「작가의 말」) 않기를 기도하면 되겠다. 첫 소설집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를 읽은 많은 독자들이 아주 오랜 후에도 그녀의 소설로 인해 쓸쓸하고 고독하기를, 따뜻하고 행복하기를 바랄 테니 말이다.


김서령
1974년 포항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으며 2003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대산창작기금(2005년)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신진예술가지원금(200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진흥기금(2007년)을 받았다.

 

 남자들 떠난뒤 그녀들이 부르는 ‘사노라면’ ―― 최재봉 기자, 한겨레(2007. 04. 19.)
 김서령, 동인문학상 최종심 후보에 ―― 김태훈 기자, 조선일보(2007. 06. 10.)
 외로움을 만나면 외로움이 사라진다 ―― 위지혜 기자, 컬쳐뉴스(2007. 05. 16.)
 너무 신파적인, 너무 절망적인 … ―― 손민호 기자, 중앙일보(2007. 05.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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