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교양선/일반

문학들 (2004)

실천문학 2013. 8. 2. 10:33

 

 

 

 

 

   

 

 


199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의 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한 이래, 개별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와 활발한 현장 비평으로 주목받아온 평론가 박수연이 첫 평론집을 출간하였다. 제목 '문학들'이 암시하는 바, 박수연은 이 책에서 '문학'이 스스로 '복수성'을 가지고 있다는 데 주목하고 그 본질을 파헤치고 있다.


문학이 복수적이라는 것은, 즉 '문학'이 처음부터 '문학들'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각각의 문학들이 서로 접속하고 충돌함으로써 끊임없이 자신들의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어떠한 문학이든 간에 현실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문학이 '복수성'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밝힌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저자는, 그동안 문학이 서로간의 '차이를 실현하는 종합'을 이루지 못하고 상품화된 채 단절되어버린 현실을 지적하며, 또한 1980년대 이후 빠르게 유포된 '문학은 비정치적이다'라는 믿음의 허구, 스스로 현실에 대한 작용과 기능을 포기하면서 상품의 욕망으로서 기능하게 된 문학, 오로지 텍스트 내부에서 문학의 의미를 찾는 것의 허구성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다.

더 나아가, 저자는 문학들이 언제나 다른 삶으로 '되어가는' 언어의 배치물인 이상 문학은 정치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여기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정치란, 우리가 '정치'라는 말을 들었을 때 흔히 상상하는 대의제 다수파의 권력이나 그 다수파의 최대조직인 국가 기구의 정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정치'란 개개인의 자율적 주체들의 역능(力能, potentia)에 의해서 재구성하는 현실 속에서의 '삶의 또 다른 배치방식'을 의미하는데, 문학이 문학'들'이 '되면서' 새로운 삶을 만들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변혁시키는 한 정치적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어떤 절대적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는 실체처럼 문학이 스스로 실체의 속성을 실현해가는 과정을 탐색하면서,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진지하게 탐색한다.


제1부는 이 책의 총론 격인 글들로 구성되었다. 「내재성과 타자」에서는 오늘날 상품으로서 사물화되는 시의 위기 속에서 시가 새 삶을 위한 진리 연관 방식으로 살아남기 위한 방식을 모색하며, 강제적 통합의 상이 아닌, 총체적인 것이 깨진 현실의 존재들을 작고 누추하게 그려냄으로써 이상과 역사의 긴장과 대립을 그려낼 것을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시적 주체에 대해」는 내부와 외부, 타자와 주체의 대립·공존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시적 주체, 시 언어의 의미화를 고찰한 글이다. 「문학‘들’의 정치」는 앞서 언술한,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의 핵심이 담긴 글이며, 「현실에 대해서, 현실을 넘어서」는 각 지역 작가회의의 기관지에 실린 시들을 비교 고찰함으로써 한국 시문학이 현존하는 지형을 탐색한 글이다. 「기억의 서사학」에서는 특히 방현석의 작품 「존재의 형식」을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기억의 반복적 수렴이 독자에게 열어보이는 역사적 삶의 가능성을 비평하고 그 한계를 지적한다.

이 외에 시적 이성의 힘을 보여준 이성부·최하림·김해자의 시를 비교 분석한 「시적 이성의 복귀」, 고은·전영주 시에 나타난 죽음의 의미 속에서 현대시에 나타난 죽음의 의미를 분석한 「죽음을 넘어서는 방식」, 「타자 긍정의 리얼리즘 시학」 등이 1부를 이룬다.


제2부는 개별 작품론·작가론 들로 구성되었다. 한 편의 작품, 한 작가의 문학세계를 고찰하면서 고유의 작품이 지닌 문학적 특질을 특유의 단정하고 깊이 있는 해석으로 펼쳐놓는다.

백무산과 박노해의 변모 양상을 추적함으로써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역사적 연속성과 단절을 분류 조망하며, 신현림과 김정환의 시에 나타난 죽음의 변주를 형식과 내용의 측면에서 탐색한 비평적 안목이 탁월하다. 이 외에도 이시영, 도종환, 박영근, 이종수, 강은교, 채호기, 연왕모, 함민복, 박남철, 함성호 등의 시세계를 개별적인 작품들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통해 펼쳐 보이고 있다.

“비평은 작품의 결에 이루 셀 수 없이 여러 갈래로 놓여 있는 목소리‘들’을 찾아 그것들이 원래 가지고 있었을 힘을 부여해주는 작업”(「책 머리에」)이라는 작가의 말을 깊이 되새기게 하는 글들이다.

박수연

문학평론가. 1962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으며 충남대학교에서 수학했다. 199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평론 「역사 속의 단절, 단절 속의 역사」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이 책 『문학들』은 첫번째 평론집이며, 공저로 『라깡과 문학』, 『친일문학의 내적 논리』 등이 있다. 현재 원광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친일문학을 연구하고 있으며, 『작가』, 『문학마당』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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