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박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아직도 미련스럽게, 여전히 고집스럽게 고유한 우리네 토종 생활문화의 맥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삶을 느리게 밀고 가는 그들이야말로 우리의 문화를 지켜온 힘이며, 우리네 토종 생활문화의 맥을 이어가는 사람들이다. 심메마니, 약초꾼, 석이꾼, 송이꾼, 독살 어부 등 모두 열세 가지의 서로 다른 ‘업’과 열여섯 명의 ‘꾼’에 대한 삶을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토종지기의 삶이 낳은 몇 가지 토종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우리네 ‘삶의 느림’에 대한 기록
『사라져가는 토종문화를 찾아서―꾼』과 『사라져가는 토종문화를 찾아서―장이』는 우리 곁에서 묵묵히 토종문화를 지켜온, 그러나 언제부턴가 하나둘씩 사라져가고 있는 ‘꾼’과 ‘장이’들의 살갑고도 눈물겨운 삶의 풍경이 담겨진 책이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이 급박한 세상에 아직도 미련스럽게, 여전히 고집스럽게 고유한 우리네 토종 생활문화의 맥을 이어가는 사람들. 이 급박한 현대의 속도전 속에서 오히려 그들은 느리게 자신의 삶을 밀고 간다. 컴퓨터라는 기계 문명을 신봉하는 젊은이들 눈에는 그들이 세상 물정 모르는 ‘구식’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 느림이야말로 어쩌면 우리의 문화를 지켜온 힘이 아닐까.
사라져가는 한 시대의 사람과 풍경
사실 ‘꾼’이라 하면, 오랜 세월 하나의 일에 매달려오며 주로 발품을 팔아 생계를 유지해 온 쪽이고, ‘장이’는 한정된 공간에서 수공업적인 기술로 이것저것 만들어 솜씨를 드러내는 쪽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꾼’이나 ‘장이’라는 말이, 그들을 홀대하는 말이 아니냐고 섭섭해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네 전통적인 서민생활 속에서 ‘꾼’과 ‘장이’의 노릇이란, 생산적 노동과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담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삶이며, 살갑고도 눈물겨운 주변부의 풍경이라 할 수 있다.
한갓 초막을 지어놓고 농사를 짓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새끼를 꼬아 짚신을 만들고, 메를 두드려 낫 한 자루 만드는 것이 대단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사라지고 나면 더 이상 초막 농사꾼도, 짚신장이도, 대장장이도 우리 역사에서 영영 퇴장하고 마는 것이다.
중심에서 주변으로, 주변에서 추억으로
왜 하필 지금 ‘꾼’과 ‘장이’인가?
사실 과거에 이와 비슷한 책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동안의 기록에 있어 아쉬운 점은 대부분이 잘 알려진 인간문화재 또는 명인, 왕실공예(골각, 금속, 칠공예 등) 장인 등을 다룬 것이었고, 상대적으로 홀대받는 사람들을 기록한 책자라는 것도 생생한 사진을 곁들이지 않아 못내 아쉬움이 컸었다. 그런 아쉬움 때문에 이 두 권의 책에서는 단지 기록에만 머물지 않고, 모두 400여 컷의 생생한 사진을 곁들여 하나의 사료(史料)로서의 노릇도 겸하도록 했다. 세기말을 건너 새로운 세기초에 이르는 이 시기에 ‘꾼’과 ‘장이’를 기록해 두는 일은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의미를 되짚어보는 기회로서 더욱 값진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의 구성과 내용
『꾼』에서는 심메마니, 약초꾼, 석이꾼, 송이꾼, 석청꾼, 초막 농사꾼, 독살 어부, 죽방렴 어부, 해녀, 소금꾼, 봉받이, 굴피집지기, 남사당 앞쇠 등 13가지의 業에 종사하는 ‘꾼’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이어 『장이』에서는 숯장이, 대장장이, 왕골장이, 짚신장이, 짚풀장이, 베장이, 모시장이, 무명장이, 명주장이, 쪽물장이, 옹기장이, 부채장이, 엿할머니, 올챙이 국수장수 등 14가지 業에 종사하는 ‘장이’들을 소개하고 있다.
두 권의 책에 모두 27가지의 ‘업’을 지켜온 32명의 토종지기가 실려 있는 셈이다. 좀더 의미를 두고 바라보아야 할 부분에서는 「곁들여보는 토종문화」 난을 별도로 구성하여 관련 토종문화의 이해를 돕도록 꾸며져 있다.
한글사전에도 나와있는 ‘시치미떼다“의 의미가 예로부터 전해져오는 봉받이(관련내용 『꾼』 200쪽)의 매사냥에서 비롯된 말이라는 것을 아는 이는 드물다.
‘시치미’(쇠뿔을 얇게 깎아 만들기도 했다)란 매의 꽁지에 매어 두는 꼬리표 같은 것으로, 여기에는 주소와 봉받이 이름 등을 적어 자신의 매임을 표시했다. 옛날 매사냥이 성행했을 무렵, 간혹 사냥을 나갔다가 매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때 남이 잃어버린 매를 받아 시치미를 떼고 자신의 시치미를 다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따라서 하고도 안한 척, 알고도 모르는 척 할 때 마치 시치미를 떼어 임자를 모르게 하는 것과 같다 하여 ‘시치미 뗀다’고 하였다.
깎아지른 절벽을 장비도 없이 오로지 맨손으로 줄을 잡고 오르내리는, 위험천만한 미친짓을 30여 년 동안이나 해온 국내 유일의 석이꾼. 기형적으로 변형된 그의 손가락이 그의 삶의 고달픈 이력을 대신한다.
사라진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그리워해야 한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그 ‘그리운 병’에 들기 전에 어떤 식으로든 그들의 삶을 한번쯤 보듬고, 껴안아 보자.
사실 거창한 역사유적이나 문화유산에는 친절한 안내문도 많고, 책도 많고, 그것을 찾아가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무형의 이 생활풍속은 지금 만나지 않으면 영영 만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면사를 기계로 뽑기 시작하면서 급격히 일이 줄어든 후에도 계속 무명짜기를 해온 무명장이 백씨의 “이 편할라카는 세월에 누가 이거 하겠습니꺼. 돈도 안되지, 하기도 어렵지”(관련내용 『장이』 128쪽) 라는 말은 우리들을 더욱 안타깝게 만든다.
이용한(글)
시인. 1995년 실천문학신인상 수상. 현재 프리랜서로 우리나라 각 지역의 풍물과 민속, 토종문화와 지역문화의 흔적들을 더듬어 기고해 오고 있다. 시집 『정신은 아프다』(실천문학사, 1996) , 문화기행서 『사라져가는 오지마을을 찾아서』(실천문학사, 1998) ,『사라져가는 토종문화를 찾아서-꾼』(실천문학사, 2001),『사라져가는 토종문화를 찾아서-장이』(실천문학사, 2001), 『사라져가는 이 땅의 서정과 풍경』(웅진닷컴, 2002), 『이색마을 이색기행』(실천문학사, 2002) 등을 펴냈다.
심병우(사진)
전문사진가. 1964년 전북 정읍 출생으로, 신구전문대 사진과를 졸업했다. 『울릉도』 『월출산』 등의 책을 펴낸 바 있으며, 현재 우리나라 각 지역의 풍물과 자연을 사진에 담고 있다.
1. 하늘이 내린 약초, 산상을 받는 사람들
2. 열한 살 되민서부터 산에 댕기는 까닭
3. 마지막 석이꾼으로 절벽에 매달려 살아온 30년
4. 우리 땅 으뜸 송이꾼
5. 가장 은밀한 곳에서 가장 달콤한 꿀을 딴다
6. 우리 시대의 마지막 초막 농사꾼
7. 바다에 돌성을 쌓아 고기를 잡는다
8. 가는 고기는 두고, 드는 고기는 잡고
9. 바다를 텃밭 삼아 살아온 물질 인생
10. 반평생을 소금밭에 바친 짭짤한 인생
11. 산에서 매를 받아 부리는 마지막 매사냥꾼
12. “봄에는 두릅 따구, 여름에는 초피 따구”
13. 쇠를 치고, 춤판을 벌이며 떠돈 50여 년 세월
"우리 것이 최고여!" 토종 지킴이들
“우리가 사용하는 면(綿)은 100% 수입산입니다. ‘Cotton USA(미국면)’표시는 품질을 보증합니다.”
패션잡지에서 흔히 보는 광고문구다. 신자유주의 무역체제 아래의 21세기니 그럴 법도 하다. 외국옷감 사다 합성색소로 물들여 입고, 몸 아프면 양약 지어 먹고, ‘위 아 더 월드’ 하며 산다.
그렇지만 진짜로 우리네 삶이 ‘100% 수입산’일까? 마당 한켠에 목화 심어 실 뽑고, 옷감 지어 쪽으로 물들이고, 산으로 약초캐러 다니던, 땅과 밀착된 삶은 어차피 사라져버린 것인가.
이 책은 느리게 옛 방식대로의 삶을 밀고 가는 ‘토종문화’의 고집쟁이들을 보여준다. 『꾼』편에는 심메마니, 송이꾼, 해녀 등 주로 발품을 팔아 생계를 이어온 열네명의 토종지기가, 『장이』편에는 무명장이 숯장이 대장장이 등 전래의 수공업 기술로 솜씨를 드러내온 열여섯 사람의 모습이 실렸다. 저자와 사진가가 2년 동안 전국을 누비며 취재에 공을 들였고, 생생한 컬러사진 400여장을 곁들였다.
심메마니 홍종덕과 김영재. 산삼을 보는 순간에는 ‘번쩍’ 하는 기를 느낀단다. 꿈을 잘 꾸는 것도 중요하다. 산에 눈이 하얗게 덮인 꿈을 꾸면 설악산, 사방에 절이 보이면 오대산에서 심을 본다. 어떤 심메마니들은 아낙네의 ‘개짐’을 지니고 다닌다. 산신이 여자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나.
이렇게 정성을 들여도 3년 심을 못 보는 때도 있다. 값싼 외국 삼이 들어오면서 삼 값도 예전만 못하단다.
옷감에 쪽물 들이는 쪽장이 정관채. 육이오 후 미군바지와 화학염료가 들어오면서 한때는 토종 참쪽이 소멸돼버리기도 했다. 간신히 종자를 찾아냈지만 참쪽은 내성이 약해 왜쪽을 주로 쓰고, 대신 마당 한쪽에 참쪽을 곱게 키우며 맥을 유지하고 있다. 풀빛 쪽이 발효와 침전을 거듭해 고유한 빛을 내기 위해선 물 온도, 쪽풀 성장상태, 잿물 양 등 하나라도 어긋나선 안 된다.
매사냥꾼 전영태. “옛날에는 이게 국기(國技)랑게. 군왕도 허고 서민도 허고. 사람들은 고함지르고 매는 날아가고, 그런 구경이 없었어….” 옛일을 회상하는 그의 주름진 눈가가 말해주듯, 이들의 삶은 ‘주류’에서 밀려나 근근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마저 퇴장하면, 이 땅에 뿌리박은 삶을 풍요롭게 하던 우리 조상들의 모습은 영원히 사라지고 말 지도 모른다. “이 편할라카는 세월에 누가 이거 하겠습니꺼. 돈도 안 되지…. 그래도 마 재밌어서 이래 하고 있어요.” 아직도 마당에 목화를 심는 무명장이 백문기의 독백.
“과거에 이와 비슷한 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대부분은 잘 알려진 인간문화재급을 다룬 것이었다. 상대적으로 홀대받는 사람들을 기록하고 다양한 사진으로 삶의 모습을 담은 책을 만들고 싶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 동아일보 책의향기 유윤종 기자 (2001년 5월 26일 토요일)
토종지기, 이제는 아스라한…
5시간 정도 물에 불린 쌀로 고슬고슬하게 고두밥을 짓는다. 이 고두밥을 밥티가 둥둥 떠다닐 때까지 엿기름 푼 물에 푹 끓여낸다. 이 물이 끓으면 `엿물'이 되고 이것을 삭히고 달이고 젓고… 사흘 정도 꼬박 품을 들이면 `엿'이 된단다.
올해로 77살을 맞는 장옥례씨는 전남 구례에서 60년째 이렇게 손수 만든 엿을 머리에 이고 구례장으로 나선다.
『장이』와 『꾼』(실천문학사)은 `미련스럽게' 그리고 `고집스럽게' 한국의 토종문화를 일구어가는 우리 시대 `장이'와 `꾼'에 대한 기록이자 이들에 대한 헌정사다. 저자는 편의상, 발품을 팔아 일을 하는 쪽을 `꾼'으로, 한정된 공간에서 일을 하는 쪽을 `장이'로 구분해 2권의 책으로 펴냈다.
미련스럽고 고집스럽기는 지은이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이와 비슷한 책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이 잘 알려진 인간문화재급 또는 명인만을 다룬 것이 아쉬웠다”라는 서문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저자 이용한씨와 사진가 심병우씨가 2년 동안 전남 곡성에서 강원도 삼척까지 전국을 누비며, 숨어 있는 `토종지기'들을 찾아낸 발품과 노고의 결실이다. 이들은 지난 98년 전국 30여 군데의 벽지와 오지를 기록한 『사라져가는 오지마을을 찾아서』(실천문학사)를 펴낸 뒤 바로 토종문화 지킴이들을 찾아 나선 것이다.
깎아지른 절벽을 맨손으로 오르내리며 석이를 따는 국내 유일의 석이꾼, 바다에 돌성을 쌓아 고기를 잡는 독살어부, 뽕나무와 누에를 직접 키워 비단을 짜는 명주장이 등 32명의 `토종지기'가 이 책들의 주인공이다.
“평상 내가 이거 해 가지구 먹구살아요. 이게 하이고, 음청 애먹는 기래요. 이거 팔애가지구 논두 사구 밭두 사구 아들 공부 다 갈킷어요.”
무려 63년째 베를 짜 온 강원도 삼척의 조계옥씨는 하도 입으로 삼껍질을 물다보니 이가 허물어진 지 오래다. 30년째 맨손으로 암벽을 타며 석이를 딴 박성진씨는 손가락이 기형적으로 구부러져 버렸다.
이 책에는 숯, 왕골방석, 한산모시, 옹기, 부채 등 전통 생활용품을 만드는 기술에 대한 기록과 이것으로 부모를 모시고 자식을 키웠던 그들의 삶과 사연이 함께 녹아 있다. 단순한 기록을 넘어 우리 시대의 질박한 서민문화와 그들의 감수성을 읽을 수 있다.
“이 편할라카는 세월에 누가 이거 하겠습니꺼. 돈도 안 되지, 하기도 어렵지. 그래도 마 이게 내는 재밌어서 이래 하고 있어요.” 토종지기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이 이 문화를 이어가는 마지막 세대가 될 거라며 안타까워한다.
따뜻한 시선으로 찍어낸 400여 컷의 컬러사진과 말하는 그대로 실린 방언들이 읽는 이의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 한겨레신문 김아리 기자 (2001년 5월 29일 화요일)
‘토종문화 지킴이’조명 이용한 著 ‘꾼’‘장이’
갓 막집을 지어놓고 농사를 짓는 초막 농사꾼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새끼를 꼬아 짚신을 삼는 짚신장이가,혹은 메를 두드려 낫을 만드는 대장장이가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다.하지만 그들이 우리 역사에서 영영 사라져버린다면 삶은 얼마나 삭막한 것이 될까.우리 곁에서 묵묵히 토종문화를 지켜온,그러나 언젠가부터 하나둘씩 사라져가고 있는 ‘꾼’과 ‘장이’들….그들의 땀냄새 나는 삶의 풍경은 살갑고 눈물겹다.
『정신은 아프다』의 시인 이용한(34)이 쓴 『꾼』과 『장이』,이 두 권의 책에는 사라져가는 한 시대의 사람과 풍경이 오롯이 담겨 있다.빠른 것이 곧 미덕인 ‘광속의 시대’에도 오히려 느리게 자신의 삶을 밀고 나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실렸다.‘꾼’에서는 심메마니,약초꾼,석이꾼,송이꾼,석청꾼,초막 농사꾼,독살 어부,죽방렴 어부,해녀,소금꾼,봉받이,굴피집지기,남사당 앞쇠 등 13가지의 업을 지켜온 ‘꾼’들이 소개된다.이어 ‘장이’에서는 숯장이, 대장장이,왕골장이,짚신장이,짚풀장이,베장이,모시장이,무명장이,명주장이,쪽물장이,옹기장이,부채장이,엿할머니,올챙이 국수장수 등 14가지 업에 종사하는 ‘장이’들을 만날 수 있다.저자는 이 ‘토종지킴이’들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을 직접 찾아 시인의 눈으로 보고 적었다.
저자는 “사라진다는 것은 곧 그리워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그 그리움의 대상 1호가 초막이다. 초막이란 풀이나 짚으로 지붕을 이은 조그만 막집을 일컫는 말. 지붕에는 ‘용굽새’라 불리는 용마름이 얹혀 있어 크기만 작을 뿐 영락없이 초가처럼 보인다.초막은 농촌에 경운기가 보급되면서 설 땅을 잃었다.저자는 다행히 충북 단양군 단성면 벌천리 마을에서 우리 시대의 마지막 초막 농사꾼 고황용(88)옹을 만날 수 있었다.이 ‘꾼’으로부터 그가 들은 것은 일이 없어도 초막에 와 누워있으면 마음이 편하다는 ‘느림의 철학’이다.‘삶의 느림’을 기록한 책 『꾼』의 강점이라면 우리 시대 ‘꾼’들을 단순히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그들의 삶 깊숙이 들어가 영혼의 메시지를 읽게 한다는 것이다.마치 고래실에서 벼가 자라듯 자고 나면 달라지는 것이 오늘의 세상이다.시시각각 바뀌는 급박한 시대에 화석화해가는 토종 생활문화의 맥을 이어가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몫이다. 오랜 세월 발품을 팔아 토종 생활문화를 일궈가는 사람이 ‘꾼’이라면,‘장이’ 는 한정된 공간에서 수공업적인 기술로 물건을 만들어 우리네 전통 서민생활을 가꾸는 사람이다.‘장이’의 고단한 삶은 “일곱 번 화덕에서 달구고,천 번을 두드려야 낫이 된다”는 대장장이 조수익씨(61)의 말에서 그대로 확인된다.조씨는 전남 곡성에서 44년째 대장장이 일을 하며 ‘당목낫’의 장인이 된 인물이다.잘 나가던 시절엔 하루에 120자루의 당목낫을 만들었다고하니 적어도 하루에 10만 번이 넘는 망치질을 한 셈이다.‘장이’란 이처럼 노동의 신성함과 기쁨을 내면화한 사람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왜 하필 지금 ‘꾼’과 ‘장이’일까.그동안 비슷한 종류의 책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대부분 인간문화재나 명인, 왕실공예 장인 등을 다뤘다.이에 비해 이번에 나온 두 권의 책은 상대적으로 홀대받아 온 ‘꾼’과 ‘장인’의 생활문화와 정신성을 계승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사진작가 심병우가 찍은 400여 컷의 생생한 사진이 책의 가치를 더해준다.
--- 대한매일신문 김종면 기자 (2001년 5월 23일 수요일)
묵묵한 '토종' 외길 인생 '꾼/장이'
'사라져가는 토종문화를 찾아서' 라는 부제가 붙은 이 두 권의 책은 심메마니. 소금꾼. 남사당 앞쇠에서부터 숯장이. 왕골장이. 엿할머니 등 모두 27가지 업(業) 에 종사하는 '꾼' 과 '장이' 32명의 삶을 담고 있다.
그들에게 '토종 문화를 지킨다' 는 사명감 같은 것은 없는지 모른다. 그저 그 일이 좋아서, 혹은 가족들을 먹여 살려온 생업이기에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을 뿐이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삶이기도 한 그들의 살가운 모습은 생산적 노동과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보여준다. 4백여 컷의 생생한 사진들이 2년에 걸쳐 발품을 팔았다는 작가와 사진작가의 정성과 노력을 실감나게 한다. '곁들여보는 토종문화' 난에선 산삼. 약초. 어구문화에서부터 길쌈. 죽세공품 등에 관해 상세한 설명을 접할 수 있다.
--- 중앙일보 행복한 책읽기 김정수 기자 (2001년 5월 26일 토요일)
토종 그 쓸쓸함, 아니 위대함에 대하여
산에서 매를 받아 부리는 마지막 매사냥꾼 전영태 씨(85)는 봉받이(매사냥 총지휘자)다. 꿩잡는 게 매라면 매잡는 게 전씨다. 버렁(매 앉히는 장갑)에 수진이(손수 키운 매)를 앉힌 모습이 고려적 ‘응방’의 매사냥꾼 기품이다. 매는 영리한 짐승이라서 “애기야 꿩 나간다” 하면 매가 알아듣는다.
쇠뿔을 얇게 깎아 만들기도 하는 시치미는 매의 꽁지에 달아준 ‘매주인 감별 꼬리표’다. 여기에 봉받이의 주소․이름을 적어 놓는다. 삼국시대 때부터 일제시대까지 매사냥이 성행할 무렵, 간혹 사냥을 나갔다가 매를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이때 임자없는 매를 받아 시치미를 떼고 자신의 시치미를 다는 경우가 많았다. ‘시치미떼다’라는 말은 이로부터 유래했다.
천애의 절벽을 오로지 맨손으로 줄을 잡고 오르내리는 국내 유일의 석이꾼 박성진씨(57). 그의 손은 암벽타기 좋게 갈고리 손가락모양이다. 원래 손이 기형적으로 변한 것. 선풍기와 에어컨에 밀린 부채를 손수 만드는 부채장이 이기동옹(71)의 접부채는 30여 과정을 거쳐야 합죽선의 예스런 멋이 부챗살처럼 펼쳐진다.
1998년 『사라져가는 오지마을을 찾아서』(실천문학사)를 펴낸 바 있는 글쟁이 이용한 씨와 사진작가 심병우 씨가 우리시대 토종문화 『꾼』과 『장이』(실천문학사)를 찾아냈다. 꾼은 발품을 팔아서 우리네 토종 생활문화의 맥을 이어가는 사람들이다. 장이는 솜씨를 내서 우리네 전통적인 서민생활을 이어온 이들이다. 저자와 사진작가의 맹렬 토종사랑이 ‘사라져가는 토종문화를 찾아서’격인 책을 낳았고 ‘한국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문화의 진수를 보여준 셈이다.
『꾼』에서는 심메마니(홍종덕․정병극․양승철․김영재), 약초꾼(김명복), 송이꾼(방경원), 석청꾼(최근성), 초막농사꾼(고황용), 독살 어부(임용주), 죽방렴 어부(임권택), 해녀(고남진), 소금꾼(이몽룡), 굴피집지기(정상흥), 남사당 앞쇠(김기복) 등의 ‘토종 일꾼’들이, 『장이』에서는 숯장이(김성필), 대장장이(조수익), 왕골장이(방금선), 짚신장이(문복선), 짚풀장이(서만대), 베장이(조계옥․남기옥), 모시장이(나상덕), 무명장이(백문기), 명주장이(조옥이), 쪽물장이(정관채), 옹기장이(이무남), 엿할머니(장옥례), 올챙이 국수장수(신보현) 등의 ‘토종 장이’가 나온다.
400여컷의 생생한 현장사진은 1차 사료를 겸한 ‘토종문화실록’ 노릇을 한다. 각주격인 ‘곁들여보는 토종문화’란도 흥미롭다. 가령 고려시대 성리학자 이곡이 대나무를 의인화하여 절개있는 부인 이야기를 한 가전체 작품 ‘죽부인전’. 거기서 유래한 ‘제2의 부인’ 죽부인. 예로부터 아버지의 죽부인은 아들이 껴안을 수도, 물려받을 수도 없었다. 부친상 때 불에 태워주었다. 조상들은 생활용품을 마치 가족처럼 생각했던 것이다.
--- 경향신문 책마을 노만수 기자 (2001년 5월 26일 토요일)
토종문화 脈 잇는‘꾼’그들의 세상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화해도 그 변화와 상관없이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근대사회로 발을 들여놓기를 주저하는 사람들, 현대문명 속의 수렵채취생활자로 남아있는 이들. 책 ‘꾼’은 한국 근대사회의 끄트머리에 머문 채 전통적인 생계유지방식으로 살가운 삶을 꾸려가는 이들의 삶과 생활방식을 소개하고 있다.‘발품을 팔아서 우리네 토종 생활문화의 맥을 이어가는 사람들’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책이 담고 있는 16명의 꾼들은 기계문명과는 거리가 먼 수렵채취생활을 고집하는 이들이다.
산삼과 약초, 석이버섯, 송이버섯, 석청(돌틈에 있는 꿀)을 찾아 발품을 파는 이들이요, 독살 어부(돌담을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어부)요, 해녀, 봉받이(매사냥 지휘자)들이다.
저자 이용한(32) 씨와 사진작가 심병우(36) 씨는 너와집, 굴피집, 귀틀집 등 전통 집들이 남아 있는 전국 오지마을 사람들의 삶을 다룬 『사라져가는 오지마을을 찾아서』(실천문학사) 등을 같이 펴낸 바 있다.
이씨는 “급박한 세상 속에서 우리네 토종 생활문화의 맥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진정한 ‘꾼’이라고 말한다. 컴퓨터 등 기계문명을 신봉하는 젊은이들 눈에는 구닥다리일지 모르지만 ‘꾼’들이 추구하는 느림의 미학이야말로 우리의 문화를 지켜온 힘인지도 모른다.
이씨는 “한갓 초막을 지어놓고 농사를 짓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깎아지른 절벽을 별다른 장비도 없이 오로지 맨손으로 줄을 잡고 오르내리는 위험천만한 짓마저 대단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사라지고 나면 더 이상 초막 농사꾼도, 기형적으로 변형된 손가락이 고달픈 삶의 이력을 대신하는 석이꾼도 우리 역사에서 영영 퇴장하고 마는 것”이라며 사라져가는 우리 사회의 한 풍경을 기록하고 있는 자신들의 작업을 설명하고 있다.
전국을 뒤져 찾아낸 심마니, 약초꾼, 석이꾼, 석청꾼, 죽방렴 어부(바다에 참나무 말목을 박아 물고기를 잡는 어부), 소금꾼, 굴피집지기 등을 2년여 동안 동행취재하며 담아낸 400여 컷의 사진들은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1차 자료로서도 가치가 충분하다. 꾼들의 진술을 옮긴 이씨의 글과 그들의 삶을 아름다운 화면으로 잡아낸 심씨의 사진은 한국사회 한 편에서 묵묵히 토종 문화를 지켜온 이들의 생활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책은 ‘꾼’의 가장 특징적인 요소로 “전통적인 서민생활 속에서 생산적 노동을 하고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보이는 것”이라고 정리한다.
강원도 춘천시에 사는 약초꾼 김명복(67) 씨는 “내가 열한 살 되면서부터 산에 댕뵷시유. 56년인가. 벌써 오래됐시유. 본격적으루다 약초를 캐기 시작한 것두 꽤 오래됐시유. … 옛날에는 산에 댕기면 다 돈이었시유. 산에서 나는 것은 다 약재로 들어가유. 두릅 딸 때는 두릅 따서 하루 30만원씩 벌구, 더덕이두 많이 캐구, 산도라지 이런 거 다 약초로 들어가유. 등칡이라구 있어유, 암만 팔뚝 같은 것두 우리가 잡아댕기면 툭툭 끊어져유. 아주 속이 노랗쥬. … 지금은 안 좋아유. 이제 산에 댕기는 사람 다 굶어죽을 지경이유”라고 털어놓는다.
책 『꾼』과 함께 전통생활문화를 지키고 있는 장인들의 삶을 담은 『장이』도 출간됐다. 『장이』는 인간문화재, 명인 등에 가려 상대적으로 홀대받던 장이들, 숯장이, 짚신장이, 무명장이, 쪽물장이, 옹기장이, 부채장이 등 16명의 삶을 다루고 있다.
“사실 거창한 역사유적이나 문화유산에는 친절한 안내문도 많고 책도 많다. 하지만 무형의 생활풍속은 지금 만나지 않으면 영영 만날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많다”고 지적하는 저자의 노력에 의해 이 시대의 단층 속에 묻혀가는 통나무같은 삶들이 얼핏얼핏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 문화일보 북리뷰 정동근 기자 (2001년 5월 23일 수요일)
토종 지킴이들의 일과 삶
시인 이용한 씨와 사진작가 심병우 씨가 사라져가는 토종문화의 현장을 찾아 『꾼』과 『장이』(실천문학사,각권 1만2천원)을 펴냈다.
평생 산과 들로 다니며 발품을 팔아 생계를 꾸리는 "꾼",한 자리에서 수공업적인 기술로 기막힌 솜씨를 뽐내는 "장이"의 삶. 잊혀져가는 토종지기들의 아릿한 삶이 두권의 책에 담겨 있다.
잘 알려진 명인이나 인간문화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한길을 걸어온 사람들의 얘기여서 더욱 감동적이다. 4백여 컷의 사진도 곁들여져있다.
주인공들은 심메마니와 석청꾼, 죽방렴 어부, 숯장이, 짚신장이 등 27가지 업에 종사하는 32명의 전통 지킴이. "산삼과 약초의 효능""서민들의 옛집문화"등 궁금한 내용들은 "곁들여보는 토종문화"코너에 별도로 설명해놨다.
강원도 산골을 누비며 정성스레 산삼을 받는 심메마니, 가장 은밀한 곳에서 가장 달콤한 꿀을 따는 석청꾼, 깎아지른 절벽에 매달려 한손으로 석이를 따는 석이꾼,일곱 번 화로에 달구고 천 번을 두드려 낫을 만드는 대장장이, 뽕잎 따서 누에 치고 누에실로 베를 짜는 명주장이...
사냥매의 꼬리표를 시치미라고 하는데 남의 매에 달린 시치미를 떼고 자기 매라고 우기는 것에서 "시치미떼다"라는 말이 나왔다는 얘기도 만날 수 있다. 우리 것을 지키는 사람들의 눅진한 심성이 진하게 배어나는데다 그 현장을 정성껏 담아낸 저자의 자세도 진지하다. 책상앞에 앉아 쓴 책이 아니라 품도 많이 든 역작이다.
--- 한국경제신문 북리뷰 고두현 기자 (2001년 5월 25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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