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교양선/작고 위대한 소리 시리즈

전쟁의 풍경 (2004)

실천문학 2013. 7. 30. 14:15

 

 

 

   

 

 

 

 

기독교와 이슬람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곳
사라예보, 알제리, 팔레스타인, 체첸

‘문명간의 대화자’로 일컬어지는 유럽 현대문학의 대표적 지성 후안 고이티솔로(Juan Goytisolo)가 이슬람과 기독교가 가장 극렬하게 대립하는 네 전장, 사라예보 알제리 팔레스타인 체첸을 직접 방문하여 그들의 삶에 대해 기록한 일인칭 시점의 보고서. 시적(詩的)인 문체와 작가적 통찰이 빛나는 에세이면서, 이슬람 사회와 서구 간의 오랜 대립과 긴장을 명철하게 분석한 뛰어난 학문적 자료이다.
고이티솔로는 지성과 명철함, 그리고 따뜻한 연대의 감정을 십분 발휘하여 거짓과 혼란으로 점철된 전장의 진실 안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침묵은 죽음이다.
그대, 침묵하여도
죽을 것이며,
그대, 말을 하여도
죽을 것이니,
그렇다면 그대여 말하고 죽을 지어라.

_시인 타하르 자우트 (본문 171쪽)

9.11사건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태들과 이라크전 파병, 김선일 씨의 죽음, 최근 알 카에다가 한국을 테러 대상국으로 지목한 사건 등으로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이슬람에 대한 관심이 열풍처럼 번지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어수선한 아랍권 소식이나 팔레스타인 분쟁, 체첸 사태 등에 대한 뉴스들이 그저 해외토픽에 불과했던 것을 기억한다면, 실로 예상치 못한 변화이다.

미소 냉전체제가 붕괴된 이후, 나날이 증가하는 민족 간 종교 간의 대립과 전쟁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는 중이며, 이제는 우리가 이 전장의 한복판에 서게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상황은 ‘전쟁’과 ‘이슬람’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촉발시켰고, 서점가에 쏟아지는 전쟁, 이슬람 관련 서적들의 숫자로만 보아도 그 관심은 가히 열풍이라고 할 만하다. 그동안 발간된 이슬람 관련 서적들과 때맞춰 텔레비전과 대중매체 등에서 조망한 영상들이 우리의 궁금증을 어느 정도는 해소시켜주었다.

그러나, 서구는 왜 7세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슬람을 동화할 수 없는 적으로 간주하고 끊임없이 전쟁을 벌여왔는지, 뿌리 깊은 그들의 이념적 정치적 대결 양상은 어떤 식으로 지속되어왔는지, 우리의 인식은 아직 초보 수준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슬람과 서구 간의 오랜 대립을 제대로 이해하게 하는 책

이 책 『전쟁의 풍경』은, 유럽 현대문학의 대표적 지성이자 ‘문명간의 대화자’로 일컬어지는 후안 고이티솔로(Juan Goytisolo)가 이슬람과 기독교가 가장 극렬하게 대립하는 네 전장, 즉 사라예보, 알제리, 팔레스타인, 체첸을 방문하여 그들의 삶에 대해 기록한 일인칭 시점의 보고서이자, 그 내면 풍경과 외면 세계를 심도 깊게 들여다본 에세이이다. 그리고 단순한 감상과 체험의 수준을 넘어, 이슬람 사회와 서구 간의 오랜 대립과 긴장, 역사적 분쟁에 대해 명철하게 분석한 뛰어난 학문적 자료이다.

하나의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역사, 정치, 사회구조 등 총체적인 좌표를 함께 보아야 한다고 할 때, 비로소 우리 앞에 이 모든 것을 제대로 갖춘 책 한 권이 놓이게 된 것이다.


스페인의 대문호 고이티솔로가 기록한 전장의 안과 밖

스페인 작가 후안 고이티솔로는 지구촌 곳곳의 분쟁지역에서 ‘이슬람’이라는 공통분모를 찾아내 그 대표적인 네 지역을 직접 방문한다. 보스니아계 무슬림들을 무조건 처단하는 소위 ‘인종청소’ 작업이 벌어지는 사라예보, 서방의 묵인하에 잔인한 테러와 학살이 횡행하는 알제리,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불안한 평화 속에서 예측 불가능한 강력한 화약고로 변해버린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2세기가 넘는 동안 러시아로부터 수없이 독립과 자유를 약속받고 또 빼앗긴 불행한 민족 체첸. 이 네 지역을 각각 방문하여 스페인 일간지 『엘 파이스(El País)』에 연재하였고, 이를 『전쟁의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묶었다.

후안 고이티솔로는 문화의 다양성, 복합성을 지니고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스페인은 오랫동안 아랍과 공존해와 아랍의 문화가 자연스럽 녹아들어 있으며, 그는 이중 언어를 넘어 삼중, 사중의 언어권 속에 살아왔다. 작가는 조국을 등지고 1956년 망명한 프랑스에서는 프랑스어를, 또 캘리포니아, 보스턴, 뉴욕 등의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영어를, 그리고 현재 모로코 마라케시에 거주하며 스페인에서 아랍어에 가장 정통한 작가라는 명성을 얻을 정도로 아랍어 또한 유창하게 구사한다.

하나의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그 언어가 표현하는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그는 서구의 관점에서 이슬람권을 관찰하고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스페인을 거쳐간 아랍과 프랑스, 즉 이슬람과 기독교 문화 전반에 대해 열려 있는 시각을 지닐 수 있었다.

그가 이 책에서 인터뷰한 사람들의 계층은 실로 다양하다.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아버지, 젊은이와 노인, 군인, 독립군 사령관, 언론인, 의사, 지식인 등 평범한 민중에서부터 전쟁에 직접 가담하는 양 진영의 책임자까지 망라되어 있다. 한낮에도 총탄이 쏟아지는 대로, 부상자들을 수용하는 병원, 신문사, 정부기관, 독립군 근거지 들을 가리지 않고 방문했다. 저자는 날마다 변화하는 세계 정세에 예민한 촉수를 세운 채, 치밀하고 방대한 지식으로 방문하는 지역이 바뀔 때마다 그 복잡한 역사와 분쟁의 실타래를 좇아가고 있다.


사라예보 노트―‘인종청소’, 공포의 기억
1993년 8월, 고이티솔로는 수잔 손탁과 함께 ‘인종청소’가 자행되고 있는 보스니아의 사라예보로 세계의 지성을 불러모은다. 제2차대전 당시 헤밍웨이, 도스 파소스, 케스틀러, 시몬 베유, 오든, 스펜서, 파스, 말로, 오웰 등 세계의 양심이 엄청난 살육과 불의에 맞서 들고 일어난 것처럼, 명성 있는 문필가와 예술가의 펜으로 전쟁에 대항하려 한 것이다.(82쪽) 이 시도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 지루한 드라마처럼 늘어지며 끊임없이 일어나는 20세기 말의 전쟁과 테러 속에서 세계의 지성은 무기력했다.

밀로세비치,카라드지치의 지휘 아래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원리주의자들이 보스니아계 무슬림들을 ‘청소’하는 곳, 포로수용소처럼 변해버린 사라예보에서 2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생사를 건 사투를 벌였다. 유럽의 한복판에서 마치 나치가 유대인들을 쓸어버렸던 것과 똑같은 일들이 버젓이 일어났으나, 유럽연합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도자들은 이를 묵인 내지는 방관했다. 저자는 단지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살해, 강간, 부상당한 피해자들과 만나며, 한낮에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총알이 날아드는 ‘저격수 대로’, 병원, 묘지, 신문사 등을 방문하면서 잔인한 폭력을 확인한다.

이 만남들은 저자에게 사라예보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생생한 경험과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그것은 저격수들의 총알과 체트닉의 대포에 맞서 삶에 대한 신념으로 무장한 채 물을 구하러 나서는 사라예보 사람들의 용기와, 용서할 수 없는 폭력 속에서도 메르히메트(merhimet, 자비심과 동정심)를 잃지 않으려는 무슬림의 마음이었다. “체트닉들은 우리가 함께 살지 못하도록 마음속에 증오심을 심으려고 하죠. 하지만 이 병실을 보세요. 병상에는 나와 세르비아인과 무슬림이 함께 있어요. 우리 셋은 여기서 형제처럼 지내고 있답니다.”(29쪽)



폭풍 속의 알제리―동족 상잔의 테러
“알제리에서 우리는 완벽하게 움직이는 정치 교체를 실천하고 있다. 다시 말해, 낮에는 정부가 다스리고 밤에는 FIS가 다스린다.”

1차대전 때 알제리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지금도 알제리 민주인민공화국 정부는 프랑스와 더불어 공적이고 외적인 이슬람만을 원하고 있다. 이슬람은 그 내부에 서구 세계의 이데올로기와 가치들을 담고 있지 않지만, 반대로 서구의 이데올로기들은 자유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의 효용을 발휘하기 위해 이슬람을 이용만 해왔다.

FIS, GIA를 비롯해 최소 10여 명 이상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그룹을 모두 포함시키면 알제리에는 6백50개에 이르는 이슬람 단체들이 무장 대립하고 있고, 이슬람을 경계하는 서구는 이를 이용하거나 방관한다. 5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의 엑소더스가 야기되었으나, 이 모든 피난자들은 (이슬람 문화에 의해) ‘뿌리째 뽑혀야 하는’ 계층이 아닌 그저 MIA(무장이슬람운동), GIA(무장이슬람그룹) 또는 FIS로부터 도망가려는 것뿐이었다. 알제리는 모든 사람들이 공존할 수 있는 조국이 될 것인지, 아니면 이슬람 분파들의 끝없는 내전 속에 사라질 것인지 하는 운명의 갈림길에 서 있다. 저자는 복잡하게 얽힌 알제리 이슬람 종파와 역사적 분쟁을 좇아가면서, 석유를 노리는 서구의 교묘하고 잔인한 패권주의를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다.



팔레스타인-전쟁도 없고 평화도 없다
일자리도, 해외로 나가거나 가정을 꾸릴 희망도 없이 짓눌려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스스로를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순교한 형제, 친척, 친구들이 있으며, 동물처럼 게토에 갇혀버린 후 마음은 폭탄이 되어버렸다. 이런 상태에서 살다가 언젠가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고 자살 테러 공격에 아무 무기나 들고 뛰어드는 것이다.

라빈, 페레스와 함께 아라파트가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뒤, 세계는 이 전쟁의 끝이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는 여전히 점령군의 군홧발 아래 장기적인 인티파다(‘돌의 전쟁’이란 뜻,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의 무기에 맞서 돌을 던지며 저항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가 벌어지고 있다. 고이티솔로는 워싱턴과 오슬로에서 벌어진 ‘평화협상’에서 단 한 번도 다루어진 적이 없는 팔레스타인인의 생활과 현실을 눈으로 확인하며, 팔레스타인 상황에 대해 자세히 검열한다. 팔레스타인의 절망과 빈곤, 무기력과 고통 속에서, 고이티솔로는 팔레스타인의 악몽을 대가로 꿈을 이루었다는 이스라엘의 희망이 얼마나 한심한 착각인지를 폭로해낸다.



체첸 전쟁의 내면 풍경-쓰디쓴 교훈은 잊혀진 채 과거는 다시 현재가 되었다
최근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러시아 초등학교 인질 테러 사건의 배후는 체첸의 저항세력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는체첸-러시아 분쟁의 오랜 사연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이 코카서스 지역에서는 2세기에 걸쳐 전쟁이 계속돼오고 있다. 19세기 이맘 샤밀이라는 체첸의 이슬람 지도자가 40여 년간 산악지대에서 반군을 이끌며 독립투쟁을 벌인 것을 시작으로, 현 체첸의 지도자인 바사예프까지 러시아의 뿌리 깊은 민족주의와 범슬라브주의에 희생되어왔다. 이슬람의 수피 종단이 대부분인 이들은, 수없이 거짓 독립과 자유의 약속을 받으며 체첸 ‘안정화 정책’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1834년 러시아의 책임자가 “이 민족(체첸)과는 단지 지형(地形) 모습을 지우는 일만 할 수 있을 뿐”이라고 단언했다면, 최근 옐친이 “미친 개처럼 (반도를) 몰살시켜야 한다”고 했던 것은 러시아 민족주의의 무시무시한 상투성을 잘 표현하는 것이다. 지금도 푸틴을 비롯한 러시아의 지도자들은 경제정책의 실패, 사회범죄의 악화 등으로 비참한 수렁으로 빠져든 러시아인들에게 속죄양으로 체첸인을 바치고 있다.

‘천박하고 불명예스러운 민족을 전멸시키겠다’는 종족 살해의 잔혹한 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인구 1백만 명이 조금 넘는 작은 민족 체첸의 죄는 무엇인가. 이 민족의 유일한 죄는 단지 ‘제국주의의 소명’을 띠고 있는 위대한 강대국의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뿐이다.
고이티솔로는 러시아군의 야만성을 자세히 열거하면서, 우리에게 생소한 체첸 전쟁의 역사적 뿌리를 자세히 살펴본다.



현재 약 50여 개 국이 넘는 나라에서 12억이 넘는 인구가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이다. 전체 60억 세계 인구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이들은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 전 세계에 고루 퍼져 있으며, 지금도 놀라운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당연히 이들은 기독교 등 다른 종교와 마찰을 겪고, 전쟁도 치르며 끊임없는 분쟁의 역사를 지니게 되었다. 미국을 위시한 서구와 이슬람 사회 간의 전쟁은 지금 전 세계로 확대되고 있으며,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우리의 문제가 되고 말았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고통스럽고 왜곡된 문제일수록 해답은 그것을 직시하는 용기 속에서 탄생되곤 했다. 이제,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기록한 단 한 명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차례가 왔다.

지은이 후안 고이티솔로(Juan Goytisolo)
고이티솔로는 1931년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다. 형인 호세 아구스틴은 시인이고, 아우 루이스 역시 소설가이다. 어린 시절 예수회 재단의 학교에서 공부한 적도 있지만 그만두었고, 이후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뒤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1954년 첫 소설을 출간한 뒤 1957년 파리로 거처를 옮겼고, 1969년에서 1975년까지 캘리포니아, 뉴욕, 보스턴 등의 대학에서 교수로 지냈다.
지금은 주로 파리와 모로코의 마라케시에 거주하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돈 훌리안』, 『마크바라』, 『전후의 풍경』, 『고독한 새의 덕목』, 『마르크스가(家)의 노래』 등이 있다. 또한 자전적인 작품으로 『코토 베다도』와 『사방 팔방으로』가 있으며, 『문학의 숲』을 비롯한 다수의 에세이 작품이 있다.

1985년 전(全) 작품에 수여하는 유로팔리아 상을 수상하였고, 1993년 현대문학의 대표자이자 문명 간의 대화자로서 넬리 사크스 상을 수상하였다. 2000년 사미 나이르와 공동으로 『인생의 통행세』를 아길라르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옮긴이 고인경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후안 고이티솔로의 [정체성의 표시]로 스페인 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주한 멕시코 대사관에서 근무했으며, 현재는 번역, 통역, 강의 등을 통해 스페인어권 전문 프리랜서로 활동 중인다. E-mail : goinkyoung@hanmail.net

I. 사라예보의 노트
1. 명사수
2. 쥐덫
3. 병원, 묘지, ‘오슬로보덴제’ 신문사
4. 공포의 기억
5. 기억 살해
6. 삶을 추구하며
7. 정교의 아치, 이슬람의 뱀
8. 유럽의 수치
9. 사라예보여 안녕

II. 폭풍 속의 알제리
1. 씁쓸한 기상(起床)
2. 이슬람과 정치
3. FIS(이슬람구국전선)의 명분
4. 부디아프의 순교부터 제2차 알제리 전투까지
5. 테러
6. 설교와 위성 안테나
7. 의자 뺏기 게임
8. 이슬람에 대한 몇 가지 고찰

III. 전쟁도 없고 평화도 없다
1. 화약고, 가자 지구
2. 통발 속에 갇힌 아라파트
3. 하마스와 라빈
4. 다른 방법을 통한 점령
5. 분리와 겹침
6. 꿈과 악몽

IV. 체첸 전쟁의 내면 풍경
1. 그대에게 안녕을 고하노라, 더러운 조국 러시아여
2. 톨스토이와 코카서스 전쟁
3. 차르 보리스
4. 도시파괴, 살육, 공동 묘 구덩이
5. 변동하는 국경선
6. 수피 종단
7. 산으로
8. 후기

*역자 후기

여인의 돌팔매를 누가 거두랴



스페인 문단을 대표하는 소설가 후안 고이티솔로(73)는 10년쯤 전 이슬람권의 대표적 분쟁지역인 사라예보, 알제리, 팔레스타인, 체첸을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해마다 한 곳씩 분쟁의 현장을 차례로 방문해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고, 벌어지는 일들을 목격했다. 분쟁의 역사와 그 속의 피 묻은 사건을 담은 책이며 기사 따위 기록물을 섭렵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 방문의 기록은 당시 스페인 일간지 ‘엘 파이스’에 연재됐고 뒤에 책으로 묶여 나왔다.

스페인에서 문호의 반열에 들고 아랍어에 가장 정통한 작가로 평가받는 고이티솔로의 ‘전쟁의 풍경’은 바로 그 답사의 기록이다. 이른바 ‘르포문학’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이 책은 단순한 감상이나 체험의 나열이 아니라 이슬람과 서구의 오랜 대립, 뿌리 깊은 분쟁에 대한 냉정한 해석과 전망까지 포함한 일종의 보고서이다.

보고서는 문호의 글답게 유려하면서도 세세하다. 그 세심한 보고들은 짧게는 수십 년을, 길게는 몇 백년을 이어 내려온 갈등의 현장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낱낱이 드러낸다.

‘수가 많냐 적냐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들 순교를 한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이 있고, 동물처럼 이 게토에 영원히 갇혀 있습니다. …죽는 것에 대해선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이미 죽어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귀환을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미국의 지지를 업고 이스라엘이 펼치는 강경정책에 신음하는 팔레스타인 교수가 내뱉은 말에는 죽음 앞에 이른 팔레스타인 민족의 고통이 절절이 배어있다. 게토,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가자지구는 바로 유대인을 죽음으로 내몬 땅인 ‘격리지구’였다.

팔레스타인의 풍경을 둘러본 뒤 고이티솔로는 ‘팔레스타인인에게 손을 내미는 대신, 무력으로 얻은 땅은 한 치도 내주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어쩌면 넓은 아량과 미래에 대한 비전으로 해결할 수 있을 갈등에 점점 더 독을 뿌리는 일일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팔레스타인인의 정체성과 그들 국가의 독립과 자주권을 인정해주는 것만이 중동에서 발생한 이 비극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럽의 양심을 유린한 ‘인종청소’ 지역 사라예보에는 미국의 문화비평가 수잔 손탁과 함께 갔다. 밀로셰비치와 카라드지치의 지휘 아래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원리주의자들이 보스니아계 무슬림들을 쓸어버리는 그곳에서 그는 총알과 대포 사이로 물을 구하러 나서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꺼지지 않는 의욕, 무차별 강간과 살인 등 용서할 수 없는 폭력 속에서도 자비와 동정을 잃지 않은 무슬림들의 심성을 목도했다.

체첸을 다녀온 뒤 그는 이렇게 물었다. ‘인구 100만명 남짓의 작은 민족 체첸에게 무슨 죄를 물을 것인가? 천박하고 불명예스러운 민족을 전멸시키겠다는 강대국 러시아의 전략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인가.’ 언뜻 보기에 고이티솔로는 이슬람쪽을 대변하는 듯하지만 굳이 편을 따지자면 그는 약자, 또는 소리없이 당하는 민중의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거의 매일 신문을 장식하는 국제뉴스의 그 메마른 문장 행간에 어떤 눈물이 흐르고 있는지, 얼마나 지독한 고통이 숨어있는지 느낄 수 있게 한다.

고이티솔로의 책은 분쟁지역의 현실을 한눈에 살피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러나 10년 전 이야기들인데도 그가 본 현실과 분석, 진단이 여전히 유효한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한국일보 김범수 기자

독자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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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일 :

2004-11-08 오후 12:41:14

 

"쓰디쓴 역사의 교훈은 잊혀지고, 과거는 다시 현재가 되었다."

"문제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많은 유럽 사람들은 계속해서 기독교 대 이슬람이라는 역사적인 대립 구도에 빠져 있단 말입니다. 과거의 환영이 그들의 무의식 속에서 악몽처럼 작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체트닉들은 이를 이용하여 대를 이어 내려오는 공포를 부추기고, 십자군 정신을 불멸화하여 투르크인들에 대항하는 유럽 대표라고 스스로 선언하는 겁니다. 만약 이런 일들이 우리의 삶과 죽음의 걸린 문제가 아니라면, 우리도 그냥 웃어넘길 수 있지요."

스페인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후안 고이티솔로가 이슬람과 기독교의 대립이 첨예한 네 지역, 사라예보, 팔레스타인, 알제리, 체첸을 방문하여 전쟁과 전쟁 속 사람들의 삶을 기록한 에세이집. 종교적 믿음이 정치적 이해와 결합하면서 전쟁의 광기로 변질되는 과정, 증오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증폭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일인칭 시점으로 전쟁의 풍경을 담아낸 글이지만 개인적 감상과 체험의 수준을 넘어 이슬람과 서구의 오랜 분쟁의 역사를 한 흐름에 조망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서구 기독교 세력과 이권을 노린 열강의 다툼 속에서 피 흘리는 이슬람 국가들의 비참한 현실을 보여주며, 과거의 환영이 어떻게 현재를 규정하고 파괴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슬람-기독교 분쟁의 역사를 읽다보면, 전쟁으로 이익을 보는 한 축과 이로 인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다른 한 축의 역사를 만나게 된다. 알제리 이슬람 종파의 역사적 분쟁이 이면에는 석유를 노린 서구의 교묘하고 잔인한 패권주의가 있고,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폭력성의 이면에는 소외된 계층의 절박함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는 현지 정치인들이 있다.

이스라엘 젊은이들을 미워하면서 똑같이 복수심에 불타는 닮은 표정을 갖게 되는 팔레스타인 젊은이의 모습이나, 폭탄에 맞아 사지가 잘린 체 병원에 누워 "내가 살아있는 이유는 당한 것을 증언하고 갚아주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보스니아의 무슬림 소녀의 모습에서 가해자를 닮아가는 피해자의 모습을 읽다보면, 피로 쓴 과거가 또 다시 현재가 되는 악순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지은이는 전쟁의 풍경을 보여주며, “‘현재’라는 중요한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은 끔찍한 특권이다.”라고 말한다. 이들이 피로 쓰고 있는 역사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이슬람에 대한 무관심이나 무지에서 비롯된 편향된 시각은 그 자체로 그들에 대한, 역사에 대한 폭력이다. 지은이는 잔혹한 죽음의 현장, 절박한 삶의 현장으로부터 ‘현재’를 사는 것이 특권임을 잊을 때, 쓰디쓴 역사의 교훈은 잊혀지고 과거는 다시 현재가 된다는 역사의 메시지를 전한다. - 김현주(2004-11-04)


독자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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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일 :

2004-11-10 오후 1:28:09

 

이 책을 읽어라. 그리고 기억하라. 광기는 내 안에 있고, 인간은 인간을 죽인다.



전쟁의 풍경을 읽다보면 우리는 너무나 고립된 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지구의 저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야만과 학살, 광기와 살륙을 외면한 채 살고 있다. 나의 고통이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이라 여기며 사적이익의 무한한 추구를 가능케 해주는 - 실제로는 그 흐름에 발을 들여놓지도 못하면서 - 이 제도와 체제를 감사하면서 눈을 감고 살아간다.

후안 고이티솔로의 통찰과 날카로운 문장은 감은 눈을 뜨게하고 작은 신음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한다. 사라예보와 알제리, 팔레스타인과 체첸. 그리고 이 책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바그다드와 칸다하르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을 문명의 얼굴을 한 무자비한 폭력을 느낄 수 있다.

같은 성경을 믿는 서로 다른 두 종교의 싸움. 그리고 그 싸움의 뒤 편에서 교활하게 웃고 있는 지성을 가장한 자본과 힘. 나는 이 혼란한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할까?

-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