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의 문학/소설

그대 아직 살아있다면 (2002)

실천문학 2013. 8. 5. 14:53

 

 

 

 

 

 

          

 

 

 

 


미국의 오만에 맞서 싸운 베트남 전사들의 이야기. 시인 겸 소설가로서, 시나리오 작가 겸 영화감독으로서 자기 세계를 펼치고 있는 베트남의 대표 작가 반레의 장편소설이다. 균형잡힌 시각과 깊은 성찰로 전쟁이 파괴할 수 없는 인간의 존귀함을 감동적으로 펼쳐냈다. 구엔반봉의 『사이공의 흰 옷』, 바오닌의 『전쟁의 슬픔』을 뛰어넘는 전쟁문학의 진수로 평가받고 있다.


세계의 '무법자' 미국의 오만한 패권주의 행패에 전 세계가 휘둘리는 이즈음, 바로 그 미국과 맞서 싸웠던 베트남의 작가 반레의 장편소설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이 출간되었다. (1994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제3국의 언어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우리말로 초역(初譯)된 것이라는 점에서도 출간의 의미가 깊다.)
베트남 작가의 소설로서 이미 국내에 소개되었던 구엔반봉의 [사이공의 흰 옷], 바오닌의 [전쟁의 슬픔] 등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 역시 베트남전쟁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이승과 황천을 오가며 전개하는 색다른 이야기 구조로써 여타의 전쟁소설과는 또다른 묘미를 보여준다. 또한 비애에 감싸인 채 전투 장면 등의 단순한 묘사로써 전쟁의 참상과 그로 인한 인간의 황폐한 모습만을 보여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무기도 인간을 능가할 수 없고 어떠한 이념도 인간에 우선하지 못하다는 진리를 일깨우며 전쟁도 파괴시키지 못한 베트남 민족의 숭고한 정신을 되살린다. 여기에서 우리는 수난의 역사 속에서도 외세에 꺾이지 않고 베트남을 지탱해 온 신비를 일면 엿볼 수 있다.

이승과 황천을 오가며
"항불 전쟁 이후 마을 사람들이 난리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미국과의 전쟁이라니……. 이 전쟁은 평화롭고 조용한 우리 마을을 고통스럽게 만들 게야. (……) 전쟁은 자애가 없지. 전쟁은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괴물과 같은 것이니까. 그것은 세상, 인류 전부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지……."

반레의 작품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이 소설 역시 작가의 실전(實戰) 체험과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 응웬꾸앙빈은 고향 친구 호앙을 모델로 한 것이다. 그는 소설과 마찬가지로 집안의 종손이자 독자로서 대를 이어야 할 처지였음에도 반레와 함께 자원 입대하였고, 후방 배속 결정을 내린 국가의 배려를 고사하고 자원해서 전방에 나갔다가 전사한다.)
소설은 응웬꾸앙빈 상사가 황천 가는 나루터에 당도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는 저승 노잣돈이 없어 강을 건널 수 없다. 황천강 나루꾼 천년기 노인은 그에게 인간세계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을 기억해 내면 환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이승과 황천을 오가며, 격정을 분출하는 대신 시종일관 냉정함을 잃지 않은 채 환상적인 분위기를 이끌면서 펼쳐진다. 그 안에는 전쟁으로 파괴된 고통스런 삶이 있고 상처받은 젊은 영혼들이 떠도는가 하면 목숨을 함께 나눈 끈끈한 동포애가 넘쳐흐르고, 이따금 애틋한 사랑도 곁들여 있다.
그리고, 유일한 혈육인 손자를 전선으로 떠나보내는 할아버지와 홀로 남은 할아버지의 집에 들어가 대를 이어주려는(이것은 빈이 고향을 떠나기 전 그의 아이를 가지려는 낌의 행동과 통한다) 득 아주머니, '눈 한번 깜짝하면 사라져버릴 공허한 명예'에 아랑곳하지 않는 판웃 준위, 병들어 죽어가는 아내의 눈을 제 손으로 감겨주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소대장 따꾸앙론, 협동농장 출신으로 으스대기 좋아하며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부소대장 부이반꼼(하지만 결정적인 상황에서 놀라운 헌신성을 발휘하여 부대원들을 구출해 내는 또 다른 일면을 보여준다), 부대 '영양보충' 뒤에 남은 음식을 싸들고 민가를 찾아가는 부분대장 부이쑤언팝, 자신의 아이를 가진 여성전사 꾸에지를 배신하고 약물을 주사하여 살해하는 의사 바오, 그리고 응웬꾸앙빈이 만났던 여인들―이승에서의 첫사랑 낌, 전장에서 만난 낌칸, 황천에서 사랑을 나누는 꾸에지…… 이 다양한 인물들의 눈과 입을 통해 전쟁과 삶과 세계를 바라보는 작가의 태도가 스며들어 있다.
작가 반레는 전쟁을 증오한다. 그는 전쟁에서 모든 것을 잃었다. 그리고 고민의 여지가 없이 "만약 전쟁이 다시 일어난다면 우리는 순결하게 우리의 영혼과 목숨을 기꺼이 바칠 것"이라며, 황천강 나루꾼 천년기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의 사회는 복잡하고, 이기적이고, 질투가 넘쳐 있어. 큰 나라들은 언제나 국제사회의 헌병을 자처하고 나서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들에 비극의 그림자를 드리우지. 그들은 다른 나라, 다른 민족들을 끌어들여 서로를 파멸시키는 일에 몸을 던지도록 만들고 있어. 그게 바로 전쟁이야. 전쟁은 인류를 가장 비인간적으로 세상을 떠돌게 하는 것이지. 그것은 도살자를 영웅으로 만들고, 사기꾼을 위대한 인물로, 지식인을 쓸모 없는 사람으로 만든다네. 또한 모든 기반을 뒤엎고, 모든 진보를 뒤로 물러나게 밀어붙이지. 더욱 나쁜 것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성과물을 완전히 깔아뭉개고, 다른 사람의 문화 유산을 파괴하는 일에 만족을 느낀다는 사실이야. 그러므로 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저항이 있어야 해. 어느 민족이든 다른 이의 지배의 굴레로부터 저항할 의지를 갖추지 못한다면, 그런 민족은 영원히 노예로 사는 것이 마땅해."

죽은 반레의 이름을 빌려 살아 있는 반레가 증언한다
시인 겸 소설가로서, 시나리오 작가 겸 영화감독으로서 탁월한 자기 세계를 펼치고 있는 반레는 베트남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그의 명성과 작품은 이미 해외로도 알려져 베트남의 대표 작가 자격으로 미국작가협회의 초청을 받기도 했으며, 일본 NHK 방송에서 그의 영화가 방영되기도 했다. 특히, 2001년 6월에는 우리나라 민족문학작가회의의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 소속 작가들이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그의 시가 '문화 교류의 밤'에 낭송되어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1949년 북부 베트남의 아름다운 고장 닌빈 성의 자탄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1966년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17세의 나이로 자원 입대하여 베트남이 통일을 이룬 1975년까지 10년 동안 미국에 대항해 싸웠다. 전쟁이 끝났을 때 그와 함께 입대했던 3백 명의 부대원 중 살아남은 사람은 오직 5명뿐이었다.
그 5명 중의 하나인, 이 소설을 쓴 작가의 본명은 '반레'가 아니다.(그의 본명은 '레 지 투이'이다.)
'반레'는 베트남전쟁 중 전선에서 죽어간 친구의 이름이다. 그 친구 '반레'는 총탄이 빗발치는 전선에서도 틈만 나면 시집을 읽고 시를 쓰던 시인 지망생이었다. 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976년 [문예주간]지 시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문단에 데뷔한 작가는 이 시를 시인이 되기를 바랐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전선에서 죽어간 친구 '반레'의 이름으로 발표했다. 그리고 이후 출간된 20여 권의 작품집이 모두 '반레'의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왔다.
그의 시와 소설의 주제는 오로지 '전쟁'이며, 그가 만드는 영화도 오로지 '전쟁 다큐멘터리'이다. "나는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은 내 친구들 이야기를 하고 가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그의 모든 시와 소설, 영화는 살아남은 5명을 대신해서 죽은 2백95명의 동료들을 기억하는 데 바쳐졌으며, 이 소설 역시 그 2백95명 중의 하나인 고향 친구 호앙에게 바쳐진 것이다. 그는 "내 목숨은 이미 전장에서 죽은 목숨이며, 지금의 삶은 단지 '덤'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죽은 '반레'의 이름을 빌려 살아 있는 반레는 '내가 왜 살아남았을까'라는 반문 속에서 '덤'의 삶을 마치는 순간까지 시를 쓰고 영화를 찍으며, 전쟁으로 파괴된 자신의 세대와 전장에서 죽어간 벗들의 삶을 처연하면서도 냉정한 목소리로 증언한다.

지은이 반레
베트남의 시인, 소설가, 영화감독. 1949년 베트남 북부 닌빈성의 자탄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레지투이'이다. 1966년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17세의 나이로 자원 입대한 후 베트남이 통일을 이룬 1975년까지 미국에 대항해 싸웠다.
1976년 『문예주간』 시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1996년 영화 <조용한 영광>으로 베트남영화제 최우수시나리오상, 2000년 다큐멘터리 <원혼의 유언>으로 최우수감독상을 수상하였다. '반레'라는 필명은 시인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시인이 되어보기도 전에 베트남전쟁에서 전사한 친구의 이름이다.

옮긴이 하재홍
1968년 출생으로 경원대 국문학과를 졸업하였으며, 현재 호치민 인문사회과학대 베트남문학과 석사과정 중에 있다.

 

미국을 이긴 베트남인의 동포애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어린 여중생 둘을 추모하며 도심에 모여든 군중은 눈물을 글썽이며 촛불을 켜 저항의 바다를 이룬다. 이같은 우리 문제에 진지하게 응답하는 한 권의 소설이 번역, 출간돼 눈길을 사로잡는다.

베트남의 시인·소설가이자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인 반레의 장편소설 『그대 아직 살아있다면』(실천문학사, 하재홍 옮김)이 그것. 야만스러운 살육으로 문명에의 신뢰를 뭉개버린 미국에 맞서 싸운 한 베트남 전사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베트남은 지상에서 유일하게 미국을 이겼고, 그래서 미국을 이기는 방법을 말할 수 있는 나라. 그러나 작가는 할리우드의 '국책영화'가 그랬듯 전쟁을 '놀이화'해 독자의 말초적 관심을 유발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이 작품이 진지하다는 평가를 듣는 까닭이다.

실제로 반레는 '반미 전사'였다. 북부 베트남의 닌빈에서 태어난 그는 고교를 졸업한 1966년 열일곱살 나이로 자원입대, 호치민 루트를 통해 남부전선에 투입됐다. 베트남이 통일된 1975년까지 그는 10여년간 전장을 누볐다. 책에는 이런 쓰라린 전쟁체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자의 친구이자 입대 동기로서 전사한 호앙을 모델로 삼은 응웬꾸앙빈을 주인공으로 해 인간에게 전쟁이 무엇이며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를 팬태스틱하고 리얼하게 설명한다.

『그대 아직…』이 문학적 기교의 유혹을 극복한 역사적 기록으로 손색이 없다고 평가받는 까닭은 끝까지 냉정하고 균형잡힌 시각을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과의 전쟁에서 이긴 베트남인들의 저력과, 생사를 넘나드는 한계상황, 그리고 전쟁 그 자체를 과대포장하거나 왜곡하지 않는다.

책의 발문을 쓴 소설가 방현석은 "미국이 베트남에서 패배한 것은 정글이나 땅굴 때문이 아니었다. 베트남 사람들이 옳았기 때문이다. 미군의 100분의1에도 못미치는 무기였지만 베트남 사람들이 미국인보다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미국인이 미덕으로 내세우는 전우애보다 베트남인들의 동포애가 더 뜨거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작품을 통해 반레는 말한다. "큰 나라들은 언제나 제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에 비극의 그림자를 드리우지. 그들은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을 끌어들여 서로를 파멸시키는 일에 몸을 던지도록 만들고 있어. 그게 바로 전쟁이야.".
___대한매일 심재억 기자 (2003년 1월 10일 금요일)


베트남 작가의 베트남 전쟁

실전 체험과 실화를 바탕으로 한 베트남 작가의 장편소설로 미국의 오만에 맞서 싸운 전사의 이야기다.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하지만 이승과 황천을 오가며 전개하는 색다른 구조다.
전쟁의 참상과 그로 인한 인간의 황폐한 모습만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떠한 무기도 인간을 능가할 수 없고 어떤 이념도 인간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진리를 일깨워주며 전쟁도 파괴하지 못한 베트남 민족의 숭고한 정신을 되살린다. 역사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베트남을 지탱해온 의지를 엿볼 수 있다.
___스포츠서울 주말책방 (2003년 1월 4일 토요일)


베트남人이 돌아본 베트남戰

"전쟁은 자애가 없지. 전쟁은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괴물과 같은 것이니까. 그것은 세상, 인류 전부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지…." 베트남 작가 반레(54)의 소설『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은 베트남전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소설은 베트남전에서 사망한 응웬쿠앙빈이 저승길에 오르는 데서 출발한다.

황천가는 나루터에 당도했으나 노잣돈이 없어 건널 수가 없는데 옛날의 기억을 빈틈없이 되살리면 건네주겠다는 소리를 듣는다. 이때부터 그의 베트남전 회상이 시작된다. 반레의 이 소설은 저승과 이승을 오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에 참전 상황만을 길게 묘사하는 여타의 베트남 소설과 차별화를 이루고 있다. 무엇보다 좀 더 차분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취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베트남 사람들 내에도 여전히 기회주의자와 허약한 사람이 많았으며 병들어 죽어가는 아내의 눈을 제 손으로 감겨 주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사람의 처절한 낭만성까지 여러 가지 인간의 유형이 그려지고 있다.
___중앙일보 행복한 책읽기 (2003년 1월 4일 토요일)


"인간본성을 앗아가는…" 살아남은 자의 反戰외침

"마을 사람들이 난리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미국과의 전쟁이라니….
이 전쟁은 평화롭고 조용한 우리 마을을 고통스럽게 만들 게야. 전쟁은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괴물과 같은 것이니까. 그것은 세상, 인류 전부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지…."

베트남 청년 레지투이는 1966년 고교를 마치고 곧바로 자원 입대했다. 그는 10년 동안 미국에 맞서 싸웠다. 전쟁이 끝났을 때 함께 입대했던 부대원 300명 중 살아남은 사람은 5명이었다. "내 목숨은 이미 전쟁터에서 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깨달은 청년은 남은 삶을 전쟁을 고발하는 데 바치기로 결심했다. 시인으로 등단해 소설을 쓰고 영화를 만들었다. 주제는 오로지 '전쟁'이었다. 그는 이 모든 일을 전장에서 죽은 친구 '반레'의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베트남 작가 반레(본명 레지투이, 54)의 장편『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실천문학사 발행)은 작가의 삶 체험을 헤아릴 때 의미가 더해지는 소설이다. 마침 미군 궤도차량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으로 한, 미관계를 새롭게 짚으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때다. '그대…'는 작가의 실전(實戰)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미국의 시선이 아닌 베트남 군인의 입으로 전달되는 전쟁의 실상은 지금껏 알아온 것과 같지 않다.

전사한 응웬꾸앙빈이 황천으로 가는 나루터에 도착했다. 노잣돈이 없어 강을 건널 수 없었다. "인간 세계에서 일어났던 일을 모두 기억해내면 환생할 수 있다"고 나루꾼 노인이 말해준다. 그때부터 한 순간도 자비롭지 않았던 전쟁 이야기가 이승과 저승의 문턱을 오가면서 펼쳐진다. 그때 베트남에는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 손자를 전쟁터로 보내야 하는 할아버지, 자신의 아이를 가진 여자를 죽여버리는 남자, 남은 음식을 모아 민가에 갖다 주려는 군인을 혹독하게 비판하는 상사가 있었다. 포화 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간으로서의 본성을 잃고 황폐해진다. 전쟁은 어느 쪽에서 총을 겨누어도 정당화할 수 없는 죄악이었다.

전쟁이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이 질문을 두고 반레는 소설 속에서 답한다. 그것은 조국을 친 '적'이 내세운 명분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고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큰 나라들은 언제나 국제사회의 헌병을 자처하고 나서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들에 비극의 그림자를 드리우지. 그들은 다른 나라, 다른 민족들을 끌어들여 서로를 파멸시키는 일에 몸을 던지도록 만들고 있어. 그게 바로 전쟁이야. 그것은 도살자를 영웅으로 만들고, 사기꾼을 위대한 인물로, 지식인을 쓸모없는 사람으로 만든다네."

작가는 "가난하고 힘없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 나의 운명"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문학은 작가가 살아가는 역사와 그 구체적인 환경으로부터 만들어진다고 그는 믿는다.그것은 당연히 살아남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___한국일보 책과세상 김지영 기자 (2003년 1월 4일 토요일)


베트남전 겪은 반레의 소설 '그대…'

베트남 작가 반레(54)의 소설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이 번역돼 나왔다. 하재홍 옮김, 실천문학사 펴냄. 연전에 나왔던 바오닌의 『전쟁의 슬픔』과 마찬가지로 베트남전쟁을 직접 체험한 베트남 작가의 소설이다. 다만 『전쟁의 슬픔』이 영어판을 거친 중역 출간이었던 데 비해, 이번 소설은 베트남어에서 한국어로 직접 옮겼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을 읽는 좋은 방법의 하나는 방현석(42)씨가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발표한 중편 <존재의 형식>을 먼저 읽는 것이다.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는 방씨는 『그대 아직…』한국어판에도 발문을 실었지만, 그 발문보다는 <존재의 형식> 쪽이 반레와 그의 소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 주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존재의 형식>의 반레 이야기 중 상당부분은 방씨가 지난 가을 펴낸 베트남 여행 산문집 『하노이에 별이 뜨다』에 소개된 내용과 겹친다.

<존재의 형식>에서 반레는 그의 본명인 '레지투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여기에서 소개된 대로, '반레'는 시인이 되고 싶어했던 죽은 전우의 이름이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레지투이는 죽은 친구를 대신해서 글을 쓰고 그의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감독이기도 한 그는 오로지 전쟁을 주제로 한 시와 소설, 그리고 다큐멘터리 영화만을 제작하고 있다.

『그대 아직…』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자원 입대한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삼은 소설이다. 그가 참여한 10년간의 전쟁이 끝났을 때, 그와 함께 입대했던 300명의 부대원 중 살아남은 사람은 그 자신을 포함해 단 다섯 명뿐이었다.

현실의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지만, 소설 『그대 아직…』은 주인공 응웬꾸앙빈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소설의 첫 장면에서, 전장의 연인 낌칸을 죽인 미군들에게 미친 듯이 총을 쏘아대던 그는 적군이 쏜 총에 맞아 생을 마감하게 된다. 작가는 마치 '전쟁이란 나에게 압도적인 죽음의 기억이었다'라고 말하려는 듯하다.

그 전쟁은 그 동안의 '베트남전 소설'들이 한국 독자들에게 각인시킨 인상과는 사뭇 다르다. 이 소설이 적반하장 격의 반공주의 소설이나 두루뭉실한 휴머니즘 소설과는 다른, 해방을 염원하는 베트남 인민의 관점에서 그려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반레의 소설이 교조적이거나 맹목적인 것은 아니다. "당 바깥의 공산주의자로 살고 싶다"고 말하는 소설 속의 소대장에게서 보듯, 반레는 일체의 교조와 관료주의에 대해 거부감을 보인다. 소설 속에 묘사된 것은 다만 평화와 독립을 원하는 순결한 청년이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감당하는 전쟁의 진실일 뿐이다. 응웬꾸앙빈과 낌칸이 짧지만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고, 고통과 회한만이 아닌 일말의 기쁨과 행복과 더불어 생을 마치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 깊은 감동을 주는 것은 그들의 순결한 육체와 정신이 바로 베트남전쟁의 본질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___한겨레신문 최재봉 기자 (2003년 1월 6일 월요일)


전쟁문학의 白眉 '그대 아직…' 출간

한국과 베트남 수교 10주년을 맞아 베트남 문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베트남 문학은 1968년 베트남 사회상을 그린 소설『반(半)청춘』이 국내에 처음 소개됐으며, 80년대 후반 학생운동권을 중심으로『사이공의 흰옷3』『불멸의 불꽃으로 살아』같은 베트남 혁명가들의 전기가 번역되어 읽히기도 했다.

이후 오랜 공백을 거쳐 지난 1999년 바오닌의 소설『전쟁의 슬픔』이 국내에 소개된 데 이어 이번에'전쟁문학의 백미'로 평가되는 반레의『그대 아직 살아있다면』(실천문학사)이 번역됨으로써 베트남문학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관심이 기대된다.

올해로 창립 9년째를 맞는'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은 그동안 베트남 문학 이해를 위한 가교(架橋) 역할을 해왔다. 김영현 송기원 최인석 방현석 김남일 등 10여명의 문인들로 구성된 이 모임은 월 1회 모임을 갖고, '한국과 베트남의 바람직한 미래관계를 정립하기 위한'다양한 문화행사와 연구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번에 반레의 소설이 소개된 것도 이 모임이 산파역을 했다.
___조선일보 승인배 기자 (2003년 1월 6일 월요일)


"전쟁은 게걸스런 괴물이라고"

베트남의 시인이자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및 영화감독인 반레의 장편소설. 강을 사이에 두고 이승과 황천을 오가며 전개되는 이 '전쟁 소설'에서 반레는 "평화를 원한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것을 통해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전쟁은 자애가 없지. 전쟁은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괴물과 같은 것이니까. 그것은 세상, 인류 전부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지…."

전쟁을 증오한다는 작가의 시선에 짙은 비애가 가라앉아 있지만, 그것은 허무함을 자아내기보다는 삶과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끄는 손이 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소설에서 반레는, 다양한 등장인물들로 하여금 개인이 마지막까지 감당해야 할 책임은 스스로를 추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각인시킨다. 이것에 의해서만이 공동체가 아름답게 유지된다는 것. 저자의 본명은 '레 지 투이'로, '반레'는 베트남 전쟁에서 전사한 친구의 이름이다.

반레의 모든 작품은 '전쟁'을 한가운데 두고 있다. 그가 만드는 영화도 오직 '전쟁 다큐멘터리'뿐이다. "나는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은 내 친구들 이야기를 하고 가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그의 작품은 떠나간 친구들의 영혼에 바쳐졌을 것이다.
___동아일보 책의향기 조이영 기자 (2003년 1월 4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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