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의 문학/소설

누망 (2003)

실천문학 2013. 8. 5. 14:54

 

 

 

 

 

 

         

 

 

 


제17회 단재문학상 수상작.
엄혹한 시대, 그늘진 곳에서 피어나는 실낱같은 희망.
부조리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시대의 부조리를 가장 먼저 온몸으로 감당하는 사람들의 삶에 줄곧 천착해 온 작가 정도상은, 이 작품에서도 가난하지만 사랑의 순수함을 지키는 주인공들의 삶을 통해 세상과 삶의 참된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누망』은 오늘의 소설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말끔히 걷어내고, 소설의 본령이 무엇인지를 새삼 일깨워준다. 7년간의 구상과 집필을 통해 이루어진 이 장편소설은, 대도시의 뒷골목에서 피어나는 독버섯 같은 삶의 세목들―폭력·매춘·넝마주이 등―을 낱낱이 들춰내면서 근대화의 그늘 속으로 사라져버린 남루한 삶의 세계를 드러낸다. "부조리한 시대를 그늘진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시대의 부조리를 온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의 삶"(방민호)을 줄기차게 응시해 온 정도상은 우리 시대의 부박한 유행풍조와 상업적 이미지의 홍수를 거슬러오르며 '실낱같은 희망'을 일구어내고 있는 것이다.

엄혹한 시대, 실낱같은 희망이 되어준 사랑이야기
"나는 과거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길자와 짝귀의 사랑이야기, 그들이 이루지 못한 사랑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작가 스스로도 밝히고 있듯이, 이 소설은 무엇보다도 가을 서리처럼 시리고 푸른 사랑 이야기를 큰 줄기로 삼고 있다.
이 소설의 무대는 5·16을 전후로 한 격변의 시대에 놓여 있는 서울의 치부 양동이다. 지금의 모습으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당시의 서울역 건너편은 음습한 골목들 속에 둥지를 튼 거대한 창녀촌으로, 창녀와 펨푸 그리고 넝마주이들의 세상이었다. 도시의 음습한 그늘에 서식하는 밑바닥 인생들, 부당한 국가 권력의 칼날을 가장 먼저 받아내면서도 사랑이 가지는 순수함의 의미를 지켜온 그네들이야말로 엄혹한 이 시대를 지탱해 온 한 가닥 희망임을 작가는 원숙한 필치로 그려낸다. 이 소설은 또한 국가 권력을 상징하는 장군의 위선과 잡초 같은 인생을 상징하는 창녀의 순수함을 두 축으로 삼고 개인의 삶에 대한 국가의 의미를 깊이 캐묻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사라져버린 과거의 흔적에 매달리며 비감에 젖게 하는 단순한 회상은 아니다. 『누망』은 우리 시대의 밑바닥에 지금도 맥맥히 흐르고 있는 삶의 진실들과 그 근원을 천착한 소설이다.
그러기에 이 소설에서 우리는 한없이 가벼운 감각적 치장에 여념이 없는 우리 시대의 글들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가장 어두운 곳에서 찾아낸 희망의 빛을 읽는 감동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런 것이 끊임없이 '이 땅의 현실을 사는' 사람들의 길을 함께 걸어온 정도상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이다.

"길을 아는 사람보다 길을 걷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늘 다짐했었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의 처음과 끝을 온전히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작가의 말'에서

 

정도상
1960년 경남 함양 출생으로, 전북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국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7년 단편소설 「십오방 이야기」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창작집 『친구는 멀리 갔어도』, 『아메리칸 드림』, 장편소설 『그대여 다시 만날 때까지』, 『열애』, 『푸른 방』 등을 내놓았다. 한국 현대사의 아픔들을 정면으로 응시하여 치열한 고뇌로 담아낸 화제작들을 발표해 왔으며, 현재 사단법인 통일맞이 늦봄문익환기념사업 사무처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정도상씨 장편 『누망』출간

소설가 정도상 씨가 장편소설 『누망(縷望)』(실천문학사)을 펴냈다. 7년간의 구상과 집필을 통해 이뤄진 『누망』은 폭력배 윤락녀 넝마주이 등 서울 뒷골목 군상들을 통해 근대화의 그늘 속으로 사라져버린 남루한 삶의 세계를 드러낸다.

작가는 이번 장편소설에서 '개인에게 가해지는 국가의 폭력성'을 묻고 싶었다며 "그 와중에서도 가느다란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밑바닥 서민들의 이야기"라고 작품을 소개했다. 『누망』 외에도 최근 인간 존재의 근원적 의미를 묻는 '실상사' 연작을 발표,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정도상 씨는 현재 사단법인 통일맞이 늦봄 문익환기념사업 사무처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___문화일보 (2003년 2월 24일 월요일)


갈기갈기 찢긴 한가닥 희망 '칼날'로 되갚다

정도상(43)씨가 새 장편소설 『누망』(실천문학사)을 상재했다. '누망(縷望)'은
'한 가닥의 가느다란 희망'을 뜻하는 한자말이다.
소설에서 그런 안타까운 희망은 여자 주인공인 길자의 몫이다. 소설은 1961년 5·16 쿠데타를 전후한 무렵의 서울역 앞 양동과 남산 천막촌을 주요 무대로 삼고 있는데, 맨 앞과 중간, 그리고 맨 마지막에 각각 그로부터 40년 뒤인 현재 시점의 '서' '중' '종'의 장을 배치해 놓았다.
서장에서, 이미 60대 중반을 넘어선데다 암세포의 방문으로 사실상 죽음을 선고받은 길녀는 동갑내기인 예비역 중장 영필을 회칼로 찌른다. 두 사람이 같은 고아원 출신임에도 삶의 행로가 엇갈렸을 뿐만 아니라, 역시 같은 고아원 출신인 영식의 죽음을 둘러싸고 원수의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는 사실은 소설이 진행되면서 서서히 드러난다.

소설의 앞부분은 "어마어마한 창녀촌"이었던 양동과, 넝마주이와 앵벌이들이 모여 살던 남산 기슭의 풍물을 실감나게 되살린다. 포주의 감시 아래 비인간적인 성매매에 종사하는 창녀들의 암담한 삶, 쓰레기를 주워 오는 틈틈이 멀쩡한 남의 물건을 슬쩍해 오곤 하는 넝마주이들의 생존술과 세력 다툼이 속도감 있는 문체에 얹혀 그려진다. 그 무렵 길자는 양동 한일여관에서 몸을 파는 처지로 전락했고, '짝귀'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영식은 남산 넝마주이 세력의 우두머리가 되어 있다. 짝귀는 길자를 사랑하지만, 길자의 자의식은 짝귀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5·16이 터지면서 짝귀는 국토건설단으로 끌려간다. 그로부터 소설의 후반부는 짝귀가 속한 국토건설단의 참상을 묘사하는 데에 할애된다. 뼈를 깎는 강제노동은 물론 살인적인 기합과 구타, 치떨리는 인권 유린과 비리의 실태가 생생하게 재현된다. 그런 상황 속에서 짝귀는 끊임없이 탈출과 복수를 꿈꾸고, 길자 역시 양동에서 도망쳐 나와 짝귀와의 사랑을 완성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국토건설단을 지휘하게 된 영필이 탈출하려던 짝귀를 사살하면서 길자의 '누망'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만다. 그러니, 죽어가는 순간 짝귀가 손에서 놓은 대검이 40년 뒤 길자의 손에 들린 회칼이 되어 영필의 배를 파고들었다고 해도 좋았다.

남성적 특성이 물씬 풍기는 이 소설을 통해 작가가 말하려는 바는 명백해 보인다.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실상은 더러운 출세주의자이며 냉혈한인 영필, 그리고 비록 창녀와 깡패 신분이긴 하지만 순정을 잃지 않는 길자와 짝귀를 대비시켜 보자는 것이다. 영필이 박정희식 개발독재를 상징한다면, 길자와 짝귀는 그에 의해 짓밟힌 민중의 꿈과 사랑을 대변한다. 부대를 탈출한 짝귀가 "자신이 알 수 없는 그 무엇에 갇혀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장막을 찢었다고 생각했는데 장막은 여전히 튼튼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 그것은 곧 민중의 자기 각성을 가리키는 것 아니겠는가.
___한겨레신문 최재봉 기자 (2003년 2월 17일 월요일)


위선에 짓밟힌 밑바닥 삶의 진실

5·16을 둘러싼 60년대 초 격변의 시기. 비루한 삶으로 가득한 서울역 건너 양동을 배경으로 넝마주이 짝귀와 창녀 길자의 사랑이야기가 펼쳐진다.
암에 걸린 한 할머니가 엘리베이터에서 60대 중반의 예비역 중장을 회칼로 찔러 현장에서 체포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국선변호사 채운주에게 살아온 내력을 풀어 놓는 살인미수범 길자. 군산의 한 보육원에서 자란 길자와 짝귀, 영필. 길자와 짝귀는 어린시절부터 서로 좋아한 사이. 몸을 팔게 된 처지를 비관하는 길자는 짝귀의 마음을 받아 주지 않는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제주에서 장교생활을 하는 영필은 정치범으로 수배를 받고 도피 중인 범택을 밀고해 친구의 여자인 인희를 빼앗는다. 창녀촌을 탈출한 길자는 국토건설단에 끌려간 짝귀를 찾아 나서지만 결국 만나지 못하고, 짝귀는 친구 영필의 손에 죽음을 맞는다.

"지나간 시대를 이야기하기 보다는 그저 이루지 못한 사랑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작가 정도상(43)은 창녀의 순정한 사랑과 위선으로 점철된 군인의 면면을 대비시키며 인생과 삶이란, 또 국가가 갖는 의미란 과연 무엇인가를 독자로 하여금 자문하게 한다. 문학평론가 방민호는 "'세상의 다리 밑'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박한 진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평했다.
'누망(縷望)'이란 한 가닥 실낱같은 희망을 뜻한다.
___동아일보 책의향기 조이영 기자 (2003년 2월 15일 토요일)


40년 전 '양동'에서 걷어올린 밑바닥 삶


1961년 5월 16일은 보는 이에 따라 '조국 근대화의 위대한 출발점'이거나 반대로 '민주주의를 배반한 암울한 조종의 울림' 정도로 기억되고 있다. 한편, 그 특별한 날의 아침에 서울 양동 창녀촌에서는 우리가 기억하거나 역사가 기록할 이유가 전혀 없는 아주 하찮은 사랑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발표한 혁명 공약이 라디오를 타고 흐르던 그 시간, 넝마주이 대장 짝귀는 고아원 친구인 창녀 길자를 찾아가 "같이 살자"며 애원하고 있었고, 청혼을 거부한 길자는 상심한 짝귀가 떠난 쪽방 바닥에 '인생 행복 희망 사랑 결혼' 따위 한량한 글을 눈물로 써대며 슬픔에 빠져들고 있었다. 이 유치한 사랑놀음이 식자들의 '위대하거나 암울한' 5·16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작가에게는 5·16의 의미에 대한 정치적·경제적 담론 따위가 오히려 허황된 말장난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사회의 밑바닥에 납작 붙어 사는 이들의 삶 속으로 5·16을 관통시키며 40년 전 이 땅에서 '실존'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추적해간다. 무대는 남산 판자촌과 양동 일대. 매혈, 앵벌이, 매춘, 폭력이 고단한 삶을 지탱하는 비정의 공간이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명제에 대해 진정으로 알고 싶으면 홍등가에 찾아가. 그곳에 가면 보여. 굶주림이 순결이나 도덕보다 앞서 있는 상태를.'(106쪽)

통속소설 같은 짝귀와 길자의 비련 사이에 국토건설단이 끼여든다. 사회정화를 부르짖는 혁명 세력에 끌려간 짝귀는 뒷골목 양아치 뺨치는 폭력과 뇌물에 길든 건설단 간부의 횡포 아래 신음한다. 창녀촌을 탈출해 여공이 된 길자는 결혼은 안 해도 함께 살자면 응낙할 요량으로 짝귀가 끌려간 강원도 영통의 국토건설단을 찾아간다.

짝귀는 제주도로 이감된 후 탈출을 시도하지만 고아원 시절의 또 다른 친구이자 건설단 장교인 영필의 총에 살해된다. 육사를 나왔어도 고아라는 이유로 제주도 한직에 쫓겨났던 영필은 출세를 위해 친구를 죽여 공을 세워야 했다. 40년 후, 길자는 유방암에 걸린 몸으로 영필 앞에 나타나 그의 배를 흉기로 찌른다. 죽음을 앞둔 길자의 입에서 "억울해, 정말 억울해"라는 피울음이 쏟아진다.

창녀와 넝마주이 사이에 펼쳐진 비극의 품질은 '싸구려'이다. 작가도 이들의 불행을 굳이 멋지게 덧칠하지 않는다. 못 배우고 천한 사람들이 내뱉는 비열하고 저속한 은어들은 이철용의 '어둠의 자식들'과 흡사하다. 화려하게 살아보지 못한 것을 원통해 하는 길자의 동물 같은 절규도 숨김이 없다. 순결을 잃었기에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값싼 통속도 40년 전 그 시대의 몫일 뿐이다. 저자후기조차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과거가 아니라 사랑"이라고 시치미뗀다. 그러나 짝귀와 길자의 비련을 눈물이나 뽑자고 덤비는 애정소설로만 읽으려면 다음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40년이 지난 오늘, 세상은 짝귀와 길자를 구원할 만큼 변했는가". 한 때 국토건설단 속편인 삼청교육대를 봤고, 세상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광장을 점령했던 개혁과 도약의 구호들을 기억한다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___조선일보 책마을 김태훈 기자 (2003년 2월 15일 토요일)


현재와 과거, 색깔 다른 두 만남

문학에서 '현재'는 '과거' 혹은 '전통'과 어떻게 만나는가. 이런 관점에서 현재의 토양으로 살아 숨쉬는 과거를 전혀 다른 소프트웨어로 해석한 두 편의 소설이 눈길을 끈다.

소설가 정도상(43)의 『누망』(실천문학사)과 여류소설가 이현수(44)의 『토란』(문이당)이 그것. 두 작품은 우리가 잊었거나 잃어버린 '과거'와 '전통'을 현실로 복원해 내거나, 두 시제의 '화해'를 모색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누망』은 우리가 잊고 사는 것에 대한 환기를,『토란』은 잃어버린 것의 복원이자 신·구세대의 융합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작품의 성격을 결정하는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누망』이 '밑바닥 인생'
의 '사랑'을 통해 과거 한 시대를 통렬하게 고발하는 반면 『토란』은 성별, 혹은 세대간의 부조화를 통해 '껴안음'의 의미를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실낱같은 희망을 뜻하는 『누망』(縷望)을 제목으로 단 정도상은 5·16군사쿠데타의 와중에 서울 한 매음굴을 무대로 부당한 국가권력이 위압하는 개인의 삶과, 그들이 끈질기게 지켜내는 순정한 사랑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특히 작가는 독자들의 시선을 2000년대 초에 고정시켜 놓고 지금의 시각으로 과거를 돌아보게 하는, 그래서 당시의 상황을 더욱 명료하게 각인시키는 방식으로 우리가 잊고 있었던 '과거'
를 '현실'에서도 가능한 의제로 부활시키고 있다.

이에 비해 『토란』은 시부모로 대표되는 구세대의 갈등상과, 이 갈등의 와중에 끼어든 신세대 며느리의 화해노력을 통해 현재에 발뿌리를 딛고있는 과거의 잔영을 실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일상적 체험을 구수한 밥냄새처럼 작품의 기저에 깔아 '과거'와 '현대'를 잇는 유효한 매개로 삼는다. 문학평론가 방민호 씨는 이런 작가를 '인생파'라고 칭한다."당대에 유행하는 사조나 젊은 사람들의 민감한 취향보다 사람들의 삶 자체가 지닌 의미에 천착하는 작가"라는 뜻이다.
『누망』은 작가의 "과거 이야기가 아닌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고백에도 불구하고 격변기의 암울하고 음침한 시대상이 깔려 긴장의 전율이 팽팽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여기에다 작가의 의도든 아니든 두 주인공의 행로가 자연스럽게 "국가란 무엇인가"하는 담론적 의문을 상기시켜 그 시절의 실체와 정체성을 돌아보게 한다 반면 정적 정서를 가진 『토란』은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삶의 부스러기를 쫀득하게 응고시켜 빛나는 결정체로 빚어냈다."는 소설가 전상국의 평가처럼 우리가 잊고 지나치기 쉬운 삶의 이면에 시각을 맞춰 부드러움의 감동을 맛보게 하고 있다.'과거와 현재의 맞닥뜨림'을 기본 골격으로 했다는 공통점을 가진 두 작품이 전혀 다르게 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___대한매일 심재억 기자 (2003년 2월 14일 금요일)


격변기 사랑-그 실낱같은 희망

서울역. 지금은 고속철 역사건설공사가 한창이지만 1960년대만 해도 무작정 상경한 시골처녀들이 보따리를 들고 식모살이라도 가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던 애환의 종착역이었다. 정도상 씨(43의 장편소설 『누망』(실천문학사)은 증기기관차가 하얀 김을 내뿜던 1960년대 서울역전의 풍경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누망(縷望)은
'한 가닥 실낱같은 희망'이라는 뜻. 무대는 5·16군사혁명을 전후한 격변의 한복판을 통과한 서울역 뒤 양동. 그곳의 음습한 골목은 창녀와 펨푸, 그리고 넝마주이들의 세상이었다.

1960년대와 2000년대를 넘나드는 소설은 예순이 다된 창녀 출신 길자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장성급 군인을 칼로 찌르는 현재 시점에서 시작된다. 살인미수범으로 현장에서 체포된 길자가 국선 변호사 채운주에게 털어놓는 회상은 대도시의 음습한 뒷골목에서 피어난 독버섯 같은 처철한 삶의 세목들을 낱낱히 들춰낸다.

"짝귀는 씨라이막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양동 뒷편의 언덕에 자리잡은 씨라이막으로 들어가기 직전,짝귀의 눈 아래에는 그 유명한 양동이 펼쳐져 있었다. 성냥갑만한 판잣집들이 양동 4통과 6통은 물론이고 후암동과 도동에까지 걸쳐 게딱지처럼 따글따글 붙어있었다. 처마 아래에는 좁다란 골목이 미로처럼 엉겨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가 좀체 힘들었다"(19쪽) 씨라이꾼은 종이나 비닐, 쇳덩어리를 수집하는 넝마주이의 다른 이름.

길자와 짝귀, 그리고 영필은 군산의 한 고아원에서 같이 자란 동기생이다. 하지만 상경 이후 이들의 운명은 뒤죽박죽 엉켜든다. 길자는 창녀촌으로 흘러들고 짝귀는 넝마주이가 되었으며 영필은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가 된다. 길자와 짝귀는 고아원 시절부터 서로 연모하는 사이였지만 길자는 자신의 처지를 들어 짝귀의 절절한 사랑을 번번이 거절한다. 5·16쿠데타로 세상이 뒤집히자 짝귀를 비롯한 씨라이꾼들은 국토건설단으로 끌려가지만 영필은 오히려 영전을 거듭한다. 제주도까지 흘러가게 된 짝귀는 결국 자신의 출세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 영필의 손에 죽음을 맞는데…. 엘리베이터에서 길자의 칼에 찔린 사람은 바로 영필이었다.

집필 7년만에 결실을 본 정씨는 "길자가 창녀촌에서 나와 편물공장의 여성노동자로 변하는 과정이야말로 짝귀와의 애틋한 사랑에서 비롯된 자기 발견"이라며 "짝귀와 길자의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___국민일보 책과길 정철훈 기자 (2003년 2월 14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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