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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그 테리오 <노동계급은 없다> 2013-08-27

실천문학 2013. 9. 6. 18:38

 

 

 

 

 

 

 

 

 

                

 

 

 

 

 

 

 

 

부속인간의 삶을 그린 노동 르포르타주
노동자는 어떻게 힘을 잃고 일터를 떠나는가?




실업률, 정리해고, 파업 보복 판결, 공장의 해외 이전…
국경을 넘어온 또 다른 우리의 이야기

노동자 계급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평생을 현장에서 일해온 어느 부두노동자의 노동 르포르타주 『노동계급은 없다』가 <실천과 사람들>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으로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그간 <실천과 사람들>에서는 용산 문제를 다룬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 희망버스 기획자인 송경동 시인의 산문집 『꿈꾸는 자 잡혀간다』, 연세대 청소노동자의 투쟁 기록을 담은 『빗자루는 알고 있다』, 재개발에 저항해 생존권을 걸고 농성한 칼국숫집 두리반 이야기 『매력만점 철거농성장』을 선보이며 우리 사회 이면에 숨은 권력의 횡포와 부조리에 정면으로 맞서 자신들의 인권과 권리를 지키려고 한 불빛들을 세세하게 밝혀왔다.
이번에 출간된 『노동계급은 없다』는 그동안 <실천과 사람들>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한반도 밖의 노동 현장을 다루고 있다. 자본주의 이념을 맹신하는 대표 국가인 미국에서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어딘가 낯설지 않다. 노동자와 고용주가 해고 문제로 갈등하고, 사측과 경찰이 용역 깡패를 풀어 파업한 노조를 급습해 폭력을 조장하고, 노동자를 위한 법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사측의 이익을 보장하는 법률을 통과시키고, 파업을 벌인 가난한 노동자는 무거운 벌금과 형을 받는다. 이처럼 유독 노동자에게 더 무자비한 자본의 횡포는 외국의 일이라고만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SJM’, ‘쌍용’, ‘한진’ 등 우리나라에서 발생했던 많은 사건들과 너무나 닮아 있다.
때와 장소와 관계없이, 자본가가 겨누는 탐욕의 총구는 항상 노동자들을 향한다. 저자가 미국의 강력한 노조인 부두항만노조(ILWU)에서 직접 활동한 만큼, 이 책에는 친자본적인 정당과 정부의 모습, 고용주와의 투쟁 끝에 얻은 성과와 참혹한 패배의 과정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미국 서부 부둣가에서 시작된 기록
노동자가 말하는 가장 생생한 노동사(史)!

육체노동자가 되고자 대학까지 그만두고 반세기를 노동과 함께 보낸 저자가 백발의 나이에 회상하는 수많은 이야기는 잔잔하면서도 흥미롭다. 단합의 장소가 되던 항구의 선술집, 열띤 토론으로 뜨겁던 노조 회의장, 하역하던 갖가지 화물과 떠돌이 과실 품꾼으로 살아온 부모님의 뒷모습 등 이제는 사라져버린 노동계급의 문화가 그의 목소리를 통해 전해지고 있다. 그 안에는 당시 육체노동자들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일처리를 위해 협의했던 암묵적인 관행들과 그들만의 노동윤리가 진득하게 녹아 있다. 이렇듯 노동에 대한 저자의 사건 고백은 가장 생생한 역사의 증언이자 노동 미시사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노동 환경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까지 비판적 시야를 통해 서술되고 있으며, 그 분야를 법률과 정치, 경제의 문제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22개의 장마다 서로 다른 소재와 사연이 펼쳐지지만 이 이야기들은 모두 노동계급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논의와 고민으로 연결된다. 앞날을 위해 노동자가 꿈꾸어야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투쟁을 견뎌온 한 노동자의 경험이 완숙하게 담겨 있는 이 책이 그 답을 찾는 실마리가 되어줄 것이다.


노동자의 권력은 어떻게 파괴되었는가
노동계급의 현주소에 대한 진지한 물음

자동화와 기계화로 공정이 줄어들면 고용주들은 인력 감축을 시도하기 마련이다. 컨테이너가 도입되기 시작한 미국 부둣가에서도 똑같은 일이 있어났다. 처음 고용주들은 부두노조의 반발을 의식해 집에서 쉬게 된 노동자들에게도 연금을 지급하겠다며 회유했고, 점점 자신들에게 유리한 계약을 늘려가며 노동자와 노조를 약화시켰다. 그리고 결국 노동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도 자신들 마음대로 인력을 감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순종적이면서도 싼 임금에 더 많은 일을 해줄 인력을 찾아 기존 노동자를 해고하고 비노조원과 이주노동자들에게 작업을 맡겼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런 일들은 자본주의의 논리인 이윤 창출을 명분으로 항상 정당화되어왔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주장이 노동자를 기만하는 것임을 꼬집어낸다. 현대화로 얻은 이익이 정말 주주나 고용주들만의 것인가? 경영상의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이 정당한가? 그곳에서 직접 피땀 흘려 일한 노동자가 왜 이익에 대한 권리를 주장해서는 안 되는가? 노동자로서 계급의식을 지닌 이의 문제적 관점은 고용주의 변을 듣는 데 익숙해진 우리에게 다소 생경하지만, 그래서 더욱 가치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그간 노동계급을 무력화하기 위해 이뤄진 미국 경제·정치계의 오랜 의도와 움직임을 알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가 얼마나 고용주의 논리를 아무런 비판 없이 ‘당연한 것’으로 내면화했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노동자를 위한 정당이 없는 상황에서 법과 정치는 꾸준히 자본 권력의 편에 서왔고, 자신들의 권리를 직접 지킬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은 오랫동안 고군분투해왔다. 그렇지만 노동자를 향한 지속적인 공격으로 계급의식을 지닌 노동자들의 수가 줄고, 노동계급은 해체되었다. 결국 노동환경은 더 척박해졌고, 노동은 노동자에게마저 폄하되었으며, 노동자는 생산과정의 주체가 아닌 부속으로 전락하여 고용주에게 모든 권한을 내주고 ‘을’으로 살아가고 있다.
노동자가 계급의식을 잃지 않았던 과거 미국 부둣가에서는 결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문제해결 능력을 믿었고, 스스로의 기술을 자랑스러워하며 자부심을 갖고 일했다. 그렇기에 저자는 노동자가 계급의식을 갖고 연대하는 것이 공정한 사회와 정당한 노동조건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망각하고 고용주의 이익에 휘둘리면, 잠깐 이득을 보기도 하지만 그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되어 있다. 평생을 현장에서 당당하게 살아온 한 노동자의 펜 끝이 ‘예스맨’이 되어야 했던 지금의 노동자들을 향하고 있다. 노동계급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 책에서 그 의미를 분명히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레그 테리오 지음
30년 넘게 샌프란시스코 만에서 부두노동을 했으며, 과실 품꾼으로도 일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 육체노동자의 문화와 윤리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것들을 세계화와 구조조정에 맞서 지켜내야 한다고 주장했고, 과실 따기부터 벌목, 부두노동까지 육체노동을 담담하면서도 매력적으로 묘사했다. 또 다른 저서인 『당신은 피곤할 때 어떻게 말하는가(How to Tell When You’re Tired)』에서 그랬듯, 이 책에서도 노동자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경제·정치에 대한 견해를 거침없이 밝히고 있다.

박광호 옮김
대학교에서 정치학과 신문방송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정치학으로 석사과정을 밟았다.
옮긴 책으로 『색스 앤 더 처치』, 『음악으로 행복하라』(공역), 『선택의 독재』(가제)가 있다.

여는 글

1장 내 발길은 부둣가로
2장 진짜로 양을 훔친 건 누구였나?
3장 이의 있습니다!
4장 우리는 좀 더 일하고 싶다
5장 벌목꾼과 비밀의 가방
6장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자들
7장 모든 일에는 전문 기술이 있다
8장 대공황과 함께 보낸 겨울
9장 부둣가로 나온 여인들
10장 계급의 울타리
11장 불참자를 방문하는 사내들
12장 사소한 대화가 우리를 묶어주었다
13장 모욕당한 일터는 어디로 가는가
14장 일자리, 떨이로 팝니다!
15장 100년을 건너온 목소리
16장 삶이 있는 풍경
17장 모든 항구엔 색깔이 있다
18장 누구에게 투표하란 말입니까?
19장 노동법이 뒤집어쓴 가면
20장 고용주의 꼼수
21장 사고, 34년 부두에 마침표를 찍다
22장 날개 꺾인 노동

추천의 글
노동자의 역사를 온몸으로 살아낸 미국 노조 활동가가 공터가 돼버린 공장들을 바라보며 미국 노동자의 운명에 대해 기술한다. 세밀한 묘사를 읽다 보면 ‘노동운동 미시사’란 이런 것이로구나 하는 깨달음에 이른다. 고학력자가 넘쳐나는 미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의 값싼 노동력을 선호하는 기업 때문에 점차 사라지는 일자리, 양대 보수 정당이 교차 집권하는 미국 정치에서 노동자들이 조금이라도 덜 보수적인 민주당을 지지함으로써 벌어지는 상황 등은 세월이 조금 지난 뒤 한국에서 복사판처럼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노동이 사라지면 모든 것이 사라진다. 이 책을 읽고 비로소 수많은 영화에서 마피아 집단처럼 묘사되는 미국 노조 간부의 실상을 제대로 이해했다.
_하종강(성공회대학교 노동대학장)

인류는 참 위대하다. 기계화, 자동화, 표준화라는 놀라운 발견을 통해 잉여 생산물을 만들어냈다. 더 위대한 것은 노동과 삶에서까지 해방된 듯한 수많은 잉여 인간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본가와 그에 기생하는 극소수 특권층을 제외하고는 많은 이가 ‘실업자’, ‘쓰레기 인간’, ‘불안정 노동계급’ 등으로 불리고 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이 책은 어떻게 ‘노동자’가 ‘계급’으로서의 육체와 실체를 박탈당하고, 유령이 되었는지를 찬찬히 이야기해준다. 미국 노동계급 3대의 구체적인 삶을 통해 ‘혁명’ 이후 우리 잉여의 삶을 뼈아프게 되돌아보게 한다. 세계가 하나의 공장이 되고 모두가 그 거대한 공장의 노동자로 살아야 하는 세계화 시대에, 이 책은 만국의 노동자가 왜 다시 단결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꿈꾸게 한다.
_송경동(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