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2004년) 실천문학 신인상 장편소설 부문 수상작!
‘부랑인 수용소’라는 폐쇄적이고 비일상적인 공간을 통해, 권력에 대한 광기 어린 욕망과 허망함을 블랙 코미디적으로 보여준다. 독특한 소설적 시공간 속에서 밑바닥 인생들의 내력이 묻어나는 유머와 해학, 풍자, 질투, 권력욕 등을 생생하게 살려낸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선정 우수문학도서
소재와 주제, 그리고 형식이 매우 특이한 소설이다. 이 소설의 공간은 비좁고 암담하다. 그러나 신랄하고 해학적인 문장, 밑바닥 인생들의 내력이 묻어나는 대화에는 숨막힐 듯한 분위기를 밀어내며 비죽비죽 웃음이 새어나오게 하는 힘이 서려 있다. ―문학평론가 황광수
한성탁의 소설 『전화번호부』는 한국 소설이 아직 가보지 못했던 독특한 소설적 공간을 획득하고 있다. 부랑인 수용소라는 폐쇄적이고 비일상적인 공간을 통해, 작가는 권력에 대한 광기 어린 욕망과 허망함을 블랙 코미디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소설가 김영현
가정에 한 권씩은 비치되어 있던 전화번호부를 언제부터인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초고속 인터넷선이 집집마다 깔리고, 핸드폰이 전 국민의 호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지금 전화번호부는 밀려나고 있다. 이미 고도 기술사회로 진입한 한국 사회에도 많은 것이 밀물처럼 들어왔고, 많은 것이 밀려나갔다. 사물만이 아니다.
제11회(2004년) 실천문학 신인상 장편소설 부문 수상작 『전화번호부』에서 작가 한성탁은 삶의 주변부로 밀려난 밑바닥 인생들을 응시한다. 이미 불혹을 넘겨 등단한 이 늦깎이 작가는 사회 어느 밑바닥에는 저 부랑인 수용소에 수감된 등장인물들처럼 누군가에게 부당하게 억압받고 학대당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아픈 마음으로 증언하며, 그들의 유머와 해학, 풍자, 질투, 권력욕 등을 생생하게 살려낸다.
부랑인 수용소―특수한, 그러나 보편적인
두 평 반 남짓한 부랑인 수용소에 갇힌 열두 사람의 대화와 회상으로 엮어가는 이 소설은 소재와 주제, 그리고 형식이 매우 특이한 소설이다. 무엇보다도 소설의 배경이 되는 부랑인 수용소라는 곳 자체가 한국 소설이 아직 가보지 못했던 독특한 공간이다. 현대 한국 사회의 최하층 지대인 부랑인 수용소라는 소설의 무대는 아마도 작가의 특이한 체험이 없이는 접근하지 못할, 매우 현대적이면서도 과거적인 공간이다.
수용실을 채우고 있는 인물들은 권력 유지의 방편으로 악이용된 '선진적인 거리질서 정화'의 희생양들인데,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와 이곳에 감금되었다. 그리고 수용소에서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부패한 수용소가 마련한 최소 5년 동안의 감금과 형편없는 음식, 그리고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수용실 '대빵'의 고함과 발길질 가득한 피곤한 일상이다. 수용소의 일상을 채우고 있는 폭력과 그 폭력 아래 숨죽여 지내야 하는 부랑인들의 모습은 지난 시절 아니, 어쩌면 지금도 우리의 일상을 채우고 있는 폭력과 그 억압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의 모습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또 하나, 작가가 그리는바 이윤 추구에 혈안이 되어 있는 수용소 운영 측이 자행하는 인권유린이 결국은 공권력의 묵인과 협조 아래 이루어진다는 점, 나아가 양자가 타락한 상거래 행위를 통해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점 등은 이권을 위해 타자의 고통을 요구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이렇듯 『전화번호부』에서 부랑자 수용소라는 기형적 공간은 한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자 하는 문제적 공간으로 제시된다. 무엇보다도 정부로부터 합법적인 사회 보호시설로 인정받고 있으나 합법의 모양새를 띤 채 가장 비합법적으로 운영되는 사회 부조리의 온상으로 부랑인 수용소라는 공간을 제시하면서 작가는 한국 사회의 해묵은 구조악과 행태악을 묘파하고, 그것을 나름대로 부정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을 드러낸다.
한성탁의 전화번호부는 단숨에 읽히는 쉬운 소설이나, 인간 실존을 구성하는 사회적 조건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불러일으키는, 쉽지 않은 소설인 것이다.
치열한 작가의식―권력의 해부와 희망의 탐색
수감자들과 수용소 측 사이에 권력관계가 성립한다면, 수용소 감방 안에도 권력관계가 이루어진다. 감방이란 세상 어디에서나 그려지는 서열화 구도의 성격을 극명하게 드러내기에 효과적인 공간인데,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는 이들 수감자에게 밑씻개용으로 주어진 낡은 전화번호부가 바로 권력의 상징이다. 거기에 기재된 여성들의 이름이 불러일으키는 공상 속에 이들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소유한 자는 그곳의 최고 권력자인 '대빵'이고 그 아래로 중국 돼지와 개백정, 로마의 쥐새끼 등 권력의 사슬이 이어진다. 그런데 전화번호부는 이처럼 절대권력을 상징하면서도, 그것이 밑씻개라는, 결국 가장 비천한 물건이라는 한계를 지닌다. 작가는 전화번호부의 이러한 양가적 상징성을 통해 권력의 무상성을, 또한 이렇듯 무상한 권력을 향한 수용실 내부의 멈추지 않는 이전투구를 섬뜩하게 그려낸다.
그렇다면 어두운 수용소 밑바닥 인생들의 이러한 가망 없는 모습을 통해 작가가 궁극적으로 발견하려 한 것은 역설적으로 희망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큰 '희망'은'대빵'이 슬프게 외쳤던 것처럼 누군가한테 부당하게 억압받고 학대당하지 않는 '자유 만세'일지도 모른다."(작가의 말)
줄거리
술에 취해 거리에서 쓰러져 자고 있는 이들을 '선진적인 거리질서 정화'라는 명목으로 납치해 격리 수용하고 있는 부랑자 수용소. 두 평 반 남짓한 방 하나마다 열두 명을 가둬놓은, 감옥과 다를 바 없는 이곳은 경찰 및 관계 부서 공무원의 묵인과 협조 아래, 교회 권사라는 원장과 그의 친인척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수용소 측은 인원수에 비례하여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되도록 많은 이들을 수용하려 하고, 수용된 이들에 대한 대우는 형편없다. 일단 이곳에 오게 되면 5년 동안 수감되어 있어야 하는데, 아무 말썽 없이 그 기간을 채우면 자유사동으로 옮겨지며, 원한다면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것도 가능하다.
관찰자인 화자가 자리한 수용실에는 수용소 측으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얻은 '대빵'을 비롯하여, 가출한 딸을 찾아다니다 끝내 이곳에 오게 된 공장노동자 출신의 2인자 '중국 돼지', 문전옥답 수십 마지기를 술과 여자로 탕진해버린 '필리핀 염소' 등 곡절 많은 인생들이 갇혀 있고, 이들의 대화와 회상을 통해 이야기는 엮어진다. 이들은 방 안에서 일상적인 억압과 폭력에 노출되어 있으며 또한 나름대로 권력구조를 형성한다.
그런데 반란을 일으키거나 기회를 엿보아 수용소를 탈출한다는 것은 이들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예전에 반란을 시도한 아프리카 메기는 곧 출동한 진압대에 뭇매를 맞고 독방으로 끌려갔으며, 어이없는 탈출을 시도했던 대빵도 즉시 출동한 수용소 측 사람들에게 끌려와 수감기간이 연장되었기 때문이다. 수감된 이들은 그저 참고 또 참으며 5년이란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빵이 지루하고 갑갑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몰두하는 일은 전화번호부에 실린 이름들을 보면서 여자들을 상상하며, 품평하는 것이다. 원래 전화번호부는 밑씻개로 쓰라고 수용소에서 지급한 것인데 이 방에서는 오직 일인자만이 소유하고 탐독할 수 있는,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전화번호부 속의 여자들은 대빵과 이름 풀이자인 중국 돼지에 의해 돈 많은 과부, 재벌 회장의 딸, 유학까지 다녀온 대학교수, 혹은 창녀나 대빵의 첫사랑으로 해석되고, 차츰 대빵은 이 여자들이 자신의 운명적인 사랑이며, 매일 삼겹살과 소주를 마련해놓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한편 사회에서 자신이 끈질기게 구애하던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가버릴 것이라는 위기감에 늘 로마의 쥐새끼와 탈출을 모의하던 개백정은 눈 내리는 어느 아침, 대빵을 탈출 계획에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고, 마침내 탈출을 감행한다. 그런데 대빵은 산으로 도망하다가 뜻밖에도 되돌아와 수용소 정문 앞에서 '자유 만세'를 처절하게 외치다 출동한 추격대에게 초죽음이 되도록 맞는데, 수용실 안 대빵의 자리에는 중국 돼지가 전화번호부를 들고 앉아 있다.
한성탁은 1960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다. 전북대 국문과를 중퇴하였고, 2004년 제11회 실천문학신인상 장편 부문에 소설 『전화번호부』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독자 평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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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일 : |
2005-06-16 오전 10:58: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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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랑인수용소의 밑바닥인생들이 보여주는 블랙코미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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