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찾기

체 게바라 평전 (2011)

실천문학 2013. 8. 1. 14:19

 

 

 

  

 

 


아르헨티나 의사 출신으로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독재에 대항하기 위해 전세계 전장을 뛰어다닌 체 게바라는 1960년대 저항운동의 상징이자 오늘날 살아 있는 신화이다. 검은 베레모에 아무렇게나 기른 긴 머리칼, 덥수룩한 턱수염, 그리고 열정적인 눈빛, 굳게 다문 입술. 체 게바라에 관한 전문가로 알려진 장 코르미에는 체가 살아생전 관계했던 모든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생생한 그의 모습을 전한다. 체 게바라에 대한 책은 수십 종이 출간되었으나, 더 이상의 체에 관한 기록은 찾을 수 없을 만큼 체의 생애와 사상을 집대성해 놓은 이 책이야말로 ‘체 게바라' 전기의 최종본이다.

부산시 교육청 청소년 권장도서


가난과 억압에 대항해 혁명을 무기로 세계의 모순에 맞섰던 체 게바라

1928년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의 한 중류 가정에서 태어난 체 게바라(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는 20대 초반까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의학을 공부한 엘리트였다. 하지만 두 번에 걸친 남미여행을 통해 가난한 민중들의 삶의 지켜본 게바라는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혁명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보다 이 세계의 모순을 먼저 치료하는 것이 더 본질적인 문제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1953년 과테말라로 간 그는 과테말라의 진보정당이 미국이 지원한 쿠데타에 의해 무너지는 것을 보고 미국이 진보적 정부를 반대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멕시코로 간 게바라는 1956년 7월 카스트로 형제를 만나면서 구체적인 쿠바혁명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 해 11월 쿠바에 상륙, 시에라마에스트라 산맥을 중심으로 게릴라 활동을 벌이며 혁명군을 모은다. 1958년 산타클라라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승기를 잡은 카스트로와 게바라는 1959년 1월 결국 수도 아바나에 입성한다.

그 뒤 게바라는 쿠바 정부에서 국립은행 총재, 공업장관 등을 역임했고, 공산권과 제3세계를 돌며 모든 종류의 제국주의, 식민지주의에 반대하는 외교활동을 벌인다. 이때부터 검은 베레모와 구겨진 군복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그러나 1965년 4월 쿠바에서의 2인자 자리를 버리고 당시 내전중이던 아프리카 콩고로 가 콩고혁명을 위해 노력했다. 1년 뒤 게바라는 볼리비아로 숨어들어갔다. 볼리비아는 남미 5개국과 접경을 이루는 요충지로서 이곳에서의 활동이 혁명의 불씨를 전남미로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볼리비아 정부군을 지원하는 한편 CIA 요원을 파견, 게바라를 체포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고, 결국 게바라는 1967년 10월 8일 체포된 뒤 처형당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9세였다.


지난 1959년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혁명을 성공시킨 뒤 쿠바의 2인자 자리를 박차고 아프리카 콩고와 남미 볼리비아 등지에서 게릴라 활동을 계속하다 전장에서 숨진 게바라. 이 열정적 투사에 대해 당시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우리 세기에서 가장 성숙한 인간'이라고 평했다. 쿠바를 ‘해방'시킨 뒤 국립은행 총재 등의 고위직에 있으면서도 사탕수수밭에서 노동을 하던 게바라의 모습은 가난한 민중들에게 성자로 추앙받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체 게바라 열기는 그의 활동영역이 아니었던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도 식지 않고 있다. “단지 그의 정치적인 입장에 의해서가 아니라 당시의 ‘시대정신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한 인간'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었다”라는 수많은 회고담 속에서 잘 드러나듯 좀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세계인들의 가슴속에 체 게바라는 언제나 살아 있다.

게바라 열기가 앞으로도 오랜 기간 지속될 것이다. 쿠바의 한 지도급 인사는 “세월이 흐를수록 체와 같은 사람을 찾아보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60년대라는 시대상과 그 시대를 불꽃같이 살다간 게바라와 같은 인물을 다시 기대할 수 없는 이상 게바라는 앞으로도 ‘이상을 꿈꾸는 인간의 대표'로 남을 것이다.

“죽은 게바라가 산 독재자를 물리친다”라는 말이 있다. 체 게바라가 볼리비아에서 처형된 지 30여 년이 된 현재 그가 추진했던 혁명은 아직 미완일 뿐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게바라의 죽음이 그 자체로서 남미 등 많은 지역의 반독재투쟁의 지표로 오늘날까지 살아 있기 때문이다. ‘게바라의 후예들'은 그가 직접 활동했던 아프리카 콩고와 남미 볼리비아는 물론 멕시코, 미얀마 등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장 충실한 체 게바라 전기로 손꼽힌 화제의 작품

장 코르미에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전기작가이다. 그 동안 그는 체 게바라에 대한 많은 저술을 써왔고, 체 게바라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한 전문가로 인정을 받아왔다. 게바라에 관한 자료들을 집대성한 이 책은 프랑스에서 출간되자마자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켰고, 세계 각국에서 번역 출간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에서 그는 체 게바라에 대해 남겨진 모든 자료들을 일괄해서 엮어놓고 있다. 체의 아버지를 비롯해 체가 살아 생전 관계했던 모든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생생한 그의 모습을 전하고 있으며, 그가 남겨놓은 편지글이나 잡문들 거의 대부분이 이 책에 실려 있다.
그동안 체 게바라에 대한 책은 수십 종이 출간되었으나, 67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더 이상의 체에 관한 기록은 찾을 수 없을 만큼 체의 생애와 사상을 집대성해 놓은 이 책이야말로 ‘체 게바라' 전기의 최종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장 코르미에는 역사책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지극히 아름다운 이야기책을 써내는 데 성공했다. ―『르 몽드』

이 작품은 10여년에 걸친 노력이 결실이다. '전사 그리스도'라는 이미지 뒤에 감추어진 인간 게바라의 참모습을 드러내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마치 소설처럼 읽히는 책이다. 풍부한 일화와 증언을 곁들인 혼과 열정으로 써내려 간 전기라 할 만하다. ―『유니옹』

우리는 이 책에서 가장 개성 뚜렷한 프랑스 언론인들 중 한 사람의 경쾌하고도 비옥한 문체와 만나게 된다. ―『프로그레스』

체 게바라가 남긴 글과 생존자들의 풍부한 증언들을 더하여 저자는 신비화된 포스터의 주인공으로부터 하나의 인간으로 변형시켰다. ―『렉스프레스』

혁명의 이념은 이제 하나의 ‘전설’로 남았다. 그러나 그의 혁명적인, 너무나도 혁명적인 삶은 “무릎 꿇고 살기보다는 서서 죽는다”는 한마디의 말이 모든 것을 웅변해준다. ―『경향신문』

'사랑 없이는 혁명도 없다’던 30여년전 그의 외침은 이제 젊은 세대를 겨냥한 광고문구 정도로 무장해제돼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의와 인간애 같은 것이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이라고 믿는 이들에게 그의 외침은 여전히 박제되지 않은 ‘복음’이다. ―『동아일보』

혁명가 체 게바라는 에너지가 꿈틀대는 '진보' '자유'의 표상 ―『매일경제신문』

너무나 인간적인 혁명가 게바라 ―『스포츠서울』

휴머니즘 무기로 혁명의 정글을 헤치다 ―『한겨레신문』


 

장 코르미에
장 코르미에는 일간 『파리지엥』의 전문 기자로서 체 게바라에 관해서는 타의추종을 불허할 만큼의 전문가로 인정을 받아왔다. 1981년부터 그는 게바라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도 그는 체 게바라의 남겨진 모든 자료들을 일괄해서 엮어놓고 있다. 체의 아버지를 비롯해 체가 살아 생전 관계했던 수많은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생생한 그의 모습을 전하고 있으며, 그가 남겨놓은 편지글이나 잡문들 거의 대부분이 실려 있다. 1981년 남아메리카를 여행하며 체의 아버지, 에르네스토 린치를 만난 것을 계기로 체의 일생을 더듬는 긴 여정을 시작했다. 이후 수년간 체 게바라에 관해 연구하고 많은 글을 써왔으며, 1995년 이 책 『체 게바라』를 출간했다.


 

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프롤로그
천식을 앓는 아이
포데로사 2 를 타고
추키카마타에서 얻은 계시
마추픽추
나환자들의 빛 산파블로
플로리다에서

2. 일다 가데아와 피델 카스트로
아메리카의 병사가 가야 할 길
허니문
마리아 안토니아 집에서의 만남
일디타

3. 그란마 호에 탄 여든두 사람
갑판 위의 의사
알레그리아델피오 선택
미련한 군의관
쿠바 국민에게 고함
새로운 무기
대장의 별
로시난테를 탄 돈키호테
잘 싸우기 위해서는 잘 배워야 한다

4. 서쪽으로
공격개시
카밀로와의 전쟁놀이
산타클라라

5. 전쟁은 끝나고
아바나에서
이 방에 공산주의자가 있소?
장막에 가려진 부처
양대 블록 사이에서
타투 무간다

6. 볼리비아의 계략
체가 사라지다
볼리비아 일기
인간은 꿈의 세계에서 내려온다

 [역사인물찾기] 시리즈 낸 박문수 편집장 ―― 서상일 기자, 오마이뉴스(2004. 01. 07.)
 영화<플라이 대디>속의 세 권의 책 ―― 송유진 기자, 독서신문(2006. 11. 20.)

신화로 부활한 '금지된 꿈'

'사랑 없이는 혁명도 없다'던 30여년전 그의 외침은 이제 젊은 세대를 겨냥한 광고문구 정도로 무장해제 돼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의와 인간애 같은 것이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이라고 믿는 이들에게 그의 외침은 여전히 박제되지 않은 '복음'이다.

체 게바라. 본명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세르나. 1928년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1967년 볼리비아 산골에서 처형당한 사회주의자. 97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이 책은 체 게바라 전기의 결정판으로 꼽힌다. 저자는 15년간 체 게바라 가족 동료들의 증언과 그의 일기 메모 등을 모았다. 체 게바라는 하나의 특징으로 유형화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의사이자 고고학자였으며 시인, 언론인이었고 혁명 후에는 쿠바국립은행의 총재도 지냈다. 뿐인가. 아마추어 사진사였고 베레모에 군복을 입고 골프를 치면서 시거를 즐겼다.

그러나 체 게바라를 혁명가로 만든 현실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았다. 세상을 위해 인술을 펴겠다는 꿈을 품었던 햇병아리 의사의 가슴에 '변혁'의 열망을 심은 것은 칠레 추키카마타 구리광산의 모습이었다. 미국인 광산소장이 하루 수백만달러의 수익을 거둬가던 광산의 거대한 노동자용 공동묘지. '얼마나 묻혔나요?' '대략 1만명' '미망인들과 자식들은 어떤 보상을 받았나요?' '…'

그러나 혁명가로서의 그는 고독했다. 사회주의 국가의 맹주였던 소련을 향해 '어떤 점에서는 사회주의 국가들도 제국주의적 착취에 일조를 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사회주의는 성숙되지 않았다. 그 안에는 많은 오류가 담겨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할 수만 있다면 혁명의 성과를 즐기는 기득권층이 됐겠지만 그는 다시 군화를 신고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총살당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네 자녀에게 남긴 편지는 이랬다. '이 세계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행해질 모든 불의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웠으면 좋겠구나. 너희 자신에 대해 가장 깊이. 그것이 혁명가가 가져야할 가장 아름다운 자질이란다.' 668쪽 1만2000원.

책의 향기 정은령기자 / 동아일보 / 2000.3.18



그들은 떠났지만 꿈과 이상은 남았다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 서민 가정 출신의 의학도.대학 시절 친구 알베르토와 함께 남미 추키카마타 광산 등을 여행하며 제국주의와 부르주아 계급에게 수탈당하고 있는 인디오,메스티조 등의 삶을 목격한 그는 꿈꿔왔던 슈바이처의 길 대신 게릴라 투쟁을 선택한다.55년 7월 멕시코에서 피델 카스트로와의 운명적인 만남.미국의 압제에 신음하는 남미 대륙을 구해내기 위해 카스트로와 머리를 맞댄 그는 산타클라라 전투의 승리로 59년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입성한다.혁명의 성공은 게바라의 검은 베레모와 군복을 남미 혁명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이후 게바라는 권력의 자리를 미련없이 버리고 남미 혁명의 소용돌이에 뛰어든다.65년 내전 중인 콩고를 거쳐 볼리비아로 건너간 그는 게릴자전을 감행하다 총에 맞아 생포된다.볼리비아 군부는 체가 총상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한다.하지만 게바라가 67년 10월 볼리비아의 한 학교에서 사살됐다는게 저자의 주장.

'무릎 꿇고 살기보다는 서서 죽는다'고 했던 전사 게바라의 최후였다.일간 '파리지앵'의 기자로 81년부터 게바라에 관한 자료를 수집해온 장 코르니가 쓰고 김미선이 번역했다.

문화 이영미기자 / 국민일보 / 2000.3.20



가난과 억압에 대항한 '혁명가'

체 게바라 평전'(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실천문학사)은 게바라에 관한 자료를 집대성해 프랑스에 출간되자마자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켰고 세계 각국에서 번역 출간돼 큰 반향을 일으켰던 책이다. 전기작가 코르미에는 이 책에서 게바라의 아버지를 비롯해 그가 생전에 관계했던 모든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생생한 모습을 전하고 있으며 그가 남긴 편지글이나 잡문들을 대부분 함께 수록했다.

1928년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의 한 중류가정에서 태어난 게바라는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의학을 공부한 엘리트였다. 그러나 그는 두번에 걸친 남미여행을 통해 가난한 민중들의 삶을 목도한 뒤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혁명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보다 이 세계의 모순을 먼저 치료하는 것이 더 본질적이라는 자각을 하게 됐다. 멕시코에서 카스트로 형제와 만난 뒤 그는 구체적인 쿠바혁명에 돌입한다.

산악지역을 중심으로 게릴라 활동을 벌이며 혁명군을 모아 1958년 산타클라라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카스트로와 게바라는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입성한다. 그 뒤 게바라는 쿠바 정부에서 요직을 역임했지만 쿠바 2인자의 자리를 버리고 새로운 혁명을 위해 자신을 또다른 사지를 향해 스스로 몰아갔다. 결국 게바라는 볼비아에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도움을 받은 정부군에 의해 체포돼 처형당하고 말았다. 당시 그의 나이 39세였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그를 '우리 세기에서 가장 성숙한 인간'이라 칭했고, 사람들은 그가 '시대정신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한 인간' 혹은 '이상을 꿈꾸는 인간의 대표'로 추앙했다.

출판 조용호기자 / 세계일보 / 2000.3.22


잃어버린 '영웅' 향수속 시대건너 돌아온 '반항아'

저항과 혁명의 상징. 59년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혁명을 성공시킨 인물. 67년 서른 아홉의 나이로 볼리비아에서 처형당하기 까지 평생 모반을 꿈꾸며 살았던 반항아….

‘체 게바라 평전’(실천문학사ㆍ장 코르미에 지음)이 소리소문없이 팔려나가고 있습니다. 교보문고 비소설부문 베스트셀러 1위를 몇 주째 지키고 있고, 대형서점이나 대학가 서점에 붙어있는 그의 브로마이드는 몰래 뜯어가는 학생들 때문에 수난이라는군요.

평전은 3000부가 고작인 우리 출판 현실에서, ‘친구(Che)’는 한 달만에 2만부를 넘겼답니다. 홍대앞에는 ‘체’의 이름을 딴 카페까지 성업중이라고 하니, 게바라가 인기는 인기인 모양입니다.

희한한 일이죠. 이념이 패퇴한 시대. 혁명에는 더이상 관심 없는 2000년 5월의 한국 사회에서 웬 체 게바라입니까.

출판사도 당혹해 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실천문학사 김영현 사장은 “나도 이 책이 인기인 이유를 알고 싶다”고 되묻습니다. 386세대를 타깃으로 했던 이 책은 예상외로 대학가에서 불이 붙었고, 출판사에서 한정 제작했던 수천장의 티셔츠와 뺏지는 이미 동났다는군요.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우선 ‘영웅에의 동경’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영웅이 없는 시대. 거대담론, 거대 서사가 물건너 가고 군내나는 일상만이 남아있는 지금, 그 공허함을 채워줄 수 있는 영웅의 현현을 바라는 욕망.

허울 좋은 ‘해체’와 ‘다원화’는 청춘들에게 ‘방향없는 자유’만을 양산하고 있는 가운데, 게바라는 그래도 ‘꿈’을 제시하는 인물이었다는 거죠.

또 하나는 그가 단순히 ‘이미지 영웅’을 넘어 삶의 성실성을 담보한 인물이었다는 겁니다. 요구하기보다는 먼저 헌신했던 그의 열정. 쿠바 혁명이 완성되는 순간, 모든 권력과 시민권을 반납하고 다시 불꽃같은 삶을 찾아나선 게바라에게서 그들은 진정한 영웅의 냄새를 맡았겠죠.

이번 평전이 가지는 매력도 짚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 전에 게바라 책이 안나온게 아니거든요. 프랑스의 기자였던 코르미에는 10년동안 쿠바를 헤집고 다니며 게바라의 부모, 형제, 친구등을 만난 뒤 97년 이 전기를 완성했다고 합니다. 프랑스 출판계도 “이제 와서 무슨 게바라냐”고 걱정했지만, 역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죠.

하지만, 하지만, 게바라가 단순히 또 하나의 ‘제임스 딘’이 되어 버리는 건 아닌지 우려가남습니다. 과연 끝까지 읽고 그를 좋아하는 걸까. 그가 가진 치열한 삶의 정신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반항아의 이미지만 좋아하는 건 아닐까.

한양대 임지현 교수는 “그의 문제의식은 허공에 뜬 채 그의 코스튬만 번쩍이는 건 정말 싫다”고 우려합디다. 게바라의 브로마이드를 뜯어갔던 당신. 한 번쯤 자문해 보세요. 당신도 설마 그 이미지만 좋아하는 건 아니겠죠?

어수웅기자 / 조선일보 / 2000.5.3


체 게바라 통해 세대차를 읽는다

아직도 혁명의 시대인가. 젊은이들 사이에 '때 아닌' 체 게바라가 인기다.

실천문학사의 역사인물찾기 시리즈 '체 게바라 평전' (장 코르미에 지음)이 출간 2개월 만에 2만5천 권이 팔렸다. 책이 나오자마자 서울 대형서점 인문 베스트 셀러 1위에 오른 이후 지금도 베스트 셀러 종합 10위 권에 머물고 있다.

특히 이 책이 폭발적으로 팔리는 곳은 대학가. 실제 20~30대가 독자층의 90%를 차지할 정도로 젊은층의 관심이 압도적이다. 실천문학사측은 "역사 인물이라 관심이 꾸준할 것으로 기대하긴 했지만 이렇게 엄청날 줄은 몰랐다" 고 말했다.

1970년대 게바라 선풍과 요즘의 인기 사이엔 세대의 차이가 있다. 게바라는 28년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의사의 길을 걷다가 수탈당하는 남미인들의 삶을 목격하고 게릴라 투쟁을 선택, 혁명가로 나서 쿠바혁명에 참가했고, 그 후로도 게릴라활동을 벌이다가 볼리비아에서 정부군에 붙잡혀 39세에 처형당했다.

책을 산 젊은이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멋있다' 는 것. 기성세대가 게바라를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혁명가로 혹은 조직에 개의치 않고 정의를 추구하는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로 여겨 흠모했던 것과 달리 요즘 젊은이들은 검은 베레모에 턱수염과 정열적인 눈빛을 가진 모험가로 매력을 느낀다.

최근 책을 산 송정복(고려대 물리학과 3년)씨는 "학교 앞 서점에서 벽에 걸린 게바라의 브로마이드를 보고 마음이 끌렸다. 첫인상이 멋있었다. 책을 읽고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 더욱 감탄했다" 고 말했다.

젊은 세대의 심리에 초점을 맞춘 출판사의 마케팅 전략도 한 몫 하고 있다. 게바라의 대형 브로마이드(3만 장)와 게바라 T셔츠(1천장).

배지(1만 개)를 만들어 대학가에 뿌렸다. 게바라 평전이 가장 많이 팔린 서점으로 꼽히는 서울대 부근의 '그날이오면' 은 "브로마이드를 사면 책은 무료로 준다" 는 문구를 서점 앞에 내걸기까지 했다.

이 서점 주변에 있는 코팅가게가 브로마이드를 코팅하려는 학생들로 '특수' 를 누렸다는 사실은 젊은 세대들의 관심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강내희(50.영문학)중앙대 교수는 "게바라는 우리 세대의 진보적인 사람들에게는 전설적 영웅이었다. 한마디로 놀랍고 경이로운 사람으로 받아들여진다. 타협이란 걸 몰랐고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에 목숨을 바친 사람으로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고 말한다.

그는 "젊은 세대들이 게바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긍정적인 일" 이라고 말하고, 단순히 멋있다는 차원에서 머물지 말고 그의 진지함을 배우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했다.

신용호기자 / 중앙일보 / 2000.5.24



혁명가 체 게바라는 에너지가 꿈틀대는 '진보' '자유'의 표상


혁명가 체 게바라. 검은 베레모에 아무렇게나 기른 머리칼, 덥수룩한 수염, 열정적이면서도 순수한 눈빛, 굳게다문 입술로 대표되 는 체 게바라. 그가 2000년을 맞는 한국에서 부활하고 있다.

지난 3월 `체 게바라 평전'(실천문학사 펴냄·김미선 옮김)이 처음 나 올 때 만해도 아무도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책이 나오고 예상은 빗나갔다.

순식간에 베스트셀러에 올랐 고 두달만에 7쇄를 찍은 것이다. 그렇다면 왜 다시 체 게바라일까. 체 게바라는 진보의 열망을 품었 던 많은 사람들은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조차 각인되어 있는 하나의 캐릭터다.

세계 어느 나라든 뒷골목 풍물시장에 가면 체 게바라의 얼굴을 새긴 티셔츠를 판다. 또 그의 얼굴이 들어있는 시계나 맥주까지 나와있다. 유럽이든 일본이든 미국이든 마찬가지다.

게바라는 하나의 꿈이면서 20세기를 대표하는 캐릭터다. 평전이나 자 서전이 안 팔리기로 유명한 한국 서점가에서 체 게바라가 잘 팔린 것 도 캐릭터의 위력 때문이다.

책이 처음 나오고 출판사측이 각 대학 구 내에 체 게바라 홍보 포스터를 붙였을때 누군가가 모두 떼어가는 일이 벌어졌다. 학생들이 집에 붙여 놓기 위해서 가져간 것이다.

테크노와 인터넷으 로 대표되는 신세대 대학생들에게도 게바라는 캐릭터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게바라에게는 에너지가 있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멋진 이름, 우수에 찬 사진 한장에 고스란히 담겨서 세상속에서 부활하고 있다.

게바라는 꿈의 화신이다.

아르헨티나의 유복한 집에서 태어나 의사라 는 안락한 앞길을 버리고 혁명의 길을 나선 꿈의 인간, 혁명이 성공하 면 다시 다른 곳의 혁명을 위해 떠났던 비장함. 그리고 죽음. 체 게바라는 혁명이 성공한 쿠바에서 국립은행 총재를 지내던 시절에 도 사탕수수밭에서 노동을 했다.

이런 게바라를 보고 사르트르는 `우리 세기에서 가장 성숙한 인간'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그 모든 것들이 모여 체 게바라라는 캐릭터를 만들었고 21세기를 사 는 우리들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고 흉내낼수 없는 한 인간의 캐릭터 에 열광하는 것이다.

체 게바라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을 지켜보며 "우리의 가슴속 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고 외치던 그의 말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허연(기자)의 북카페 / 매일경제신문 / 2000.6.3


양서를 읽게 만든 마케팅의 승리

좋은 책을 펴내고 싶지 않은 출판기획자가 어디 있으랴. 하지만 "좋은 책이겠지. 그렇지만 난 흥미없는걸"이 독자의 반응이라면 그 기획자는 책에게 죄를 짓는 셈이다.

사회주의 혁명을 하겠다고 밀림으로 들어간 게릴라 지도자의 이야기가 2000년대 우리 독자에게 무슨 울림을 줄까? 하지만 결과는 한달 만에 2만부를 넘기는 베스트셀러였다. 인기의 원인은 그의 철학과 삶이 아니라 멋진 이미지였다. `검은 베레모에 턱수염이 더부룩한, 열정적이면서도 우수 어린 분위기의 모험가' 이미지 말이다. 포스터와 티셔츠, 배지 등을 이용한 출판사의 마케팅이 이를 부추겼다. 장한 일이다. 양서를 읽게 하지 않았는가.

1995년 프랑스 출판계도 "이제 와서 무슨 게바라냐"는 반응을 보였지만 결과는 베스트셀러였다고 한다. 프랑스에는 독자의 감식안이 있었다면 한국에는 독자의 취향을 알아보는 출판사의 마케팅 능력이 있다고 할까. 양쪽 다 부럽다.


탐나는 책/김혜숙(출판사 참솔 대표) / 한겨레신문 / 2002.4.27



독자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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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일 :

2004-09-30 오후 3:36:04

 

언제고 책방에서 왠지 모를 강한 인상으로 유심히 살폈던 책(예수나 락가수를 연상하게 하는 책표지의 그 얼굴 때문이었지만).
같이 자취방에서 뒹굴던 친구가 어느 날부턴가 술에 취할 때마다 '게바라, 게바라, 체 게바라'라 중얼거리며 나에게 읽기를 강조했던 바로 그 책.
쿠바 혁명 어쩌고저쩌고... 그땐 단순히 한 혁명가의 일대기를 적은 글이라는 짐작은 했었다. 읽으면 뭔가 '찐~한'것이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은 있었지만 그 두께와 '혁명'이라는 말에서 전해지는 무게감으로 읽기를 미뤄왔던 책.
80년대 같았으면 '공산당'이라는 말과 함께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되었을 시뻘건 책.
그 책을 읽는다. 체 게바라를 만난다.

책을 통해 느껴지는 체의 모습이란(그의 인생역정과는 별개로) 성인의 모습과도 같은 순수한 모습으로 아름답게 느껴진다.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보여지는 인간애와 함께 어떠한 사심이나 보상을 바라지 않는 자연스러운 행동들이 '봉사'라는 말로 포장되는 그 어떤 '가식'들 보다 진지하게 다가온다.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드는 그의 매력...

체는 삶과 죽음이 언제, 어떻게 교차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항상 책을 곁에 두고 있었다. '군바리' 차원을 넘어 '혁명가'라는 이름으로 불려질 수 있었던 것도, '사상'이라는 허울에 놀아나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으로 '이념'을 만들어나갈 수 있었던 것도, 어찌 보면 이런 모습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혁명의 성공을 통해 보장된 평탄한 삶을 버리고 다시 투쟁이라는 불길 속으로 뛰어든 체. 언제 일어나고, 언제 물러나야 할지를 알고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는 그 용기와 자신감이 인상깊다.

그러나... 체의 숭고한 정신 앞에 떠오르는 나의 불순한 생각들...
혁명과 전쟁, 게릴라 전투. 민중을 위하고, 혁명을 위해서라곤 하지만 서로서로 총을 겨누고 목숨을 '날려버리는' 모습들(이 책에선 그리 상세히 표현되지는 않지만)이 섬뜩한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세상, 책, 체...

또한, 투쟁, 독재와 혁명, 게릴라, 마르크스와 사회주의 등 이런 '좌익류(?)'을 만날 때의 느낌이란... 항상 사회를 너무 극단적인 '투쟁의 장'으로만 본다는 것... 돈이란 언제나 인간을 구속하고, 노예화시키기 위한 자본가들의 도구이며, 썩어문드러진 정치인은 오로지 자신의 사리사욕만을 채우는 이익집단.
물론 이해할 수 있고, 납득도 가지만... 현실을 무시한 이상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그 이상만큼만 된다면야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여기는 신의 세상이 아니고 '사랑과 섹스'가 혼재하는 인간의 세상, 이런 '인간적 모순'을 인정하지 않은 채 극단적 이상향만 추고하는 건 아닐까하는 우려...
어쩌면 이념에 의한 이상향의 건설이 아닌 인간의 모순과 양면성을 인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나씩 바꾸어나갈 수 있는 '노력', 그 노력하는 과정이 '이상향'은 아닐까...

책표지(붉은색의 양장본)처럼 뜨겁게 타오르는 책이다.
나 개인적으로 전쟁에 관련된, 어떤 영웅적(?)인 행위건 간에 그리 달갑게 느껴지는 건 아니지만 그런 전쟁이나 무장투쟁 등의 섬짓한 말을 저쳐두고라도 한 인간이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모든 정렬을 기울이는 모습은 정말이지 시대가 변하여도 변치 않는 불멸의 아름다움이리라.
읽으면 읽을수록 체의 그 인상깊은 사진(표지사진), 약간은 공허한 듯 먼 하늘을 응시하고 있는 바로 그 사진이 '자유와 용기'라는 이름으로 머리 속에 음각되어 남는다.

(www.freeis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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