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의 문학/시

기름美人 (2005)

실천문학 2013. 8. 11. 23:44

 

 

 

 

 

 

 

 

 

              

 

 

 

 

 

 

 

 

 

 

조기조는 1980년대 말부터 오랫동안 노동자문학운동에 참여해온 노동자 출신 시인이다. 첫 시집 [낡은 기계](1997)로 주목 받았던 그가 8년 만에 두번째 시집 [기름美人]을 펴냈다. 조기조는 [낡은 기계]에서 오롯하게 노동자의 삶의 진실을 포착해내며, 삶의 실체 속에서 진중한 집중을 통해 얻어낸 통찰을 보여준 바 있다.

그리고 이번에 펴낸 두번째 시집 역시 지속되는 그의 정체성과 실천에 걸맞게 노동하는 삶에 바쳐지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예의 그의 특장인 기계적 상상력을 통하여 유리된 노동자의 삶을 해체하고 새로운 삶의 모습들을 재구성해내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 하겠다.

1980년대 박영근, 박노해, 김해화, 백무산 등의 뒤를 이어 1990년대 노동자시인으로 자리매김한 조기조 시인은, 그들의 성과를 이어내면서도 다른, 그리고 오늘날의 노동시인들과도 구분되는 차이를 뚜렷이 드러낸다. 그 자신 노동자로 살아오면서 노동자의 삶을 떠날 수 없었던 운명과 그가 지닌 체질이 일종의 균형감각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겠다. 또한 노동문학 진영이 상대적으로 왜소해진 오늘날에도 여전히 노동자로서 자신의 삶의 토대를 탐구한다는 의미에서 그의 진중함이 돋보인다.

조기조 시인의 이번 시집 [기름美人]에 발문을 쓴 문학평론가 조정환은 그의 시집의 한 축으로 기계와 인간의 교감에 대한 형상화에 집중하고 있는 점을 일컬어 ‘사이보그의 노래’라고 명명한다. 미시적이고 거시적인 모든 기계세계를 통과해 흐를 그의 시편들을 주목해보자.


작업복 갈아입고 스위치를 켜는 순간
탱크 가득 기름이 용솟음 치면서
기계는 힘차게 운동을 시작한다
내 몸 속 느슨해진 혈압 알맞게 올라
맹렬한 지구의 진동을 느낀다
―「아침」 전문


산이나 강 이름보다 공장 이름을
더 잘 외우며 방방곡곡을 다닌다
이제 공장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내가 만든 기계가 있다

(중략)

쌩쌩 잘 돌아가는 놈
덜덜거리며 헐떡이는 놈
부도난 공장에 죽치고 있는 놈
망가져서 팽개쳐진 놈

그 중 어느 놈을 만나도
괜히 눈시울이 저려온다
어쩌면 동기간 같기도 하고
친구 같기도 한.
―「내가 만든 기계」 전문




조기조 시인은 본질을 흐리는 과장과 분식의 언어 대신 맑고 투명한 언어로 삶의 진정성을 열어 보인다. 예의 특장인 기계적 상상력으로부터 생태에 대한 관찰과 보고, 유사 이래 인간의 나날의 실존을 규정해온 시간에 대한 사유와 성찰에 이르기까지 소재나 정서의 표출에 있어 스펙스트럼이 넓고, 감정 절제의 언어 미학을 통해 내용의 진실성을 투명하게 전달하는 힘이 있다. 부박하고 경박한 시대에 큰 길을 경작하는 농부의 보폭으로 걸어가는 순도 높은 시인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된다. __이재무(시인)

조기조 시인의 시에는 그의 고향 동구 밖에 서 있는 곰솔의 성정이 깊다. 벌써 스무 몇 해째, 그는 그 뿌리를 구로공단으로 옮겨와 가지가 꺾이고 밑둥을 찍히며 바람 속에 걸어왔다. 그가 [쇠]와 [공구]를 다룰 때 그 곰솔 아래 모이던 사람들이 괭이와 낫, 흙을 다루던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제 그는 자신을 새로운 시간 속에 세운다. 첫 시집이 뿌리를 기댄 저 80년대와 또 다른, 한 뼘의 햇살마저 거대 빌딩에 구획되고 잘려나가는 불모의 거리를 부유하면서, 그는 스스로 푸른 가지를 드리우려는 내밀한 뿌리를 가졌다. 그가 그려내는 민달팽이의 흔적 같은 암중모색이 뼈아프다. __장철문(시인)

조기조 시인은 1963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나 1994년 『실천문학』신인상을 받으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으로 『낡은 기계』가 있으며, 편저로 『한국대표노동시집』, 『한국대표노동문학론집』 등이 있다.

'시'는 교수와 노동자 모두에게 공평했다 ―― 홍성식 기자, 오마이뉴스(2005. 02. 13.)
기름밥 친구 기계야,널 보면 눈물이… ―― 정철훈 기자, 국민일보(2005. 03. 03.)

노동자시인 조기 조 8년 만의 새 시집



1994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시단에 이름을 알린 노동자 출신 시인 조기조(42). 그의 새 시집 ‘기름 美人’(실천문학사)은 솔직히 좀 생경스럽다. 물론 그것은 실체가 없는 순전히 생뚱맞은 편견 때문이긴 하지만…. 이념의 땀내를 피우는 노동시가 요즘 독자들한테도 온전히 먹혀들 수 있을까. 그러나 그런 의문은 몇몇 시편을 스쳐 읽기만 해도 금세 사라진다.

첫 시집 ‘낡은 기계’ 이후 8년 만에 내놓은 새 작품은 여전히 사실주의에 발붙이고 있되 삶의 보편적 이치를 향해 활짝 귓문을 열었다.


‘기름’ 냄새가 스며 있긴 하다. 하지만 이번에 동원된 기름의 용처는 노동자의 삶의 해체에 머물지 않았다. 고장난 기계를 분해하다 뒹구는 쇠구슬을 시인은 “기름에 흠뻑 젖은 기름공주”(‘기름공주’)로 의인화한다. 그런가 하면 어느새 “네 눈동자는/어느 지극한 마음의/마지막 그리움을 보여주는/진신사리를 닮았더라.”라는 선적(禪的) 상상력으로 비약한다. 문학평론가 조정환은 “기계와 인간의 교감에 대한 형상화”란 말로 시인의 작품세계를 압축했다.


시인 특유의 ‘기계적 상상력’은 여러 다른 시편에서도 드러난다. 시인은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들고 고치면서/조금씩 조금씩 망가져가는 공구들”(‘공구실에서’)을 감싸 안으며 “어쩌면 동기간 같기도 하고/친구 같기도 한”(‘내가 만든 기계’) 기계를 향해 은근한 애정의 시선을 보낸다.


삶의 강파른 마디에 올라서서 살붙이와 흘러간 시간에 대해 향수를 보내는 시들에서는 찝찌름한 눈물의 회한이 묻어 나온다. 어머니와 고향의 늙은 곰솔나무의 이미지를 겹쳐낸 ‘어머니 곰솔’에서는 “바람을 좋게 풀어놓고 그늘을 넓게 내리며/늘 눈가가 짓무르던 어머니/오래 사는 것이 저렇게 서럽기도 하데.”라며 소맷자락으로 쓱 눈가를 문지른다.


시인은 때로 모성과 고향을 향한 먼 시선을 통해 시인으로서의 좌표를 확인하기도 한다.“초등학생 시절 먼발치에 주저앉아서 개 혓바닥같이 길고 질긴 여름 해가 꼬박 질 때까지 사래 긴 밭을 하염없이 오르락내리락하며 김매기 품을 팔던”(‘리듬’) 그 어머니가 “오늘날 내 시의 리듬이 되었다.”고 시인은 마지막 행을 채웠다.6000원.


--서울신문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2005.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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