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 만에 새롭게 단장하여 재출간된, 경찰관 출신의 특이한 이력의 작가 김용만의 첫 소설집.

경찰관 출신의 특이한 이력의 작가 김용만의 첫 소설집 『늰 내 각시더』가 10년 만에 새롭게 단장하여 재출간되었다.
작가의 체험에 기초한 작품들 이 소설집에는 압송 중인 살인범의 인간적 호소에 밀려 잠시 풀어준 뒤 약속 장소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는 형사의 이야기를 그린 표제작 「늰 내 각시더」와, 자수를 결심한 것이나 다름없는 무장공비를 자신들이 신고한 것으로 꾸며 포상금을 타먹으려는 두 산골 사나이의 엉뚱한 발상을 그린 「은장도」를 비롯, 작가의 체험이 그대로 배어 있거나 실화에 바탕을 둔 일곱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유머 정신에 바탕을 둔 해학과 풍자 소재에서 1920년대 최서해를 연상시키고 기법에서 1930년대의 김유정에 바짝 다가가는 김용만 소설의 인물들은 한결같이 사회의 계층 면에서 하층인 혹은 속된 말로 출세하지 못한 낮고 궁핍한 자들이다. 김용만 소설의 인물들이 낮고 천한, 가난한 자들이라느 점은 그들이 그 내면 깊숙이 상한 심령의 소유자라는 사실이 더불어 인식될 때 비로소 그 문학적 의미가 새로워지고 또 분명해진다.__김주연(문학평론가)
뒤늦게 문단에 나온 작가는 간단치 않은 인생 역정을 겪으면서 축적된 이야기들을 소설로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마치 숱한 세월을 삼킨 왕거미 한 마리가 투명하고 질긴 실로 뽑아 만든 그물과도 같아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을 지니고 있다. 김용만 소설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핍진한 현실을 유머정신에 바탕을 둔 해학과 풍자의 문체로 그려내는 솜씨가 만만치 않을뿐더러 뛰어난 언어감각을 살린 토속어의 자유로운 구사는 작품에 깊은 맛을 더해주고 있다. 특이하다면, 범법 행위가 이루어지는 작품에는 어김없이 경찰관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것인데, 범죄자의 심리와 그 이면에 깔린 사연들을 담아내는 인간미가 한결 돋보이는 가운데 범죄환경에 대한 탁월한 묘사는 이야기의 완벽성에 기여를 한다.

김용만 1940년 충남 부여 출생으로, 경희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198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이 소설집에 실린 작품 외에 「속도에 관하여」, 「끌려가는 세계」, 「팔라니트」, 「제3의 공간」, 「돈보따리를 들고」, 그리고 초판본에 실렸던 「이상한 졸음기」 등의 단편과 장편소설 『인간의 시간』(전2권), 『이끼와 은장도』 등이 있다. 1992년 박영준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경기도 양평에서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굴곡많은 내 삶이 곧 문학선생님"
지난 1990년대 초 평단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으며 단연 문제작가로 떠오른 '신인 소설가'가 있었다. '신인'이란 이름에 걸맞지 않게 무려 50세의 나이로 등단한 인물이었다. 소설가 김용만(63) 씨가 그 주인공. 89년 '현대문학'에 단편 '은장도'를 발표, 문단에 얼굴을 내민 김씨는 이듬해 '한길문학'에 발표한 단편 '그리고 말씀하시길'이 평단의 극찬을 받는 등 문단에 일대 화젯거리를 제공했다.
내로라하는 작가, 비평가들이 모두 "김용만이 누구냐"며 궁금증을 나타냈다. 그의 이력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전직 경찰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문단은 다시 한번 경악했다. "제대로 문학수업을 받지도 못한 사람이 어떻게 이런 글을…." 김씨의 작품은 신인의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완성도를 갖추고 있었으며, 문체 역시 몇몇 대가들을 연상케 하는 눅진눅진함과 풍자, 그러면서도 뚜렷한 자기 색깔을 갖추고 있었다.
최근 그의 첫 창작집 『늰 내 각시더』(실천문학사)가 11년 만에 복간됐다. 작품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김주연(숙명여대) 교수는"소재에 있어서 20년대의 최서해를 연상시키고 그 기법에 있어서 30년대의 김유정에 바짝 따라간다"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책에 실린 7편의 중·단편 소설은 그같은 찬사가 결코 '헛말'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지난 21일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자택에서 작가를 만났다. 첫 창작집에서 유난히 두드러지는 것이 작가의 자전적 체험인만큼 일단'살아온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다음은 소설보다 더 파란이 많은 그의 삶을 요약한 것.
1940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그는 절에서 불목하니 노릇을 하던 아버지를 둔 외동아들이었다. 부여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진학하긴 했지만 어려운 가정생활을 견디다 못한 그는 14세의 나이에 부산으로 가출했다. 부산역에서 만난 식당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한 고교 교사의 집에 들어가는 '행운'을 잡은 김씨는 부산중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로 올라와 용산고등학교를 독학으로 마쳤다.
김씨는 고교 졸업과 함께 한 명문사립대의 법대에 합격했지만, 입학금을 마련하지 못해 대학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김씨가 이 사립대를 선택한 것은 전체수석을 할 경우 등록금 전액을 면제받을 수 있을 것이란 계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합격은 했지만 수석은 아니었다. 이후 군대를 마친 김씨는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 가전제품 외판원 생활을 하며 어렵게 생활을 이어갔지만 정신은 점차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63년 봄 그는 부산 태종대의 자살바위 위에 섰다. 하지만 '마음은 떨어지는데 몸이 말을 안들었다'. 지친 심신을 이끌고 돌아오는 길에 버스 안에서 경찰 모집 안내방송을 들었다. 그리고 10년간의 경찰생활이 이어졌다.
"나의 문학수업은 강원도 바닷가에서 이뤄졌다"고 김씨는 말한다. 강원도 속초, 거진 등의 해안경비 업무를 맡으며 숱한 책들을 '해치웠다'. 또 당시만 하더라도 심심하면 출몰하던 무장공비에 얽힌 사연들, 살인범을 서울로 압송하며 겪었던 일, 거진항 임검소장 시절 당국의 출어금지명령을 어기고 출항 허가서에 도장을 찍어준 뒤 징계를 받은 일 등, 이후 작품의 소재가 된 주요사건들도 역시 이곳에서 거둬들인 '수확물'이다.
김씨는 이번에 복간된, 자신의 첫 창작집 『늰 내 각시더』 서문에서 "소설쓰기를 처음 시작한 곳은 동해안"이라며 "밤을 새우며 철학서적을 읽던 그 시절은 내 생의 황금기"라고 고백하고 있다.
72년 정보경찰생활을 하던 김씨는 심적 갈등을 견디다 못해 사표를 던지고 만다. 이후 닥치는 대로 일을 했던 그는 한때 자동차 광택 사업으로 '떼돈'을 벌기도 했으나, 사업장에 불이 나 잿더미로 변해버리는 등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등단. 수십년간 꿈에 그리던 '작가의 길'로 마침내 들어설 수 있었다.
첫 창작집 이후 94년 장편소설 '인간의 시간'을 발표하는 등 문단의 주목을 한몸에 받던 그가 다시 한번 인생의 고비를 맞은 것은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자신의 소설에 '전직 경찰관 작품'이란 타이틀이 항상 뒤따라붙는 것이 못마땅하였던 김씨는 '좋다. 나도 떳떳한 학력을 갖춰야겠다'고 작심, 명지전문대 문창과를 거쳐 전남 광주대 문창과를 졸업하고, '내친 김에' 경희대 국문과 대학원까지 졸업했다.
그 '뒤늦은 학업'의 과정에서 자연히 창작활동은 뒷전으로 밀렸다. 뿐만 아니라 등단 초기에 자신만의 가장 큰 무기였던 '독특한 문체'가 공부과정에서 흔들렸다. 한마디로 '얻은 것은 학력이요, 잃은 것은 문체'. 이제 어느덧 '노(老)작가'로 불리게 된 그는 마지막 문학 열정을 불사르기 위해 요즘 몸과 마음을 다잡고 있다. 작가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___문화일보 김영번 기자 (2003년 4월 23일 수요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