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오식당』에서 시장 사람들의 유쾌한 기지와 능청, 간계가 엮어내는 삶의 난장을 날고기 같은 생생한 언어로 그려내 많은 독자와 평단의 사랑을 얻은 바 있는 이명랑은 최근 젊은 작가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존재이다. 『나의 이복형제들』에서 작가는 영등포시장에서도 가장 밑바닥에 놓여 있는 사람들, 시장의 주류에 소속될 수 없는 주변부적 타자들의 이야기를 속도감 있는 문체와 스토리 전개, 현실의식과 소설미학의 조화를 통해 빚어내며 한 차원 높은 문학적 경지를 펼쳐 보인다.

『삼오식당』에서 시장 사람들의 유쾌한 기지와 능청, 간계가 엮어내는 삶의 난장을 날고기 같은 생생한 언어로 그려내 많은 독자와 평단의 사랑을 얻은 바 있는 이명랑은 최근 젊은 작가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존재이다. 문학평론가 홍기돈은 무거운 이념에 포박당한 인간과 부유하는 욕망의 노예 사이를 가로질러 진정한 ‘인간의 탐구’로 나아가려는 문학적 명제를 가장 깊이 천착한 작가로 이명랑을 꼽은 바 있다.
이명랑은 신작 장편 『나의 이복형제들』에서 속도감 있는 문체와 스토리 전개, 현실의식과 소설미학의 조화를 통해 한 차원 높은 문학적 경지를 펼쳐 보이고 있다. 작가는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상처받은 인간들이다. 나는, 제 몫의 상처로 괴로워하고 몸부림치는 인간들 속에 영원이라는, 제 운명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질식사하려고 하는 인간을 하나 더 보태어 어둠과 어둠이 접촉했을 때, 상처에 상처가 더해졌을 때 우리들 나약한 인간들이 느끼게 되는 촉감은 과연 어떠한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했다. 나의 상처가 너의 상처와 맞부딪쳤을 때 비로소 내 몸의 상처를 뛰어넘어 네 마음의 상처를 나의 혀로 핥을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는 어쩌면 시대에 뒤떨어진 감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소설에서 그런 기대와 희망마저도 없으면 도저히 살아나갈 수 없는 인간 군상들의 밑바닥 삶의 모습을 거짓없이 그려내고자 하였다”는 말로 집필의도를 밝히고 있다.
낮은 곳을 향하는 따뜻한 시선
이 소설은 영등포시장에서도 가장 밑바닥에 놓여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삼오식당』의 억척 상인들을 무대 뒤로 물러나게 하고, 그 자리에 시장의 주류에 소속될 수 없는 주변부적 타자들을 배치한다. 이 소설의 화자인 영원이라는 이름의 유랑소녀, 근육마비 증세로 병원 출입을 되풀이하는 춘미, 인도인 노무자, 조선족 다방 여종업원, 난쟁이 왕눈이 등이 그들이다. 요컨대 가족주의, 혈연주의를 맹종하는 우리의 문화적 관습을 다분히 비트는 제목을 내건 『나의 이복형제들』은 영등포시장 상인들의 멸시와 폭력에 노출된, ‘불가촉천민’으로나 불림직한 천덕꾸러기들의 삶의 조건과 내면의식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다.
영원은 만신인 어머니와 “어딘가 약간 모자란 듯하고 어느 땐 나보다도 더 철이 없는 것 같고 늘 무엇인가에 기죽어 있는, 한마디로 말하면 볼품없는 늙은 개 정도”로 보였던 아버지의 딸이다. 영원은, 몸주신을 받아들인 ‘강한’ 어머니와 그 어떠한 상징적 권위도 지니지 못한 ‘약한’ 아버지 사이에서 유기된 고아처럼 외로움과 극심한 심리적 혼돈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몸주신과 접속하기 바로 직전 아버지의 난동으로 만신의 운명에서 탈출한 영원은 여기저기 떠돌다 영등포시장에까지 이르게 된다. 여기에서 영원은 그 자신의 눈으로 고통받는 이웃들의 삶을 찬찬히 기록해간다. 이러한 시선이 『나의 이복형제들』을 시장 상인들의 이전투구를 그린 소설이 아니라 한계상황에 놓인 힘없는 사람들의 구원 가능성을 치열하게 탐색하는 소설로 읽히게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이명랑의 현실의식과 소설미학이 한 차원 높은 곳에서 조화롭게 꽃피고 있음을 보게 된다.
영원의 시선은 협동합시다 아저씨나 박씨 아저씨와 같은 시장 질서를 주도하는 인물들과 영원, 춘미, 인도인 노무자, 조선족 다방 여종업원과 같은 주변부 인물들 사이의 건널 수 없는 경계를 아프게 의식하면서 특히 인도인 노무자나 조선족 여종업원과 같이 집중적으로 수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형제애로써 감싸고 있다. 이러한 시선을 통해 우리는 인간적 모멸과 ‘노예노동’에 가까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신음하는 이주노동자와 조선족을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할 형제들처럼 느끼게 된다.
이처럼 어두운 현실을 그리면서도 이명랑의 문체는 발랄한 생기와 날카로운 해학으로 번뜩인다. 그리고 이러한 문체를 통해 우리에게 전이되는 생동감은, 정면으로 응시된 현실은 그 자체로서 개선과 구원의 가능성을 띠게 된다는 것을 뚜렷이 의식하고 있는 작가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이 작가가 그리는 시장은 단순한 ‘삶의 난장’이 아니라 권력의 틀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주변부적 타자들의 삶의 현장이다.
강렬하고 아름다운 생의 의지
폭력의 현장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 영원은 관찰자의 시선으로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결코 방관적이지 않다. 애초에 이들을 바라보는 영원의 시선에는 모멸과 멸시가 흐르고 있었지만, 무방비 상태로 폭력에 노출된 이들이나 가해적 허세 속에 감추어진 나약한 인간성에서 자기 앞의 생에 대한 열정과 생의 의지를 발견하면서 그의 시선은 서서히 바뀌어간다. 이러한 발견은 지하실에 갇히게 된 까치를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된다.
나는 진짜로 살아 있는 것, 길들여지지 않고 자연 그대로인 것, 마지막까지도 날개를 푸드득거리는 것,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끝내 놓지 않는 것은, 단 한 번도 가까이 해본 적이 없었던 거다. 저 까치는 언제,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어쩌다 지하실에 갇히게 됐는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철문은 닫혀 있었고 이곳의 어디에도 밖으로 난 창은 없었다. 이런 곳에 저런 까치가 있을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엄연히 까치는 이곳에 있었고 까치의 날갯짓 소리는 지하실을 가득 메우고 있다.
작가가 폭력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서술의 초점을 맞출 때 시장은 폭력이 난무하는 공간이지만, 이들에게서 전해오는 생의 의지를 주목할 때 시장은 생의 의지로 꿈틀대는 부활의 현장으로 변모한다. 이들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던 영원은 서서히 이들의 동지, 친구, 동생과 누이가 되어간다. 말하자면, 이 주변부적 타자들은 이복형제들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영원은 이제 인도인 노무자와 춘미언니의 친구, 조선족 여종업원에게는 비밀통장 발급을 돕는 동생이다. 영원은 시장판을 돌아다니며 괜한 폭행을 서슴지 않았던 왕눈이까지 깊은 연민으로 포용한다. 그가 아무리 진돗개의 호위를 받으며 시장바닥에서 위세를 부려도 영원의 눈에는 나약하고 비루한 남성에 불과하다. “고개를 떨구고 앉아 여기 아닌 어딘가를 향해 눈을 부릅뜨고 있는 난쟁이의 모습”에서 영원이가 본 것은 볼품없는 아버지였다. 또한 내면의 제어할 수 없는 열기 때문에 밤마다 남의 가게 냉장고를 뒤지고 다니는 당진상회의 덕진 역시 영원에게는 연민의 대상이 된다.

이명랑 1973년생. 1997년 문학무크지 『새로운』에 시 「에피스와르의 꽃」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다양한 체험과 풍부한 서사성을 바탕으로 삶의 허위와 진실을 날카롭게 포착해낸 성장소설 『꽃을 던지고 싶다』, 독특한 삶의 이력을 재미있게 펼친 『행복한 과일가게』, 영등포시장을 무대로 인간 본연의 사랑과 욕망을 솔직하고 구성지게 그려낸 『삼오식당』 등을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가출소녀 눈으로 시장通 훑어보니 ―― 최홍렬 기자, 조선일보(2004. 05. 24.) 유창하고 당당한 이명랑표 '시장통 소설' ―― 김선영 기자, 오마이뉴스(2004. 12. 18.) "시장통 서민들 삶의 냄새 담았죠" ―― 정철훈 기자, 국민일보(2004. 05. 30.)
시장통 사람들의 훈훈한 희망찾기
이명랑 새 소설 ‘나의 이복형제들’
소설가 이명랑(31)씨는 자신은 거리의 십자로에서 자란 도시의 아이라고 말한다. 자기 소설만큼이나 솔직하고 입심좋은 작가가 말하는 도시란 높은 빌딩에 세련된 패션의 사람들이 테이크 아웃 커피를 들고 오가는 그런 풍경의 도시가 아니다.
“내가 중·고등학교시절 이곳은 동, 서, 남, 북의 아이들이 몰려와 노는 떠들썩한 십자로였어요. 그리고 엄청난 부자부터 완전히 망한 사람까지, 엘리트부터 외국인 노동자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뒤섞여 부대끼는 곳이지요.” 이곳은 바로 영등포 시장이다.
30년 가까이 영등포 시장통에서 삼호식당을 운영하며 세 딸을 키운 엄마의 둘째딸인 그녀는 이 식당을 중심으로 시장통 사람들과 뒤섞여 이들을 지켜보며 자랐고 온갖 사연을 들었고 개인과 집안의 내력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도 모르는 비밀까지 자연스레 알게 됐다. 이것들이 이명랑에겐 모두 소설의 소재이고, 펄펄 뛰어오르는 날것의 인물들이다. 그러니 “쓰고 싶은 인물들, 이야기들이 너무 많다. 무얼 쓸까라는 고민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작가의 말은 당연한 듯하다.
자전적 이야기에 시끌벅적한 시장통 사람들의 일상을 때로는 해학으로 때로는 비애로 풀어낸 소설 ‘삼오식당’으로 일약 주목받는 작가로 떠오른 이명랑씨의 신작 장편소설 ‘나의 이복형제들’(실천문학사) 역시 시장통 사람들 이야기이다. 시간상으로는 ‘삼오식당’이후 2년 만에 출간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삼오식당’이 ‘나의 이복 형제들’의 자식이다. “5년전부터 쓰기 시작해 그동안 계속 가다듬어왔다. 많은 인물을 만들면서 필요없는 인물들을 추려왔다. 그 중에서 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인물을 모아 먼저 묶어낸 것이 ‘삼오식당’이다”고 설명한다.
‘삼오식당’이 억척 상인들의 유쾌한 기지와 능청을 엮어냈다면 ‘나의 이복 형제들’은 무엇 하나 가진 것 없는 시장의 주변부 사람들 이야기다. 17세의 유랑소녀 영원, 주민등록증을 얻기 위해 남편의 폭력을 감내하며 몸을 팔아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 조선족 여성 머저리, 시장 사람들의 온갖 냉대와 괴롭힘을 견디며 살아가는 불법체류 인도 노동자, 근육마비증으로 온몸이 서서히 굳어가는 춘미, 마음속의 불길을 잡지못해 밤이면 밤마다 냉장고를 찾아 얼음으로 얼굴을 비비는 덕진. 연작 소설 형태를 띤 이 작품은 하나같이 시장통의 보잘 것 없고 상처입은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상처입은 사람들이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여주려 했다. 상처와 상처가 부닥쳐 분노가 되기도 하고, 서로를 더 아프게 할 수도 있고, 보듬어 안을 수도 있다.” 작가의 말처럼 소설속 주인공들은 서로의 상처를 헤집기도하고, 경멸하고 서로를 무시하며 상처를 덧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이들은 서로를 보듬어 안으며 자신에게 그리고 상대에게 내일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들이 품는 희망의 근거가 실제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헛된 환상이 아니라 잡초같이 살면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생의 원초적인 의지와 본능이라는 점이 이명랑 소설이 서 있는 독특한 지점이다. 생의 의지, 이것이야말로 이명랑이 들려줄 수 있는, 살아오면서 본능적으로 체득한 시장이야기이다.
--문화일보 최현미기자chm@munhwa.co.kr
가출소녀 눈으로 시장通 훑어보니
“영등포시장에서 만난 인간 군상은 나를 흥분시켜요.”
소설가 이명랑이 장편소설 ‘나의 이복 형제들’(실천문학사)을 냈다. 실제 시장거리 식당 둘째 딸인 그는 10대 가출소녀의 시선을 통해 시장 바닥에서 신선한 삶을 이어가는 ‘밑바닥 인생’ 이야기를 풀어냈다.
‘과일밖에 모르던’ 농협공판장 경매사와 결혼한 작가는 “아이 둘을 낳고도 시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시절에는 식당 주인이자 주방장이자 종업원인 엄마를 도와 설거지도 하고 주문을 받느라 학교를 빼먹기도 하고, 언니 형부가 하는 도매가게에서 과일장수도 했다. 작가는 “올초 농협 영등포공판장(현 열린우리당 당사)이 가양동으로 이전하는 바람에 식당 매출이 뚝 떨어졌다”며 “우리 식당 싸고 맛있다고 써주세요” 했다. 23일 영등포시장에서 그를 만났다.
-이번에도 시장이다. 등단 이후 단 한 번도 영등포시장의 경계를 이탈하지 않았다. 언제까지 시장에 머물러 있을 작정인가?
“오해다. 영등포시장 얘기가 아니다. 시장은 내 감수성의 고향이자, 인간 욕망이 가장 적나라하게 분출하는 장(場)일 뿐이다. ‘도시문학’의 좋은 배경이다. 서울 아이들, 얼마나 영악한가. ‘일찍 까진 아이들’의 시선으로 어른들의 세계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싶었다.”
-이명랑이 영등포시장을 벗어나도 특유의 익살과 해학이 어우러진 재미있는 소설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자기 경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독자들이 떨어져나갈 수도 있지 않은가?
“걱정 마세요.(웃음) 시장에는 온갖 인상군상이 몰려든다. 엄마 따라 우동·김밥 장사하고 좌판을 보면서 사람공부 많이 했다. 말투만 보면 그 사람의 대강을 알 수 있다. 인간이란 텍스트는 사방에 깔려 있고, 이야깃거리도 많다. 지금 ‘날라리’ 여고생들 이야기를 쓰고 있다.”
-이번 작품이 이전과 무엇이 다른가?“2002년 나온 ‘삼오식당’이 억척 상인 열전이었다. 이번에는 그 시장에서도 가장 밑바닥 사람들로 눈높이를 낮췄다.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유랑소녀, 근육마비 장애인 춘미, 인도인 노무자, 조선족 다방 여종업원, 괜한 폭행을 일삼는 난쟁이 등이 그들이다. 삶의 마지막 코너까지 몰린 사람들의 상처와 상처가 만나는 지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2003년 교보문고 매출액을 보면 소설 분야의 점유율은 6.7%로, 외견상 가장 낮을 것으로 보이는 인문 분야의 점유율(7.4%)보다 낮았다. 소설을 쓰게 하는 동력은 무엇인가?
“다 팔자라고 생각한다. 작가회의 사무국장 김종광이 한때 ‘생활이 어려워 소설가 못해 먹겠다’고 했다가 요즘은 ‘소설을 못 써서 속상하다’고 말을 바꿨다. ‘삼오식당’을 연극(‘아름다운 사람들’)으로 각색했을 때 배우들과 어울릴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 생활은 더 힘들더라.”
-시장통 소설은 세속인가 리얼리즘인가?
“나는 철저하게 세속적이고, 돈계산에 빠르다. 세속적 욕망이 강할수록 삶의 의미나 사랑 같은 ‘순수’ 세계에 대한 동경도 많았다. 이 두 가지를 모두 끌어안고 싶은 욕심쟁이다. 흔히 ‘창비’나 ‘문지’로 상징되는, 어느 한쪽의 문학경향에 서고 싶지 않다. 적나라한 삶의 현장을 보여주면서도 그 내밀한 의미를 길어올리는 ‘이명랑식 리얼리즘’을 보여주고 싶다.”
--조선일보 최홍렬기자 hrchoi@chosun.com
소설가 이명랑 나의 이복형제들 출간
소설 ‘삼오식당’으로 서울 영등포시장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의 모습을 잘 그려냈던 이명랑씨(31)가 장편소설 ‘나의 이복형제들’(실천문학사 간행)을 펴냈다.
이번 작품의 무대도 역시 영등포시장이다. 앞의 작품이 시장 상인들의 눈물 많은 사연과 악다구니를 7개 연작 속에서 한바탕 펼쳐낸 것이라면 이번 작품은 떠도는 소녀, 불법체류자인 인도인, 조선족 출신 다방 종업원, 난쟁이 등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전작(前作)에 비해 이번 작품은 낮은 데로 향했다. 전작의 주인공들은 어려운 삶을 꾸려가지만 그래도 당당한 한국인이고 몸 건강한데 비해, 신작의 주인공은 시장이라는 공간에서 밑바닥 삶을 살아야 하는 주변인들이다. 소설은 무당이었던 어머니의 뒤를 이어 신내림을 받으려는 순간 아버지의 방해로 이를 포기하고 가출해 영등포시장으로 흘러들어온 17살 소녀 ‘영원’의 눈에 비친 시장 주변인들의 수난과 아픔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작가는 영등포시장에서 태어나 30여년을 살았다. 지금도 시장통에 있는 ‘삼호식당’의 둘째딸로 식당 붐비는 시간에는 음식 나르는 일을 해야 한다.
25일 그를 만났다. 식당 바로 옆에 있던 농협 공판장이 가양동으로 이사가고, 대신 열린우리당 당사가 입주해 식당이 그 사이 꽤 달라졌다는 말로 그는 말문을 열었다.
“냅킨을 처음으로 갖다 놨어요. 시장 사람들은 손으로 입을 훔치거나 두루마리 화장지로 쓱 닦았는데, 넥타이 맨 사람들은 꼭 냅킨을 찾거든요.”
-두 아이 엄마이고 식당일 하는데 언제 글은 씁니까.
“매일 새벽 3~4시쯤에 일어나 2~3시간씩 씁니다. 낮에는 애들(6세, 5세) 어린이집과 학원 보내고 데려 오느라 도통 시간 내기 힘들어요. 수험생처럼 하루 4~5시간만 잡니다.”
-작품의 주인공들은 실존 인물인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어요. 한사람만을 정확하게 묘사한 것은 아니지만 이곳 영등포시장에는 조선족을 비롯해서 인도·방글라데시아인 등이 꽤 많아요.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생생히 봤어요. 바나나 등 과일 등을 트럭에서 내려 시장안 창고로 하루에도 수십차례 옮기는 육체노동은 주로 외국인 노동자들 몫이지요. 삶의 마지막 코너까지 몰린 사람들의 상처와 상처가 만나는 지점을 이번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다음 작품도 시장이 무대인지….
“아니에요. 가리봉동을 무대로 조선족들을 다뤄볼 생각입니다. 살아 남으려는 인간의 생존본능을 그려 볼 생각이에요.”
-소설을 쓰는 이유는….
“저는 저한테 절실한 문제에 대해 해답을 구하는 과정이 글쓰기라고 생각해요. 제 현재 위치에서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젊은 엄마’라는 것이에요. ‘우리나라 교육의 적은 이웃집 여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젊은 엄마들 대부분이 다른 엄마들은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고,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잖아요. 저도 다른 애들에 비해 우리 애들은 너무 안가르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어요. 직접 애를 키우면서 느꼈던 것에 관해 글을 써보고 싶어요.”
--경햔신문 김용석 기자 kimys@kyunghyang.com〉2004. 5. 26.
잡초 같은 생명력
작가 이명랑(31)의 신작 장편 ‘나의 이복형제들’을 읽다 보면 하얀 티 하나 떠있지 않은, 잉크 방울 같은 열일곱 살의 검은 눈동자가 떠오른다. 검어서 청명한 눈망울, 바로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열일곱 살 소녀 이영원의 생명이 시작되는 곳이다.
물 위의 낙엽처럼 흘러 다니던 그녀가 ‘협동합시다 아저씨’의 손길에 이끌려 잠시 머물고 있는 곳은 서울 영등포시장의 과일가게인 서울상회다. 작가 자신이 자랐고, 과일을 팔았고, 글을 썼고, 자신의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시장 한쪽의 작은 가게다.
작가 이명랑씨. 신작 ‘나의 이복형제들’은 “진짜로 살아있는 것, 길들여지지 않고 자연 그대로인 것”으로 살아가려는 소녀 이영원의 삶을 그렸다. 이영원은 힘없는 이웃들의 구원을 통해 이 같은 소원을 이뤄 나가려고 한다.김경제기자 kjk5873@donga.com
이씨는 2년 전 내놓은 소설 ‘삼오식당’에서 흥정과 활기 속에 살아가는 이곳 억척 상인들의 열전(列傳)을 그렸다. 이번에는 그 시장판에서 난무하는 멸시와 폭력에 하염없이 노출된 나약한 부초들이 이씨의 펜을 통해 생명을 얻는다.
근육마비 증세로 병원 출입을 밥 먹듯 하는 춘미, 불법체류 인도인 노무자 ‘깜뎅이’, 기둥서방의 뭇매를 맞아가면서도 주민등록증을 얻기 위해 몸을 팔아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 조선족 출신 다방 종업원 ‘머저리’, 키가 여섯 살배기만 한 ‘난쟁이 왕눈이’, 그리고 이 모든 이들과 상처를 비비고 마음을 섞는 ‘나, 이영원’이다.
장미다방 종업원 ‘머저리’는 과일상자에 쓰인 글을 읽으며 한글을 익힌다. 그런 그녀가 돈을 좀 모을라 치면 어김없이 기둥서방이 나타나 마지막 남은 1000원권 한 장마저 뺏어간다. 영원은 그녀에게 국어 교과서를 구해 주고 통장을 만들어 준다.
몸이 굳은 춘미가 더 이상 텔레비전 리모컨을 누를 수 없게 되자 영원은 그녀의 손가락이 되어 준다.
왜소한 몸에 대한 열등감으로 마음이 비뚤어진 왕눈이가 진돗개를 앞세워 힘없는 사람들을 괴롭히자 영원은 맨가슴을 왕눈이 앞에 들이대며 결국 그를 굴복시킨다.
이 부초 인생들을 수면 위에 띄우고 달려 나가는 작가의 필력은 개울물처럼 유연하고, 여울물처럼 날렵하며, 폭포처럼 쾌활하다. 시장 사람들의 능청스러운 기지와 유쾌한 간계가 사과상자 안에 놓인 홍옥처럼, 생선가게 널위에 얹힌 갈치처럼 빛난다.
이 소설에서 작가가 허물을 벗겨 자유를 부여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대상은 두 명, 곧 몸속의 열불 때문에 밤마다 남의 가게 냉장고를 열어 몸을 식히는 소설가 지망생 덕진과 ‘나, 영원’이다.
이들의 현실은 영원이 살고 있는 지하실에서 푸드덕거리는 까치 한 마리로 상징된다.
인도인 노무자 ‘깜뎅이’가 그 검은 새를 마침내 창공에 던져 주는 모습은 늘 카메라를 목에 매달고 다니는 영원의 눈에 더없이 강렬하게 포착된다.
‘지하실로 빛이 스며들었다. 내 눈에는 계단 정면에 있는 까치에게만 빛이 모여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자수정처럼 까치의 까만 눈이 빛을 빨아들였다. 어둠 한가운데 길처럼 나 있는 빛을 향해 까치가 날갯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 두근거리는 장면은 영원의 귓전에 생생한 아버지의 마지막 충고와 짝을 이룬다. 영원은 무당의 딸이었다.
억센 어머니가 영원을 접신(接神)시키기 직전 나약한 아버지가 나타나 굿판을 난장판으로 만듦으로써 영원은 강제된 운명에서 떨어져 나올 수 있었다.
딸이 ‘신들린’ 몸으로 살아가는 것을 거부한 아버지는 남은 기력을 다해 영원에게 마지막 호흡을 불어넣으며 이렇게 말한다.
“영원히, 멀리, 도망…가라.”
--동아일보 권기태 기자 2004. 5. 29.
약자 향한 연민이 뚝뚝
가출소녀·난쟁이·외국인 노동자‥ 이명랑씨 새 장편 '나의 이복형제들'
<삼오식당>의 작가 이명랑(31)씨가 새 장편소설 <나의 이복형제들>(실천문학사)을 내놓았다.
<나의 이복형제들>의 무대는 전작인 <삼오식당>과 마찬가지로 영등포시장이다. 작가 자신의 성장지이자 현재의 거주지이기도 한 영등포시장은 그에게는 마르지 않는 문학적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는 듯하다.
무대는 동일하지만 배우들은 사뭇 다르다. <삼오식당>의 주인공들이었던 억척 상인들은 뒤로 물러나고, 상인들 틈에서 또는 그 발 밑에서 겨우 생존해 가는 주변인들이 전면에 나선다. 소설 주인공이자 화자인 열일곱 살 가출 소녀 영원이를 비롯해, 근육마비 증세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춘미, 난쟁이 왕눈이, 조선족 출신의 다방 종업원 ‘머저리’, 인도인 노무자 ‘깜뎅이’ 등이 그들이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하고 여섯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은 이들 각자의 삶의 속내를 차례로 부각시키는데, 그 삶인즉 멸시와 차별, 폭력과 고독으로 점철된 우울한 색조의 것이다.
멸시와 차별, 폭력으로 얼룩진 영등포시장 주변인들 삶 속으로
‘주민등록증’이라는 소제목이 붙은 장의 주인공은 영원이 ‘머저리’라 일컫는 조선족 여성이다. 유부남인 한국 남자와 속아서 결혼한 ‘머저리’는 남편의 감시와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한국 국적을 취득하겠다는 일념으로 온갖 고난과 시련을 참고 견딘다. 그가 피부색이 다른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시장 사람들에게 멸시받는 ‘깜뎅이’와 연인 사이로 발전하는 모습은 약자들 사이의 연대와 결합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날아라 디지몬!’이라는 제목의 장에서 집중적으로 그려지는 난쟁이 왕눈이의 경우를 보자. 낮은 키를 상쇄라도 하려는 듯 언제나 사나운 진돗개를 대동하고 다니는 왕눈이는 영원이를 비롯해 시장통의 약자들을 괴롭히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소설의 전반부에서 심술과 폭력의 상징처럼 그려지던 왕눈이는 개털로 인한 기침에 시달리다가 ‘살고 싶으면 개를 멀리하라’는 의사의 처방에 따라 진돗개를 처분하게 된다. 유일한 무기였던 개를 잃은 뒤의 나약해진 왕눈이를 바라보는 화자 영원이와 작가의 시선은 약자에 대한 연민이라는 이 소설의 주제의식을 무엇보다 강력하게 드러낸다.
영원이와 ‘깜뎅이’에게 냉동창고가 있는 지하실을 잠자리로 내주고 역시 두 사람의 후견인 노릇을 자임하는 상인조합장 ‘협동합시다 아저씨’는 문제적 인물이다. 대학 시절 학생운동 할 때의 감동을 반추하길 즐기는 이 인물은 양면적인 면모로 그려진다. “불씨라고 부를 만한 무언가를 아직은 간직하고 있”는 한편, 남몰래 이중장부를 작성하기도 하는 그가 영원이들이 연루된 사건의 와중에 살해되는 결말은 소설 속에서 충분히 설명이 되어 있지 않은 느낌이다.
--한겨레.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2004. 5. 29.
시장통 서민들 삶의 냄새 담았죠
시장통에 서면 마음이 편해진다. 수많은 서민적 인간 군상에게서 풍겨나오는 삶의 보편적 냄새가 일종의 위안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장편소설 ‘나의 이복 형제들’(실천문학사)을 펴낸 소설가 이명랑(31)씨를 서울 영등포 시장에서 만났다.
“2주전,시장 한쪽에 있는 고층아파트로 이사를 갔어요. 예전엔 상가 3층에 살았는데 무척이나 생경하더군요. 마치 귀족이 된 느낌인데 사람이 사는 곳에 따라 이렇게 감정이 달라질 줄은 몰랐어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며 다짜고짜 앞장 서 들어간 곳은 인근 삼호식당. 묵은 파김치,고등어 자반조림,구수한 씨래기국을 내놓는 이 백반집의 둘째 딸인 그는 3년전,온갖 비속어와 은어들이 출몰하는 시장 언어의 유쾌한 카니발을 연작 소설 ‘삼오식당’으로 펼쳐보였다. 지난 2월 농협 영등포공판장 자리에 세를 든 열린우리당 당사가 창문으로 건너다보인다.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하는 동안에도 내내 식당일을 도왔고 농협공판장 경매사와 결혼해 아이 둘을 낳았으니 그의 소설은 시장에서 뼈대가 굵어지고 근육이 붙었다.
“시장 아이들은 일찍 까져요. 만화방에 가서도 성병에 걸린 아저씨를 만나고 이웃 가게의 아저씨와 바람 난 아줌마가 카바레에서 술에 취해 나오는 것을 흔히 목격하니까요. 저 역시 어렸을 때부터 ‘세상은 아름답다’는 동화적 세계를 믿지 않았어요. 어른들의 거친 세상을 너무 일찍 보았다고나 할까요.”
신작 장편의 공간적 배경도 전작과 같은 시장이지만 등장인물은 ‘삼오식당’에서처럼 시장 질서를 주도하는 인물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 의해 억눌린 채 한계상황에 내몰린 힘없는 주변부 인생이다.
내림굿을 거부하고 집을 뛰쳐나온 열일곱 살 ‘영원’을 화자로 한 소설은 그가 시장통으로 흘러들어와 만나는 현대판 천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웃 장미다방 레지로 있으면서 시장통에서 ‘중국 머저리’로 불리는 조선족 여자,근육이 수축되는 불치병을 앓고 있는 스무살 춘미,그리고 마흔이 넘은 중년이지만 여섯 살 아이의 키에서 성장을 멈춘 왕눈이,피부가 새까만 인도인 노무자….
“철 지난 이야기같지만 요즘들어 계급이나 계층 문제에 부쩍 관심이 가요. 이번 소설에서도 그같은 아우라가 있지만 현재 계간 ‘작가세계’에 연재하고 있는 장편 ‘키싱 피버’에서는 우리 시대의 계층적 문제를 더욱 본격적으로 파고 들지요. 단지 여상(女商)에 진학했다는 이유만으로 17∼18세에 이미 미래를 거세당하는 일이 허다하거든요. 이른바 날라리 고고생 이야기인데. 그러고보니 제 소설의 주인공 나이가 점점 더 어려지는군요. 가리봉동 중국인 거리를 떠돌고 있는 초등학교 6학년의 이야기도 준비하고 있어요.”
소설은 영원이 작가 지망생인 덕진을 만나면서 급전개된다. 내면의 제어할 수 없는 열기 때문에 영하의 추위에도 러닝셔츠 바람으로 냉장고를 열어젖히고 그 속에 머리를 들이민 채 숨을 헉헉대고 있는 덕진에게서 영원은 같은 종의 짐승끼리만 통하는 냄새를 맡는다. 삶의 막장까지 내려왔다 싶을 때 소통되는 덕진과의 동류 의식…. 영원은 하루하루를 위태롭게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이 시장에 붙들린 인생이 아니라 그들 나름의 독립적인 생의 의지대로 살아가고 있음을 서서히 이해하게 된다.
“사실 제 문학에 대해 한 평론가는 시장이라는 휘장을 벗겨내면 아무 것도 없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제 관심은 리얼리즘이냐,아니냐가 아니라 리얼 그 자체에 있지요. 삶의 밑바닥 이야기를 장 주네의 ‘도둑일기’처럼 미학적으로 승화시켜 예술적인 문장으로 옮기는 것,그게 제 문학의 목표예요.”
이씨가 ‘나의 이복형제들’이라고 제목을 정한 순간,그의 소설은 가족주의와 혈연주의의 관습을 비틀고 더 너른 세상 속으로 진입한 것이 된다. 배다른 형제에 대한 발견! 피를 넘어서면 세상은 참으로 넓다.
--국민일보 정철훈 기자 2004.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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