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가 김연이 6년 만에 새 장편소설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그 여름날의 치자와 오디』는 인터넷 블로그 공간에서 ‘치자’와 ‘오디’라는 넷명으로 만난 여성들이 겪는 특별한 사랑이야기이다. 가상공간에서, 익명으로 만난 이들은 어떻게 서로를 알아보고 속살을 껴안게 되었을까. 수없이 세상에 상처받고 현실에 무릎 꿇으면서도 멈추지 않고 자유를 향해 가는 이 땅의 여성들, 이 소설은 무수한 익명의 그녀들을 향해 보내는 응원가이며, 한편의 경배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선정 2006 우수문학도서

거친 폭력들과 제로섬의 약삭빠른 계산이 사람들을 점령한 지 오래인 아픔의 땅, 이 땅에서 얼굴을 보지 않은 채 사랑을 나눌 수 있을까. 그러니까 그들의 사랑, 그것은 오히려 익명으로 만났기에 가능한 것이다. 진흙탕에서 피어난 연꽃처럼 하얗게 발가벗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그들만의 통로가 있었기에. 꽤나 어렵게 다가온 소설이었는데, 문외한인 나에게 익숙지 않은 구성과 이지적인 문체 때문이었다. 어려움을 헤쳐 나가면서 점차 흥미를 느꼈고 마침내 그들의 사랑에 공감하는 기쁨을 맛본 것은 작가와 세대의 차이를 넘어 인간으로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나는 사무치게 부럽다. 치자와 오디의 사랑이. ―홍세화(언론인)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내 반쪽이 도대체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지 모를 때, 우리는 수신인 없는 편지를 쓴다. “2004. 03. 07. 23:29”라는 블로그 등록시간으로 기표되는, 이 작품 속의 러브 레터들 또한 잃어버린 반쪽과 미래의 삶을 향하여 보내는 간절한 기도(祈禱)이자 구조 사인(sign)이다. 믿지 않던 것을 믿게 하고 증오를 경배로 바꾸는 저 위대한 보랏빛 사랑의 기적이 이 속에서 실현된다. _―박정애(소설가, 강원대 교수)
블로그, 새로운 소통이 시작되다
오늘, 우리는 인터넷이 일상화된 시대를 살고 있다. 블로그, 미니홈피, 채팅, 홈페이지…… 어느덧 익숙해져버린 사이버 세계, 이 가상공간은 우리의 일상, 우리의 관계 모습도 바꾸고 있을까? 치자와 오디, 이 소설의 두 여주인공에겐 적어도 그렇다. 그녀들에게 블로그는 내면 일기이면서도 소통의 도구이며, 독백이자 구조사인이며, 간절한 기도이다. 자신을 옭아매는 세상의 사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오히려 익명이기에 가능했던”(홍세화) 이들의 사랑, 이들의 언어는 가상의 공간을 떠돌다, 기적처럼 마주친다.
위험하고 간절한 그녀들의 소통, 그 미래는?
소설 도입부의 화자인 ‘치자’(아이디)는 요절한 시인 기형도의 기일인 3월 7일, 시인의 시에서 빌린 ‘내 영혼의 검은 페이지’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에 허공의 집, 블로그를 만든다. “보랏빛으로 죽어가는 그녀들의 입술 앞에서 이렇게라도 굳어버린 나의 혀를 녹여 살아 있고” 싶어서. 다음 장의 화자가 되는 ‘오디’(아이디)는 같은 날, 철야수당 없는 철야작업 뒤 “일요일인데도 죽음 같은 열악한 노동의 저녁을” 감내하며 귀가하던 중 지하철에서 남자들에게 봉변을 당하고는 피시방에서 자신의 블로그, ‘판타스틱 소녀 백서’를 업그레이드한다.
소설은 이렇듯 치자와 오디가 번갈아 일인칭 화자가 되어 팍팍하고 버거운 일상을 살아내는 정황을 고백하듯 이야기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치자는 임용고시를 준비 중인 학원강사로, 끝없는 빈곤과 가부장제 폭력에 찌들어 수시로 죽음 충동을 느끼곤 하는 여성이다. 성격은 내성적이고 외모는 부드러우며 옷차림은 단정하다. 오디는 애니메이션 감독을 꿈꾸는 애니메이터로서 저명한 대학교수 아버지와 교양 있는 어머니 밑에서 자란 외딸이다. 오디는 털털하고 당당한 성격에 개성적인 외모를 지녔으며, 과감한 패션을 즐긴다.
이들은 환경, 성격, 외양 등 겉모습은 판이하지만 속내는 여러 면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둘 다 최승자 시인이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라고 갈파한 서른 살이며, 미래 없는 비정규직이며, 성적 소수자이며, 무엇보다 ‘여성과 동일시하는 여성’이다. 이들은 여성에 대한 이 사회의 모든 억압, 폭력, 차별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분노하고 아파한다.
이들은 블로그를 통해 차츰 서로의 내면을 공유하면서, 분노와 상처를 넘어 자신을 옭아맨 현실의 제약을 과감히 거부할 용기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 용기는, 새로운 삶을 연다.
하루하루를 견디는 이 땅의 ‘여성들’, 그녀들의 새로운 서사를 위하여
영화제목, 노래제목, 시구, 유명한 대사들을 차용한 이 책의 소제목들만 일별하더라도 눈치 빠른 독자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이 시대 젊은이들 사이에서 통하는 문화 코드들을 키치로 사용했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이 소설을 위해 작가는 ‘언니네’, ‘일다’ 등 여성주의 모임 회원들과 인터넷 동호회들을 깊고 넓게 탐구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소설이지만, 현실의 블로거들, 여성주의자들의 여러 모습이 곳곳에 투영된 일종의 기록이라 해도 무방하리라. 기존 소설의 관점에서 보자면 다소 생소한 그들의 언어, 그들의 표현방식이 날것으로 드러남을 밝혀둔다.
개인들, 여성들만 아니라 우리는 누구나 세상 앞에서 약소자이자 소수자이다. 거대한 세상의 폭력 앞에서 우리는 모두 힘없는 약자인 것이다. 치자와 오디의 여정은, 거대한 세상의 체제 안에서 살아가는 한 개인이 멋지게 승리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테면 그것은 기존에 구획된 세상의 질서로부터 탈주하여 자신만의 일을 구축하는 것이다. 또한 기존 관점에 의하면 ‘불온한 사랑’으로 낙인 찍힐 수밖에 없는, 그러나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택해 마음껏 사랑하는 일이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진실한 삶 앞에서 분투 중인 당신들(「작가의 말」)’, 그녀들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서사에 갈채를 보낸다.

 |
김연 1963년 남도 땅 광주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닌 뒤 청운의 꿈을 안고 1982년 연세대 영문과에 입학, 13년 만에 졸업장 하나 간신히 건지다. 1990년 ‘차주옥’이란 이름으로 장편노동소설 『함께 가자 우리』(실천문학사)를 낸 바 있다. 1997년 『나도 한때는 자작나무를 탔다』로 제2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 2000년 장편소설 『섬은 울지 않는다』를 펴냈다.
|

오래된 금서 어느 나르시시스트의 그물망 스타킹에 대한 비판적 성찰 낭만고양이에 대한 오마주 혹은 모독 티파니에서 아침을 어머니 우시네 내 유년의 윗목 영혼을 위한 치과용 국부 마취제 슬픔과 눈물로 태어나…… 치자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피 엠 에스 블루스 이토록 슬픈 그대여 가라 생각이여 금빛날개를 타고 작은 꽃들이 잠을 자는데…… 멈추어라, 이제는 멈추어라, 가혹한 열정의 잔인한 기억들 굿바이 얼! 눈물의 또 볕살의 나라 사람이여 눈뜨라고 부르는 소리 있어 내가 돌아갈 길을 안다면 그 저녁 무렵부터 새벽이 오기까지 ……그리고 그들의 시작
해설 | 박정애 작가의 말

내 혀를 녹여 살고 싶다 ‥ 김연 씨 장편소설 `그 여름날의… ` 출간 ―― 김재창 기자, 한국경제(2006. 06. 14.) ‘세상의 남자’에 지친 여성들의 자매애 ―― 최재봉 기자, 한겨레(2006. 06. 16.) 블로그에 그녀들이 쓴 내면일기… 현실의 제약 벗어나 새로운 자아 찾기 ―― 정철훈 기자, 국민일보(2006. 06. 19.) 그 여름날의 치자와 오디, 김연 장편소설 ―― 조두진 기자, 매일신문(2006. 07. 19.)
|