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교양선/작고 위대한 소리 시리즈

레즈-새롭게 읽는 공산당 선언[개정판] (2003)

실천문학 2013. 7. 30. 14:12

 

 

 

   

 

 

 

‘모래시계 세대’가 ‘붉은 세대’에 바치는 “공산당선언”

『레즈-새롭게 읽는 공산당선언』은 2003년 출간되어 언론의 호평 속에 꾸준히 사랑받아온 『레즈를 위하여』의 개정판이다. 세계적인 명저로 손꼽히는 『공산당선언』을 우리의 경험과 실천을 재료 삼아 토착언어로 다시 독해한 저자 황광우는 오랫동안 노동운동과 진보운동에 헌신하며 경험과 연륜을 쌓아온 이고 또 한 명의 저자 장석준은 정교한 이론 연마와 세계의 사상적 흐름에 민감한 눈을 갖춘 이다. 두 저자의 만남은 이 책을 학문적 깊이와 대중적 교양을 두루 갖춘 책으로 탄생시켰다.


왜 다시 『공산당선언』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경제불황과 이상기후가 전 세계를 뒤덮고 있다. 연평도로부터 시작된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도는 한반도에서는 전 부문에 걸쳐 편향된 시각과 이념적 왜곡이 날로 심화되고 있다. 이런 때 자본주의의 맹점에 대한 비판에 과학적 논리를 제공하고 있는 『공산당선언』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특히 이 책은 변혁에 대한 열망을 간직해온 386세대, 노동운동에 몸담고 있는 노조 간부들과 노동자, 새내기 대학생, 논술을 준비하는 입시생 모두가 꼭 읽어야 할 저작이다.

저자는 “이 책은 '공산당선언'의 해설에 초점을 맞춘 글이 아니라 '선언'을 매개로 ‘진보운동의 갈 길’을 논한 글이며, '선언'의 번역에 멈춘 글이 아니라 '선언'을 계기로 ‘우리의 꿈’을 적은 글이다”라는 말로 지금까지 노동운동과 진보운동에 헌신했던 자신의 경험과 견해를 이 책에 쏟아부었음을 밝히고 있다. 오랫동안 노동 현장에서 땀 흘리며 이 땅에 진보적 이론의 씨앗을 뿌리는 데 앞장서온 저자의 손길에 의해 우리의 실천을 재료 삼아 토착언어로 『공산당선언』이 다시 독해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공산당선언은 ‘오늘’을 예견하고 있었다

제1부는 말 그대로 수필이다. 『공산당선언』의 자구를 풀어 해석하는 아카데믹한 글도 아니요, 논점을 잡아 자신의 입론을 펼치는 논쟁적인 글도 아니다. 그저 『공산당선언』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 가슴속에 맺혔던 이야기를 풀어놓은 글이다. 이를 통하여 『공산당선언』의 깊이와 풍부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제2부는 『공산당선언』의 번역본이다. 『공산당선언』은 고전 중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역사에 대한 교양을 쌓길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 문건을 꼭 읽을 필요가 있다.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쓰고, 세계사에 관련된 사진을 삽입하였다.

제3부는 이론적 독해를 위한 안내문이다. 『공산당선언』이 발표된 이래 지금까지 진행된 논쟁사를 몇 가지 중요한 논점에 따라 정리하였다. 『공산당선언』의 실천은 완료된 것이 아니라, 진행중이다. 따라서 이론적 해석과 입지는 다양하게 열려 있다. 『공산당선언』의 심화학습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작가의 말(황광우)_‘모래시계 세대’가 ‘붉은 세대’에게 보내는 공산당 선언

지난 20년 전 우리들은 죽음처럼 암울한 시대를 살았다.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다 학교에서 잘리고 감옥에 가는 일은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양심을 지닌 인간으로서 투쟁하지 않는 것은 비겁한 일이었기에, 우리는 역사의 부름에 따라 묵묵히 실천하였다. 그러면서 늘 해결되지 않는 의문 하나가 내 가슴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너는 지금 기존의 사회를 부정하지만, 너에게 권력이 맡겨질 때, 너는 이 사회를 어떠한 방향으로 이끌고 갈 수 있느냐?” 나는 이 물음에 대해 당당하게 답변할 수 없는 나의 무지가 항상 고통스러웠다.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를 쓰고,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을 써보았지만 이 의문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번의 글은 지난 20년간 내 가슴 깊이 붙어다녔던 고통스러운 의문 하나를 푼 셈이다. 짧게는 10~20년, 길게는 50년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소견을 밝혔다. 그것을 꿈이라 불러도 좋다. 인간은 꿈의 세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1987년의 6월항쟁과 이어지는 7, 8월 노동자대파업은 백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역사적 대사건이었다. 이 위대한 역사적 항쟁을 구경할 수 있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가슴 벅차 오르거니와, 최루탄을 마시고 유인물을 뿌리며 역사적 대사건의 한가운데에서 땀을 흘렸으니 ‘모래시계 세대’들만큼 행복한 세대가 또 있을 것인가? 지난 1980년대 모래시계 세대들이 어떤 고뇌를 하였고, 어떻게 역사를 헤쳐왔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떤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는지, 오늘의 ‘붉은 세대’들에게 전달된다면 그것으로 나는 행복하다.

1990년대에 들어와 지구 반대편에서 ‘사회주의의 몰락’이라는 슬픈 소식이 전해지면서, 우리의 운동도 좌초된 배처럼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나는 비 내리는 무등산을 미친놈처럼 헤매며 다녔다. 역사여, 우리가 잘못한 것은 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아무리 생각하여 보아도 우리에겐 아무 잘못이 없었다. 우리들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일들과 사상을 너무 쉽게 수입한 죄 이외에는……. 이번의 글은 지난 10년 동안 좌절하고 방황하면서 얻은 사상의 실오라기들을 모아 하나의 천으로 엮어본 것이다. 이제 우리도 어른이 되었고, 자신의 삶에서 체득한 사상을 가질 나이가 되었다.

우리들 모래시계 세대는 대학에 들어가면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교양 필독서로 읽었다. 돌이켜보면 그 난해한 책을 선배들은 왜 강권하였는지 모르겠다. 여기에 서양 지성의 꽃인 ‘공산당선언’과 그 ‘해설’이 있다. 이제 붉은 세대들은 『공산당선언』을 읽어야 할 것이다. 어차피 오늘날 대학생들의 90%는 예비 임금노동자이다. 지배자들이 주입시켜 놓은 노동에 대한 허위의식을 버리자. 나는 우리의 붉은 세대들이 노동의 질서가 바로 서야 세상이 바로 선다는 의식을, 미래의 역사를 일구어 나갈 노동자의 역사적 사명을 자각하여 주길 바란다.

황광우
1958년 해남 출생. 1970년대에 민주화운동에 동참하였고, 1980년대에는 노동운동에 뛰어들었으며, 1990년대에는 진보정당운동의 앞장섰다. 저서로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 『노동자의 사상』, 『사회주의자의 실천』, 『뗏목을 이고 가는 사람들』, 『다시 생각하는 사회주의』, 『진리는 나의 빛』 등이 있다.

장석준
1971년 출생으로,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서구 진보세력의 사회화 정책을 추적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세계를 바꾸는 파업』(공저), 『안토니오 그람시:옥중수고 이전』(번역서) 등이 있다.

책머리에_레즈를 위하여

제1부 학습마당

제1장 역사와 의식
첫번째 마당_역사와 의식
두번째 마당_대붕
세번째 마당_노동해방의 머리띠는 어디로 갔나
네번째 마당_혁명적 요소
다섯번째 마당_경멸당했던 부르주아지
여섯번째 마당_긴 시간, 급한 마음
일곱번째 마당_마침내 지배자가 된 부르주아지
여덟번째 마당_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아홉번째 마당_이기적 타산
열번째 마당_악랄한 세상
열한번째 마당_성장주의의 죄악
열두번째 마당_잃어버린 자연, 파괴된 너와 나의 관계
열세번째 마당_불안
열네번째 마당_세계화인가 미국화인가
열다섯번째 마당_최후의 농민반란
열여섯번째 마당_놀라운 생산력, 그것의 변증법

제2장 노동자의 길
첫번째 마당_다시 읽는 전태일
두번째 마당_노동현장으로 가는 머나먼 길
세번째 마당_분업노동의 소멸을 위하여
네번째 마당_몸을 불사르는 노동자들
다섯번째 마당_6월항쟁의 역사적 의미
여섯번째 마당_마침내 역사의 무대에 올라온 노동자
일곱번째 마당_진보정당의 전사
여덟번째 마당_혁명가
아홉번째 마당_가난한 아빠, 마르크스의 위대한 꿈
열번째 마당_'노동의 종말'이냐 '노동의 해방'이냐
열한번째 마당_구체와 추상의 변증법
열두번째 마당_다가오는 사회주의

제3장 인간은 꿈의 세계에서 내려온다
첫번째 마당_사상의 커밍 아웃
두번째 마당_종파주의
세번째 마당_파도와 같은 노동운동
네번째 마당_너무나 자랑스러운, 하지만 너무나 비극적인
다섯번째 마당_그것은 당신의 사유재산이 아니오!
여섯번째 마당_홍길동식 사회주의
일곱번째 마당_부인공유제
여덟번째 마당_마르크스의 꿈
아홉번째 마당_미국이 사회주의연방공화국이라나
열번째 마당_사회주의의 노고단과 천왕봉
열한번째 마당_진보정당이 집권하면
열두번째 마당_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이냐
열세번째 마당_나의 행복관
열네번째 마당_유토피아
열다섯번째 마당_그리운 들불

제2부 다시 번역한 『공산당 선언』

1.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2. 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자
3.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문헌
4. 기존의 여러 반정부당들에 대한 공산주의자의 태도

제3부 논쟁 안내

첫번째 논제_자본주의 국가에 대하여
두번째 논제_소유의 사회화에 대하여
세번째 논제_폭력혁명에 대하여
네번째 논제_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인가
다섯번째 논제_1백년 50년 후에도 반복되는 오류들

보론_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생애

“자본주의가 굴러가는 한 마르크시즘은 유효”

지난해 6월, 광장은 붉었다. 기득권층은 “대한민국이 새로워지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저자는 그 이면을 봤다. 그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주의적 구호와 ‘붉은색’이라는 사회주의적 상징이 뒤섞인 ‘광장의 혼돈’이었다. ‘모래시계’ 세대인 저자 황광우는 이 새로운 ‘붉은 세대’에게 “여전히 유효한 마르크시즘(Marxism)”을 건네려 한다. 새 세대의 역동성에 사회변혁의 방향타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 책 『레즈를 위하여』는 마르크시즘과 관련한 저자들의 수필, 그리고 ‘공산당선언’의 해석으로 구성됐다. 수필은 1987년 6월 대항쟁에 얽힌 개인적인 경험 등 사상의 실오라기들을 모아 천으로 짜내며 수입된 사상의 한국적 소화방법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그는 왜 여전히 마르크시즘에 천착하는가.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남한 부르주아지의 국가주의를 폐기하고자 나온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 나온 사람”이라고 본다. “취임사의 절반이 동북아 중심국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찬양하는 수사로 덮여 있다”는 것은 앞으로 계속될 성장주의를 암시한다. “성장주의는 경쟁의 심화, 사회의 비인간화, 황폐화”로 이어진다. ‘민중을 경쟁의 톱니바퀴 속에 집어넣고 그들을 잡아먹는 노선’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 대안은 ‘인간과 연대를 중시하는 사회주의적 노선’이다. 때문에 사회주의 국가가 붕괴됐더라도 자본주의가 굴러가는 한 마르크시즘은 유효하다고 본다.

에세이 부분에서 간혹 과격한 표현이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등이 돌부리처럼 걸리기도 한다. ‘그렇지’ ‘나는 안다’ 등 세련되지 못한 주관적 표현과 자기 경험의 과도한 이입은 나르시시즘이란 오해를 살 수도 있다.

이같은 단점들을 사뿐히 건너뛰는 관용을 발휘한다면 책의 부제처럼 ‘새롭게 읽는 공산당선언’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 경향신문 책마을 최민영 기자 (2003년 5월 31일 토요일)


'선언'매개로 민중의 꿈 추적

2002년에 사람들은 ‘Be the Reds!’라는 영문이 쓰인 붉은 셔츠를 입고 다녔다. 한때 그 색깔은 전혀 다른 상징이었다. ‘지금까지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였다’로 시작해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로 끝나는 ‘선언’을 옮겨 적으며 가슴에 새겼을 법한 시절이 있었다.

1848년의 ‘공산당 선언’은 21세기에는 그리 유효할 것 같지 않다. 온 가족이 붉은 옷을 입고 소풍을 나온다. 한때 파업을 하던 노동자들이 머리에 두른 띠의 색깔이다. 그래서 이 가족의 모습은 이른바 ‘모래시계 세대’인 황광우(45) 씨에게는 기이하게 보인다. 1970년대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어 80년 광주의 피를 보았고, 독재의 아성을 무너뜨리는데 모든 힘을 바쳤다. 그런 그가 보기에 그 결과 얻어진 것은 ‘가진 자들의 민주주의’였다.

『레즈를 위하여』에는 ‘새롭게 읽는 공산당 선언’이라는 부제가 달렸지만 ‘공산당 선언’ 해설에 머문 것이 아니다. 2부는 새롭게 번역한 ‘공산당 선언’을, 3부는 1971년 생 사회학도 장석준씨의 ‘선언’ 논쟁사를 정리해 실었다. 선언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 같은’ 이 시대에 왜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1부에 있다. 황씨 자신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지독하게 방황했으며, 우리가 잘못한 것은 무엇이냐고 계속해서 물어왔다. 그는 좌절과 방황, 그 속에서 얻은 사유를 기록했다. 10여 년 간 빠르게 잊혀졌던, 프롤레타리아와 민중을 다시 불러낸다.

프롤레타리아는 ‘선진강국’이 아닌 ‘평등세상’을 제창해야 한다고, 한국의 갈 길이 국가주의와 사회주의의 한판 싸움에 달려 있다고, ‘물질과 능력을 숭상하는 국가주의적 노선’ 대신에 ‘인간과 연대를 중시하는 사회주의적 노선’을 제시해야 한다고 외친다.

황씨는 이 책에 대해 “선언을 매개로 ‘진보운동의 갈 길을 논했으며, 선언의 번역에 멈춘 글이 아니라 선언을 계기로 ‘우리의 꿈’을 적은 글”이라고 말한다. 체 게바라가 “인간은 꿈의 세계에서 내려온다”고 말한 그 꿈이며 여전히 ‘나’가 아닌 ‘우리’의 것이다.
--- 한국일보 책과세상 김지영 기자 (2003년 5월 31일 토요일)


공산당 선언은 '오늘'을 예견했다

오랫동안 노동운동을 해온 민주노동당의 이론가 황광우(45) 씨가 젊은 연구자 장석준(32) 씨와 함께 『레즈를 위하여―새롭게 읽는 ‘공산당 선언’』을 펴냈다.

이 책은 카를 마르크스(1818~1883)의 『공산당 선언』(1848)에 관한 해설서이자 거기에서 영감을 얻어 쓴 에세이 묶음이다. 책은 3부로 짜여 있는데, 황광우 씨가 1부와 2부를 썼고, 3부를 장석준 씨가 썼다. 책의 전체 성격을 규정하는 1부는 『공산당 선언』을 읽으며 얻은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 쓴 글을 모았으며, 2부에는 영어판을 놓고 다시 번역한 ‘선언’이 실렸다. 3부는 ‘선언’이 발표된 이래 불거진 몇 가지 주요 논점을 알기 쉽게 정리했다.

제목이 ‘레즈를 위하여’인 것은 이 책이 일차로 노리는 대상이 ‘레즈’, 그러니까 지난해 6월 한반도를 붉은 함성으로 뒤덮었던 ‘붉은 악마’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의 성격상 대상을 스무 살 젊은이로 한정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현실사회주의가 무너진 뒤 마르크스와 그의 ‘선언’에 대한 신심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새로운 전망의 길잡이 노릇을 할 수 있는 긴 고민의 결과물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공산당 선언』을 인류 역사상 가장 소중한 문헌으로 꼽고 있지만 ‘선언’의 자구 하나하나를 금과옥조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나는 <공산당 선언>의 문구를 글자 그대로 믿지 않는다.” 그 ‘선언’을 사상적 배경으로 삼아 이룬 현실사회주의 체제가 몰락하는 것을 목격한 이상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공산당 선언』을 다시 읽어야 한다면, 그것은 ‘선언’이 무엇보다 “오늘의 현실을 박진감 넘치는 문체로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산당 선언』은 150년 전 유럽의 노동자들을 위해 쓴 문헌이라기보다는 오늘의 우리들을 위해 예비해놓은 문헌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가령, ‘선언’ 제1장에 나오는 부르주아 시대에 관한 설명은 오늘의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진단의 단적인 예다. “생산의 계속적인 변혁, 모든 사회관계의 끊임없는 교란, 항구적인 불안과 동요가 부르주아 시대를 그 이전의 모든 시대와 구별해준다. …새롭게 형성되는 모든 것들은 미처 골격을 갖추기도 전에 낡은 것이 돼버린다.”

지은이는 스스로를 마르크스적 의미에서 사회주의자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게 자기를 규정할 수 있는 근거를 그는 ‘생산력의 사회화’에서 찾는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분업이라는 사회적 협동을 통해 생산력을 증대시키고 있는데, 그 결과물이 소수 자본가의 수중으로 떨어지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이다. “생산력이 사회화되면 소유 역시 사회화돼야 마땅하다. 이것이 마르크스의 통찰이요, 내가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가장 간단한 원리다.”

그러나 이 원리에서 사회주의 이행의 전망을 곧바로 끌어내기는 쉽지 않다. 지은이는 그 이행이 긴 시간을 요하는 일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가 ‘선언’의 한 구절, 그러니까 “현대 부르주아지 자체가 기나긴 발전 과정의 산물”이라는 구절, 그 중에서도 ‘기나긴’에 주목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부르주아 체제가 형성되는 데 최소 200년이 걸린 만큼 “우리가 새로운 사회체제를 실현하는 과정 역시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그렇지만 사회주의자는 그 시간을 마냥 기다리지 않는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배계급으로 등장하는, 사회주의 등정의 첫 번째 봉우리를 향해, 나아가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체”라는 사회주의의 최고 봉우리를 향해 한발 한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그 등정의 구체적 경로는 또다른 과제로 남겨두고 있다.

--- 한겨레신문 책과사람 고명섭 기자 (2003년 5월 31일 토요일)


‘수입 사상’으로 혁명을? 온 몸을 던진 투쟁기

‘공산당 선언’의 해설이란 평이 달려있지만 정작 방점은 제1부 수필 쪽에 찍혀있다. 분량도 전체 3분의 2에 육박한다. 수필이라곤 하나 저자 황씨의 자기 고백, 회고록, 좀 더 정확하게는 반성문에 가까운 글들이다.

스무살때 학회에 입문. 학교에서 잘리면서 경동산업 포장부서 노동자로 취업. 서른살 87년의 뜨거운 세월 속을 온 몸으로 뒹굴다. 마흔살 진보정당 활동에 매진중. 386세대, 노동운동가, 마르크스주의자의 30년 남짓한 반추가 책장마다 스며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나 ‘서준식 서한집’같은 옥중저작과 달리 현실과 맞부딪히며 깨지고 회의하고 다시 스스로를 다졌던 현장의 흙내음이 물씬하다.

그는 반성한다. 91년 소련 붕괴 후 술집에서 무용담이나 읊는 빛바랜 혁명가로 전락한 좌파의 유아, 보수정당의 개집으로 들어가 부르주아 정치의 장식물로 투항한 우파의 노인들이 득시글거리게된 연유를.

80년대 운동권의 사상적 토대가 이렇듯 허약했음은 수입사상을 손쉽게 빌려쓴 데 있다고 상처를 후벼판다. ‘마르크스’든 ‘김일성’이든 자신의 머리와 몸에서 짜낸 고민이 아니고서는 진정한 사회변혁이 불가능하다고 90년대의 교훈을 이끌어낸다.

그러나 그는 확신한다. 마르크스가 꿈꾼 자유로운 인간들의 자유로운 사회,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의해 사용하는 사회는 한국의 프롤레타리아트, 노동자 계급에 의해 달성 가능하다고. 그래서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공산당 선언을 음미할 때란 목청이 낭랑하다.

책머리에 2002년 붉은악마를 ‘대~한민국’의 국가주의적 구호와 ‘붉은 옷’의 사회주의적 상징이 혼재한 현상으로 해석한 운동선배의 논리에 2030세대가 얼마나 공감할지 모르겠다. 2020년 진보정당이 집권할 때 누구나 아프면 진료받고, 늙으면 보살핌을 받고, 주3일의 인간적 노동조건이 실현된다는 예언은 마르크스보다 차라리 그가 자주 인용한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에 가까워 보인다.

그는 사회주의자다. 짧게는 10~20년, 길게는 50~100년 한국사회가 나아갈 방향은 왼쪽이다 하고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물론 그 바탕에는 선지자 마르크스의 조언이 깔려있다.

지난 23일 서울 한복판에서 ‘맑스코뮈날레’가 열렸다. 춤추고 노래하는 축제의 한마당이었다. 그들의 주장은 이렇다.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구조는 21세기에도 여전하며, 따라서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는 마르크스의 사상 또한 여전히 유효하다.” 당신의 사상은 무엇인가. 제2부 공산당 선언 번역문과 제3부 이를 둘러싼 논쟁사는 인류역사를 바꾼 이 거대사상을 토착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 문화일보 북리뷰 노성열 기자 (2003년 5월 30일 금요일)

독자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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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일 :

2005-05-06 오전 11:49:26

 

레즈를 위하여 -실천문학사, 장석준, 황광우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 책벌레, 리오 휴버먼/장상환


잘 만든 교과서 하나, 열 조직 안부럽다 -《레즈를 위하여》,《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리뷰 출처 :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4년 8월호
http://www.ynlabor.co.kr

양솔규 /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레즈를 위하여》, 황광우, 장석준 공저, 실천문학사(2003년)

80년대 중반, 수많은 청년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자신의 인생을 '변혁운동의 한 길'에 던지고자 할 때, 그들의 곁에는 두 권의 책이 있었다. 선배들이 물려주었을 수도 있고, 공단과 학교 앞 낯선 사회과학서점에 들어가 구입했을 수도 있는 책 두 권은 이 땅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다수의 '의식화된 활동가'들을 양산했다. '정인'이 쓴《들어라 역사의 외침을》과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가 바로 그것이다.

《레즈를 위하여》공동 저자 중 한 명인 황광우의 필명이 바로 '정인'인데, 그는 저명한 시인 황지우의 동생이기도 하다. 이 책의 또 다른 저자인 장석준은 90년대 초반 진보학생연합의 주요 활동가였고, 현재는 민주노동당 기획부장을 거쳐 교육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제1부 학습마당은《공산당선언》과 관련된 내용을 한국 노동운동, 사회운동의 역사와 결합해 읽기 쉬운 수필 형식으로 써내려 갔다. 제1부는 이 책의 주요 부분이기도 하다.
제1부는 80년대적 향수로 가득 차 있다. 서툴지만 비장하고, 순수했으며, 과도하게 단순했지만 명쾌하고 분명했던 그 시대를, 저자는 일종의 반성과 희망적인 전망으로 그려내고 있다. 80년대 (정파를 불문하고) '변혁운동의 시대'를 몸소 체험한 사람들이 공유하는 어떤 분위기가 꽉 들어차 있는 제1부는 그러하기에 90년대 이후의 독자들에게는 '과거의 신선함'과 '역사의 치열함'을 접할 수 있는 소중한 비망록이다.

하지만, 보편적인 80년대 정서와는 별개로 황광우 개인의 경험이 짙게 베어 있음으로 해서 나타나는 과거 편향적인 평가들, 진보정당, 민주노동당 전망에 대한 과도한 의미부여는 과거와 미래에 현재를 종속시킨다.

제2부는 맑스의《공산당선언》전문을 다시 번역한 부분이다.

제3부는 (아마도 장석준이 쓴 부분이라 생각되는데), 선언 이후 현재까지 되풀이되는 논쟁에 대해 간략한 요약을 해 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바,《레즈를 위하여》에서는 장석준의 유려한 필체를 구경할 수 없다. 다소 딱딱한 주제들(자본주의 국가에 대하여, 폭력혁명에 대하여)을 한정된 분량 안에 채워 넣으면서 발생한 문제일 수도 있지만, 너무 많은 책들과 이론들을 소개하면서 자칫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들이 개념의 무게에 짓눌리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내용은 월드컵경기장이지만, 어쨌든 독자의 상상력은 경기장 안에 갇히고 마는 것은 아닌가. 오히려, 이론적 논의보다는 한국 역사에 있어서 공산당선언 내용이 갖는 의미를 생생하게 드러내는 게 더욱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닌가?

소위 '모래시계 세대'인 황광우가 '붉은 세대'인 장석준(동의할까?)과 같이 작업한 것도 흥미롭고, 80년대와 90년대 주요 필진이 만났다는 점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이 책에 주목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노동운동을 비롯한 한국의 사회운동이 사회적 주도력을 상실하면서, '운동권'은 이 사회에서 가장 '고리타분하고, 세상의 변화에 둔감하며, 공부 더럽게 안하고, 현실을 모르며, 고집 센' 집단으로 낙인찍혔다. 예전의 '운동권'은 현실과는 때때로 멀 때도 있고, 가까울 때도 있었지만, 언제나 자신의 사회 내에서 가장 선진적이었고, 변화에 민감했으며 스폰지처럼 자양분을 과감하고 빠르게 흡수했었다.

지금, 책 한 권 달랑 읽고 후배 앞에서 당당하게 5년을 버티는 운동가들과, 상부조직의 문건 외에는(혹은 그것마저도) 읽지 않는 '간 큰 활동가'들에게 천만 노동자의 삶과 미래를 맡길 수 있을까?

각 사회운동의 주요조직들의 임원 선거들이 끝나서 일수도 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공부와 학습, 투입하고자 하는 열망'이 곳곳에서 많이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열의가 높은 분들이 그동안 어떻게 참아왔는지 놀라울 정도로 '학습의 붐'이 일어나고 있다.
선배를 바라보고 운동하는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났다. 후배와 미래를 바라보고 투자하고, 운동하는 것이 현재 우리 노동운동의 긴급한 과제라고 할 때, 후배들에게 '술 한번 사기전에, 책 한 권 사주고 술마시는 풍토가 빨리 확산되어야 한다.

건강한 청년 노동자들의 '웰빙 노동생활'을 위해 선배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레즈를 위하여》는 충분하지는 않지만 '87년 노동자대투쟁 세대'가 '새로운 노동운동의 후속세대'에게 권해줄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