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수 시인의 지상에 시 한 편

개밥바라기

실천문학 2008. 11. 18. 13:34

개밥바라기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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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먹은 것이 없다고 혼잣말을 하다
고개만 돌린 채 창문을 바라본다.
개밥바라기, 오래전에 빠져버린 어금니처럼 반짝인다.
노인은 시골집에 혼자 버려두고 온 개를 생각한다.
툇마루 밑의 흙을 파내다
배고픔 뉘일 구덩이에 몸을 웅크린 채
앞다리를 모으고 있을 개. 저녁밥 때가 되어도 집은 조용하다.
매일 누워 운신을 못하는 노인의 침대는
가운데가 푹 꺼져 있다.
초저녁 창문에 먼 데 낑낑대는 소리,
노인은 툇마루 속 구덩이에서 귀를 쫑긋대며
자신의 발자국 소리를 기다리는
배고픈 개의 밥바라기 별을 올려다본다.
까칠한 개의 혓바닥이 금이 간 허리에 느껴진다.
깨진 토기 같은 피부
초저녁 맑은 허기가 핥고 지나간다.

 

*

아픈 노모가 혼자서 상경을 했나 보다. 혼자 기다리는 노모를 위해 저녁때에 맞춰 일찌감치 귀가를 했건만 어머니는 먹은 것이 없다고 철렁, 가슴이 내려앉는 소리를 한다.

어머니가 곡기를 끊은 것은 시골집에 두고 온 개를 잊지 못해서다. 주인의 발소리를 기다리며 숟가락처럼 움푹하게 팬 구덩이에 얌전히 엎드려 있을 개를 생각하니 차마 수저를 들 수 없었던 것이다. 마침 초저녁 창가에 돋아난 개밥바라기별이 그 생각을 더 간절하게 한다. 개가 판 흙구덩이처럼 어머니의 침대도 움푹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도 움푹하다. 이 움푹한 허기가 맑게 빛난다. 나의 허기를 통해 타자의 허기까지 느끼고, 그 아픔을 서로 까칠한 혀로나마 핥아줄 수 있다면 이런 마음이야말로 별이 아니겠는가.

깨진 토기와 같다면 고고학자라도 되어 조각조각 이어 붙여야 할 것이다. 금이 간 토기 속에 아름답고, 슬프고, 저리도록 빛나는 허기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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