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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주 <빨대들> 2013-06-28

실천문학 2013. 7. 30. 11:40

 

 

 

  

 

 

 

 

소설 속의 서발턴, 유령과 같은 존재
“우리는 자본주의가 통각하지 못하는 투명인간이다!

인류는 근대를 통해 물질적 가치를 향유함과 동시에 독점과 계급화 양상을 보여 왔다. 이로 인해 사회 구성원 대다수는 개별적 존재들의 주체적 가치를 잃어버린 채 유령이 되었다. 다시 말해 자본의 계층화가 심화되는 우리 사회 구조 속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지 못한 서발턴 집단의 출현은 필연적인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다.
최근 문화비평가들에 의해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것들의 하나가 바로 ‘주체’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실존적 주체는 근대로부터 탄생했지만 역설적으로 근대를 이루어낸 시스템에 의해 실존적 주체는 보이지 않는 소멸과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즉 대부분의 실존적 존재들은 그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세계가 규정한 질서에 의해 탄생하고 소멸하는 수동적 존재들이다.
그들은 바로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만 그 실존적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서발턴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존재의 가치가 거론되지 않는 그들을 우리는 투명인간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 또한 사실이다.


“소설적 상상력으로 르포와 픽션의 경계를 가로지르다!”

작품 속에 드러나는 그들의 공간은 무언가로부터 격리되거나, 구분 지어져 있다. 이 사회의 서발턴 집단(하위주체)이 차이가 아닌 차별되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밀리터리 게임」에서 구획된 공간은 고립된 방어적 공간이다.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에게 있어 시간은 한국전쟁 당시로 멈추어져 있으며,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아무도 없는 집 뒤뜰에 스스로를 유폐시켰다. 이는 세계가 규정한 질서에 편입되지 못한 실패자들의 전형으로 볼 수 있다. 이 공간에서 우리가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은 그들의 트라우마와 실존적 고통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어떤 지점에서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현상들이 폭로되고 있는가이다.
「빨대들」에서 등장하는 주인공 또한 사회부적응자로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무기력하고 종속적인 형태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전형적인 서발턴이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의 공간 또한 재개발지역으로 그들의 온전한 삶을 송두리째 빼앗길 처지에 놓여 있다. 그에게 있어 자신의 실존적 존재를 발현하기 위한 주체는 이미 소멸된 상태다.
물론 자신의 사회적 신분 상승을 위해 노력하는 인물들이 출현하지만 그들이 장악할 수 있는 헤게모니는 애초에 어디에도 없었다. 왜냐하면 이 사회는 그들을 수용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건너편」에서 보여주는 ‘D시’의 공간은 비현실적인 상황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환상의 도시이며, 서발턴으로 표상되는 주인공은 아무리 노력해도 편입할 수 없는 격리된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엄밀하고 과학적 세계에 불완전한 인간의 가치는 통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D시’의 세계에 위험 인자로 낙인 찍혀 추방된다.
그들의 삶의 방식은 복권번호를 연구하는 「배팅」의 주인공에게서 극명하게 찾아볼 수 있다. 그가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라고 생각하는 숫자의 추출은 아내의 몸에서 연상되는 숫자이거나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헤아린 흰색 선의 개수를 통해 이루어진다. 또한 당첨번호에 이미 선정된 숫자의 누적분포를 통해 예측하는 로또 당첨번호의 추출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로또 당첨번호는 이전의 결과와 이후의 결과가 완전히 분리된 독립시행의 원칙에 따르기 때문이다. 이런 예측 방식은 과학적 확률과 통계라기보다는 우연에 기대는 것에 더 가깝다. 사람들의 삶이라는 것 또한 우연에 기댄 채 흔들리며 나아가는 것은 아닐까.
「퍼펙트 레이」에서 보여주는 양태는 명품시계에 투영된 실존적 가치의 무산이다. 주인공은 독립적 자아의 의지가 거세된 ‘펫’으로 타인에게 기생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명품시계를 소유한 자신을 권력을 가진 존재로 착각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주인공이 결국 깨닫게 되는 삶의 진리는 “싸구려 중국제 시계나 비싼 명품시계나 그것을 착용한 사람과 어울려야만 비로소 시계의 가치가 빛나는 것”이란 점이다.


“투명인간을 둘러 싼 보이지 않는 그물”

앞서 말한 대로 우리의 현실 세계는 우리들의 의지와는 실존적 가치를 무관하게 규정되어지고 폐기된다. 소멸되지 못한 수동적 존재자인 서발턴 집단들은 세계 질서를 움직이는 이들에게 투명인간으로 취급된다. 투명인간을 둘러 싼 보이지 않는 그물이 개별 존재자들을 통제하고 관리한다. 만일 통제에서 벗어나는 존재들은 혁명가이거나 미치광이로 억압 받는 자들이다.
「소리 바이러스」의 주인공은 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이주여성이다. 이방인의 눈에 비친 동네 사람들은 세계 질서로의 편입을 포기한 낙오자들이다. 그들은 전투기 소리에 갇혀 격리되어 있다. 이 통제된 구역을 벗어나는 것은 그들의 질서에 위배되는 행위이며, 거주하는 세계에 대해 침묵을 강요받는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삼촌이 한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물은 뭐고, 그물을 찢고 나갈 방법은 또 뭔지, 그리고 삼촌은 왜 나까지 그물에 가두었는지 전부 수수께끼 같았다.” 결국 삼촌은 모든 소리를 차단한 채 그들의 세계에서 이탈해 절대적인 침묵의 세계인 죽음을 통해 스스로를 소멸시킨다.
개인의 주체적인 의지가 절대적으로 통용될 수 없는 혐오스런 이 세계의 모습은 「안개를 유턴하다」, 「무늬와의 화해」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유전적으로 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이와 흉터를 지닌 그녀는 벗어날 수 없는 인생의 굴레를 살아간다. 개인의 주체적인 의지와는 상관없이 유전적 장애를 숙명으로 살아가야 하는 그들은 서발턴 집단의 숙명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소거되거나 추방당하지 않는 삶은 결국 투명인간으로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형주 소설에서 우리가 희망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은 바로 화해를 위한 노력이다. 아무리 이 세계가 타락하고 억압된 부조리한 세상이라고 하더라도 실존적 무게의 숭고함을 넘어 설 수는 없다. 그것이 바로 인간을 인간적으로 만드는 기제이자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소설적 상상력으로 풀어낸 르포와 경계 가로지르기는 김형주 작가의 실존의 고독과 절망에 대한 집요한 탐색으로 이루어진 고통의 산물이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처절한 투쟁은 이미 승패에 연연하지 않는 아름다움이 있다. 이것이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김형주 작가의 행보를 우리가 기대하고 응원하는 까닭이다.


◆ 표4글
가장 강력한 환기력은, 우리 곁에 있었으나 간파되지 않은 상태로 관습처럼 머물렀던 것의 표면이 한순간 파괴될 때 그 배후가 노출되면서 발생한다. 김형주의 소설은 바로 이런 은밀함을 지닌 주변의 습성을 건드린다. 훑고 지나가지만 거기엔 전혀 다른 얼굴이 잠복돼 있어 관습은 절박함으로, 권태는 숨 막히는 기이함으로, 고요함은 격렬한 투쟁으로 짜여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된다.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위트와 재치, 농담은 재기발랄함에 그치지 않고 삶의 뿌리를 움켜잡고 솟아오르는 탄력 좋은 도구이다. 그래서 김형주의 소설이 예민하게 들추는 우리 주변의 표정은, 마치 드러난 이미지로 그 사회의 구조와 풍속, 담론 등을 읽을 수 있는 오늘날의 도상학(圖像學)과 같다.
엄창석(소설가)



김형주

충주에서 출생하여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수료했다.
2008년 「밀리터리 게임」으로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밀리터리 게임
빨대들
배팅
퍼펙트 레이
건너편
소리 바이러스
안개를 유턴하다
무늬와의 화해

해설 |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