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적시는 선뜻한
일깨움
시인은 생의 어느 한순간, 어느 자락에도 쉼 없이 시를 부려놓는다. 첫번째 시집을 통해 아득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두번째 시집을 통해 그 그리움을 도처의 시적 대상에 투영해보던 단계를 넘어, 이제 개인의 사적인 영역을 지운 채 담담한 성찰과 발견,
온후한 각성과 포용으로 넘쳐나는 시들을 선보이고 있다.
내가 하늘보다 땅에 더 감동받으며/이렇게 천천히 한 발 한 발/음미하며 걸을
수 있는 것은/땅이 나를 끌어당기며 놓지 않기 때문이지/아까부터 내 몸의 무게를 느끼며/어디 좀 쉴 자리를 찾는 것도/나의 모체 지구의 과분한
사랑에/약간 엄살을 부리는 거야/어쩌면 나는 둥둥 떠다닐 수도/훨훨 날아다닐 수도 있었겠지만/그랬다면 허무하고 막막했을 거야/뿌리나 발을 가지고
내려앉고 싶었을 거야/낮게 누워 사랑하고 싶었을 거야/내 마음 언제나 나무처럼 어디에 붙박여 있는 것도/그러다 또 야생동물처럼 어디론가 떠나가고
싶은 것도/한 줌 흙으로도 풀 한 포기 키우고 벌레 한 마리 잠재우는/우리 별의 살가운 사랑 때문이지/또한 그 별의 한 조각인 내 출렁이는 열망
때문이지/수십억 년 전 별과 내가 한 개 세포였을 적부터/한 점 빛이었을 때부터 (「내가 천천히 음미하며 걸을 수 있는 것은」
전문)
삶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철학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이 시는 존재의 현재를 승인하는 자리에서 출발한다. 초월하고자 하는 갈망도
접고, 침잠하고자 하는 안주도 거부하며, 시인은 다만 묵묵히 걸으며 깊이 사유할 뿐이다. 시인은 ‘걷는다’는 이 단조로운 움직임을 경이롭게 시적
대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일상의 보잘것없는 몸짓(행위)을 깊이 성찰하는 시인의 정신세계는 여기서 머무르지 않는다.
시답잖은
인생살이 그나마 고마운 것 중 하나는/마음을 생짜로 노천에 내놓진 않아도 된다는 것/몸이라는 황송한 제 집이 있어서/벌거숭이 마음 담아둘 수
있다는 것이다//예고 없이 몰아붙이는 폭풍에 찢겨/거둘 수도 없는 깃발처럼 너덜너덜한 마음/밤낮 기워대도 덕지덕지 어리석음뿐인 마음/그대로 훤히
비친다면 누군들 태연히 길을 나서리/모르는 척 그 누추한 마음 덮어주는/몸은 너그럽다//(중략)//하루에도 수십 번 쌓고 허무는 방죽
같은/퍼내고 퍼내도 다시 고이는 웅덩이 같은/허망하고도 질긴 마음 바람인 듯 끌어안아/삼천대천 무한 겁 시공 속에 한 그루 나무로/든든히
뿌리내렸다 미련 없이 소멸하는/몸은 듬직하다 (「몸」 부분)
이 시는 아름답다. 무엇보다 새로운 인식이 도드라져 있다. 시인은
자연(생명)의 순환 속에 존재하는 몸의 의미를 되물으며 우주적 질서에 순응하는 눈부신 자각에 이른다.
하찮은 존재들에 깃든 생명의 소리
조향미 시인은 시적 대상을 새롭게
발견함으로써 “매순간 심호흡으로 자기 생을 밀어올리는”(「봄의 힘」) 가난한 목숨들을 어루만진다. “하찮은, 쓸모없는, 없애도
될”(「간이역」), 그러나 생명이 있는 뭇 존재들을 감싸안으며, “대지에 겸허히 허리 굽혀 일하는 사람들의 행복”, “끝없는 경주를 거부한 느린
도보의 즐거움”, “무욕한 가난의 자유로움”과 “공존의 기쁨”(「그 나무가 나에게 팔을 벌렸다」)을 되찾아주고자 한다.
함양 백전
녹색대학 가는 버스는 오십 분 간격이다/버스가 떠나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일찍 차에 오르니 할머니만 다섯 먼저 타고 계시다/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노친네들은 서로 거리낌 없다/할매는 올해 나이가 몇이오/나는 아직 얼마 안 돼요 칠십서이/아직 젊구마 한참 농사 짓겄네/그래도 오만 데가
아푸고 쑤시요 할매는 얼마요/나는 칠십아홉 저 할매하고 동갑이오/칠십셋은 아직 괜찮소 여섯 넘기면 영 힘에 부치요/손수레와 도리깨를 옆에 둔
할머니가 칠십, 제일 젊다/중년 아낙 둘이 상자 보따리를 들고 새로 탔다/저기 뭣이꼬/삼이까/삼은 아인 거 같은데 더 무거버 비는데/젊은
할머니가 호기심을 참지 못한다/새댁이 그기 뭣이요/친정엄마가 싸주는 거라요/아이고, 추석도 하마 지났는데 친정어마씨가 꼭꼭 챙기놨구마/자식들한테
저래 싸주마 맘이 시원하제/하모요, 오목조목 싸주먼 묵을 놈이 묵으니께 주는 마음 좋고/싸갖고 가먼 어매가 주는 거니께 묵으먼서 좋고 안
그라요/할매는 콩 도리깨를 샀구마 올해는 콩이 질어서 타작 좀 하겄네/콩이 잘 되야제 팥 없이는 살아도 콩 없이는 못 사니께/할머니는 도리깨로
마당 가득 콩 타작을 하여/둥글둥글 메주 띄워 간장 된장 청국장 단지 단지 담아/전국 각지 오남매에게 또 오목조목 싸 부칠 것이다/묵을 놈이
묵으니께 주는 마음 시원하제 (「함양 군내버스」 전문)
이 시에는 어떤 기교도 없다. 그저 우리네 말들을 풀어놓고, 그 말들이 모여
생의 한 자락을 환하게 밝혀 보일 뿐. 굳이 군더더기 같은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시는 무릇 이래야 하는 법 아닌가.
“조향미의 시는 은은하면서도 깊고, 편안하면서도 감칠맛이 난다. 삶에서 우러난 맛이다. 조향미의 시는 따스하면서도 쓸쓸하다.
문득문득 배어나오는 적막을 안고 혼자 있으면서도, 쓸쓸한 것, 쇠잔해져가는 것, 사라져가는 것들을 향한 사랑과 연민, 그리고 거기서 얻은 온기를
우리에게 따듯한 언어로 나누어준다. 화장기 하나 없는 시, 기교를 부리지 않는 시, 그러면서도 맑고 팽팽한 시, 조향미의 시에서는 정결하고 선한
영혼이 찻물처럼 우러나오는 걸 느낀다. 시 한 편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게 하는 보석같이 빛나는 구절이 이렇게 많은 시집은 흔치 않다.” (도종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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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미 시인은 1961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다. 부산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였고, 1984년 무크지 『전망』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으로 『길보다 멀리 기다림은 뻗어 있네』, 『새의 마음』이 있다. 현재 부산 문현여고에 재직 중이다. |

자연 순응으로 깨닫는 생명의
숨결 ―― 이순녀 기자, 서울신문(2006. 08. 25.)
비관 위의 ‘환장하도록’ 살만한 세상 ―― 최재봉 기자, 한겨레(2006. 08. 21.)
삶에서 우러난 맛깔스러운
언어 ―― 최학림 기자, 부산일보(2006. 0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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