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의 문학/소설

남정현 대표소설선집 (2004)

실천문학 2013. 8. 6. 10:24

 

 

 

 

 

 

          

 

 

 

 


남정현은 196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서, 당대의 시대적 상황을 문학적으로 빼어나게 표한하였다는 점에서 문제적인 작가다. 이 책은 작가가 직접 최종 정리한 결정판이자 정본으로서, 「분지」, 「너는 뭐냐」를 비롯한 그의 주옥 같은 대표작이 알차게 수록되어 있다. 이 선집이야말로 남정현 소설 세계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훌륭한 문헌적 자료가 될 것이다.


작가 정신에 빛나는 남정현 문학의 진면목

「분지(糞地)」의 작가 남정현(南廷賢) 선생의 대표소설선집이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작가가 직접 가려 뽑고 일부 손질을 가한 결정판으로, 군사정권 수립 이후 최초의 필화사건을 겪은 대표작 「분지」를 비롯하여 제6회 동인문학상 수상작인 「너는 뭐냐」(중편), 남정현 소설의 미학적 방법론을 전형적으로 엿볼 수 있는 「방귀 소리」, 부자(父子)간의 윤리관계를 통하여 비정상적인 세태를 풍자한 연작소설 「허허 선생」 등 13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기왕에 출간된 ꡔ남정현 문학전집ꡕ(국학자료원, 2002)이 있기는 하지만 이 선집이야말로 가치가 전도된 현실을 여지없이 폭로해온 작가 남정현의 소설 세계와 올곧은 문학관에 바탕을 둔 그의 강인한 작가 정신을 확인할 수 있는 훌륭한 문헌적 자료가 될 것이다.


남정현 문학의 재평가

문학이 그 사회적 기능을 되찾고 문학인이 사회의 엘리트로 복귀하는 데 있어 개인의 희생을 무릅쓰고 본 대로 느낀 대로 고발하는 정신이 우리 문단과 사회의 건전한 발전에 어느 때보다 요긴한 만큼 우리는 남정현의 작품 활동에 진지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__백낙청

남정현은 196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서, 당대의 시대적 상황을 문학적으로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문제 작가이다. 사실 한국문학사에서 남정현만큼 독특한 소설 세계를 가지고 있는 작가도 드물다. 또 그만큼 군사독재 정권에 저항하고 왜곡된 한국현대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경험한 작가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분지」 하나만으로도 그는 한국문학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성싶다.
남정현의 작품 세계는 현실에 대한 풍자와 고발로 일관되어 있다. 초기의 대표작 「너는 뭐냐」에서부터 줄기차게 지속되어온 남정현 문학의 일관된 주제와 기법은 여러 면에서 아주 매력적이다. 안타까운 것은 남정현 문학의 이러한 특징이 아직까지는 충분히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근자에 남정현 문학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축적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수에 있어서는 기대에 못 미친다 하겠다. 이렇게 보면 남정현 문학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이제 시작 단계에 놓여 있는 셈이라고 할 것이다. 이 선집이 남정현 문학에 대한 객관적이고 온당한 평가를 내리는 데 기여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알레고리를 통한 강력한 현실 비판

항상 날카로운 풍자와 우의적(㝢意的) 수법을 쓰는 남정현은 사회 현실의 전체 상황에서 모순을 보는 데 예리한 시각을 가지고 있어 때로는 지나치게 냉소적인 자세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능란하게 다듬어진 경쾌한 문장을 따라 그의 집요한 풍자를 읽어가다 보면 이것이야말로 근본적으로 속시원한 이야기라는 점과 역사 안에서 투철하게 진실을 추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__구중서

남정현 문학은 대부분 외세문제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우리 내부의 모순을 고발하고 있다. 그의 소설이 주로 풍자소설의 형식을 빌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그 풍자는 강력한 희화화를 동반하고 있다.
남정현 문학의 가장 특징적인 점은 1960년대 한국 사회의 정치사회적 성격을 가족관계의 알레고리로 변형시켜 표현한 데 있다. 군사독재 체제의 강압성과 부자유(「방귀 소리」), 체제적 구속 아래 놓인 시민 생활(「광태」, 「사회봉」), 사회 각 방면에 걸쳐 미국에 종속화된 현실(「너는 뭐냐」, 「탈의기」), 청산되지 않고 오히려 주인처럼 행세하는 일제 잔재(「허허 선생」), 반공 냉전의 이데올로기(「분지」, 「자수민」) 등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아 뒤틀린 가족관계의 알레고리를 다양한 형태로 변주해나가면서 1950년대에서 1960년대에 이르는 한국 사회의 반이성적이고 불합리한 현실을 낱낱이 드러냄으로써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죽겠다는 소리, 죽는다는 소리, 억울하고 원통해서 못 살겠다는 소리가 곳곳에서 분수처럼 솟구치는 것이었다. 어이없게도 글을 쓰면 쓸수록 세월이 가면 갈수록, 그리고 그 정권이란 것이 바뀌면 바뀔수록, 그러한 인간의 신음 소리는 더욱 쟁쟁히 그의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참 빌어먹을 일이었다. 정권이란 것이 바뀔 때마다 모두들 구관이 명관이라고들 하니,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러니까 김씨보단 노씨가, 노씨보단 전씨가, 전씨보단 박씨가, 그리고 박씨보단 또 누가누가 더 낫다는 식이니, 젠장 이래가지고야 언제 한번 역사가 바로 서서 사필귀정의 참 질서를 몸에 익힐 수 있을지, 그는 그저 막막하다는 느낌뿐이었다. (「세상의 그 끝에서」, 20-21쪽)


왜곡된 사회의 모순을 꿰뚫는 풍자와 해학

남정현의 소설은 한 시대의 갈등과 모순을 마치 전자현미경처럼 확대시켜 이를 만화풍으로 소묘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마치 거리 조절이 잘못된 만화풍 사진처럼 남정현이 그리고 있는 현실적 모순은 도저히 종잡을 수 없을 만큼 폭소와 당혹감을 자아낸다. 그러나 이내 그 황당한 이야기 속에서 날카로운 칼날을 느끼곤 섬뜩해짐을 부인할 수 없다. __임헌영

남정현 소설에 일관된 현실 비판 의식의 상징성은 「허허 선생」에 가장 잘 드러난다. 「허허 선생」 연작은 우리 시대 민중에게 온갖 불행과 고통을 가하는 원흉의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고, 오로지 일신의 영화만을 탐하여 외세와 늘 한통속이 되어 나라와 민중의 이익을 짓밟은 지배계층의 반인간적이고 반민족적인 행태를 잘 반영하고 있다. 1970년대 서울의 상류층 사회를 배경으로 하여 허구와 모순의 전형적 인물인 출세주의자 ‘허허 선생’과 진실한 삶을 살아가는 그의 아들 ‘허만’과의 갈등 묘사를 통해서 그릇된 의식 구조를 가진 허허 선생과 그러한 인간에게 부귀와 영화를 제공하는 부조리한 사회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이렇듯 후안무치한 ‘허허 선생’ 같은 인물이 아직도 우리 주위에서 활개치는 현실을 되돌아볼 때, 남정현의 소설은 이 사회에 대한 하나의 각성제임에 틀림없다. 작가가 드러내는 오늘날의 은폐된 진실은 그저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진실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남정현
작가 남정현(南廷賢)은 1933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다. 1958년 「경고구역」과 1959년 「굴뚝 밑의 유산」이 [자유문학]에 추천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1961년 「너는 뭐냐」로 제6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65년 [현대문학] 3월호에 발표한 「분지」가 반공법에 저촉되었다 하여 구속 기소되어 징역 7년을 구형받았고, 1967년 서울고등법원에서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1971년 민주수호국민협의회 결성에 참여하였고, 1974년 3월 긴급조치 위반 혐의(세칭 '민청학련사건')로 구속되었다가 9월 긴급조치 해제로 석방되는 등 고초를 겪었다. 창작집으로 [너는 뭐냐], [굴뚝 밑의 유산], [준이와의 3개월], [허허선생] 등이 있고, 대표소설선 [분지], 연작소설집 [허허선생 옷 벗을라], [남정현문학전집] 등을 출간하였다. 2002년 제12회 민족예술상을 수상하였으며, 현재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 국제펜클럽 이사로 있다.


 

세상의 그 끝에서(1995년 [창작과비평] 여름호), 신사고-허허 선생 7(1990년 [실천문학] 여름호), 핵반응-허허 선생 6(1988년 [창작과비평] 가을호), 귀향길-허허 선생 3(1980년 [문예중앙] 봄호), 발길질-허허 선생 2(1973년 [문학사상] 5월호), 방귀 소리(1970년 [다리] 2월호), 분지(1965년 [현대문학] 3월호), 탈의기(1964년 [한양] 10월호), 부주전상서(1964년 [사상계] 6월호), 사회봉(1964년 [문학춘추] 6월호), 현장(1963년 [사상계] 11월호), 광태(1963년 [신세계] 4-5월호), 자수민(1962년 [사상계] 7월호), 너는 뭐냐(1961년 [자유문학] 3월호)

 

40년 질긴 생명력 '분지' 새 단장

60년대 필화 소설가 남정현씨



한 문학작품이 40년의 세월을 견뎌내며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소설가 남정현(71)씨가 1965년 월간 문예지 '현대문학' 3월호에 발표한 단편소설 '분지(糞地)'가 그런 작품이다.

발표 당시만 해도 파격적으로 비쳤던 '반미(反美)'적 내용은 한국 현대문학사의 대표적인 필화사건으로 이어졌다. 때문에 '분지'를 포함, 61년 남씨에게 동인문학상을 안긴 중편 '너는 뭐냐' 등 중.단편 14편을 묶은 '남정현 대표소설선집'(실천문학)이 최근 출간된 것은 반갑다.


지난 주말 남씨는 "최근 대학에 자리잡은 젊은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내 얘기를 가끔 하는 모양이다. '어디서 '분지'를 구할 수 있느냐'는 문의전화를 심심치 않게 받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작품들을 직접 선정해 묶어 내게 됐다"는 것이다.

선집에 실린 작품들은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분지'는 홍길동의 10대손 홍만수라는 가공의 주인공이 죽은 어머니에게 자신이 처한 사정을 토로하는 형식을 빌려 일본을 대신해 남한에 진주한 또 다른 외세 미국을 성토하는 내용이다. 홍만수의 어머니는 해방 직후 미군에게 강간당했고, 여동생 분이는 한국전쟁 후 미군 상사 스피드의 첩으로 전락했다. 홍만수는 마침 한국을 찾은 스피드의 미국인 부인을 욕보이는 것으로 손상된 자존심을 위로한다. 거침없는 표현과 허를 찌르는 발상 등은 지금 읽어도 여전히 강렬하다.

'분지'는 발표 후 한동안은 괜찮았다. 그러나 65년 5월 북한 노동당의 기관지 '통일전선'에 전재되면서 문제가 되기 시작해 7월 반공법 위반으로 남씨가 구속되고, 작품은 80년대 중반까지 금서로 묶인다. 이어진 법정공방은 큰 논란을 불렀다. 증인으로 나선 문학평론가 이어령은 작품의 용공성을 묻는 검사의 질문에 "그것은 달을 가리키는데 보라는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보는 격"이라고 반박해 화제를 낳았다. 증인으로 나선 한 남파간첩은 '분지'의 내용이 북한의 악선전을 대변하고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이런 소설이 허용되는 대한민국은 자유스럽다고 답했다.

남씨는 "'분지'는 색채로 따지자면 역사상 가장 현란하고 황홀한 순간이었던 4.19가 5.16에 의해 허망하게 무너져내렸을 때의 비통함.좌절감이 동력이 돼 쓴 소설"이라고 밝혔다. "반드시 미국을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다기보다는, 힘이 곧 정의이고 선이라는 당시의 지배적인 생각에 맞서 윤리적인 문제를 제기한 것이고, 가장 큰 힘을 가진 주체로 미국을 상정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남씨의 작가 인생은 '분지' 사건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그는 "막 달려나가는 달리기 선수를 다리 걸어 엎어뜨리자 다시 일어나 뛸 기력을 잃었다"고 말했다. 특히 "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두번째 옥고를 치르고부터는 어지럼증이 심해져 작품을 제대로 쓸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남씨의 작품은 콩트.에세이까지 모두 합쳐 42편에 불과하다. 95년 이후로는 작품을 한편도 쓰지 못했다. 그는 "요즘도 현기증이 심한 날은 신경안정제를 복용한다"며 "앞으로 건강이 허락해준다면 민족문제나 남북한 통일을 다룬 작품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중앙일보__신준봉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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