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에 내놓은 양문규 시인의 두번째 시집. 자연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소박한 자기 발견이 여전히 서정시의
미덕임을 보여주는 시집이다.
“그의 시는 나무나 풀이나 돌 또는 새나 짐승의 숨결이며 몸놀림처럼 자연 속에서 그 한부분이 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깔끔하게 다듬어진 말이며 절제된 감정도 그의 시를 읽는 맛을 한결 돋운다.”__신경림(시인)
지상의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서
눈 위에 눈을 포갠다
아직도 눈보라는 길을 끊고
새들은 푸드득,
눈 속으로 가지 않아도 가고
있다
여울목 산모퉁이를 돌아 나는 간다
절 속으로 들어가는 길
무심코 밟고 지나갔을,
이 세상의 가벼운 눈물 한
방울
눈을 맞춘다
눈이 길의 눈 속으로 들어간다
끊임없이,
추억의 오랜 울음을 감싸안고
그 속을 내가
간다
__「눈길」(전문)
양문규
1960년 충북 영동 출생으로, 청주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89년 『한국문학』에 「꽃들에 대하여」 외 한 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벙어리 연가』가 있다. 현재 명지대,
대전대 등에 출강하고 있다.
세상 향하던 외침 '내면' 길터 웅숭
깊게
1960년대 초반생 시인 세 명의 시집이 실천문학사에서 나란히 나왔다. 양문규(42)씨의 [영국사에는 범종이 없다],
정세기(41)씨의 [겨울산은 푸른 상처를 지니고 산다], 맹문재(39)씨의 [물고기에게 배우다]가 그것이다.
세 시인의 공통점은
이들이 지난 시절 사회변혁의 꿈을 안고 구체적 실천에 임했던 실천가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각각 문화운동(양문규), 교육운동(정세기),
노동운동에 매진하면서 시작(詩作)을 병행해 왔다. 당시 이들의 시는 자신들이 몸담고 표방하던 운동 및 변혁과 긴밀하게 연결된 것이었다.
이들이 짧게는 6년에서 길게는 11년 만에 새로 펴낸 시집에서 운동과 실천의 면모는 눈에 띄게 옅어졌다. 공동체와 역사를 향하던
시선은 개인과 내면으로 방향을 돌렸으며, 격했던 어조는 한층 누그러졌다.
"다시 나무에게 묻는다//눈이 내리고, 찬바람 부는
날/어두워져 가는,/검은 들녘 속으로 사라져간/네 그림자를/망연히 생각해 보는 때가 있는가?"(양문규 <나무에게 묻는다>)
"산도 나도 상처는 깊어/서로의 상처에 기대면/내 가슴에도 새겨지는 나이테/아픔이 내게로 가는 길을 연다"(정세기 <겨울산은
푸른 상처를 지니고 산다>)
"즐기면서 길을 내고 낸 길을 버리는 물고기들에게/나는 배운다/(…)/물고기들이 무수히
지나갔지만/발자국 하나 남지 않은 저 무한한 광장에/나는 들어선다"(맹문재 <물고기에게 배우다>)
이들이 나무와 산,
물고기를 등장시켜 묻고 의지하거나 배우는 식으로 자신의 발언을 간접화하는 양상 또한 주목할 만하다.
최재봉 기자 / 한겨레신문 /
2002.6.24
386세대 민중시인 셋 '새로운 길' 모색하다
정세기, 양문규, 맹문재 등
80년대 이후 민중시 계열의 작품활동을 펼쳐온 '386세대' 시인들이 긴 침묵 끝에 시집을 냈다. 정세기의 [겨울산은 푸른 상처를 지니고
산다], 양문규의 [영국사에는 범종이 없다], 맹문재의 [물고기에게 배우다](실천문학사).
짧게는 6년, 길게는 11년만에 내놓은
시집들이다. 세 시집은 80~90년 대를 관통하면서 현실 변혁적인 시들을 써왔던 이들의 시 세계가 새로운 변화와 모색의 길을 걷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때는 현실개조에 너무 무게중심을 두어 아름다움을 배제했고, 또 한때는 아름다움을 위해 일부러 현실을 방기하려고도 애썼다(?).
이제 아름다움과 개조의 꿈을 통합하는 것이 앞으로의 나의 시적 과제가 될 것이다"고 한 정 시인의 시집 후기에 그것이 잘 드러나 있다.
오랜동안 교육현장의 중심에 서 있었던 정 시인은 8년 만에 내놓은 시집에서 자신의 삶과 상처를 차분하게 돌아보고 있다. "슬픔이
끌어 산으로 간다/ 살 저미는 아픔에 겨워 산도/ 어디론가 떠날 채비 중이다"('겨울산은 푸른 상처를 지니고 산다')고 한 말은 한 시절의
무게감을 벗어버리고 자신의 모습을 돌아 보고자고 하는 선언으로 읽힌다.
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등에서 일하다 서울생활을 청산,
충북 영동 천태산 영국사에 머물고 있는 양문규 시인도 11년만에 낸 두번째 시집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집을 떠나 산 중에서 길을
찾고 있다. 그러나 그 길은 적막하기 그지없어 어디에도 길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제 존재를 드러내는 '울음'만 미명으로부터 삶의 의미를
확인시켜 줄 뿐…" 이라고 말한다.
맹문재 시인의 두번째 시집에는, 자본의 폭력에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보냈던 첫
시집에서와 마찬가지로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열망이 꿈틀거린다. 그러나 "유명한 민중시인이/ 걸어오는 것이었다/ 나는 정중히 인사를 하고/ 어디에
가시느냐고 물었다/ 시인은 노동대책회의가 있어서 간다면서/ 호텔의 커피숍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뿌리')며 '노동'에 대해 지녀왔던 관념적인
믿음을 철회한다.
그렇다면 이제 시인은 어디에서 길을 찾을 것인가. 다음 시편이 그 새로운 모색을 보여준다. "길은 어디에도
없는데/ 쉬지 않고 길을 내고/ 낸 길은 또 미련을 두지 않고 지운다/ 즐기면서 길을 내고 낸 길을 버리는 물고기들에게/ 나는
배운다"('물고기에게 배우다')
승인배 기자 / 조선일보 / 2002.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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